ISSUE 3
CRITIQUE
조랭(사운드 디자이너, 뮤지션)

아이돌 기표의 ‘트랜스’ 해부하기: NCT 127의 ‹슈퍼휴먼›과 아이돌 피상성

뒤로가기
ISSUE 3
CRITIQUE
조랭(사운드 디자이너, 뮤지션)

아이돌 기표의 ‘트랜스’ 해부하기: NCT 127의 ‹슈퍼휴먼›과 아이돌 피상성

2020년 5월,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백인 경찰에 의해 질식사한 흑인 남성의 죽음이 전 세계적으로 제도적 인종주의와 경찰 공권력에 대항하는 분노에 찬 시위 운동을 불러일으켰고, 소셜 미디어에서는 Black Lives Matter(이하 BLM)를 태그하고 인종주의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촉구하는 흐름이 확산되고 있던 무렵이었다. 학교의 한 세미나를 주축으로 넷 아트(Net Art) 관련 정보들을 공유하던 채팅방에 링크 하나가 올라왔다. 서구권의 케이팝 팬들이 인종주의자들을 상대로 벌인 가짜 해시태그 운동에 관한 내용이었다. 달라스 경찰국이 BLM 시위에서 포착된 불법행위에 대한 영상들을 iWatch 달라스 앱을 통해 제보해달라는 공지를 올렸고, 서구권의 케이팝 팬들은 트위터에 두 개의 대표적인 극우주의 인종주의자들의 태그 #WhiteLivesMatter, #WhiteoutWednesday를 걸며 좋아하는 케이팝 아이돌의 영상과 사진을 포스팅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달라스 경찰국은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어플리케이션이 다운되었다고 발표했다. 온라인 액티비즘에 대한 적지 않은 지적과 경계가 이어지는 가운데 인종주의에 맞서 넷상에서 긍정적인 방식으로 연대(화이트 해커)를 구성한 사례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데, 그 매개체가 케이팝 아이돌의 무대 영상과 밈(Meme)이 되었다는 사실은 서브컬쳐 팬문화가 가진 고유의 정서를 넘어 그들의 믿음을 담보하는 역할이 되어준 아이돌이라는 기표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한 시기를 풍미하는 모델을 문화적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어떤 과정들이 필요할까.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이 상상적 표상으로서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선전을 위한 도구로 널리 쓰인다는 비판을 조금 차치하고, 개인과 집단을 위한 통찰의 시발점이 된다는 전제하에, 나는 과거에 겪었던 몇몇 이데올로기적 순간들을 상기한다. 새로 발표되는 최신형 전자기기를 적절한 시점에 소유하는 것에 따라 위계가 생겼던 학창 시절이나, 세월호 침몰사고를 브리핑하던 정부의 발표와 공중파 미디어의 뒤켠에서 개인방송 플랫폼의 스트리머들이 말하던 정보의 격차,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에 적극적으로 재고되거나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한 담론들… 90년대 중반 태생으로서 밀레니얼 세대라는 단어는 성인이 되어 세대론에 관한 맹점들을 무너뜨리는 계기를 만나기 전까지 하나의 음모론에 불과했지만, 사회 구성원으로서 나의 위치를 자각하고 특정 타임라인에 발을 딛고 있는 감각이 느껴졌을 때, ‘나는 밈(Meme)이자 이데올로기다’라는 선언에 대해 떠올리게 되었다. 밈이라는 비유가 시대정신과 동의하게 쓰이는 것이 다소 부적절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세대와 개인을 막론하고 오늘날 밈—인터넷 밈의 차원에서든 일반 용어로서의 밈으로서든—이 가진 자기복제의 특성과 밈이 투사된 모델들이 주요 무대로 삼고 있는 미디어상의 전염과 영향력은 (가짜정보의 비율이 증가하는 것을 염두에 두더라도) 점점 밀도를 높여가고 있다.

밈이 가진 배경과 뉴미디어를 자본으로 삼아 수혜를 받고 있는 대표적인 장르에 케이팝 아이돌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90년대 1세대 아이돌“케이팝 아이돌 전문 웹진 IDOLOGY의 서식을 인용. 아이돌 1세대는 SM 기획(현 SM 엔터테인먼트)이 미국의 보이밴드와 일본의 아이돌 프로덕션에서 착안하고 서태지와 아이들을 참조하여 내놓은 최초의 케이팝 아이돌 H.O.T를 시작으로 SM 기획과 대성기획(현 DSP 미디어)의 경쟁 구도 하에 탄생한 초기 아이돌 그룹들(H.O.T., 젝스키스, S.E.S., 핑클 등)로 대표된다.”, 스큅, 「아이돌 세대론 : ① 2020 아이돌팝 세대론」, 웹진 “IDOLOGY”, 2020.의 성공 이후 아이돌 문화와 함께 성장하며 청소년기를 보낸 밀레니얼 세대를 거쳐 SNS를 통해 아이돌 팬덤 문화에 정착된 ‘입덕’과 ‘탈덕’이라는 은어는, 아이돌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이후에 입문하게 된 팬들로부터 아이돌 상품을 구성하는데 일조한다는 죄책감을 덜어내고, 적극적인 소비 주체로서 아이돌 시장의 문을 자유롭게 열고 닫는 행태를 밈화한 사례다. 오타쿠(オタク)를 혐오의 이미지로 표상화해 경멸하듯 ‘오덕후’라고 바꿔 부르는 방식에서 묻어나는 것처럼, 아이돌에 입덕하는 ‘덕후’를 자처하는 배경에는 자조적인 의미도 섞여 있다. 아이돌과 팬의 관계는 상품을 판매하고 구매-소비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팬덤에 속함으로써 부여되는 소비 주체의 권력과 그에 응답하는 아이돌의 팬서비스(리슨Lysn, 브이 라이브V-Live 등 전용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한 팬들과의 쌍방향 소통, 예능 프로그램 출연, 팬 사인회, 머천다이징이 세대를 거쳐 현시점에 아이돌 마케팅의 기본 관례로 자리 잡았다.)가 상호 보상이라는 미명하에 유지되면서, 암묵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권력 주체를 삭제하는 듯한 (환상을 유발하는) 기묘한 역학을 형성한다. 페미니즘과 퀴어니즘, 인종주의 등의 담론을 아이돌 산업과 아이돌 개인의 고질적인 맹점에 비추어 보며 ‘메타-덕질(덕질이라는 행위에 대해 거대 담론을 적용시켜 고찰하기)’이라는 개념이 팬들 사이에서 키워드로 제시되기도 하지만, 자기 연민과 정치적 수단으로 아이돌 소비와 특정 담론을 연결 짓는다는 조롱을 받기 일쑤다. 아이돌은 가상현실에서만 존재하는 아바타가 아니라 현존하는 몸이지만, 관찰자를 기만한다는 점에서 스크린과 다름없다.”새로운 그림은 관찰자를 기만하려고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중의 방식으로 그렇다. 첫째, 이 새로운 그림은 그 자체가 점들의 컴퓨터화라는 사실을 숨기고, 전통적인 그림과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사칭한다; 둘째, 고도의 기만 수준에서 이 그림은 전통적인 그림이 그랬듯이 어떤 사태를 상징적으로 의미한다는 것을 사칭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점에서 점으로 의미한다는 것을 사칭함으로써 점들에서 유래한 원천을 외관상 인정하지만, 오직 ‘더 좋은’ 그림을 제공하기 위해 그렇다.”, 빌렘 플루서, 『피상성 예찬 – 매체 현상학을 위하여』, 김성재 옮김, 커뮤니케이션 북스, 2004. 빌렘 플루서가 말한 새로운 그림이 투사되는 스크린에 관한 체험을 아이돌이라는 특수한 기표에 비유했을 때, 아이돌을 존재론적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 순간 포착되는 것은 허상(스크린의 공허)이며, 그러한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 관찰자(팬)는 그들의 상을 단순 포착이 아니라 ‘체험’하려 하지만, 체험하기 위해 습득할 수 있는 정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돌의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재가공된 리얼-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의 스토리텔링 뿐이다. 결국 아이돌을 현상과 연결 지으려는 시도는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복잡한 통찰을 요구함과 동시에 아이돌이라는 함의 자체를 무너뜨린다. 아이돌 팬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의식을 염두에 두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는데, ‘입덕’은 언젠가 ‘탈덕(기호의 변화로 인해 자연스럽게 탈덕하게 되는 것과 보이콧—소비구조에 항의하기—이라는 두가지 측면에서)’으로 이어지지만, ‘탈덕’하기 위해서 ‘입덕’ 을 하는 팬은 없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SM 엔터테인먼트의 NCT(Neo Culture Technology)라는 아이돌 유닛이 보이는 행보는 기존의 아이돌그룹과 비교했을 때 어딘가 전복적인 시도를 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흥미로운 암시를 준다. 작곡과 작사에 직접 참여하는 점을 피력하며 아이돌 그룹의 아티스트적 가치를 강조하는 방탄소년단, (과거의) 빅뱅과 같은 그룹들이 시대의 우상으로서 아이돌 소비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10대 팬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동안, NCT는 비교적 낮은 10대 팬 지지율과 국내에서의 적당한 인지도를 보이며 ‘네오함’의 신비가 시사하는 거리감을 유지했다. NCT라는 거대한 이념의 전차는 데뷔 전부터 팬들에게 연습과정을 공개한 SM Rookies루키즈 엔터테인먼트는 2013년부터 SM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연습생들이 연습하는 과정을 공개했다.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의 성공 이전에 팬이 직접 연습생을 프로듀싱 한다는 컨셉을 제시했으며, 팬들은 2015년에 발매된 루키즈 엔터테인먼트 어플을 통해 증강현실 게임의 형식을 띤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을 플레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컨셉은 데뷔 전부터 해당 아이돌에 대한 팬덤을 생성하고 (데뷔를 가정한) 아이돌 그룹을 대상으로 강한 몰입을 유도했는데, ‹프로듀스 101›의 순위 조작 논란과 유사하게 데뷔 조에 들어간 멤버들의 활동에 팬들의 투표가 얼마나 반영되는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았으며, 현재는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다. 프로젝트, 지역과 시즌에 따라 유동적으로 달라지는 활동 멤버 구성, ‘꿈의 동기화’라는 복잡한 (그렇지만 아이돌 세계관의 서사가 늘 그렇듯이 추상적이고 낭만적인 성격도 띠는) 세계관, SM 엔터테인먼트에서 전통적으로 선호하는 미소년 스타일 외모의 대거 집합, 현재의 유행에 타협하지 않고 프로덕션의 완벽성을 추구하는 경향들과 교차하며 기존의 국내 케이팝 팬들에게 다소 냉정한 인상을 풍긴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부정성 효과는, 노골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을 이상화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고 존재하는, 기업이념이 노골적으로 가시화된 아이돌에 대한 부정에서 기인한다.

SM의 이수만 회장은 일찍이 인터뷰를 통해 회사 내 AI 부서를 두고 자회사를 통해 자체 미디어 콘텐츠를 개발 중임을 알리며 SM 엔터테인먼트의 정체성을 음악 회사가 아닌 테크놀로지 회사Tamar Herman, 「SM Entertainment A&R Chris Lee Talks ‘Cultural Technology & Creating K-pop Hits」, Billboard, 2019.로 굳힌 바 있고, AI와 가상현실(VR)을 기반으로 소속사 연예인(원본)의 외모와 성격을 복제한 AI 연예인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런 흐름 속에서 기업의 야망을 짊어진 NCT 127(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NCT 서브 유닛)에서 ‹Superhuman›(2019. 05 발매)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내놓은 것도 우연이라기보다는 예견된 것에 가깝다. 타이틀, 안무의 레퍼런스와 가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슈퍼맨›의 영웅서사를 차용한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뮤직비디오의 여러 장면에서 포착되는 인공지능으로 트랜스 하는 인간의 이미지, SF적 공간 구성, 데이터 양자화, 시간성에 대한 연출들은 기존의 영웅 서사와는 조금 다른 백그라운드를 염두에 두고 쓰여졌음을 일부러 보여주는 장치들이다. 그 속에는 인간과 기계의 결합이 초인적인 힘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을 근거로, 인공지능 발전을 낙관적으로 바라보며 기술로부터 혁명적인 진보를 기대하는 트랜스 휴머니스트들의 사상이 피상적으로 재현되어 있으며, 게다가 (아이돌의) 태생적 ‘한계를 넘어’, 시스템을 깨고 나가 슈퍼휴먼(초인)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아이돌의 노래는 그 자체로 (환상이라고 할지언정) 아이돌이 메타적으로 산업 구조를 깨고 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묘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이미지가 전복적이고 긍정적인 인상을 띄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초인이 될 수 있다는 상상을 부여하면서 아이돌을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구조에 충실하게 복무하게 하고, 시스템의 바깥을 상상하게 해서 역설적으로 그 시스템이 확장, 유지, 발전되는 굴레를 떠올려보면, 아이돌이 연기하는 ‘완벽한 인간’, ‘인간을 초월한 인간’을 보며 좋든 싫든 과거 제국주의 지도자들이 선전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는 방식에 대해 상기하게 될 수밖에 없다. 요컨대, 아이돌 개인보다는 기업이념이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는 하이브리드 로봇-인간으로의 변형을 결과로 삼으며, 사회적 정상규범에서 벗어난 ‘괴물’이 아니라, 우수한 유전자만을 배양하고 유전시키는 것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시스젠더 남성권력의 엘리트주의를 바탕으로 섬뜩한 유토피아를 구축하는 것이 노래에 담긴 서사의 최종 종착지인 것이다. 이는 인간 중심주의를 벗어나 ‘인간’, ‘기계’ 의 개념 자체에 대한 해부와 성찰에 주목하는 포스트 휴머니즘과 맥락을 완전히 달리하고, 도나 해러웨이의 포스트 젠더(Post-gender) 사이보그의 현신(incarnation)도나 해러웨이, 『해러웨이 선언문 – 인간과 동물과 사이보그에 관한 전복적 사유』, 황희선 옮김, 책세상, 2019.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대중문화를 빌려 재현되는 사상적 기류의 얕은 심미에 대해 큰 기대를 버리더라도, 논바이너리 트랜스 아티스트 아르카(Arca)와 소피(SOPHIE)Arca, ‹Nonbinary›, 2020, SOPHIE, ‹Faceshopping›, 2018.가 각각 취하고 있는 괴물적으로 디자인된 메탈 소재와 3D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진 트랜스 바디는 ‘케이팝 아이돌’의 제한적 상상력에 비교하면 다층적인 해석 가능성을 마련한다.

아이돌은 스스로를 폭로하는 위치에 설 수 있는가? 소비자가 아이돌을 자본주의 상품 이외의 다른 것으로 보기 위해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취할 수 있는 전략, 혹은 전복적 사유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이따금 아이돌이라는 원본과 긴밀함을 유지함과 동시에, 분리되어 또 다른 하위문화를 생성하는—광장에서 추는 ‘케이팝 랜덤 플레이 댄스’처럼—흐름들을 목격할 때마다 수행적인 역할로서의 케이팝 문화를 감각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역으로 팬덤 문화로부터 영향을 받아 사유하는, 아이돌 기표의 ‘트랜스’가 가능하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