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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식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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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식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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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이미 질식사한 사람인데요. 이미 뒤진 마당에, 이제야 이런 편지를 읽게 돼서 슬프고 기쁘네요. 저로 말할 거 같으면, 어느 영화제 뒤풀이에서 술잔깨나 채워본 사람인데요. 그때마다 목젖까지 차오른 궁금증이 있었거든요. 근데 이 영화제가… 어디서 독립한 거예요? 라고요. 왜냐면 일본이나 청나라에서 독립했다기엔 영화제 역사가 너무 짧잖아요. 혹시 이 영화제가 자본에서 독립한 건가? 물으면, 셋방살이라도 꼭 CGV 나 메가박스 같은 멀티플렉스에서만 하잖아요. 그리고 어디 기업 이름 딴 상도 하나쯤은 꼭 있더라고요. 하긴 대학 건물도 죄다 LG 관이다. SK 관이라고 하는 마당에 아무도 신경 안 쓰는 독립영화상 이름이 기업 이름 좀 따면 어때요. 홍보도 안 되는데 봉사 차원에서 하사해주시는 거지. 그래서 생각했어요. 아 제도나 기관에서 독립했구나! 근데 또 크레딧 보면 꼭 영진위니 어디 영상위니 해서 20분짜리 영화도 예산이 천만 원이 훌쩍 넘는다는 거예요. 그리고 영화관 옆 골목에서 담배 피우는데, 거기 관계자님들이 그러는 거예요. 제작지원 못 받아서 못 찍는다고. 영화 좀 찍고 싶다고. 아마도 제작지원을 받아야만 영화제작 자격증 같은 걸 같이 발급해주나 봐요. 그랬더니 거기 옆에 계신 분이. 야 말도 마. 우리도 똑같아. 이게 영화 틀려고 보조금 받는 건지, 보조금 타려고 영화를 트는 건지 모르겠다. 그럼 도대체 어디서 독립한 거지? 아 기존의 관습에서 독립한 거구나! 라는 결론을 얻고 다시 극장으로 들어갔는데 한 섹션에서 똑같은 배우가 세 작품에 나오더라고요. 한 영화에서는 그 배우가 퀴어로, 다른 영화에서는 폭력의 피해자고, 또 그 다음 영화에서는 용감한 휘슬 블로어로 나오는데, 그 세 편을 연달아보니까 그 배우가 자기 퀴어애인에게 폭력을 당해서 고발을 한 것처럼 보여가지고 하마터면 헷갈릴 뻔 했지 뭐예요. 영화가 끝나고 로비에 앉아서 곰곰이 생각을 더 했어요. 그리고 깨달았어요. 아 독립영화제는 관객으로부터 독립한 거였구나! 왜냐면 상영관에 들어가면 항상 세 종류의 사람만 있더라고요. 영화 관계자, 영화제 관계자, 그리고 상영관 번호를 착각해서 들어온 사람. 이 사람들은 보통 영화가 시작하면 나가시니까… 근데 그것도 독립이긴 하는가? 머리를 너무 많이 써서 허기지더라고요. 그때 참았어야 했는데… 영화제에서 굿즈로 준 삶은 고구마호박을 좀 꺼내 먹었더니… 그게 그만 목에 걸려서 더는 숨을 쉴 수 없었답니다. 그때 제 옆에 하임리히법을 숙달한 분이 계셨다면 저를 구원해주셨겠지요. 그러면 저는 궁금증도 해결하고 행복하게 살았을텐데… 이런 저를 본보기 삼아 각종 영화제 관계자 및 현업 종사자들과 전공 학생들 모두가 하임리히법을 배웠으면 좋겠어요. 특히 셀프 하임리히법 같은 게 있다면 꼭 배웠으면 좋겠어요. 보통 자기 기도는 자기가 막을 때가 많은 거 같으…컥… 커커커컥….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