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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수

해적질의 옹호와 현양 4. 성배의 기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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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수

해적질의 옹호와 현양 4. 성배의 기사들

영화 평점 사이트인 레터박스(Letterboxd)에는 ‘성배(Grails)’를 찾는 기사들과 이들을 교환하는 해적들의 은밀한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다. 성배란 그냥 단순히 말해, 인터넷에서 구하기 힘든 몹시 희귀한 영화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레터박스에 ‘Grails’를 검색해보면 유저들이 올린 여러 성배들의 명단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다수는 비공개 트래커 같은 가장 은밀한 경로에도 올라오지 않아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구할 수 없는 영화들이다. 각자의 성배 명단은 유저들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이 성배 명단들은 어느 정도 공통의 목록을 공유하기도 한다. 이는 이들이 단순히 희귀한 영화만이 아니라, 어느 정도 시네필들 공통의 수요가 있는 영화들이라는 걸 암시한다.

크리스찬 마클레이의 ‹시계›는 대표적인 성배 중 하나로 여겨진다. 이 작품은 여러 영화에서 시계가 나오는 장면, 혹은 대화 속에서 시간이 언급되는 장면의 수천 개의 클립을 따와 현실의 시간과 동기화(synchronization) 시킨 작품이다. 가령, 관람자가 2시 30분에 해당 작품을 (미술관에서) 보게 되면, 작품에서 보이는 시계도 2시 30분을 가리키거나 하는 식이다. 해당 작품의 감상용 사본(viewing copy)뒤에서 좀 더 서술하겠지만, 이는 스벤 뤼티켄의 유명한 글 「Viewing Copies: On the Mobility of Moving Images」에서 가져온 용어다. 해당 글에서 말하는 감상용 사본이란 ‘판매용’이 아닌 대개 연구자들의 연구 목적 등으로 제공되는 ​사본을 의미한다. 영화제의 출품용/심사용 스크리너 같은 것들도 이런 감상용 사본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해당 글에 대한 국역본은 다음 주소를 참조하라. 스벤 뤼티켄(2009), 「감상용 사본: 무빙 이미지의 유동성에 대하여」, 이유니 옮김, 호랑이의 도약.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인터넷에 떠도는 파일은 내가 아는 한에서는 없다. (작품의 일부분만을 찍은 ‘캠버전’은 유튜브에 올라온 기록이 있지만 마클레이 본인의 저작권 신고로 인해 삭제되었다. 아주 일부분이지만 비메오에는 오후 3시가량 부분을 찍은 캠버전 영상이 남아있다) ‹시계›의 파일이 돌아다니지 않는 것은 24시간이라는 러닝타임도 문제겠지만,러닝타임 문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유명한 앤디 워홀의 ‹엠파이어›도 8시간 짜리 풀버전 카피는 웹에 돌아다니지 않는다. 유튜브에 앤디 워홀의 엠파이어라고 올라와 있는 8시간 짜리 영상은 사실 에릭 도링어(Eric Doeringer)의 ‹앤디 워홀 이후의 엠파이어(Empire After Andy Warhol)›라는 일종의 리메이크 작품이다. 마클레이가 작품에 사용된 영화 클립들의 저작권을 하나도 해결하지 않고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점도 클 것이다. 해당 작품은 6개의 한정판으로 여러 갤러리들의 입찰 전쟁을 통해 50만 달러에 가까운 금액에 판매되었고, 마클레이가 이를 통해 상당량의 수익을 창출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지금까지 아무도 마클레이에게 관련된 소송이나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는데, ‹시계›의 카피가 유출되고 인터넷에 퍼지게 되면 원치 않는 까다로운 법적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마클레이나 기관들이 철저히 게이트키핑하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저작권 문제 때문에 ‹시계›를 상영하는 기관들은 해당 작품에 대한 상영료를 아예 받지 않거나, 전시장의 입장료 일부로 해당 작품을 제공하거나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런 사정상 ‹시계›가 인터넷에 풀리는 일은 요원해 보인다. 국내 작품들 중에서는 (‹만추› 같은 작품을 논외로 한다면) 한국영상자료원의 영상도서관에서 내부 VOD 서비스로만 감상이 가능한 배용균의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이나, 2011년 이후 극장에서 한 번도 상영된 적이 없는 김동주의 ‹빗자루, 금붕어 되다›이 작품에 대해서는 작년에 김동주 감독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 문의를 해보았는데,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대관을 하여 비공개 상영을 계획 중에 있다고 한다. 조만간 소식이 들려오지 않을까 싶다. 같은 작품들을 성배의 예로 들 수 있겠다.​

이렇듯 어떤 영화가 성배의 위치에 놓이는 건 크게 두 가지 때문이다. 첫 번째는 영화의 디지털화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아 필름으로만 볼 수 있거나, 아니면 감독이나 작가의 의도에 따라 극장이나 전시장에서 대면으로 봐야만 하는 작품의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경우는 대개 감독들의 미학적인 고집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너새니얼 도어스키, 제롬 하일러, 로버트 비버스와 같은 감독들은 자신의 작품을 디지털화하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유명한 대표적인 셀룰로이드의 수호자들이다.16mm와 35mm 필름의 보존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순수하게 광화학적인 방식으로, 기존의 원본 필름 자료를 폴리에스테르 네거티브에 직접 옮기고 필름에서 필름으로 옮기는 과정 중에 수정 및 정리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디지털 방식인데, 원본 필름 자료를 프레임 단위로 스캔하여 DPX 포맷의 디지털 마스터 파일을 만들어 수정 작업을 거친 후(이것이 흔히 digital intermediate, DI라고 부르는 것이다), DPX 파일로부터 전시용 듀프 네거티브를 만들거나, 감독이 디지털 방식으로 작품의 상영을 원할 경우엔 이로부터 DCP나 Blu-ray를 제작하기도 한다. 너새니얼 도어스키는 이러한 과정 중에서 어떤 종류의 디지털 매개체가 끼어드는 걸 절대 용납하지 않는 감독이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에이미 토빈의 다음 글을 참조하라. Amy Taubin, (Untitled), Artforum, October, 2015.다만, 제롬 하일러의 경우 최근에 생각이 바뀌어 디지털화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기도 했다. Maximilien Luc Proctor, “The world is not a solid, intractable thing” — An Interview with Jerome Hiler, ULTRA DOGME, 2021-10-29. 국내의 사례로 한정하자면 자신의 영화들을 극장 상영만을 전제로 상영하는 정재훈 같은 감독을 예로 들 수 있겠다.​

하지만 이들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반드시 극장을 찾을 필요는 없다. 이들을 캠버전으로 밀수하는 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너새니얼 도어스키, 제롬 하일러, 데이빗 개튼, 앤드류 노렌 같은 실험영화 감독들 작품의 캠버전은 그 자체로 비합법적이지만 작품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카피로 간주되어 성배 교환 네트워크에서도 상당한 지위를 차지하며 교환된다. 이런 캠버전들은 아주 협소한 성배 교환 네트워크 내부에서 순환하는 경향이 있지만, 가끔은 그 네트워크 바깥으로 유출이 되기도 한다. 그 경위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건, 2020년을 기점으로 너새니얼 도어스키의 몇몇 캠버전이 유출된 다음과 같은 사례가 있다.

“도어스키의 ‹노래와 고독(Song & Solitude)›과 ‹사라방드(Sarabande)›를 이곳에 업로드하지 말아 주세요. 그 파일들은 제 친구가 찍은 캠버전인데요, 그는 오직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공유했을 뿐, 다른 곳에는 업로드할 생각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서버에 게시되면 자동적으로 트래커, 브콘닥테, 유튜브로 퍼지게 될 것이고, 제 친구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정말 바라고 있어 그를 대신하여 부탁드립니다. 이 점을 존중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도어스키는 이미 DVD로 나와있는 디지털 카피도 용인하지 않아요. 그것들도 단지 영화제의 미리보기용 사본*일 뿐입니다. (*주: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도어스키의 몇몇 작품들의 파일은 퐁피두 센터에서 만든 감상용 DVD에서 리핑된 것이다.) 제 친구는 영화학교 학생이고 개인적인 참조용으로 캠버전을 찍어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공유했는데요, 불행히도 그들 중 누군가 영화 파일을 다른 사람한테 보낸 모양이라, 영화들이 유출 직전에 있습니다.”

영화학교 학생이 개인적인 참조 용도로 찍은 캠버전을 소수의 사람들에게 공유했지만, 그들 중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파일을 보내 그것이 유출된 경우. 위의 부탁이 무색하게도 해당 작품들은 디스코드로부터 인터넷 방방곡곡으로 퍼지게 되었다. 이렇듯, 영화 파일의 유동성은 사실상 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성배들의 캠버전을 공유/교환하는 네트워크 내부에서는 신용이 아주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가령, 교환하는 파일을 다른 곳에 업로드하지 않고, 타인에게 공유하지 않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규칙이다. 이를 어기는 자들은 불명예의 전당에 안치되어 어떠한 영화도 공유받지 못하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 (상당히 협소한 클러스터이기 때문에 누가 어떤 파일을 가지고 있고, 누구에게 공유했고 하는 것들이 가시적인 편이다.)

이와 같은 캠버전들은 앞좌석에 앉은 이의 머리가 화면의 상당수를 가리는 파일부터, DVD와 비교해서도 훨씬 더 나은 관람 경험을 제공하는 파일까지 아주 다양하다. 삼각대에 DSLR을 고정하여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제롬 하일러의 ‹Marginalia›의 캠버전은 일반적인 SD 화질의 영상보다도 훨씬 더 나은 관람 경험을 제공하지만, 저화질의 캠코더 혹은 오래전의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마르코풀로스의 ‹Himself as Herself›의 캠버전은 [그림 7]과 같이 원본과 비교했을 때 아주 큰 차이가 있다. 문제는 이것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고, 그렇기에 이런 종류의 캠버전은 작품의 문턱에 있는 일종의 파라텍스트로 기능하게 된다.​

[그림 7], (좌) 그레고리 마르코풀로스의 〈Himself as Herself〉 캠버전/(우) 〈Himself as Herself〉 스틸샷. 하버드 필름 아카이브 제공.

이런 캠버전들을 보면, 여러 실험영화들의 확장영화적 실천들도 사실 방구석 시네필들의 영화를 보고자 하는 어떤 욕망 앞에서, 해적질이라는 만능산 앞에서 모두 부식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2004년에 EXiS 1회가 개최되었을 때, 앤서니 맥콜의 ‹원뿔을 그리는 선›을 포함해서 여러 확장영화라고 할 만한 작업들이 그때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되었다. 당시에 확장영화로 소개된 말콤 르 그라이스나 윌리엄 라반, 최근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의 TATE 특별전에서 상영되기도 했던 리스 로즈의 작품들도 모두 파일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이러한 영화들을 방구석에서 보는 것이 과연 ‘익스팬디드’한 경험을 제공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파일의 순환을 초래하는 것은 작가의 의도를 부식시키면서까지 해당 영화들을 보고자 하는 욕망일 것이다.

[그림 8], 제롬 하일러의 캠버전

캠버전과 관련해 또 하나의 특기할 만한 사례로는 필름 아키비스트인 마크 토스카노의 인스타그램에서 진행되는 라이브 방송이 있다. https://www.instagram.com/preservationinsanity/ 토스카노의 인스타그램에서는 간간히 그가 직접 집에 있는 영사기로 여러 희귀한 16mm 필름을 상영하는 것을 캠으로 찍은 라이브 방송이 진행된다. 해당 방송에서는 로버트 브리어나 바바라 해머나 칙 스트랜드 같은 실험영화 감독들의 작품 중에 디지털로 감상할 수 없는 수많은 희귀한 영화들을 볼 수 있다. (토스카노에 의하면 모든 상영은 저작권자의 허가를 받는다고 한다.)​

두 번째로는, 영화의 디지털화는 되었으나, 모종의 이유로 상업적인 2차 매체(DVD, 블루레이, VOD, 스트리밍 등)로 출시되지 않은 경우가 있다. 이런 작품들은 배용균의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처럼 기관의 아카이브에 잠들어 있거나, 혹은 감독들이 개인적으로 작품을 소유하거나 하여 스크리너 링크나 상업용이 아닌 감상용 DVD와 같은 형태로 돌아다니게 된다. 일찍이 스벤 뤼티켄은 「감상용 사본」이라는 글에서 이런 종류의 (주로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전문가’들에게 제공되는) 감상용 사본을 이론적 대상으로 삼은 바 있다. 이 글의 구도에 새로 개입되는 것은, 이런 감상용 사본을 전문적으로 찾아다니는 시네필들의 등장이다. 이와 같은 성배 영화의 감상용 사본을 찾아다니는 시네필들은 기관에 금액을 지불하거나, 아니면 연구자의 신분으로 접근해 사본을 받아내거나, (실제로 이 네트워크는 여러 기관들의 프로그래머, 비평가, 연구자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아니면 최후의 수단으로는 기관의 아카이브에 직접 찾아가서 밀수하는 방법 등을 통해 이러한 작품들을 찾아다닌다. 감독에게 직접 연락을 취하는 것은, 어쩌면 가장 손쉽게 이런 종류의 성배 영화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보통 웬만한 감독들은 상업적인 배급 경로가 없는 작품의 경우에, 요청을 받으면 대부분 상영 링크(주로 비메오나 유튜브)를 친절히 보내주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성배를 찾는 해적들이 평소에 하는 일은 감독들의 연락처를 검색해 찾아내고, 이들에게 메일을 보내는 것인데, 어떻게 보면 영화제나 시네마테크의 프로그래머들이 평상시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듯 많은 수의 성배들이 캠버전처럼 불법적인 지위에 있거나, 감상용 사본처럼 특수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이들을 교환하는 네트워크는 굉장히 폐쇄적인 경향을 띄게 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들을 교환하는 네트워크 사이에서는 신용이 매우 중요한데―어떤 영화를 교환하거나 공유할 때 이들이 항상 덧붙이는 말은 절대로 영화를 다른 곳에 공유하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이 여기에 ‘물론이지’라고 대답한다―여기에는 여러 아카이브들의 비밀유지계약(NDA)과 같은 게이트키핑 문화가 얽혀있기도 하다. 또한, 어떤 영화가 단순히 성배의 지위에 놓여있기 때문에 그것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다. 실제로 이들은 네트워크 내에서의 게이트키핑을 통해 아우라를 보존한다. 감독도 아닌 이들이 어떤 작품에 대한 독점권을 행사할 때도 있는데, 그런 것을 보면 가끔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어딘가에 항상 균열은 있어왔고, 그러한 균열을 통해 작품이 유출되는 것은 모든 성배들의 생애 주기이다. 필 솔로몬의 ‹시크릿 가든›과 같은 작품은 2019년을 기준으로 대부분의 성배 목록에 올라와 있었지만, 지금은 카피가 널리 퍼져 누구나 유튜브에서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작품이 되었다.

그레고리 마르코풀로스와 그의 파트너였던 로버트 비버스는 실험영화 커뮤니티에서 만신전에 오른 인물들이다. 그들의 작품들도 대부분 디지털화되지 않았고, 그렇기에 상당수의 영화가 성배 명단에 속해있다. 이들 중에서 ‹에니아이오스›라는 작품은 마르코풀로스가 1992년에 사망하기 전까지 작업한 모든 필름들을 22개의 주기(cycle)로 편집한 80시간에 해당하는 역작이다. 해당 작품은 마르코풀로스 사망 당시에 이미 편집은 완료되었지만 프린트가 만들어지지 않았고, 파트너였던 로버트 비버스가 꾸준히 기금을 모아 필름을 복원해 상영용 사본을 만들고 있었다. 해당 복원본은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있는 한 작은 마을에 있는 ‘테메노스’라는 공간에서 2004년부터 4년마다 작품의 일부 주기가 꾸준히 상영되고 있다. 가장 최근의 상영은 2020년으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코로나로 인해 2년이 연기되어 2022년 6월 10일부터 6월 19일 사이에 개최되었다.이에 대한 좀 더 상세한 내용은 테메노스 공식 홈페이지를 참조하라.

[그림 9], 의 회색 블록

‹에니아이오스›의 상영 약 2달 전, 한국 시각 기준으로 2022년 4월 29일, 로버트 비버스와 영화학자, 복원가들이 모여 ‹에니아이오스›에 대해 토론하는 줌(Zoom) 가상 회의가 개최되었다. J. R. Eyerman, American, 1906–1985, Audience watches movie wearing 3-D spectacles, 1952. Gelatin silver print. Museum of Fine Arts, Boston, The Howard Greenberg Collection—Museum purchase with funds donated by the Phillip Leonian and Edith Rosenbaum Leonian Charitable Trust. © 1952 The Picture Collection Inc. All rights reserved. Photograph Courtesy Museum of Fine Arts, Boston. 해당 행사에서는 이번에 복원된 ‹에니아이오스›의 일부분과 비버스의 ‹Shared Table›이라는 작품(‹에니아이오스›의 필름 복원을 돕는 이들이 작업하는 광경을 찍은 짧은 다큐멘터리)이 온라인으로 최초로 공개될 예정이었다. 해당 회의에는 조던 크롱크, 마이클 시신스키, 사카모토 히로후미와 같은 유명한 인사들부터, 제임스 에드몬즈를 비롯한 여러 젊은 감독들, 그리고 나의 친애하는 해적 동료들을 포함한 160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하지만 작품의 화면 공유를 담당한 레베카 루트코프의 컴퓨터 상태가 좋지 않아, 화면 공유 시 정체불명의 회색 블록이 상영 내내 화면을 가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림 9]의 상단과 오른쪽 부분 참조, 이는 Zoom 소프트웨어의 버그 때문이다) 채팅창에서는 내내 이에 대한 불만과 해당 버그에 대한 해결 방법을 알려주는 채팅이 쇄도했지만, 영화는 계속 이와 같은 상태로 보여졌다. (사실 해당 행사에서 작품 자체보다 더 기억에 남은 것은 로버트 비버스의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영사 사고나 다름없는 상영이 끝난 후 질의 시간에는 비버스의 작품이나 ‹에니아이오스›의 디지털화에 대한 가능성을 묻는 질문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내 기억에 비버스는 이에 대해 부정적으로 대답했다. (아마 해당 영사 사고로 인해 더욱이 디지털에 대한 반감이 커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가상 회의가 끝난 후, ‹Shared Table›의 레터박스 평가자 수는 약 70명 가량 증가했다. Zoom 회의에 참가했던 160명 중 70명이 비버스와 마르코풀로스의 성배를 감상하기 위해 모인 이들이었던 것이다. 그들 중 많은 수가 활동하고 있는 디스코드 서버에서, 몇몇 사람들이 ‹에니아이오스›를 감상하기 위해 그리스에 가는 인물에게 반쯤 농담 삼아 카메라 안경(spy glasses)을 보내줄 테니 영화를 캠버전으로 밀수할 수 있는지 물었다. 나를 포함한 이 사람들 대부분에게 그리스의 펠로폰네소스는 순례를 떠나기에는 너무나 먼 장소일 것이다. 나는 지금 기 드보르의『스펙타클의 사회』의 커버로 쓰인『라이프』의 J.R. 아이어만이 찍은 유명한 사진―최초의 3D 영화인 ‹브와나 데블›을 보기 위해 3D 안경을 쓰고 있는 관객들―에서 3D 안경이 아닌, 영화의 밀수를 위해 카메라 안경을 쓴 관객들이 앉아있는 광경을 상상하고 있다.​

** 해적질의 옹호와 현양 마지막 편 “5. 일상적인 즐거움”은 마테리알 7호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