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의 도둑들
‘우부웹(UbuWeb)’은 미국의 작가 케네스 골드스미스가 운영하고 있는 실험영화, 비디오아트, 음악 등을 망라하는 아카이브 사이트이다. 특이한 점은 해당 사이트에 올라오는 자료들 대부분 작가나 저작권자의 허가를 받지 않고 올린 자료들이라는 것이다.이러한 점 때문에 우부웹은 여러 논쟁을 야기하기도 했다. 실험영화 DVD 레이블인 르부아(RE:VOIR)의 대표인 핍 초도로프가 관리하는 메일링 서비스 ‘프레임워크’의 아카이브에는 우부웹에 대한 작가들의 논쟁이 아카이빙되어 있다. 우부웹 사이트는 2010년에 해킹을 당하면서 폐쇄될 위기에 놓이게 되었는데, ‘쌤통이다’(의역)는 말로 시작되는 해당 논쟁 스레드에는 우부웹에 대한 작가들의 여러 옹호와 비판의 의견이 난립하고 있다. 해당 논쟁은 다음 주소에서 살펴볼 수 있다.이 논쟁에 대한 회신으로 케네스 골드스미스가 쓴 공개서한은 본 링크를 참조하라. 또한, 해당 사이트에 아카이빙되는 자료들은 대부분 인터넷에서 떠도는 파일들이라는 점을 추가로 언급해둘 수 있겠다. 카라가르가는 우부웹이 소스를 받아가는 대표적인 장소다. 2022년 6월 12일을 기준으로, 카라가르가의 우부웹 계정은 총 1,417개 토렌트를 받아갔다. 사실 우부웹은 디스코드, 텔레그램, 브콘닥테, 유튜브, 웹하드의 중간 유통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이들은 저작권자나 감독의 요청이 있으면 영화를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보통 감독들이 우부웹에 영화를 내려달라고 요청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했다는 상업적인 이유보다는, 자신들의 작품을 적절한 조건에서 관람자들에게 만나게 하려는 미학적인 이유인 경우가 많다.마이클 시신스키는 레터박스 리스트의 한 댓글에서 이와 관련한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변한 바 있다. “하지만 이상적인 조건을 만족할 수 있을 때까지 작품 감상을 계속 미루다 보면 결국 작품을 전혀 경험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 우리가 이상적인 조건에서 그들을 볼 수 있을 때까지 그러한 작품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간주하는 것은 일종의 칼뱅주의적인 자기 처벌처럼 보입니다.” 이는 이들이 제공하는 소스들이 빈곤한 이미지라는 점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우부웹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솔직히 말해 관람자의 입장에서 불편한 점이 적지 않다. 그들이 제공하는 영상은 많은 경우가 VHS의 복사본과 같은, 거의 대상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쓰레기 같은 화질의 영상들이다. 이들은 또한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가령, (최근에 수정되었지만) 로버트 비버스의 ‹The Hedge Theatre›라는 작품이 ‹The Stoas›라는 작품(구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작품이다)으로 잘못 표기되어 올라오기도 했다.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고, 열등한 소스들을 분류하고, 좀 더 괜찮은 판본을 찾아 교체하는 일은 당연히 많은 인적 노동이 투입되어야 하므로, 우부웹과 같이 소수의 자원봉사자들로 운영되는 사이트에서는 현실적으로 이를 수행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비공개 트래커들이 수행하고 있다. 여러 비공개 트래커 사이트에는 트럼핑(Trumping)이라는 제도가 있다. 이는 어떤 열등한 소스의 파일이나, 인코딩 시의 여러 문제들이 있는 파일을 더 나은 품질의 파일로 교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결함이 있는 파일들은 ‘트럼핑 가능(Trumpable)’이라는 태그가 붙어 따로 관리된다. 이는 다시 말해, 비공개 트래커들이 어떤 영화를 가능한 최상의 품질로 유지, 보존하는 역할을 하며, 빈곤한 이미지의 유포를 통제하는 쪽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다.에리카 발솜이 다음 글에서 적절히 지적했듯, 이에 따라 슈타이얼이 말하는 ‘빈곤한 이미지(poor image)’는 거의 역사적인 개념이 되어가고 있다. Erika Balsom, “Artists’ film and video online”, Art-agenda, 2020-06-08. 이런 점에서 카라가르가와 같은 사이트를 하나의 대안적인 아카이브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굳이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당장 카라가르가와 같은 사이트가 폐쇄된다면, 영화사의 몇몇 작품들은 당분간 볼 수 없는 채로 웹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의 안타까운 사례로는 몇 년 전 클럽박스가 사전 통지 없이 갑자기 서비스를 종료해버린 일이 떠오른다. 진정한 디지털 재난.
어떤 영화가 소실되는 것이 꼭 옛날 이야기만은 아니다. 당장 최근의 사례로, 작년에 있었던 브라질 시네마테크의 화재 사건이나, 하라 마사토 감독의 저택에 난 화재로 인해 감독 본인만이 소장하고 있던 여러 필름들이 소실된 사건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물론 이들은 비물질적인 ‘파일’이 아닌 물질적인 대상인 ‘필름’에 대한 사례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대개 비물질적인 파일을 물질적인 대상(마그네틱 하드 드라이브)에 보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디지털 파일들도 천재지변 하에서는 같은 위치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다음 22번 각주의 자료집에서 유운성이 지적한 대로 마그네틱 하드 드라이브는 장기적인 보존 매체로 적절하지 않고,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하드 드라이브와 별개로 백업 용도로 사용한다는 NAS 또한 본체 자체가 불에 타거나 침수되는 천재지변에 대해서는 대응할 수 없다. (그렇기에 몇몇 NAS 제품들은 클라우드 저장소 서비스와 연동되는 오프사이트 백업을 지원하고 있기는 하다. 다만, 클라우드 저장소 서비스들도 장기적인 보존보다는 임시적인 백업 용도로만 생각하는 것이 적절한데, 무제한의 용량을 제공해준다며 홍보한 아마존 클라우드나, 구글 G Suite(현 워크스페이스) 교육용 계정의 서비스 종료 사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여담으로, 픽션이기는 하나 김은희의 글 「2065년, 어느 필름아키비스트의 기록」에서는 모종의 이유로 김기영의 ‹렌의 애가›의 모든 필름이 소실되는 이야기가 흥미롭게 서술되어 있기도 하다. 유운성 평론가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된 ‹‘수집’: 소유에서 공유로, 유물에서 비트로› 심포지엄에서 디지털 영상작품의 최선의 보존 전략은 산포(dissementation)라고 말한 바 있다.유운성, 「영상 작품의 비물질적 소장에 대하여」,『소유에서 공유로, 유물에서 비트로』(서울시립미술관, 2020), 84~89. 가능한 많은 플랫폼에 영상작품을 퍼뜨리고 각자의 저장장치에 보관하도록 하는 것이 디지털 영상작품에 대한 최선의 보존 전략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산포라는 방식은 유운성이 지적했듯, ‘작가의 입장에서라면, 작품(에디션)과 그 전시(혹은 상영)의 희소성을 조절해 얻을 수 있는 금전적 보상이 사라지게’ 되므로, 작가의 동의가 없는 이상은 현실적으로 실현이 불가능한 이상적이고 급진적인 대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산포의 방식은 코로나 이후 생긴 몇몇 변화와 우연히 맞물리면서 의도치 않게 현실에서 작동하고 있다. 그 변화란…
첫 번째로는 물론 코로나 이후 여러 상영 행사들이 자신의 거처를 온라인으로 옮겼다는 점이다. 여러 영화제들이 온라인으로 개최되었을 뿐 아니라, 온라인 스크리닝, 온라인 전시와 같은 형태의 행사가 굉장히 범람하게 되었다.이는 코로나 사태가 슬슬 마무리되고 있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이 글이 쓰인 시점에서 8월에 개막이 예정된 멜버른 국제영화제(MIFF)에서는 여러 작품을 온라인으로 상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런 행사들에 작품을 출품하는 감독들은 자신들의 작품이 무단으로 복제될 것을 우려하며, 그걸 막기 위한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며 작품을 출품할 것이다.온라인 영화제의 극초창기에는 이에 관한 애로사항들이 존재했던 듯하다. 가령 라브 디아즈의 ‹중지› 같은 경우, 영화제가 초기에 감상 링크를 링크만 있으면 누구나 접근이 가능한 ‘유튜브 링크‘로 보냈기 때문에 유출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바로 여러 가지가 정비되었고, DRM은 온라인 영화제가 플랫폼을 선정할 때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되었다. 국내에서도 퍼플레이나 온피프엔과 같이 영화제들의 온라인 개최를 돕는 각종 업체들이 발 빠르게 생겨나기도 했다. DRM이나 지역 차단(Geoblock) 같은 것들은 온라인 영화제 출품 시 작품이 불법 복제될 것을 방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고려 사항이다.
두 번째 변화는, 바로 그 DRM을 해제하는 방법이 널리 알려졌다는 점이다. 구글에서 개발한 와이드바인 DRM은 무료라는 이유 때문인지, 넷플릭스나 아마존 같은 대형 OTT뿐만 아니라, 크라이테리언 채널, MUBI, 심지어는 국내의 OTT 서비스들에서도 모두 사용되는 불법 복제 방지 기술이다. DRM을 무력화하는 방법은 기존에는 소수의 해적 그룹 사이에서만 암암리에 전해지는 대외비였지만, 2020년을 전후로 그 방법이 레딧을 비롯한 영미권 사이트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조금만 검색해 방법을 찾으면, 개개인이 OTT 서비스의 영상을 추출해 각자의 저장장치에 보관할 수 있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가장 잘 알려진 도구는 Widevine L3 Decryptor라는 크롬의 확장 프로그램으로, 정말 간단하게 와이드바인 DRM의 해독키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널리 사용되었다. 하지만 2021년 5월부터, 구글에서 크로미움 기반의 브라우저를 업데이트하면서 해당 툴이 더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었고, DRM을 해제하는 방법은 다시 소수의 해적들의 전유물로 돌아가게 되었다. Widevine L3 Decryptor가 막힌 이후, Widevine L3 Guesser라는 대체재가 잠시 등장했지만 이도 몇 달 가지 않아 막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2년이라는 시기 동안 폭발적으로 유통된 영화들의 수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