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재산권 같은 건 없다. – 장 뤽 고다르
이 표현이 겸연쩍기는 하지만 나는 해적이다. 나는 비공개 토렌트 사이트인 카라가르가(Karagarga)에서 50명이 채 되지 않는 바운티 헌터 등급으로 활동하고 있고, 내가 밀수한 몇몇 영화들은 우부웹(UbuWeb)에 올라오기도 했다. 또 한국의 영화 자막 커뮤니티인 씨네스트에 관심에 따라 몇몇 영화들은 직접 번역해서 올리기도 하며, 씨네스트의 여러 자막 제작자들에게 영상 소스와 영문 자막을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다.
몇 년 전, 어떤 SNS에서 누군가가 씨네스트가 사라지면 득보다 실이 더 많을 것이라고 썼다가 어떤 영화잡지의 기자들로부터 웃음도 안 나온다느니, 저런 멍청한 소리는 처음 들어본다고 공격받은 적이 있었다. 저작권은 창작자를 위한 것이라는 걸 주지시키기 위해 어린이 백과사전까지 인용한 그 기자에 대해서는 굳이 말을 더 얹고 싶지는 않다. 또한, 나는 누군가가 해적질이 영화 ‘산업’을 망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에 대해서도 굳이 반박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이 글이 겨냥하고 있는 시퀀스는 애초에 그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오히려 해적질이 만들어내는 틈새를 포착하고, 그 틈새가 만들어내는 문화를 전염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에서 한국에 공식적인 경로로 수입되어 개봉하는 상업 영화나 중소 규모의 아트하우스 영화에 대한 해적질은 사실 맥거핀에 가깝다는 걸 먼저 밝혀야겠다. 나는 한국에서 공식적인 경로로는 서비스되고 있지 않은 수많은 고전들이나 아트하우스 영화들도 해외의 2차 매체(블루레이, DVD)나 스트리밍 서비스(크라이테리언 채널, MUBI 등)를 통해서 보아야 한다거나 정식으로 수입되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극단적인 사람도 보았는데, 이들 앞에서 나의 언어는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영화는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극장의 관계자라면 그 말의 순수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듯이, 저런 주장을 하는 이들의 저의를 심히 의심하면서, 앞으로 5회 분의 연재에 걸쳐 내가 해적질을 하면서 목격한 여러 사례들을 가로지르며 그들에게 반대로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시작은 씨네스트다.
정품이라는 신화
내가 씨네스트에 처음 접속한 것은 2015년이었다. 그냥 몹시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내가 영화를 보기 시작한 것이 2015년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나는 아벨 페라라 감독의 ‹악질 경찰(Bad Lieutenant)›(1992)이라는 영화가 몹시 보고 싶었다. 왓챠의 몇몇 유저들로부터 이 영화가 굉장하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해당 유저들 상당수는 2015년 5월에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기획전 ‘류승완이 사랑한 형사영화’에서 해당 영화를 보았던 것 같다. 영상은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한글 자막이 문제였다. 구글의 캐시된 페이지에서는 해당 영화의 한글 자막이 씨네스트에 올라온 기록이 있다고 알려주었지만, 자막 제작자가 글을 삭제한 건지 한글 자막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알고 보니 자막 제작자가 레벨 2 이상만 열람 가능한 게시판(해당 게시판은 지금은 사라졌다)으로 자막을 옮긴 것이었다. 그래서 레벨이 낮았던 나는 자막 제작자에게 메일까지 보내 어렵게 자막을 구해서 영화를 보았던 기억이 난다. 이건 여담이지만, 2015년에 내가 ‹악질 경찰›을 봤을 때, 이 영화를 보았다고 기록한 왓챠 유저가 딱 100명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다가 이동진 평론가가 2016년 왓챠에서 이 영화에 만점을 주면서 ‘하비 케이틀의 미친 연기’라는 코멘트를 남겼고, 얼마 후 그 자막 제작자분이 만든 ‹악질 경찰›의 한글 자막이 공개된 자료실에 올라왔다. 그리고 2022년 5월을 기준으로, 해당 영화의 왓챠 평가자 수는 무려 1,627명에 이르렀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거의 16배 가깝게 뛴 셈이다. 물론 이 영화는 이전에 비디오테이프나 DVD로 국내에 출시됐었던 영화기도 하고, 몇몇 사람들에게는 이미 대안적인 정전의 자리에 위치할 수도 있는 나름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글 자막 공개 이전에 100명 정도밖에 보지 않은 영화를, 한글 자막 공개 이후 최소 1,627명이 보았다는 것이 (물론 이동진 평론가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한 측면도 있겠지만) 씨네스트의 한글 자막 덕택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내가 기억하는 한 이 영화는 2015년 5월에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류승완 감독의 추천작으로 상영된 이후, 국내에서 극장에서 상영된 적이 한 번도 없다.
이는 한글 자막의 제작이 영화의 보급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하나의 단적인 사례일 것이다. 씨네스트 이야기를 더 해보자면, 내가 본격적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한 2017년은 상당수의 영화가 그림의 떡처럼 느껴지던 시절로 기억된다. 보고 싶은 영화들은 굉장히 많았지만 한글 자막이 없는 것들이 많았다. 물론 영어 자막이 있는 작품이라면 영어 자막을 통해 보는 방법이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영어 자막으로 영화를 멈추지 않고 볼 만큼 영어를 잘 하진 못했다. 그렇기에 쉴 새 없이 대사가 쏟아지는 장 으스타슈 감독의 ‹엄마와 창녀›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시네마테크나 영화제의 프로그램에 이 영화가 포함되기를 오매불망 기다리거나, 혹은 씨네스트에서 한글 자막이 만들어지는 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시네마테크보단 씨네스트가 한 발 빨랐다. ‘umma55’라는 유저가 ‹엄마와 창녀›의 한글 자막을 만들어서 배포한 것이다. 사실 씨네스트의 역사는 2018년 5월, umma55의 등장 전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umma55의 등장 이전에는 ‘오철용(태름아버지)’ 같은 전설적인 자막 번역가가 있었지만 그분은 2014년에 이미 자막 제작을 아예 중단했고,
2018년부터 지금까지 씨네스트에서 한글 자막이 제작된 작품들을 쭉 나열해 보면, 마리아노 이나스의 ‹라 플로르›, 요나스 메카스의 ‹우연히 나는 아름다움의 섬광을 보았다›, 왕빙의 ‹사령혼›, 한스 위르겐 지버베르크의 ‹히틀러›와 ‹파르지팔›, C.W. 윈터와 안데르스 에스트룀의 ‹일과 나날 (시오타니 계곡의 시오지리 다요코의)› 그리고 ‹영화사(들)›을 포함한 장 뤽 고다르의 영화 39편,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 23편, 에른스트 루비치 22편, 장 르누아르 21편, 아녜스 바르다 20편, 장 마리 스트라우브와 다니엘 위예의 영화 19편,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D.W. 그리피스,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 라울 월쉬, 킹 비더, 하워드 혹스, 헨리 킹, 루벤 마물리언, 윌리엄 A. 웰먼, 윌리엄 와일러, 도로시 아즈너, 프레스턴 스터지스, 미첼 라이슨, 빌리 와일더, 프리츠 랑, 로버트 시오드막, 자크 투르뇌르, 돈 시겔, 조셉 H. 루이스, 안드레 드 토스, 샘 페킨파, 새뮤얼 풀러, 로버트 알드리치, 존 밀리어스, 피터 예이츠, 일레인 메이, 클라우디아 웨일, 바바라 로든, 아벨 강스, 루이 델뤽, 장 엡슈타인, 빅터 쇠스트롬, 지가 베르토프,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세르게이 파라자노프, 오타르 이오셀리아니, 키라 무라토바, 알렉산더 소쿠로프, G.W. 팝스트, 레니 리펜슈탈, 막스 오퓔스, 사샤 기트리, 장 그레미용, 자크 베케르, 클로드 오탕 라라, 조르주 프랑주, 로베르 브레송, 에릭 로메르, 프랑수아 트뤼포, 자크 리베트, 자크 로지에, 장 으스타슈, 알랭 카발리에, 뤽 물레, 필립 가렐, 마르그리트 뒤라스, 크리스 마커, 샹탈 아케르만, 로베르토 로셀리니, 비토리오 데 시카, 비토리오 데 세타, 안토니우 헤이스-마르가리다 코르데이루, 파울루 호샤, 루이스 부뉴엘, 로베르토 가발돈, 에밀리오 페르난데스, 바바라 코플, 바바라 해머, 험프리 제닝스, 켄 러셀, 니콜라스 뢰그, 미조구치 겐지, 우치다 도무, 야마나카 사다오, 시미즈 히로시, 가와시마 유조, 오가와 신스케, 하라 카즈오, 사토 마코토, 츠치모토 노리아키, 스즈키 세이준, 쿠라하라 코레요시, 시노다 마사히로, 쿠로키 카즈오, 타나카 노보루, 소네 추세이, 오바야시 노부히코, 소마이 신지, 위앤무, 리노 브로카, 리트윅 가탁, 구루 두트, 라지 카푸르, 므리날 센, 마니 카울, 메틴 에륵센, 바흐람 베이자이, 소흐랍 샤히드 살레스, 에브라힘 골레스탄, 다리우스 메흐르지, 유세프 샤힌, 헨리 바라카트, 샤디 압델 살람, 우스만 셈벤, 오스왈도 리베이로 칸데이아스, 주제 모지카 마린스, 호제리우 스간젤라, 카렐 제만, 노먼 맥라렌, 돈 헤르츠펠트, 피에트로 마르첼로, 라야 마틴, 니콜라스 페레다, 기욤 브락, 베르트랑 만디코, 알렉산드르 코베리체, 라이다 라순디, 가이 셔윈, 니콜라 레, 히토 슈타이얼…. 전부 열거하기도 힘든 감독들 작품의 한글 자막이 씨네스트에서 2018년부터 2022년 사이에 만들어졌다. 이게 무려 4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씨네스트가 이룩한 결과물이다.
한편 씨네스트의 자막 제작은 국내의 몇몇 영화 비평과도 적절한 시차를 유지했다. 가령,『보스토크』에 유운성 평론가가 쓴 하워드 혹스의 ‹빅 스카이›와 관련된 글
“씨네스트가 사라지면 득보다 실이 더 많을 것”이라는 말은 물론 이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이 공격받게 된 당시의 상황을 좀 더 분명히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국내의 블루레이 제작사인 플레인아카이브가 씨네스트의 해적질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 해당 논란(?)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플레인아카이브 문제 제기의 주된 표적은 자신들이 출시한 타이틀의 한글 자막을 부가 영상의 자막까지 포함해서 올리던 ‘iratemotor’라는 유저 한 명을 향한 것에 가까웠다. iratemotor는 2005년부터 2020년까지 씨네스트에서 왕성한 활동을 한 유저인데, 그는 그동안 한국에 공식적인 경로로 소개되는 영화의 거의 대부분의 한글 자막을 도맡아서 올린 사람이다. 그는 동시에 아마추어 자막 번역가이기도 했는데, 이란 뉴웨이브의 걸작으로 알려진 다리우스 메흐르지의 ‹소›라는 작품의 한글 자막을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거의 공백기 없이 활동했지만, 2020년에 갑자기 인터넷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내가 이 장에서 할 이야기는 따로 있다. 그것은 한국에서 공식적인 경로로 서비스되고 있는 상당수의 고전영화들과 몇몇 아트하우스 영화들의 경우에, 정품과 불법 복제판(리핑판)의 경계가 기실 희미하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서비스되는 고전영화를 구입해 재생했을 때 미국의 DVD/블루레이 제작사인 크라이테리언 컬렉션의 로고가 뜨는 경우는 굉장히 흔하게 접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는 대개 고전영화의 리핑판 DVD가 그대로 2차 시장에 서비스되는 경우에 발생한다. 사실 공식적으로 서비스되는 영화라 할지라도 많은 경우가 도둑질한 카피, 도둑질한 자막, 출처 미상의 복제된 소스를 통해서 제공된다. 그리고 이는 한국에서 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고전영화를 접하게 되는 시네필들의 곤경과도 관련되어 있다. 이들은 한국에서 공식적인 경로를 고집하면 고집할수록 대개 빈곤한 이미지와 자막을 통해 영화를 접하게 될 뿐이다. 이들은 종국에는 프랭크 카프라의 ‹멋진 인생›을 좋지 않은 화질의 컬러 버전으로 보게 되거나, 미조구치 겐지의 영화들을 10년 전 성능의 구글 번역기를 돌린 것 같은 수준의 끔찍한 한글 자막으로 보게 된다.
몇 가지 다른 사례를 들어보면, 네이버 시리즈온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주앙 세자르 몬테이로 감독의 ‹노란 집의 추억›의 경우에는 씨네스트의 macine가 만든 자막이 그대로 나온다. 씨네스트의 자막을 무단으로 도둑질해서 쓴 것이고, 영상 소스 또한 물론 리핑이다. 비교적 최근작 중에서 정식으로 서비스되고 있는 작품일지라도 영상 소스에 대해 신뢰할 수 없는 것이, 가령 정성일의 ‹카페 느와르› 같은 경우 웨이브나 시리즈온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판본을 재생해보면 모두 시작 부분에 화면 녹화 프로그램인 반디캠(Bandicam)의 인터페이스로 추정되는 부분이 잠깐 등장하고 사라지는 걸 볼 수 있다. 이는 이들이 모두 반디캠의 녹화본이라는 걸 암시한다. 화면 녹화를 통해 만든 영상 파일을 해적질의 세계에서는 ‘웹립’이라고 부르는데,
요즘에도 여러 고전영화들이나 미개봉 아트하우스 영화들의 DVD가 계속해서 출시되고 있다. 정식 출시작이라고 해서 이들을 막연히 정품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고전영화들의 경우는 거의 99프로 이상이 불법 복제판이고, 심지어 자막의 경우는 씨네스트의 자막을 무단으로 가져다 쓰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이건 씨네스트에 번역되어 올라오는 고전영화들의 라인업들을 쭉 팔로업 하다 보면 아주 자연스레 알 수 있는데, 요사이 DVD로 출시되는 고전 작품들의 라인업과 씨네스트에 번역되어 올라오는 고전영화의 라인업이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씨네스트에 어떤 고전영화의 자막이 올라오고, 한두 달 정도의 시간이 지나 그 영화의 DVD가 출시되는 사이클이 최근 몇 년 사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씨네스트의 자막이 아니라면 예전의 EBS나 TCM 같은 데서 상영된 자막 소스나 실버영화관에서 쓰이는 자막들을 쓰기도 한다는데, 이런 경우라면 사실 양호한 편이고 요즘 나오는 리핑판 DVD들 중에서는 번역기를 그대로 돌린 자막을 사용하는 것도 굉장히 많다. 가지고 있는 DVD가 리핑판인지 아닌지는 DVD의 뒷면에 적혀있는 심의번호나 등급물 분류 번호를 보면 알 수 있다. 이곳에 케이블 TV 방영작이라고 표기되어 있거나, 20XX-FDVD라고 쓰여있는 경우라면 십중팔구 리핑판이다. 나의 지인이 이 리핑 출시사들에게 연락을 해 라이센스를 어떻게 취득하는 건지 직접 문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들은 자신들만의 바이어가 있다는 식으로만 말을 하고 정확한 답변을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이 출시하는 영화들이 퍼블릭 도메인
국내에는 퍼블릭 도메인에 있는 고전영화라도 그것이 새로 복원된 판본이라면 복원 주체가 저작권을 갖는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 부분은 해외에서도 논쟁거리로 남아있는 영역이다. 기본적으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필름의 복원이 몹시 전문적인 기술과 노력을 요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복원에 더해서 어떤 추가적인 작업이나 수정 작업(가령 사운드트랙의 재녹음이나 음성 해설 등)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지적 재산권을 주장할 수 없다고 보는 견해가 많은 듯하다.
“저는 ‹콩고의 왕›(1929)이라는 영화를 복원 중이고, 저는 이 일과 관련해 미국 의회 도서관과 협력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부분적으로는 유성영화이지만, 부분적으로는 무성영화입니다. 필름은 질산염 열화, 영상의 누락, 여러 스크래치와 먼지 등으로 부식되어 있습니다. 작품을 블루레이로 출시할 때에는 이 모든 것을 제거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이 모든 작업은 단순히 영화를 원래 의도대로 복원하는 데 사용되며 이에 대한 저작권을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 필름의 사운드는 약 50% 정도가 유실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화의 오리지널 스크립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남아있는 기존 자료에서 사운드를 조합해 적절한 효과음을 추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파생 작업으로 간주됩니다. 저는 사운드 편집에 대한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저는 또한 성우들을 고용해, 유실된 부분을 새로 더빙하고 있습니다. 이것 또한 파생 작업으로 간주됩니다. 저는 새 사운드에 대한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제 필름의 50% 분량에 대한 파생 작업물을 가지고 있는 셈인데, 이에 대해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직 제가 한 일에 대해서만요. […]
누군가가 막스 형제의 완전판 오디오 박스셋*을 내놓는다고 가정해봅시다. (*주: 막스 형제는 영화뿐 아니라 라디오 방송으로도 널리 인기를 끌었음) 이는 복원되어 방송 당시보다도 음질이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에 대한 저작권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전체 배경에 거의 들리지 않는 20Hz의 윙윙거리는 소리를 추가했다고 가정해봅시다. 이는 2차적 저작물로 저작권이 있으며, 그는 자신이 사운드 트랙에 대해 새로운 일을 했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의 99.5%는 그것을 결코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지만, 누군가 유튜브에 그것을 올렸을 때 그가 20Hz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있다는 걸 보일 수 있다면 그는 그 영상을 삭제할 수 있습니다. 저는 실제로 어떤 사람이 필름을 가져가 매 5번째 프레임마다 한 픽셀에 대해 12번째 주사선을 반전시킨 저작권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는 모든 것을 저작권으로 보호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다른 누군가가 같은 필름을 가져가 다시 따로 변환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누군가가 ‘그의’ 버전을 가져가 그걸 불법 복제한다면 그들은 소송을 당할 수 있습니다.”
이는 지적 재산권이 가진 난점과 그것이 악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레이슨이 말한 예시에서 20Hz의 윙윙거리는 소리를 추가하는 행위나 매 5번째 프레임마다 한 픽셀에 대해 12번째 주사선을 반전시키는 행위가 과연 ‘지적’이고 창작성을 갖춘 행위인지 따져 물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지적 재산권을 무한정 지속시키기 위해 저작권법과 상표권을 교묘히 이용하는 디즈니 같은 경우도 있다. 미국의 저작권법은 1998년에 저작권 보호 기간이 20년 연장되었는데,
아무튼 다시 리핑판 DVD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몇 년 전부터 이런 리핑판 DVD들의 가격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2만 원이 넘는 고가에 판매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매우 양심이 없는 가격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고전영화의 리핑판 DVD를 구매하는 주요 대상이 누구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실 놀라울 것이 없다. 이런 종류의 리핑판 DVD는 어떤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한국영상자료원의 영상도서관과 같은 여러 공공기관에 비치될 수 있는데, 이로부터 리핑업자들이 DVD의 단가를 양심 없는 가격으로 책정한 이유를 추측할 수 있다. 그들의 수익 모델은 공공기관을 상대로 소량의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인 것이다. 씨네스트의 자막 제작자들은 당연히 자신의 자막을 훔쳐서 돈을 버는 이런 리핑업자들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이지만, 나는 그래도 이 도둑질을 마냥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런 DVD들이 가진 순기능 또한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들은 적어도 인터넷에 익숙지 않은 어르신들이나, 씨네스트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고전영화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umma55라는 유저는 ‘한글자막 직접제작 고전영화관’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곳에 자신이 번역한 영화와 한글 자막을 함께 올려놓는다. 이 채널의 댓글들을 보면, 정말 씨네스트의 존재를 모르는 고전영화의 팬들도 상당수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니까 결론은 이곳은 그냥… 무법지대다. 이런 실정에 거의 신화나 다름없는 정품과 굿다운로드를 이야기하고, 씨네스트의 존재를 마냥 부정하는 것은 사실 넌센스나 다름없는 일이다. 누군가는 법의 허점을 파고들어 이를 이용해 돈을 번다. 그들 거의 대부분은 영화의 창작자와는 아무 관련이 없을 것이고, 라이센스를 정식으로 취득한 이들도 아닐 것이다. 다른 한편에는 그 어떠한 크레디트나 대가도 바라지 않으면서 14시간이 넘는 긴 영화를 번역하고, 이를 공유하고 있는 씨네스트의 자막 제작자들이 있다.
당신은 어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