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호, 곡사 형제, 최진성, 김동명 등이 자신이 연관되지 않은 영화제를 찾아 좌판을 깔고 자신의 작품이 담긴 비디오를 ‘강매’했다던 “후보단일화대소동” 팀의 활동과 같은 것은 그러한 순간에서 가능했다. 윤성호 감독은 당시를 “제가 딱 약간 제일 좋았던 시기에 들어왔던 것 같아요. 인디포럼도, 십만원비디오페스티발도, 한독협도. … 심지어 저는 들어갔더니 미디액트가 생기는 거예요. 영화제에서는 영화 다 틀어주는 거고 미디액트에서는 장비 다 빌려주는 거고.”마테리알 편집부, 윤성호 인터뷰, 『마테리알』, 2022. 독립영화에 관한 공공 영역의 발생(혹은 독립영화의 제도화)라고 할 수 있는 사건들이 윤성호의 데뷔를 전후해 이뤄졌고, 윤성호는 개방된 독립영화의 영토로 향했다. 이 시기 그의 작업들은 그렇게 열린, 공공영역으로써의 독립영화라는 영토 위에서의 유희다. 이 시기 윤성호와 그의 동료 독립영화인들을 두고 “유희적 모더니즘 세대”문관규, 「한국 독립영화에 나타난 자기반영적 미학과 희극 전략 연구 – 윤성호, 곡사를 중심으로」, 『영화연구』, 한국영화학회, 54호, 2012. 혹은 “새로운 영화적 공기”남다은, 「새로운 영화의 활력: 윤성호, 최진성, 곡사」, 『21세기의 독립영화』, 서울독립영화제 엮음, (사)한국독립영화협회, 2014, 29~41p 등으로 평가된다. 운동을 목적 삼는 리얼리즘 영화와 충무로 진출을 노리는 장르 영화 사이에서 운동권도 영화과 학생도 아닌 사람의 작품이 지닌 영화적 활력은, 스스로 “영화적인 것은 아니고, 사실 UCC인데요.”라고 자평하는 “고집이나 신념이 나 미적인 가치관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만들 줄 아는 방식이 그것밖에 없었”윤성호, 지승호, 「두근두근 영화소년 해방전선 윤성호」, 『감독, 독립영화를 말하다』, 도서출판 수다, 2010, 244p.던 상황의 결과물이다.
윤성호의 초기작은 변화하는 매체환경의 과도기적 상황에서 “열정을 자기가 가진 범위 내에서 극대화하는” 방식의 아마추어리즘최소원, 「新世紀座談 우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 우리 시대의 영화; 무방비 도시」, 『키노』, 인터뷰 진행 이영재, 장훈, 홍지은, 김용언, 주성철, 63호, 2000.05, 33p.을 추구한다. 영화감독 대신 VJ라 불리길 바란다던 말은 이 상황의 반영과도 같다. 독립영화라는 공간은 열렸지만, 독립영화라는 이름 자체는 (적어도 당시의 윤성호에게는) 열리지 않았던 것 같다. 때문에 그가 택한 방식, 독립영화로 불리는 영상물을 제작하지만 스스로 독립영화라 부르지 않는 것은 “독립영화”라는 명명에 대한 전용이다. 윤성호가 그런 것을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영화과 학생도 운동권도 아닌 그의 위치는 충무로라는 헤게모니와 운동이라는 이데올로기 모두에 속하지 않은 자율적인 주체로 자리 잡는다. <나는 내가 의천검을 쥔 것처럼>은 그러한 지점에서 흥미롭다. <중산층 가정의 대재앙>과 <산만한 제국>의 계급과 자본 비판이 독립영화의 사회적인 것을 유지하고 있다면, 이 영화는 독립영화의 이름으로 존재하는 공공영역 중 하나가 폐허로 변했을 때의 심정을 담아내고 있다. 2002년 11월 말 문을 열고 2003년 12월 말 문을 닫은 활력연구소는 윤성호를 비롯한 아마추어 감독들은 물론, 충무로에 진출한 감독과 기성 독립영화인, 일반 시민이 뒤섞일 수 있는 장소였다. 윤성호는 이곳의 폐관을 두고 “가장 먼저 관의 협조를 이끌어냈고, 가장 먼저 관의 협조와 동맹을 맺었고 가장 먼저 버려졌기 때문에, 그러니까 가장 처음 나온 폐허”마테리알 편집부, 윤성호 인터뷰, 『마테리알』, 2022.라고 말했다. <나는 내가 의천검을 쥔 것처럼>은 “아낌없이 내주기만 했던 공공 영역의 실종을 첫사랑을 지키지 못한 회한으로”윤성호, 「활력연구소 살해사건: 우리의 주소, 우리의 영토」, 『미디어스』, 2009.03.02. 풀어낸다. 그의 다른 “비디오 저널리즘” 작업이 그러하듯 이 영화 또한 개인적인 이야기와 사회적인 이야기가 뒤섞여 있고, 다른 영화, TV드라마, 시, 음악 등이 어지럽게 인용된다. 그렇게 이 영화는 스스로 영화감독이라 불리길 꺼리던 그가 독립영화라는 공공에서 받은 수혜에 관해 풀어낸 것이 된다. 그럼으로써 윤성호의 영화는 독립영화가 놓인 상황 자체에 대한 비의도적인 전용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