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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연선

[제1회 오픈 스페이스] 비천한 영화를 위하여, 그중에서도 한국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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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오픈 스페이스] 비천한 영화를 위하여, 그중에서도 한국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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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마테리알 편집인 함연선입니다. 박수 부탁드립니다. (객석 박수) 저는 오늘 “비천한 영화를 위하여, 그중에서도 한국 영화”라는 제목의 발표를 시작하게 될 건데요, 아마도 제 사적인 얘기가 굉장히 많이 들어간 그런 발표가 될 것 같아요. 왜냐면 2000년대 한국 영화에 대해서 주로 이야기를 할텐데, 산업적인 측면에 대한 분석이나, 비평적인 부분에 대한 얘기만으로 뭔가 좀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을 했었고. 조금 더 솔직하게 직접적으로 [해당 시기의 영화들을–편집자 주] 다뤄보고 싶다 라고 생각을 해서, 발표를 이 주제로 잡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본격적으로 발표를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습니다. 당시에 다니던 푸르넷 공부방. 혹시 푸르넷 공부방 아시나요? 푸르넷 공부방 선생님의 조카가, 집안이 망해서였나, 본인이 경영하던 작은 회사가 망해서였나 여튼 어떤 좋지 않은 이유로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오게 되었어요. 제가 살고 있던 지방으로. 그래서 푸르넷 선생님이 조카를 고용해서 수학・영어 학원을 차리게 되었고. 저는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했다고 하는 그분에게 영어와 수학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또래 친구 둘도 함께였는데요. 20대 후반이었던 그 선생님은 제가 당시에 상상하고 생각했던 ‘서울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어요. 하얀 얼굴을 하고, 되게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가진 남자 선생님이었는데. 농담도 많이 해주시고. 그 다음에 장난도 많이 치면서 좀 친해졌었거든요. 그러다가 선생님께서 많이 친해졌다고 생각을 하셨는지. 본인의 인터넷 영화 스트리밍 사이트 아이디를 공유해 주었어요. 사실은 그게 지금의 스트리밍 사이트 같은 것이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마치 비디오 대여점처럼 운영이 되고 있는 사이트였는데, 어. 영화를 이제 고르고 일정 정도의 포인트를 지불하면 팝업창으로 윈도우 미디어 같은 형식의 플레이어가 띄워졌던 것 같습니다. 그 사이트가 불법으로 운영되고 있었는지, 합법으로 운영되고 있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아요. 당시는 여전히 비디오 대여점이 운영이 되고 있던 시절이었고. 잘 되고 있던 시절이었고, 그런 곳에서 종종 저도 비디오를 빌려보고는 했지만, 제가 다니던 학교나 집 근처 비디오 대여점에는 왠일인지 재밌어 보이는 영화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었던 것 같아요. 큐레이팅이나 프로그래밍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혹은 그런 환경이 저한테 없었기 때문에 재밌어 보이는 영화가 없었다라고 느낀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여튼 저는 그런 상황에서 비디오도 빌려보고 인터넷으로 영화도 보면서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에 선생님이 영화를 잘 보고 있느냐면서,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재밌게 본 영화가 무엇이었냐고 질문을 했어요. 그래서 저는 열세살 인생에서 제일 재밌게 본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바로 <스파이더맨>, 토비 맥과이어가 나오는 <스파이더맨>과 <화산고>를 생각했습니다. 바로 이 두 영화가 떠올랐어요. 그런데 이제 ‘제일’이라는 거는 하나만 고르라는 거니까 둘중에 뭘할까 하고 고민을 엄청 하다가, <화산고>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같이 있던 다른 두 친구가 뭐라고 대답을 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는 않아요. 근데 어쨌든 수학선생님은 제 대답을 듣고는 ‘너는 어떻게 그런 영화가 인생영화라고 할 수 있냐’라고 이야기했어요. 타박아닌 타박을 한거죠? 그래서 저는 속으로 ‘아, <스파이더맨>이라고 할 걸…’ 이렇게 혼자 후회를 했습니다. 그런데 또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스파이더맨>이라고 얘기를 했어도 선생님이 만족을 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는 해요. 어. 여튼 그분이 씨네필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그거는 지금으로서는 모르겠어요. 근데, 그 상황에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 나는 대답을 잘못했고, 내 취향은 되게 비천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수치심을 좀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이후로는 <화산고>와 같은, “어떻게 그런 영화”에 속하는 <화산고>와 같은 영화에 대한 제 호감을 좀 숨겨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샤워를 하는 도중이라던가 잠이 잘 오지 않는 밤에, 종종 속으로 ‘<스파이더맨>이라고 할 걸…’이라고 (객석 웃음) 되뇌곤 했었죠. 그래서 앞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비천한 영화를 위하여, 그 중에서도 한국 영화”라는 발표 제목에서 “비천한 영화”라는 단어를 통해서 제가 뜻하고자 하는 바에 가장 가까운건 “어떻게 그런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천한 영화를 위하여 그중에서도 한국 영화”라는 거창한 제목을 짓게된 이유에는 몇가지가 있습니다. 그 이유들을 조금 살펴보고자 하는데요. 2-3년 전쯤에 사석에서 한 영화평론가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트하우스 영화, “예술 영화”만 보아서는 안되며, 다양한 종류의 영화와 영상들을 접해야 한다. 그래야 이제 비평적으로 바로 설 수 있다. 이런 식의 얘기였는데요. 그런 맥락에서 이제 ‘비천함’이라는 단어가 나왔고, ‘비천한 감독’들에 대한 얘기가 나왔어요. 그래서 그 평론가가 말하길 너무 비천해서 비평적으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감독들이 있었고, 근데 그런 이들 중에서 지금 다시 재조명 받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 이름으로 대표적으로 ‘토니 스콧’이 거론되었습니다. 어 그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이사람도 비천한가요?’ ‘저사람도 비천한가요?’ 묻기 시작했고, (객석 웃음)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의 폴 W. S. 앤더슨과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마이클 베이도 비천할 수 있는  이름들에 올라가게 됐습니다. 다른날에 다른 자리에서 같은 평론가가 이런 말을 또 했습니다. 영화계에서 특정 세대가 비평적으로 힘을 받기 위해서, 그러기 위해서는 본인들이 청년기에 봤던 영화에 대해서 말하고, 그것들을 새롭게 정립하는 일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 말을 듣고 나서 저는 저한테 있어서 감성의 측면에서 그리고 어떤 육체적인 측면에서 좀 더 영향을 주었던 거는 청년기라기 보다는 조금 더 청소년기에 가까웠던 때에 봤던 영화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십대 초중반에 봤던 영화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영화들을 새로운 정전으로 내세울 수는 없더라도 그 시기에 보았던 영화들에 대해 언젠간 얘기를 해야겠다, 라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때 저의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고 싶은데요. 그 당시만 해도 저는 무언가 많이 영화에 관해서 주눅이 들어있는 상태였어요. 저는 영화이론을 공부하는 학부 신입생으로서 이십대 중반을 맞이했고, 많이 초초하고 조급했고, 그리고 학과 분위기에 조금 과잉된 겁을 먹은 상태였습니다. 학교에서 처음 과제로 보라고 제시한 영화는 <전함 포템킨>이었는데, 저는 학교 미디어실에서 이 영화를 봤는데, 거의 절반 넘게 자면서 봤었어요. (객석 웃음) 그래서 정말 절망을 했었죠. 그리고 또다른 한편에서는 제가 다니던 학교에 ‘트랜스 아시아 영상문화 연구소’ 라는 연구소가 있는데, 다녔던 학교에. 그 학교의 학과 답게 <고려사람>과 같은 조금 트랜스 내셔널한 영화들에 대해서 다루곤 했습니다. 여튼 저는 자비에 돌란의 <로랜스 애니웨이>나 김희천 작가의 <바벨> 같은 것을 보고 ‘영화이론’으로 일종의 전향을 했던 사람인데. 학과에 들어가서 조금 당황을 했고, 그리고 <화산고>와 같은 영화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2, 3학년이 되어서 조금 더 현대 영화들에 대해서 배우고, 현대 영화 이론에 대해서 배우게 됐을 때도 주로 서양의 어떤 아트하우스 영화들에 대해서 조금 더 많이 다루었고, 21세기의 한국영화에 대해서 다룬다 했을 때는 박찬욱이랑 봉준호, 그리고 종종 나홍진이랑 김지운에 대해서 얘기를 나눴고, 그 외에는 거의 다뤘던 적이 없었다고 기억이 됩니다. 저는 서울 살이를 오래 했지만, 영화 공부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서울아트시네마나 영상자료원에는 간 적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저는 씨네필 문화나 어떤 씨네필로서의 정체성이 사실은 없었다고 할 수 있죠. 어제 아마 윤원화 선생님 강연 들으셨던 분들은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영화 사람’들이 가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진 영화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라던가,  다소간 질척거린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고, 뭔가 습한 기운이 있을 것 같은 그 사랑을 저는 갖고 있지 않았어요. 저는 그래서 주눅이 들었었고.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누구도 강요하거나 시키지 않았지만, 혼자서 가랑이 찢어져가면서 보아야하는 영화들이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취향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저의 비천한 영화 리스트는 꼭꼭 묻어두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고요. 정말 그럴 필요는 없었다고 지금으로서는 생각이 들지만요. 그래서 앞서 그 평론가가 말했던 비천한 영화들과 그 청년기에 보았던 영화들에 대한 얘기를 듣고나서, 저는 제가 주눅들었던 그 사실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해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저의 꼭 비천한 영화에 대해서 얘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고민해온 비천한 영화 리스트에는 화산고를 포함해서 다음과 같은 영화들이 있습니다.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바람의 파이터>, <광복절 특사>, <피아노치는 대통령>, <어린 신부>. 다들 보신 적이 있으시겠죠? 네. 제 비천한 영화 리스트에 있는 영화들이 모두 상업 영화 인 것에는 한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제가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살았던 지역이 문화적인 시스템이 거의 구비되어 있지 않은 작은 소도시였던 점입니다. 저는 살면서, 그러니까 서울에 오기 전까지 살면서 중간에 몇개월을 제외하고는 강원도 동북부에 위치한 작은 관광도시인 속초에서 살았는데요. 속초에서 미성년 시절을 거의 대부분 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혹시 미시령을 아실지 모르겠지만 미시령이라는 고개를 넘으면 빼꼼히 보이는 도심이 전부인 되게 작은 그 소도시에서 인구 십만명이 안되는 도시에서 살았습니다. 거기에도 극장이 있었던건 기억이 나요. 중앙극장이라고 시장에 있는 극장이었는데, 왠일인지 되게 열악했고, 사람들이 거기 가서 영화를 보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천년대 중후반에 들어서야 프리머스라는 멀티플렉스 체인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그 프리머스가 처음으로 들어왔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제 첫 극장 경험은 속초가 아니라 속초에서 차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강릉에서 이루어졌구요. 그때 처음 봤던 영화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이었어요. 여튼 이렇게 극장에의 접근성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제 청소년기의 영화 경험은 비디오 대여점과 인터넷을 통한 관람에서 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인해서 상업영화가 제 리스트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에 오늘 발표를 위해 <화산고>를 다시 보았는데, 지금와서는 다시 어떤 점이 좋았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어요. 제가 어렸을 때 봤던 걸 지금은 못보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 영화를 보면서 어렴풋이 떠오르는 감각이 있었는데, 이게 드라마 <야인시대>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혹시 야인시대, 아시죠? (객석 웃음) 드라마 야인시대를 보면 패싸움이나 맞짱 같은 거를 사람들이, 캐릭터들이 뜨잖아요. (객석 웃음) 근데 그런 장면들과 함께 갑자기 주테마곡인 ‘나는 야인이 될거야’가 흘러나오고, 드라마 한 회차가 딱 끝나면, 되게 묘한 흥분 상태에 있었던 기억이 있어요. 드라마가 끝나고 가시지 않는 여운 혹은 그 묘한 흥분 때문에 한 살 터울의 동생과 싸움놀이 같은 거를 했었죠. 근데 <화산고>를 보면서 딱 그런 비슷한 기분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좀 마음이 뭔가 들뜨고 몸이 막 움직여지고, 그런 기분? 그런 기분을 화석을 발굴하는 어떤 고고학자의 태도로 <화산고>를 재관람 하면서 발굴하게 된 것입니다.

한편 <화산고>의 마지막. 근데 <화산고>를 보신 분 계신가요? <화산고>. 네. 그쵸. (객석 웃음) 네, 아시네요. 찾아보니까 <화산고>가 생각보다 흥행을 했더라구요. 네. 그래서 <화산고>의,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마지막 20분을 장식하는 배우 장혁과 허준호의 결투씬이 있는데, 비가 막 오고 장풍 쏘고 날라가고 이런 장면들이 있는데, 거기서 이제 또다른 흥미로운 감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와 관련된건데요. 그 감각의 시작은 다음과 같은 것에서 시작이 됩니다.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한 상대, 강한 적과 끝까지 싸우고, 그래서 끝내 이길 사람이 내는 신음소리. 거기서 저는 영화 관객으로서 묘한 기쁨을 느꼈던 것 같아요. 끝내 어쨌거나 이기게 될 주인공이 쓰러지는 소리, 맞아서 내는 신음 소리, 숨이 헐떡거리는 소리 같은게 저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가학적인 장면을 보면서 기독교도들이 얻는 소름돋는 경험에 준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근데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가학적인 장면들을 보면서 기독교도로서 얻게되는 소름 돋는 경험이라고 하면 너무 구체적이지 않고 뭔지 잘 모르시겠죠. 기독교도 혹시 계신가요? 아, 감사합니다. 어. 저는 잠깐 다른길로 새서 제가 기독교도였었는데. 저는 유아세례를 받은 가톨릭신자고, 지금은 냉담을 이어오고 있지만, 과거에는 굉장히 열혈 신자이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종종 생각나는 기도가 몇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십자가의 길’이라는 기도에요. 잠시 빠르게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예수가 사형선고를 받은 것부터 시작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무덤에 묻히는 일련의 과정을 열 네개로 나누고 그 중간중간에 뭐 첫번째로 넘어졌다, 어머니 마리아를 만났다, 이런 중요한 기점들을 성화나 어떤 조각같은 것을 통해서 공간에 세워놓고, 사람들이 돌아다니면서 기도를 하는 거에요. 하나씩 하나씩 하나씩. 이 열 네처, 열 네개의 스테이션을 돌아다니면서 기도를 하는 그 경험이 굉장히 오디오 비주얼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니까 앞에는 각 단계를 표현하는 성화나 조각이 있고, 그리고 고통에 대해서 기술하는 기도문이 들리고, 그리고 그 상황에서 눈을 감으면 기독교도로서는 굉장히 익숙할 수 있는 십자가를 진 예수의 이미지, 피흘리는 예수의 이미지가 막 떠올라요. 아마 기독교를 열심히 믿으셨으면 아실 수도 있을 그런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그런 경험에 더해서, 어린 양으로서 혹은 비천한 종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비천한 종으로서 마땅히 그리스도의 고통을 헤아려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그리스도가 그렇게 했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 중에는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 그런 것들이 적절히 혼합이 되면서 기이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그런 종류의 카타르시스가 혹은 감정의 세척이 이제 <화산고>에 언급된 장면에서도 발생을 했던 것이죠.

그리고 그러한 카타르시스를 위해서 제가 끊임없이 한 부분을 돌려보던 영화가 하나 있습니다. 제 리스트의 두번째 자리에 위치한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인데요, 공교롭게도 화산고에서 주연으로 등장했던 장혁이 또 주연으로 등장을 하지만, 이 영화에서 더 화제가 되었던 것은 경찰 제복을 입었던 전지현, 이죠. 그리고 <엽기적인 그녀>의 곽재용 감독이 다시한번 메가폰을 잡았다는 그 사실이었습니다. 물론 흥행에는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저는 이상한, 저는 여기 이 영화에 나오는 이상한 대사들이 생각이 나요. “나는 죽으면 바람이 될 거야.”(장혁) “내 사전에 ‘미안해’는 없어. 네 이름을 미안해로 바꾸던가. 그럼 미안해~하고 불러줄게.”(전지현) 이런 이상한 대사들이 머릿속에 남았어요. 그리고 아실지 모르겠지만. BK Love라는 제목의 노래도 이 영화와 아주 관련이 깊구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제가 이 영화에서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연인을 잃은 전지현이 각성을 하고 사뭇 진지하게 형사직에 임하는 것을 보여주는 자동차 추격 씬입니다. 도심에서 경찰과 추격전을 벌이던 어떤 자동차가 형사가 된 전지현이 쏜 총에 맞고 멈추고, 전지현이 자동차에서 범죄자를 끌어내고, 범죄자 몸통에 발을 올리고, 동시에 화면 원경에서 이렇게 멋지게 터지고 자동차가, 전지현은 머리를 휘날리고, 표정은 아주 무표정하구요. 그래서 이거는 같이 보면 좋을 것 같아서 클립을 가져왔습니다. (함께 영화의 부분을 본다.)

네. 왓차피디아에 이 영화를 검색을 해봤더니, 이동진 평론가가 이런 평을 남겼어요.(준비한 PPT 화면 – “CF를 왜 돈까지 내고 봐야 하지?”) (객석 웃음) 보이시죠? 제 생각에 이거는 여친소의 핵심을 정확히 표현한 한 줄 입니다. 바로 그 CF같은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라고 저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죠. 이미 구축된 스타나 브랜드의 이미지를 이용해서 상품을 파는 데 사용하는 것이 CF의 본질인 바, 여친소와 같은 영화는 다양한 의미에서 그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혹은 CF같다라는 것 말고, 뮤직비디오 같다 라는 표현도 있잖아요. 그런 표현도 보통 영화를 보통 부정적으로 평가할 때 쓰이는 말인데, 저는 이 역시 ‘CF같다’ 라는 말 처럼 영화를 부정적으로 평가할 때 쓰일 수 있는지 다시 검토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영화가 CF 같은들, 뮤직비디오 같은들, 욕먹을 일도 아니고 그게 영화의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깎아먹는 일도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제가 좋아했던 이천년대 영화들을 대표적인 두 작품을 얘기를 드렸는데요. 이천년대 초반에 대해 아주 잠깐, 모두 아시는 얘기겠지만, 간략하게 스케치를 해보겠습니다. 영화 산업에 발을 내딛었던 삼성 등의 대기업 자본이 1998년 외환위기와 함께 물러가고, 그 자리에 금융 자본이 대신 들어섰습니다. 외환 위기로 기업들이 줄도산을 하니까, 금융 자본이 투자할 곳이 없어져서 투자할 곳을 찾다가, 마침 김대중 정권 들어서 제약이 많이 완화된 그 영화 산업에 발을 내딛게 된거에요. 영화 산업이 투자하기에 적격이었던 거죠. 그리고 더불어서 충무로의 유명 제작사들이 이걸 계기로 한국 영화에 새 판을 짜고자 여러가지 전략적인 행위들을 했고, 그리고 99년 5월 영화진흥위원회가 출범을 하면서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이게 한국 영화 산업의 아주 큰 동력이 되었을 겁니다. 2003년에 일련의 웰메이드 영화들의 등장에는 한국 영화의 국내 시장 점유율이 높아지고, 다종 다양한 한국 영화들이 만들어 졌던, 이와같은 제도적인 환경적인 배경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듀나는 2017년 연말에 발표한 글 「최고를 꼽긴 어렵지만 최악을 꼽는다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훌륭한 영화들이 당시의 영화계를 대표하는 때가 종종 있었다. <역마차>, <오즈의 마법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동시에 나온 미국의 1939년이 그렇다. <살인의 추억>, <올드보이>, <장화, 홍련>, <지구를 지켜라>,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이 언제 나왔는지 아세요? (객석: 2003년.) 맞습니다. “그 2003년도 그런 때였다. 하지만 좋은 영화가 시대를 대표하는 때는 그렇게 자주 오지 않는다.”

<화산고>와 <여친소>는 각각 2001년과 2004년에 개봉한 영화지만, 여친소를 2001년에 개봉했던 <엽기적인 그녀>의 자장 내의 영화라고 본다면, 그래서 그걸 2001년적 영화라고 본다면 이 두 영화 <화산고>와 <여친소>는 2003년의 웰메이드 영화인 <살인의 추억>, <올드보이>, <장화, 홍련>에 등등에 앞선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2001년은 제 비천한 영화 리스트에 있어서 중요한 해인데요. 왜냐하면 저는 이번 발표를 위해 아무 생각 없이 <화산고>를 필두로 해서 제 머릿속의 비천한 한국 영화들을 적어내려갔는데, 순서대로 말씀을 드리자면,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적어내려간건데, <신라의 달밤>, <두사부일체>, <달마야 놀자>, <조폭 마누라> 이렇게가 떠올랐어요. 그리고 그것들은 다 2001년에 나왔던 영화들이었습니다. 근데 <두사부일체>, <달마야 놀자>, <조폭 마누라>, <신라의 달밤> 하면은 아마 또 생각나는 어떤 키워드가 있으실 거에요. ‘조폭’ 영화잖아요. 조폭 영화는 이렇게 두 개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화면에 ‘조폭영화’ 포스터를 띄운다 –편집자 주) 이 네 편의 조폭 영화. <신라의 달밤>, <두사부일체>, <조폭 마누라>, <달마야 놀자>에서는 조폭들이 그 스스로 되게 우스꽝스러워지는데, 아마도 그거는 이 영화들이 코미디 장르의 영화들이기 때문일 거에요. 그리고 반대로 <비열한 거리>, <해바라기>의 느와르 조폭 영화는 그 조폭들이 심리적으로 신체적으로도 아름답고 멋있게 그려집니다. 근데 그에 반면하여 <신라의 달밤>, <두사부일체>, <달마야 놀자>, <조폭 마누라>의 주인공들은 스스로 비천해지기를 마다하지 않는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해바라기>류의 조폭 느와르가 1인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그들의 어떤 아름다움을 그려낸다고 한다면, 그런 식으로 호모소셜함을 보여준다면, <신라의 달밤>, <두사부일체>, <달마야 놀자>, <조폭 마누라>류의 조폭 코미디는 다수의 조폭들이 무리를 지어서 호모소셜한 어떤 티키타카의 대사들과 어떤 장면들, 상황들을 마련하면서 많은 동력을 끌어갑니다. 그리고 이 외에 제 비천한 리스트에는 <어린신부>, <그녀를 믿지 마세요>, <선생 김봉두>,  <동갑내기 과외하기> 등등이 있습니다. 모두 제가 십대 초반, 중반에 봤던 영화들이고, 그리고 조금 지나서 2004년, 2005년을 기점으로 제 비천한 영화의 목록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이천년대 중반에 <올드보이>가 굉장히 화제였고, 저는 청소년이었지만 <올드보이>를 보고 싶었기 때문에 <올드보이>를 봤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충격을 먹었고, 너무 잔인하고 야해서, 기억에 굉장히 크게 남았지만, 좋은 영화라는 생각을 당시에는 하지 않았어요. 대신에 그때 제가 봤던 건 <시월애>와 <8월의 크리스마스>와, 뭐 <국화꽃 향기>, <클래식>, <내 머릿속의 지우개> 같은 한국 로맨스 멜로 영화들이었고, 이어서 <러브레터>,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 <연애사진>과 같은 일본 영화들을 걸쳐서 <이프온리>와 <노트북>을 봤습니다. 그런 것들을 몰아서 봤어요. 누가 작성했는지도 모를 인터넷 게시물로 올라온 멜로 영화 리스트에서 발견한 영화들이었고, 그 당시에 왜 그렇게 로맨스 멜로 장르에 빠졌었나, 생각을 해보면 제가 오늘 계속해서 육체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는데, 어떤 뚜렷한 육체적 증상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저도 이게, 다른 분들도 느끼시는 그런 증상인지 궁금했거든요? 저는 왼쪽 팔뚝 중간에서부터 왼쪽 엄지까지 이렇게 선으로 이어지는 어떤 찌릿찌릿한 그런… 그런 감각이 있었거든요. (객석 웃음) 그리고 느낌이 매번 슬픈 멜로 영화를 볼 때마다 발생했고, 그거를 일종의 육체적 고통이라고 오인하면서 세상이 무너져 내린 것처럼 뚝뚝 눈물을 흘리고 그렇게 하는게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걸 뭐라고 얘길 해야될까. 왜냐면 제가 방금 언급했던 영화들이 ‘비천한 영화들’이라고 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제가 생각해 봤던 게 이것을 ‘비천한 영화 관람성’ 혹은 ‘비천한 영화 관객이 됨’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 비천한 관람성에 대해서 제가 추후에 다시 얘기를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어쨌거나 이런 비천한 관람성은 배우를 중심으로 영화를 보는 것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저는 한국 배우로는 이나영을 일본 배우로는 히로스에 료코를, 헐리우드 배우로는 니콜 키드먼을 굉장히 좋아했고, 일명 덕질이라고 하는 걸 했었고, 그리고 그사람들의 필모를 쭉 보았습니다. 조금 부끄럽지만 밝히자면 그때 아마 유사 연애의 느낌으로 덕질을 했던 것 같고, 신문 기사나 인터뷰 등으로 그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그들의 사진을 컴퓨터 폴더에 저장함으로써 그들의 일부를 소유했다 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여튼 영화는 저한테 있어서 그런 의미로 작용을 했었고, 저는 영화를 어떻게 보면 착취하고 부당하게 이용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 드렸던 것처럼 나는 씨네필이 아니고, 뭔가 나를 주눅들게 하는 그런 상황이 계속 이어져서 이거에 대해서 솔직하게 다뤄봐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 발표에서 이 주제로 얘기를 하게 됐는데요. 이렇게 고쳐서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영화를 한번도 진정으로 사랑해본 적 없으면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타겟으로 잡지를 팔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객석 웃음) 그리고 또 다시 말하자면, 어느 올드 씨네필의 말을 빌리자면, 영화를 섬기지도 않으면서 영화에게 무언가를 기대하는 사람입니다. 음. 한때는 제가 씨네필이 될 수 없다, 라는 생각에 조금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오늘 발표를 계기로 제가 조금 더 솔직하게 이 비천한 영화들에 대해서 얘기하고 비천한 영화 관객이 되는 경험에 대해서 얘기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런 비천한 것들에 대해서 긍정해보고자 합니다. 그럼 질의 응답을 바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객석 박수)

[객석 1: OCN 영화들이라 부르는 게 있잖아요. 예를 들면, 타짜 경력 시험 등을 해가지고 이 영화를 내가 얼마나 달달 외울정도로 봤는가를 표현하기도 하고. OCN이라는 곳이 영화를 달달 외울정도로 틀어주고 그러면서 시청자는 계속 보게 되는 그런 공간이기도 하고. 그것도 제가 생각했을 때 쌈마이적인 한국영화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인 것 같은데 그런 OCN 영화들과 아까 열거해주셨던 비천한 영화들 사이에 어떤 연관 관계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말씀주신 OCN 영화가 OCN에서? [객석 1: 틀어주는, 그러니까 자체 제작이 아니라. <타짜>나 <아저씨>나.] 자주 틀어주는, 상영되는. 네, 저는 제가 말했던 비천한 영화들과 이어지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요. 저도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지방에서 살았고, 지방 중에서도 되게 작은 도시에서 살았기 때문에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되는 영화들을 많이 봤던 것 같아요. [질문에 대답을 하자면 말씀주신 OCN 영화들과 비천한 영화가 서로–편집자 주]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OCN은 ‘비천한 영화 관람성’을 유도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이런 게 조금 궁금한데, 제가 “비천한 영화를 위하여 그중에서도 한국영화”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하겠다고 했고, 이런 소개문[PPT 화면을 보여줌 – 편집자]을 제가 썼는데요. 혹시 무엇을 기대하고 오셨는지. 혹시 오늘 기대하신 것과 많이 달랐는지, 이런 부분이 사실 좀 궁금합니다. 편하게 말씀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객석 2: 저는 오늘 한민수 선생님이 세번째로 발표하시는 해적질과 조금 연관이 될 것 같은데. 저는 그 정성일 평론가가 자기가 고백했던 첫 영화 경험 이 프랑스 문화원에 가서 <기관총 부대>를 봤던게 자기의 첫 씨네필로서의 경험이었다, 이렇게 이야기 했던 게 기억이 나요. 근데 한편으로는 씨네필들의 자기고백을 들으면은 영화관에서의 경험이나 특별한 씨네필적 경험을 고백하고는 하는데, 그게 특히나 저와 동시대에 영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주로 말씀하신 것처럼 OCN의 TV 영화들이나, 아니면 불법 다운로드든 합법이든 인터넷에서 영화들을, 그런 경험들을 끊임없이 생산하는 그런 경우들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이걸 세대론으로 풀고 싶지는 않지만, 어떤 플랫폼이나 지형의 변화에 따라서 어떤 영화 경험을 고백하게되는 과정 같은 것이 생기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게 되고. 나중에 발표 해주시겠지만 한민수님이, 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저도 굉장히 동의하는 바이고요, 사실은 선배 영화계 분들이 말하는 영화 경험이 되게 저는 읽었거나 들었을 때 되게 신성하게 느껴졌고, 아 나도 저 성령같은 것을 맛보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항상 살았습니다. 말씀주신 것처럼 세대론적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은 게, 그런 경험에 대해서 반박하고 그것과는 조금 다른 결의 영화 경험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조금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까먹었습니다. (웃음)

[객석 3: 제가 질문해도 될까요? 발표 되게 재밌게 들었는데, 제가 최근에 신정원 감독의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이란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할 자리가 있었어요. 이야기 할 것들을 준비해 갔는데, 굉장히 어렵더라구요. 신정원 감독의 영화를 남들한테 ‘이 작품이 좋은 작품이다’라고 이야기해야 하는 자리였는데 ‘이거 좋은 작품이다’라고 하기 위해서 자원을 끌어오기가 되게 어렵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근데 한편으로 그 영화를 다시 보면서 느꼈던 게 2000년대 초반 한국 영화, 그러니까 90년대생들이 대부분 부모님 손잡고 극장가서 봤었던 영화들이 굉장히 실없고 우스꽝스럽거나 되게 아마추어적이고 좀 되게 독특한 시기였다는 건 분명한 것 같거든요. 그래서 연선님 발표 들으면서 되게 배운 것도 많고 생각한 것도 많았는데, 한편으로는 연선님도 지금 이야기하실 때 뭔가 기존 씨네필 문화와 다른 자신의 세대적인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어떤 이 둘을 가르는 보편적인 문법이라든가 그런 담론장 같은 게 있다면은 그것에 접속을 해서 어떻게든 저희가 비천한 영화를 되살려냈을 때, 달리 말하면 윗세대들을 효수를 시킬 수 있는 거잖아요. 근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보면 저희의 비천한 영화 경험 자체가 저희의 영화적 자원이었고, 그것이 정말로 비천하고 아마추어적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설득시킬 수 있을 것인지, 어떻게 그것을 자원으로 끌어올 수 있을 것인지를 생각을 해보는데, 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신정원 감독이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 <차우> 같은 작품을 통해 2000년대 느낌이 남아있는 유일한 감독이라는 생각을 했고, 뭔가 봉준호가 없애버린 가능성이 다 거기에 있단 생각도 했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하면 재밌을 것 같습니다.]

(객석을 향해) 신정원 감독의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을 보셨…나요? 재밌습니다. (웃음) 말씀하신 자원이라는 게 뭔가 접속해서 노이즈를 만들고 설득시킬 수 있는 자원을 말씀하시는 거죠? [객석3: 네, 노이즈라 하면 어쨌든 가청주파 안에는 들어가 있어야 하니깐…] 그쵸. 하… 어려운데요, 저도 비슷한 생각을 많이 했고 오늘 발표를 준비하면서도 ‘나는 이것들이 좋았고, 즐거웠는데 이것들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계속 했어요. 그러다가 어쩔 수 없이 감각의 차원에서, 육체적인 차원에서 얘기를 계속하게 되는데, 한편으로는 효수시켜야 할 사람들한테 굳이 말하지 않고 효수를 해도 되잖아요. 그러니까 꼭 접속을 하고 어떤 자원을 끌어들여야 되나? 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그리고 동시에, 이 ‘비천함’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을 해보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 발표를 준비하면서.

[객석 4: 예시를 드신 영화들 중에 예를 들면 <어린 신부>를 저도 어렸을 때 되게 재밌게 봤는데, 또 마찬가지로 저도 유사-스노브 시기에 그걸 싫어하던 시기도 겪었고, 특정 그 영화만이 아니라. 근데 그걸 돌아서 다시 지금은 그런 것들을 좋아하거든요. 근데 그게 어린 시절의 감각하고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저는 친구들과 그런 영화들이 촌스럽거나 웃기다고 생각하면서 보고, 근데 그것이 비웃는 게 아니라 좀 더 애정에 가까운 감정으로 2000년대 영화를 소비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만 이 영화들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일단 지금에 와서 제가 어린 시절에 좋아했던 그 영화들, 어린 시절에 좋아했다고도 생각못하고 그냥 기억에 남아버린 영화들에 대해서 생각을 했을 때, 뭔가 재밌을 수 있는 이유가 그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2000년이면 지금 20년도 더 됐잖아요. 그 시간적 차이때문에 거리를 좀 두고 볼 수 있고 그래서 지금은 옛날처럼은 아닌, 어떤 거리두기의 상태에서 재미를 발견할 수 있지 않는가. 이번에 <화산고>도 다시 보면서 좀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말씀주신 것처럼 웃기다는 생각도 많이 했던 것 같고.

[객석 5: 이런 영화들에 대해서 언급을 하신 것이, 예컨대 아까 클립으로 가져온 영화<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를 보면 딱 봐도 자본이 많이 들어간 게 느껴지는데, 이런 만큼의 자본을 들여서 저런 CF(같은 영화)를 찍은 이유가 무엇일지에 대해서 두 가지 반응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나는, 저거를 외환위기라는 역사적 트라우마랑 결부시켜서 증상적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을 것 같고. 그게 아니라 오늘 접근하신 방법처럼 자신의 기억에 편입된 무언가로서 접근하는 방법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전자가 증상에 대한 해석이라고 한다면, 후자를 증세에 대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 전자를 굉장히 두려워 하는 것이, 밈 연구 이런 얘기 들으면은 굉장히 머리가 아파오는데, 저는 밈 연구를 하는 사람들보다 ‘어쩔티비’를 쓰는 아저씨가 더 밈에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거는 제 사견이지만은. 근데 밈이 분명히 굉장히 우리에게 가까이 있으면서도 주제화되지 않는 무엇이기 때문에 이걸 언급은 해야될텐데 그럼 어떤 방법론을 쓸 수 있는가. [관련하여–편집자 주] 오늘 발표에서 조금 더 확장시킬 수 있는 대목들이 있을 것 같아서, 그 방법론을 하나 제시해주실 수 있으신지 여쭤봅니다.]

그 밈 연구에 대해서 방법론 제시를 지금 이 자리에서 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요. 죄송합니다. (웃음)

[객석 5: (이어서) 그러니까 밈 연구는 이미 제 생각에는 틀린 방법론이고, 그런 것처럼 저런 비천한 영화들을 그렇다면 어떻게 얘기해야 하는가. 증상적 해석이 아니라 증세적 해석을 하려면 어떻게 비천한 것들을 다룰 수 있어야 하는가. 이게 이제 질문입니다.]

네. 어떻게 다루면 좋을까요? 일단 혹시 제가 이번 발표에서 취한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것은 육체랑 어떤 간극에 대한 이야기를 했잖아요. 이 부분에 대해서 뭔가 공감이 되시거나 동의가 되셨는지, 저는 발표하는 사람으로서 조금 궁금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이번에 쓴 방법론은 그것인데, 그것을 과연 타당한 방법론인지 전략적으로 유효한지에 대한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청중분들께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그런 감각이나 육체에 대해서 얘기를 한 부분에 대해서 동의가 되셨을까요? 방금 질문 주신 분은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객석 5: (대답) 저는 오늘, 제가 2002년 생이여서 나온 영화들을 하나도 못했기 때문에, 제가 대답하기는 조금 부적절한 것 같습니다. (객석 웃음)]

[객석 6: 저도 여기 언급하신 영화들은 안봤는데, 아까 멜로영화 얘기하실 때 손 얘기를 하셨잖아요. 그런거는 느껴보기는 했거든요. 물론 말씀하신 <이프온리> 같은 거는 안울었어요. (객석 웃음) 안 울었는데, 저도 그런 약간 울게되는 영화들을 볼 때, 그런 느낌을 받기는 하거든요. 정확히 같은 부위는 아닌데, 손이 약간 그런 느낌을 받아요. 그래서 그거에 대해서 공감이 되기는 했는데. 뭔가 질문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하신 얘기 듣고 생각해본 거를 얘기해보자면 제 생각에는 비천한 영화에 대해서 말하자면 비천한 말하기 방식이 필요한 것 같아요. 아까 말씀하신 자원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셨는데, 그런식의 말하기 방식은 ‘효수’ 해야되는 말하기 방식이기 때문에 그것과는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라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웃음)]

그건 저희가 앞으로 잘 찾아가면 되죠. (웃음) 코멘트 감사드립니다.

[객석 7: 아, 지금 영화 평론? 담론이라고 할까요? 그게 실제로 씨네21이나 다른 곳에 기고한 영화 평론가들 사이에서랑, 아니면 조금 더 아마추어틱하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지금 강의에서 언급하신 00년대 초반 상업영화들은 완전히 실종이 된 상태잖아요. 한국 고전영화에 대해서도 뭐 여기 계신 분 말고는 거의 이야기 하시는 분이 없는 것 같고, 그나마 한국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하면 아까 이야기하셨던 03년대부터 소위 봉, 박 라인부터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방금 전 질문자분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90년대 후반생이나 00년대 생들은 아예 영화를 좋아한다는 자각을 갖게 되는 경험 자체가 이런 식, 말씀하신 것처럼 소위 싸구려, 비천한 한국 상업 영화들 보면서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적다라는 생각이 들고요. 저도 그런 케이스인거고. 그래가지고 아마 영화를 계속 평생 보게 되면서 씨네필리아를 수행을 하면서도 아마 이 시대, 이 시기의 영화들을 그러니까 지금 말씀하신 이 비천한 영화들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 자체를 두지 않을 가능성이 굉장히 큰 것 같아요. 그것의 하나의 방증이 비평적으로 이게 아마추어 리그에서나 프로의 리그에서나 무관심인 것 같고. 그렇다면 저도 여기 나온 영화들을 한 편도 보지 않았거든요. 사실. 그렇다면 이거를 어떻게 비평적 공론장으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만약에 그걸 끌어올려야 한다는 필요성이 든다라면 그걸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궁금증이 나왔고, 아까 처음에 언급하신 토니 스콧이나 마이클 베이 그리고 폴 W. S. 앤더슨 그 사람들은 사실 비천하다라는 식으로 싸구려 블록퍼스터라는 인식을 많이 하기는 하지만, 예전부터 쭉 해왔던 작가주의적 해석의 새로운 수혜자들로 지금은 나름의 팬들이 생긴 상태일텐데. 사실 강의에서도 언급 하셨듯이 이 00년대 초반 비천한 영화들에서는 그런 작가주의적 해석은 어려울 것 같거든요. 말씀하실 때 감독 이야기를 하신 것도 아니고, 저도 그 시기에 활동했던 감독 이름들을 모르고 있으니까. 그럼 이 사람들을 복권을 해야할 것인지. 만약에 그걸 시도할거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인지. 어떻게 사람들이 이 때의 영화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실제로 찾아보게 할 것인지. 그리고 조금 더 근본적으로 들어가보면 굳이 그런식으로 사람들을 유도하는게 과연 필요할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맞습니다. 그거는 질문을 해봐야 하는 부분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 영화들을 복권 시켜야 하냐, 라는 차원에서는 질문을 해봐야할 것 같고. 말씀 주신 것처럼 저도 이 발표 준비하면서 작가주의적으로 해보면은 편하겠다, 해서 감독들을 나열해보기도 했는데 전혀 되지가 않더라구요. 그러니까 이분들이 특히 제작으로 넘어가는 분들이 굉장히 많았고, 상업적인 영화였고, 또 제작사의 어떤 힘이 셌던 때에 만들어졌던 영화여서 그러면 작가주의적으로 해석하기는 어려울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이번 발표에서 영화 개별로만 계속 얘기를 했던 것이고요. 그런데 90년대 후반에서 00년대생 분들은 이런 비천한 영화들에 대한 경험이 굉장히 적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죠. 그 부분이 저는 새롭게 다가오고 흥미롭네요. 질문 주시는 분들이 계속해서 물어보시는 게 하나의 징후를 드러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떻게 복권 시킬거냐, 복권 시킬 수 있을 만한 것이냐, 복권 시킨다면 어떤 영화들을 복권 시켜야 되냐. 이런 질문들이 들어오는데 이 부분은 제가 이번 발표에서 충분히 설득시키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웃음) 하지만 제가 비천함에 대해서 조금 더 파고들고 마테리알에서 2000년대 영화들의 실없음에 대해서도 조금 더 얘기를 하고 그런 자리를 만들고 하면서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보시면서 이 영화들을 복권 시켜야 하나? 라는 생각을 하셨던 것일까요?

[객석 7: (이어서) 그런생각을 한 건 아니고, 아까 보여주신 클립을 보면서 지금까지 봐오던 영화들에 비해서 그 컷을 끊는거나 카메라를 돌리는거나 하는 부분이 너무 이질적이여서 드라마 보는 것 같았거든요. 굉장히 조금 생소한 경험이었다? 하는 생각이 들었고. 만약에 접근한다고 하면 그런, 말로 표현하기 조금 어렵지만 그런 감성?에 초점을 맞춰서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00년대생 씨네필이, 98년생 00년생 씨네필이 외국 영화들을 쭉 보다가 ‘나는 이제부터 신상옥과 유현목의 영화를 보겠어’, 하는 거는 충분히 상상이 가고 그런 사람들도 분명 있을텐데, 존 포드, 하워드 혹스 이런 감독들을 보다가 갑자기 ‘나는 <두사부일체>를 봐야겠어’ 이렇게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 같거든요. (객석 웃음)]

그렇네요. 굉장히 어려운 일이네요.

[객석 8: 앞에서 다른 분이 말씀하셨듯이 비천한 영화는 비천한 언어로 말하면 된다, 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저도 동의하거든요. 근데 한편으로는 그래서 그들과 관계를 끊으면 된다, 처럼도 조금 들렸거든요. (웃음) 아닐 수도 있지만? 근데 잘 모르겠지만, 일단 가령 그렇다면 말씀하셨듯이 이 영화들 봐야하는가? 라는 질문이 [외부와의 관계를–편집자 주] 끊었을 때는 이어지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보게하려면은 어쨌든간에 기존에 소위말하는 담론장에 싸워서 조그만한 자리라도 내야지 그런 영화들 보게 할 수 있는거고. 근데 결과적으로는 그래서 저는 복권을 해야된다 라고 생각하는 입장인데. 뭔가 저희가 생각하기에 보편적이라고 생각하는 극장 중심주의나 뭐 이런 것들도 어떤 세대의 특정적인 산물이잖아요. 근데 단지 저희가 그걸 보편으로 인준하는 담론 체계가 있는거고. 거기서 그게 재생산 되는 거니까. 그니까 사실 이런 맥락에서 따져보면 그때 저희가 봤던 그런 00년대 초반의 이상한 영화들에 관해서 저희가 포착하지 못하는 언어와 감각이 있는거고. 그거를 언어화 시켰을 때 결과적으로는 이게 단순하게 세대론적으로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때의 감각을 어쨌든 올려서 그거를 생산시킬 수 있는 새로운, 소위 말하면 오픈스페이스를 만드는게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네. 그래서 저는 결과적으로 얘기하면 복권을 해야하고, 그리고 분리가 아니라 어쨌든 개입하려는 의지도 보여야하며,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작가적인 우회로가 신정원이었던 거였어요.]

[객석 9: 저는, 영화사람은 아니고 미술 사람인데 (웃음) 그래서 저는 옆에서 지켜보면서 영화 사람들은 진짜 영화를 사랑하는 구나, 라는 생각이 오늘 발표를 지켜보면서도 들었거든요. 이게 비천한 영화라고 하는 게 그냥 처음부터 비천한게 아니라, 어떤 것이랑 비교해서 비천한게 있는 것일 텐데. 미술의 경우에는 앞선 미술이 있고, 그 미술을 죽이고 다음 미술이 있고, 이렇게 계속 미술을 죽이면서 미술이 자라왔는데, 영화는 영화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앞선 영화를 죽이지 못해서 얘가 비천한 영화로 남아있고, 그 상태에서 계속해서 영화가 쌓이다보니까 옆동네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얘를 복권시킬 수도 없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거죠. 왜냐하면 죽은 적이 없으니까, 얘를 다시 살릴 수도 없게 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다시한번 영화사람들은 정말 영화를 사랑하는구나. (객석 웃음)]

코멘트 감사합니다.

[객석 10: 제가 드는 생각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서, 일단 말씀을 드려볼게요. 혹시 연결해주실 수 있는 분이 있을까 해서 말씀드려보자면, 정확히 몇년도인지 모르겠는데, 80년대 즈음에 기획영화라는 것들이 있었잖아요? 90년대인가요? 네. 어떤 지금 말씀하신 비천한 영화들이 씨네필들이 좋아하던 작가에 초점을 맞춘 영화들과 괴리가 있는 이유가 관객의 경험에 초점을 맞춘, 그런 데이터를 바탕으로 나온 영화들이었다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연선님이 이번 발표에서 그걸 개인적인 경험과 연결지어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설명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요즘 개봉하는, 요즘 개봉하는 이라고 하기보다 다들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신과 함께> 같은 최근의 상업영화의 경향들과도 이걸 뭔가 연결지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거리들이 있을까요?]

[객석 11: 그게 그 전까지는 한국 영화 자체의 자본들이 굉장히 열악하다보니까 한국영화 산업 자체가 없었어요. 왜냐면 외화를, 흥행을 하기 위해서는 영화법 자체가 한국영화를 의무적으로 만들게 했어요. 외화를 걸어서 한국영화에 투자하는 게 아니라 외국 영화를 투자하기 위해 만들다보니까 이 시스템 자체가 갭투자가 안되니까. 그때 처음으로 신씨네에서 <결혼 이야기>라고 그걸 했고, 그리고 나서 세대가 젊어졌고. 그, OTT있죠. 그게 계속 관객은 대상화 되어있고, 어떤 그 실세가, 계속 구조화되는 사람들은 기득권이든가 아님 줄 서든가. 이런 부분에 대해서 젊은 비평가들이 비판적으로 봐야하는데 근데 그런 얘긴 별로 안해요. 평론쪽을 보면 담론이 작품에 국한되어 있지 왜 그 영화가 나와야했는지 어떤 흐름이 있잖아요. IMF도 큰 것이고, 한동안은 세월호 관련된 영화들이 엄청 나왔고 지금도 나오잖아요. 그렇게 나올 수밖에 없는게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으니까 그런거죠. 그래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 기왕에 비평하시는 분들이나 저널들도 한국사회의 실태나 배경에 대해서 다루어주었으면 합니다.]

저도 제도에 대해서 젊은 비평가들이 얘기해야된다고 생각하는데, 또 한편으로는 제도에 대해서 좀 재밌게 얘기를 해야된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다고 생각이 들어요.

[객석 12: 죄송합니다 시간이 늦었지만, 꼭 덧붙이고 싶은 게 하나 있어서. 그러니까 이 <두사부일체>와 같은 비천한 영화들이 복권되는데 제가 가장 딱 떠오를 수 있는 방법, 예를들면 제가 어느날 갑자기 봐야겠는데, 이런 생각이 드는 방법은, 가장 유력한 건 아마도 그 자체가 일종의 힙스터리즘으로 작동을 하는 것. 그러니까 스노비즘의 대항으로서의 힙스터리즘? 왜냐면은 강덕구 평론가가 이제 블로그에 썼던 글 중에 기억이 나는 것이 이웃공개 글이긴 합니다만, “착한 속물 H는 내게 자신의 세비지함을 과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대체로 자신은 쓰레기같은 영화만 본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면 일종의 게임이 시작되는데, 누가 더 쓰레기 취향을 갖고 있는가에 대해서 세시간 이상을 떠들어 댄다. (객석 웃음) 그러나 아무리 떠들어도 우리는 그럴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쓸데없는 교양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영화사의 영화 작품을 구구단 외듯 댈 수 있고, 그런 종류의 한심한 인간들이기 때문에, 예술을 사랑해서 인생에 문제가 생긴 케이스들이기 때문이다.” 뭐 이런 얘기가 나오는데. 저는 사실은 오히려 <전함 포템킨> 같은 영화들과 관련한 어떤 스노비즘? 그거에 이제 기가 눌리셨다고 하셨는데, 저는 오히려 반대인 편이거든요. 나는 너무 정전들만 보고 있는게 아닌가. 고전들만 보고 있는게 아닌가, 이런. 특히나 이제 주변사람들이 저도 그걸 학과라고 할 수 있다면, 그 학과에 어느정도 속해있기 때문에, 그 학과 사람들이 예전에 토렌트를 썼다면 지금은 왓챠를 쓰고 있거든요. 말하자면은 점점 취향의 비합법적인 사용을 합법화 하려고 하고 있는데, 그때 이제 그 이런 영화들이 다시 비합법적 사용으로 동원이 될 수 있는, 그니까 점점 더 내 취향을 직접 만들어가는 그런 걸로 활용이 되면 어느정도 의의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다시 처음에 얘기했던 것처럼, 근데 이것조차 하나의 힙스터리즘으로, 그냥 어떤 권위의 차용으로 가면 어떡하지, 이게 하나의 권위가 되면 또 어떡하지라는 이중적인 생각이 듭니다. 제가 말을 [길게 해서–편집자 주] 죄송합니다.]

재밌습니다.

[객석 13: 네. 질문이라기 보다는, 오늘 말씀해주신거랑 질문하신 분들 들으면서 한 생각인데, 어 제가 아까 말씀해주신 00년대 씨네필이에요. 제가 03년생이라.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라고 불리우는 그 시기에 태어나서 앞에서 소개해주신 이른바 비천한 영화들을 못보고 자랐어요. 근데 저는 저런 감성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약간 뭐라고 표현해야될지 잘 모르겠는데, 묘한 찌질함이라고 해야되나? 그 최근에 나온 영화 중에서는 <족구왕>에서 나오는 묘한 찌질하고 B급 적인 느낌을 저는 굉장히 좋아해서 소개해주신 영화들에 담기는 감성들을 좋아하는 영화라서. 우리가 계속 비천한 영화들을 어떻게 말해야 되는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저는 그냥 비장해질 필요가 없고, 서로가 가지고 있는 어떤 찌릿찌릿함? 팔뚝에 있는 감각이라던가. 저는 그게 가슴이었거든요. 그래서 각자가 영화를 볼 때 느끼는 어떤 찌릿찌릿함을 서로 자기 보따리에서 꺼내 놓는, 그런 느낌으로 가는게 좀 더 건강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객석 14: 타이밍이 좀 안맞는 것 같기는 한데, 말씀해주신 것 들으면서 생각난 게. 그나마 말 자체가 좀 웃기긴 하지만 작품성 때문에 평가, 조명 받는게 아닌 다른 해외 영화가 뭐가 있었을까 생각해봤을 때 일본 로망 포르노들이 떠올랐었거든요. 그것도 무슨 작가주의적 해석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 보통 영화 시스템적으로 좀 조명되면서. 그래가지고, 이 영화들이 다 훌륭한 영화들이다 그런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지만,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조금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00년대 영화들에 있어서 조금 비슷한 관점이나 방법론을 취하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도 하나의 케이스 스터디를 할 수 있을 만한 대상이 되겠네요.

[객석 15: 네, 저는 좀 대다수 분들이 어린 것 같은데, 저는 딱 이 세대거든요.]

안녕하세요. (객석 웃음)

[객석 15: (이어서) 그래서 <마법사의 돌>도 첫 극장 영화였고, 어디가서 인생영화 말하면 <달마야 놀자> 말해서 분위기 싸늘하게 하고 하는데, 근데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그 저는 오히려 반대로 영화 공부하는 친구들은 이걸 뭐라고 안하는데, 일반인들이 굉장히 비천한 영화를 싫어한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뭐 친구가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와서 “임창정 영화에 나오는 사람 같다.” 엄청 싫어하면서, 다른 친구가 달래주면서 “아니야, 콜미바이유어네임이야.” (객석 웃음) 그래서 저는 그 과외 선생님 있잖아요, <화산고>를 폄하한, 그 선생님 같은 경우에 말씀하신 것처럼 그냥 오히려 역-스노브의 그런 정신 방어로 그러면은 너네는 그렇게 프레임워크 잘 짜인 영화만 보지, 나는 다본다 이런식으로 방어를 하곤 하는데. 그래서 그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또 하나는 약간 찌릿 찌릿한 그런 감각적인 그런거에서, 그 얼마전에 돌아다니다 그걸 봤는데, 그 문학을 읽는 사람들보다 그 감정 자극이 심하고? 그 흡수가 빠른? 웹소설이나 팬픽이 그런걸 읽는 사람들이 더 감정의 찌릿거리는걸 더 잘느끼고, 또 신체는 그걸 또 스트레스, 가상이라고 인식을 못하고 스트레스로 인식해서 건강이 안좋아진다고 하더라고요. (객석 웃음) 일맥상통 하는 것 같아서.]

네네. 말씀주신 웹소설이나 그런 얘기랑도 맞닿아 있는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객석 16: 저도 그 연선님과 비슷한 시대에 자라서, 저도 뭐 좋아하는 영화를 얘기하라고 하면은 뭐 <단적비연수>나 <무사> 이런 것들을 얘기를 하는데, 그 이제 어렸을 때 봤던 체험이고, 자라고나서 뭐 여러 사무라이 영화나, 이런 것들이라던가 아니면 뭐 <무간도> 이런 영화를 봤을 때 이미 너무 스펙타클하고 약간, 뭔가 좀, 이렇게 말하면 그렇지만 질이 떨어진다고 해야하나?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폭발적 에너지를 이미 느낀 상태에서, 이 영화의 원형은 이런 씨네필적인 작품들이었어, 라고 봤을 때 씨네필적인 작품들이 별로 그렇게, 아 중요하지 하지만 그렇게 재밌진 않군, 이런 게 느껴지는 경험들을 되게 많이 했거든요. <무사>를 만든 김성수감독은 그 <무간도>라든가 그 이전의 어떤 그 뭔가의 뭐라고 해야될까요, 어떤 미국의 뭐, 갑자기 생각이 안나는데, 그런 어떤 씨네필적인 영화를 기저에 두고 자기 작품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이 영화들이, 영화사의 논의 안에서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기가 어렵지 않지 않은가. 그니까 이 영화도 충분히 안에 어떤 부분에서는 속하고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했고. 이를테면 과거의 한국 영화를 말할 때에 그 영화를 봐야하는 이유를 굳이 찾는다면 어떤 배우의 연기라든가 이 배우가 이런 것들을 거쳐서 여기까지 왔다는걸 얘기를 할 때 [00년대 영화들을–편집자 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뭐 송강호를 얘기할 때나, 이병헌이나 여러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어떤 배우들을 얘기할 때? 이정현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오히려 그런 인물들을 얘기하는 방식으로서 이 영화들이 아예 언급이 안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비평의 영역은 아니지만, 열심히 칼럼을 쓰고 트위터에 활동을 하신 복길님 같은 분들이 말하는 문법을 보면 사실 이 영화들이 엄청나게 긍정이 되고 있고 엔터테인먼트로서 접근을 하면 이 영화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것은 ‘재미’라는 요소이기 때문에 그 재미를 어떻게 이 배우가 연기를 해 주나, 어떻게 연출을 했는가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얘기가 안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부분들을 비평의 영역에서도 뭔가 차용해서 얘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좋은 지적이신 것 같습니다. 한 번 찾아서 열심히 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혹시 마지막 질문을 하나 받고 끝낼까 합니다. 아니면 코멘트도 괜찮고요.

[객석 17: 저는 사실 영화사람이 아니거든요. 미술사람이라고 하신 분이 인상깊어서. ‘복권’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도 ‘어 굳이 복권시킬 필요가 있나? 어차피 유행은 돌고 새로운 영화들이 태어날 건데’ 그렇게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지금 여기서 말하고 싶은 건, ‘영화 사람’이라고 지칭되시는 분들은 정말 영화를 사랑하고 있구나 (객석 웃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재밌었던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영화 사람들은 영화를 사랑한다, 네. 그럼 오늘 일요일 아침에 1교시 들으러 와주셔서 감사하고요, 다들 점심 맛있게 드시고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