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
윤원화

[제1회 오픈 스페이스] 언제나 밝은 방에서 여러 개의 창을 틀어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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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원화

[제1회 오픈 스페이스] 언제나 밝은 방에서 여러 개의 창을 틀어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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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두 번째 발표를 맡은 윤원화라고 합니다. 주로 미술 쪽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아마도 전체 오늘 내일 발표자들 중에 제가 제일 영화와 관련이 없는 사람이 아닐까 싶은데요. 《마테리알》에서 저를 초대하셨을 때는 어느 정도는 외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요즘에는 영화 바깥에서 여러 가지 영상물들이 다양하게 제작되고 있고, 미술도 그런 흐름의 한 축을 맡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원래 《마테리알》에서 저한테 제시하신 발표문 제목은 ‘암막커튼 밖으로 나오며’였습니다.

말하자면 영화의 분과를 한 걸음 벗어났을 때 무엇이 보이는가 하는 건데요. 제가 영상이론과 대학원을 나와서, 여러 가지로 영화의 안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운동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저는 학교 다닐 때 시각문화 전공 트랙이어서, 영화의 근처에 있었지만 정말로 깊이 들어가진 않았고, 그래서 애써 빠져나온 적도 없는 거죠. 그런 이야기를 메일로 주고받으면서, 저는 ‘언제나 밝은 방에서 여러 개의 창을 틀어놓고 있었습니다’ 라는 말을 했는데, 그게 오늘의 발표 제목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오늘 이야기를 시작해 보죠.

밝은 방은 미술관의 일반적인 전시 환경이기도 하고, 일상생활의 기본 환경이기도 합니다. 밝은 방에서는 단일한 스크린이 눈을 독점하지 못해요. 다른 스크린들, 스크린 아닌 다른 시청각적인 것들이 계속 시선을 끌고 있어서, 밝은 방의 거주자는 산만하게 이것저것 볼 수밖에 없죠. 저는 늘 그런 방에서 여러 가지를 보고 있었던 것 같아요. 영화의 경우에도, 아마 제가 본 최초의 영화는 TV에서 해 주는 주말의 영화였을 거예요. 저는 제가 찾아가는 게 아니라 저를 찾아오는 시각적 흐름 중 하나로 영화를 접했고, 여전히 그런 식으로 간간히 영화를 봅니다. 이렇게 관람자의 주의가 분산되는 상황이 새로운 건 아녜요. 멀리 가자면 영화가 등장하던 백 년 전에도 도시는 산만한 장소였죠. 그렇지만 백 년 전과, 십 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뭔가 달라진 게 있습니다. 지난 십 년을, 길게 잡으면 지난 세기 전환기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저의 연구자로서의 대주제인데요. 오늘도 그런 이야기를 할 거예요. 그렇지만 세기라는 건 너무 큰 주제이고, 저는 아직 그 이야기를 다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없기 때문에, 일단은 작은 이야기에서 시작해 볼게요.

제가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여러 가지 창문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강의실이에요. 사실 제가 ‘암막커튼’이라는 말을 듣고 맨 처음 떠올린 것도 영화관이 아니라 강의실이었어요. 요즘에도 이렇게 하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학생일 때는 강의실에서 영화를 봤습니다. 그리고 제가 졸업하고 강의를 나가게 됐을 때도, 한동안은 이런 식으로 영화를 봤어요. 그러니까 강의실에서 커튼을 치고 어둡게 해서, DVD로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 인원이 다 함께 영화를 보는 거죠. 2000년대 후반까지는 이게 가능했어요. 그런데 2010년대 초반부터는 이게 어려워졌어요. 지금도 영화를 수업 자료로 쓸 때가 있지만, 대개는 유튜브로 짧은 클립을 보여 드리죠. 만약에 학생들이 어떤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봤으면 좋겠다고 할 때는, 넷플릭스나 다른 VOD로 미리 보고 오시라고 안내를 드리고요. 그래서 관심 있는 사람은 개별적으로 보고 오고, 수업 시간에는 밝은 방에서 그걸로 이야기만 하는 거예요.

지금 제가 학교에서 가르치는 건 주로 미술사라서, 영화가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진 않습니다. 그러니까 예전처럼 수업 시간에 영화를 볼 수 없다는 게 그렇게 큰일은 아니에요. 지금은 오히려 수업 시간에 20세기 영화를, 일테면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 같은 옛날 영화를 틀어 줬을 때, 호기심을 가지고 끝까지 집중해서 영화를 보는 학생들이 있었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져요. 이제는 그런 접속을 기대하기가 어려우니까요. 영화가 자동으로 사람들을 매혹했던 때가 있어요. 영화가 여러 분과를 아우르는 일종의 공통 교양이었던 때가 있습니다. 그게 그렇게 먼 과거가 아니에요. 그렇지만 지금은 영화가 여러 분과들 중 하나일 뿐이라서, 저도 말하자면 이웃집 사람 같은 마음으로 이런 자리에 오게 되는 거죠. 지금 우리한테 공통분모가 있다면, 공통의 문화보다는 기술적이고 물질적인 조건이 먼저일 거예요.

이를테면 강의실에서 영화를 볼 수 없다는 것도 기술적 문제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영화를 틀어 주면 다들 자기 스마트폰만 보고 있을 거예요. 저도 집에서 TV로 영화를 볼 때 보통은 다른 스크린을 한두 개 정도 더 열어 놓고 있단 말이에요. 손에 늘 스크린이 들려 있으니까 조금만 딴 생각이 나면 자동으로 다른 창을 열어요. 말하자면 우리는 상시적인 멀티스크린 환경에 살고 있어요. 수업 시간에도, 제가 수업자료를 보여드리는 스크린이 있고 학생들이 각자 보고 있는 스크린들이 있어요. 노트북도 있고 폰도 있고, 그걸로 필기도 하고 자료도 찾고 딴짓도 해요. 각자 의식의 흐름이 스크린에 연동되어 있어서 이걸 막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제 입장에선 수업을 하는 것 자체가 살아 있는 토킹헤드로서 다른 스크린들과 경쟁하는 일이 되죠. 여기서 역사 선생으로서 진짜 문제는 단순히 강의실에서 영화를 보기 어렵다는 게 아니라, 20세기의 유산을 21세기의 산만한 매체 환경으로 가져오기가 어렵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기술적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하려고 했을 때 어떻게 되었냐 하면, 팬데믹 직전에는 수업이 거의 유튜브 디제잉이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20세기 자료들이 유튜브에 쌓여 있으니까, 이것저것 틀어서 감각적으로 과부하를 준 다음에, 그 틈에 옛날 이야기를 흘려보내는 거죠.

사실 이건 굉장히 유서 깊은 접근이에요. 1959년에 미국과 소련의 문화 교류를 목적으로 모스크바 미국 박람회라는 행사가 있었는데요. 그때 찰스와 레이 임스가 당대의 미국을 소개하는 멀티 채널 비디오를 제작하면서 이런 전략을 취해요. 여기 보시는 건 개발 과정에서 제작한 축소 모형 사진이고, 실제 현장 사진은 이거예요. 여기 아래에 자글자글 보이는 게 사람들이에요. 머리 위에 대형 스크린을 여러 개 설치하고 한 번에 다 소화할 수 없을 만큼 정보를 과잉 공급해서, 말하자면 관람자를 감각적이고 인지적인 차원에서 굴복시키는 것이 이 작업의 목적이었습니다. 20세기는 영상 자료가 많이 남아 있어서 이런 식으로 20세기를 소개하는 멀티 채널 프리젠테이션을 구성할 수 있어요. 실제로 지금은 미술을 포함한 문화산업 전반에서 20세기를 그렇게 재활용하고 있고요. 그렇지만 역사를 공부한다는 건 그런 쇼를 보는 것과는 좀 다른 일이기도 하고, 현실적으로 팬데믹 이후에는 비대면 수업이니까 이런 식으로 학생들의 감각을 통제할 수 없어요. 그런 와중에 20세기는 더욱 더 현재와 멀어 보이는 과거가 됐고요. 그러니까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한 거예요.

이 문제를 해결하는 한 가지 극단적인 방법은 그냥 20세기 역사를 안 가르치는 거예요. 또는 적어도, 20세기를 다른 많은 시간들 중의 하나로 취급하는 걸 고려해볼 볼 수 있어요. 사실 우리가 지금 왜 이렇게 20세기를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힘드냐 하면, 이게 그냥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판단하는 하나의 규범으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역사가 그냥 과거의 선례가 아니라 우리가 지켜야 하는 어떤 모델을 제공하는데,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그 모델이 형성되던 때와는 달라서 충돌이 있는 거죠. 억지로 20세기의 잣대를 들이대는 데 실제로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미술의 경우에는 기존의 유럽과 북미 중심의 미술사를 글로벌하게 확장하면서 자연스럽게 20세기 중심의 현대적 질서를 재편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습니다. 결국은 20세기의 역사를 지금 21세기의 관점에서 고쳐 쓰지 않으면 안 될 거예요. 있었던 일을 없었던 일로 한다는 게 아니라, 가치 판단의 기준이 달라질 거라는 얘기예요.

그렇지만 영화의 경우에는 이런 접근이 좀 더 어려울 것 같아요. 왜냐하면 영화는 단일 매체 분과이고, 아직 젊어서 20세기 역사가 전부인데, 그 짧은 역사 동안 영화가 사랑의 대상으로서 연구되어 왔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역사를 고쳐 쓴다는 게 단순히 인식의 틀을 재조정하는 게 아니라 사랑이 변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해야 하는 일이 됩니다. 근데 지난 10년 동안, 제가 수업용 영상 자료를 DVD에서 유튜브로 바꾸는 동안, 그런 일이 일어났던 것 같아요. 실제로 영화과에서도 예전처럼 영화를 보여주면서 수업을 하기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저는 그 자리에 없었으니까 구체적인 정황은 모르지만 어렴풋이 그려볼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어떤 갈등이 표면화되지 않았다고 해도, 말하자면 권태기의 연인들의 데이트 같이 된 거겠죠. 그래서 옆집 사람의 입장에서 영화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쓴 글을 읽다 보면, 종종 이런 상황에 대한 쓸쓸한 감정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내가 사랑했던 것이 늙어 버렸다는 슬픔, 더는 사랑할 만한 것을 찾을 수 없다는 고독, 그런 사랑의 토대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좌절 같은 거요. 직접적으로 영화의 쇠퇴나 죽음을 말하지 않더라도, 영화 이후에 관한 이야기나 영화보다 포괄적인 범주들, 일테면 무빙 이미지 같은 중성적인 개념을 논할 때도 종종 그런 정념들이 묻어나왔어요.

그게 아주 보편적인 정서였던 것 같지는 않아요. 특히 한국은 영화산업의 세계화, 선진화에 초점을 맞춘 성장 서사가 여전히 가능했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어떤 상실감이나 불만을 토로할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었죠. 그러니까 ‘영화가 죽었다’고 하면, ‘무엇이 영화를 죽였는가?’ 라는 미스테리가 시작되는 게 아니라, ‘대체 누가 영화가 죽었다는 근거 없는 말을 하는가?’라는 신경질적인 반응이 돌아오는 거예요. 그나마 필름이 퇴출되고 디지털로 이제 막 전환되던 시기에는 눈에 보이는 시체가 있으니까 그에 대한 애도를 표할 수도 있고 이른바 시체 애호를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런 장례식이 끝나고 나면 영화는 다음 세대의 테크놀로지로 이전되어서 잘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거기에 말을 더하기가 어려운 거예요. 그렇지만 무언가 상실되었다는 감각은 찌꺼기처럼 남아 있습니다.

이건 정통 미스테리보다는 말하자면 <신체 강탈자의 침입>에 가까울 거예요. 신체 강탈자, 바디 스내처 이야기는 다들 아실 텐데요. 어떤 외계의 존재, 근본적으로 비인간적인 존재가 인간을 하나하나 복제하고 대체하는 방식으로 은밀하게 인간 사회를 점령한다는 거예요. 이 복제자들은 인간과 똑같이 생겨서 알아보기 어려워요. 위화감이 들어도 그것만으로는 저 사람이 복제자라고 스스로 확신하기도 어렵고 남들을 설득하기도 어렵죠. 그러니까 남도 믿을 수 없지만 나도 믿을 수 없어요. 이걸 영화의 상황에 대입해 보면, 말하자면, ‘영화처럼 생긴 것이 영화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데, 저것이 정말로 영화일까?’ 하는 의혹이 있다는 거예요. 이건 단순히 좋은 영화가 아니다, 또는 영화와 영화 아닌 것을 구별하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판단이 아니에요. 바디 스내처의 무서운 점은 그런 판단을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알 수 없는 것인지, 알고 싶지 않은 것인지, 알 필요가 없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무언가 불쾌한 것으로 다가와요. 이 위화감은, 사전에서 찾아보면 ‘위화감’이라는 단어는 ‘허위’라고 할 때의 ‘위’에 ‘조화’라고 할 때의 ‘화’를 쓰는데요, 그러니까 가짜로 조화로운 척한다는 것입니다. 이건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예요.

바디 스내처 미스테리의 핵심은 우리가 누구인가를 우리 스스로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단 거예요. 그래서 나와 나 자신, 나와 남들, 나와 사회의 관계가 보이지 않게 어그러진 거죠. 그러니까 문제는 영화도 아니면서 영화인 척하는 가짜 영화를 색출하는 게 아닙니다. 일단은 이 불쾌한 어긋남이 뭔지 알아야 하고, 그 다음에 이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결정해야 하죠. 이를테면, 여러분이 많이 보셨을 것 같은 예를 들자면,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잠깐 생각해 봅시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건 영화의 죽음일까요, 아니면 영화의 계속되는 삶일까요? 영화 속에서 어떤 영화는 분명히 죽었습니다. “유일무이한 예술영화”를 만들던 감독은 죽었고, 업계는 더 이상 그런 영화 문화를 육성하는 데 관심이 없고, 그래서 프로듀서는 영화를 그만두려고 하고 있어요. 하지만 찬실이라는 이름의 이 PD는 영화 속에서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영화를 위한 영화에 자기를 가두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영화와 함께 다시 한 번 새롭게 살아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느끼게 되죠.

그렇지만 <찬실이는 복도 많지>가 과거의 영화가 끝난 곳에서 시작해서 어떤 미래의 영화를 향해 나아간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찬실은 오즈 야스지로를 숭배하고, 마음 속 영화관에 장국영이 있는 20세기적 시네필이고, 여태까지 그런 영화에 대한 사랑 속에서 영화를 만들면서 살아왔어요. 그런데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까 이 세계와, 심지어 영화의 세계와도 아무 접점도 없는 사람이 되어 있는 거죠. 찬실이 사랑한 영화들이 갑자기 멸종한 건 아닙니다. 그런 영화들은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고, 세계의 일부로서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다만 찬실이 어떤 이유에선가 그런 영화의 세계에서 튕겨 나온 거예요. 이건 영화 속에서 감독이 갑자기 죽었다라고 하는 우발적 사건으로 표현됩니다. 무언가 죽었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졌지만, 그 죽음에는 아무런 역사성도 없고, 필연도 없고, 보편성도 없고, 그래서 찬실이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지를 판단할 기준이 되어 주지도 못합니다.

영화 속에서 찬실의 일차적인 문제는 돈이 없다는 거지만, 찬실이 돈이 없는 이유는 이 세계에서 찬실이 있을 자리가, 말하자면 찬실이 만드는 영화가 존재할 여지가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찬실은 자기가 뭐 하는 사람이고 여태껏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알 수 없게 돼요. 영화는 이 문제를 오로지 찬실의 밝음, 귀여움, 건강함으로 헤쳐 나갑니다. 주변 사람들과 과거의 유령이 도움을 주긴 하지만, 그들 중에 찬실이 처한 문제를 함께 인식하고 고민하는 인물은 없어요. 다만 찬실이 사랑스럽고, 주변 인물들이 찬실을 좋아하고, 영화 바깥에서 관객들이 찬실을 응원하는 애호의 관계 속에서 가까스로 찬실의 영화가 성립할 여지가 확보됩니다. 이것은 겉보기에 다정한 세계지만 뒤집어 보면 가혹한 세계예요. 찬실의 영화는 살아남기 위해 사랑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찬실은 아마 정해진 길 같은 건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성실하게 한 걸음씩 내딛기로 하는데, 이 새출발은 영화의 마지막에서 달밤의 산책으로 예쁘게 그려지지만 여전히 사방은 깜깜합니다. 그러니까 사실 해결된 건 없어요. 그렇다면 다시, <찬실이는 복도 많지>가 보여주는 건 영화의 죽음일까요, 아니면 영화의 계속되는 삶일까요? 여기서 영화는 죽었다고 하긴 어렵고, 전과 다르게 살아가고 있는데, 스스로 생사를 결정하지는 못하는 처지입니다. 자기가 죽었다 혹은 죽지 않았다고 말하는 능력 자체를 잃어버린 형태에요. 영화는 그 자체로 앎의 대상이 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삶의 진실을 알려주지도 못하는, 불능적이고 불가해한 상태로 자기를 반추하고 있어요. 무엇이 영화이고 무엇이 영화가 아닌지, 무엇이 좋은 영화인지, 모든 판단이 중단되어요.

근데 영화가 이 곤경을 어떻게 극복하냐 하면, 영화가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는 하나의 미스테리를, 삶이라는 건 원래 알 수 없는 것이라는 또 하나의 미스테리에 겹쳐 버려요. 그래서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채로 영화를 만드는 일이,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채로 삶을 살아가는 일과 하나가 되는 거죠. 이것은 삶이기 때문에 함부로 재단할 수 없는 것이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해나가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 됩니다. 그런 식으로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영화와 함께 하는 삶을 응원하는 영화가 돼요. 결과적으로 삶의 미스테리가 영화를 구원합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바디 스내처 미스테리는 풀리지 않고 남아 있어요. 영화는 삶이나 영화 자신에 관해서 뭔가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을 알 수 없고, 너무 그렇게 알려고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계속 이야기해요. 저는 이게, 근래에 영화를 보는 일이 전반적으로 그렇게 재미있지 않다고 느끼는 한 가지 이유일 수도 있을 텐데, 영화를 보면서 뭔가 알게 되었다고 느낄 때가 별로 없어요. 영화 안에 새로운 정보가 없다는 게 아니라요. 영화가 무슨 교훈이 없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요.하나의 영화가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 눈앞에 무언가가 보여지면서, 동시에 무언가가 알려지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 둘이 결합해서 점진적으로 앎이 펼쳐지는 스펙터클이 있을 텐데요. 그런데 점점 더 많은 영화들이 아무것도 알 수 없다거나, 알 필요가 없다거나, 다 뻔한 거고 지금 당신이 아는 걸로 충분하다는 태도를 취하면서, 고밀도의 이미지를 계속 던지기만 해요. 주인공들이 굉장히 특수한 설정 하에서 그들의 생사가 걸린 퍼즐을 풀기도 하고, 아니면 근거가 매우 희박한 상태로 구멍이 숭숭 뚫린 음모론을 구성하기도 하지만, 영화가 더 이상 보편적인 앎의 장치로 성립하진 못하는 거죠. 몰랐던 것이 알려지는 그 과정의 드라마가, 언제부턴가 영화에서 사라진 것 같아요. 사실 이건 영화의 문제만은 아닐 거예요. 너무 거창한 얘기 같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 자체가, 전통적인 인식의 틀과 맞지 않는 무언가로 변형된 결과겠죠. 그리고 이 조건이, 말하자면 바디 스내처의 미스테리를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바디 스내처 미스테리는 그 정의상 일반적인 인식의 틀에 잘 걸리지 않고, 그래서 공론화가 어렵습니다. 제가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예시로 가져온 것은, 이 영화가 우리가 평소에 느끼는 알 수 없다는 감각을 보기 드물게 리얼하게 보여주는데, 그걸 호러나 다른 어떤 방식으로든 풀려고 하는 대신에 살아 있는 것의 활력으로 그 문제를 그냥 뛰어넘어 버린다는 것이었어요. 해결하지 않고 건너뛰고 가버려요. 확실히 그게 건강하게 살아가는 방식인 것 같기는 해요. (웃음) 그렇지만 이 영화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고 있는 앎의 불능에 대해 말을 보태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게, 저는 조금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저한테는 이 전체적인 상황이 가볍게 호러인 거죠. 이 세계가 조금 이상해졌거나, 아니면 내가 조금 이상한 사람이거나, 어쨌든 우리의 관계에 어긋남이 있어요.

그러니까 바디 스내처 미스테리는 어느 정도 심리 스릴러가 됩니다. 말하자면 내가 정말로 제정신인가 하는 의문을 가진 상태로 자신의 의혹을 객관화해야 해요.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위화감이 느껴지는 저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의 맞은편에, 나는 대체 뭐하는 사람인가, 라는 질문이 마주 서있어요. 이 질문들의 선후관계가 역전되면, 내가 무엇이 될 수 있고 어디에 근거할 수 있는지 알기 위해서 그걸 비춰 볼 수 있는 거울로서의 영화가 필요해집니다. 그러니까 영화는 죽었습니까, 라는 질문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예술은 어디서 태어나고 있습니까, 누가 그것을 기르고 있습니까, 그런 질문이 되는 거죠.

돌이켜 보면 《마테리알》에는 이런 여러 가지 질문들이 뒤섞여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독자 입장에서 어떨 때는 은밀한 고딕 호러 장르처럼 읽히기도 했어요. 저는 그게 재미있었는데, 왜냐하면 양상은 다르지만 미술도 비슷한 시간을 통과하고 있었기 때문에요. 이런 연옥에 굴러 떨어지면 사태를 해명할 밝은 빛을 원하게 되지만, 그런 빛은 자연적으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선명함은 자연의 속성이 아니라 제도의 산물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과 알 수 있는 것의 범위를 잘 조율해서 선명한 비전을 구성하는 거죠. 그런데 이런 제도적 비전이 시야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언가 가리고 있다고 느끼기 시작하면, 천국에서 연옥으로 넘어가는 겁니다. 이건 시점의 변화예요. 제도의 내부가 밝은 방이 아니라 귀신 들린 집처럼 느껴지니까 장르가 바뀌는 거죠. 저는 이런 일들을 21세기와 20세기의 시차 속에서 발생하는 현상으로 보는 편이에요. 그 외에도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겠지만, 저는 계속 현재가 두 세기 사이에 애매하게 걸쳐 있다고 느꼈고, 어떻게 하나의 세기가 과거가 되고 아직 도래하지 않은 세기가 현재가 되는지 알고 싶어했고, 그런 맥락에서 예술에 관심이 있어요. 단순히 누군가의 주관적인 진실이나 객관적인 현실을 비추는 게 아니라, 생성 중인 시간을 드러내 보이고 움직이는 힘을 가진 것으로서요.

물론 예술이 시간에 관여하는 유일한 요인은 아닐 거예요. 실제로 지난 세기 전환기에 예술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작용한 건 매체 환경의 기술적 변화겠지요. 그렇지만 지금 실현되고 또 가능한 변화들이 모두 기술의 명령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기술을 고려하는 것만으로는 보이지 않고 알 수 없는 부분들이 있어요.

이건 그런 인식의 공백을 어떻게 보충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요즘에 막연히 그려보고 있는 일종의 방위판인데요. 말하자면 매체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걸로 어디에 닿으려고 하는지, 그런 지향의 차이를 분별해 본 거예요.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이걸로 글을 좀 길게 써 보고 싶은데, 아직은 생각이 완전히 정리된 건 아닙니다. 이 벡터들이 꼭 여섯 개로 한정되어야 한다는 법도 없을 거고. 지금은 너무 좌표평면처럼 생겼는데, 이 벡터들이 그렇게 배타적인 건 아녜요. 그보다는 차라리 머리가 여섯 개 달린 뱀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태초에 이 뱀은 머리가 두 개였어요. 한쪽엔 사회학이, 다른 한쪽엔 예술학이 있었습니다. 이 둘은 서로 칭칭 감길 수 있지만 방향성이 달라요.

예를 들어서, 스크린 문화에 관심이 있으면 여러 분과에서 만들어진 책들을 보게 되는데요. 영화 연구가 대체로 예술학에 뿌리를 둔다면 TV 연구는 좀 더 사회학과의 연계가 강합니다. 예술학은 전통적으로 재현의 매체와 그에 기반한 시청각적 구성체를 자신의 분석 대상으로 삼지만, 사회학은 커뮤니케이션의 매체와 그에 기반한 사회적 구성체를 이해하는 데 더 큰 관심이 있어요. 물론 영화 연구도 영화의 사회적 맥락을 살피고, TV 연구도 콘텐츠 분석을 합니다. 그렇지만 이들이 움직이는 이미지를 대하는 관점이나 그로부터 기대하는 바는 조금 다르죠.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영화 연구는 움직이는 이미지들이 어떻게 조직되어서 어떤 의미작용을 일으키는지, 궁극적으로 그 시청각적 구성체가 그 이외의 방식으로 도달할 수 없는 어떤 예술적 진실을 계시하는지 알고 싶어 하고, 그것을 작가로서의 감독 또는 그 대리자를 자처하는 철학적 비평가의 독창성과 연결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TV 연구는 움직이는 이미지들이 어떻게 사회적 관계를 반영하고 그에 얽혀있는지, 생산과 수용의 전 단계에서 감각적인 것, 사회적인 것, 기술적인 것의 접점을 찾아내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TV는 사회를 들여다보는 또 하나의 창문, 또는 사회가 자기 자신을 재현하고 조직하는 일종의 신경망으로서 우리가 속한 사회에 참여하고 그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계기로 작동하고, 시청자도 연구자도 그 이상의 것을 TV에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더 정확히 말해서 영화에 사로잡힌 사람은, 영화를 통해 사회적 현실로 환원되지 않는 무언가에 가 닿고 싶어합니다. 어떤 미적 형식이든, 또는 영혼의 진실이든, 영화로만 접근할 수 있는 무언가를요.

이렇게 보면 최근 한국의 지역적 맥락에서 영화는 예술학적 대상에서 사회학적 대상으로 빠르게 옮겨왔다고 말할 수도 있을 거예요. 영화가 하나의 문화 산업으로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일부로서 톱니바퀴처럼 꽉 맞물려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예술학적 매개를 필요로 하지 않고 그럴 여지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거죠. 현실적으로 영화와 TV드라마와 넷플릭스 시리즈와 웹툰과 소설이 서로를 참조하면서 생산되고 소비되는 상황에서 이것들을 구별하거나 심지어 그 사이에 영화만의 특별함을 설정하는 것이 좀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예술학적 지향은 어떻게 보존되고 갱신될 수 있을까? 그걸로 뭘 할 수 있을까? 그런 질문을 해볼 수 있겠죠.

이것은 우리가 사회학적 지식을 넘어서 무엇을 더 알려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으로 고쳐 쓸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사회 내부에서 작동하는 가치와 권력의 게임으로 보인다면, 바로 그 사회라는 틀을 해명하고 그 속에서 승리하는 데 집중하면 됩니다. 그렇지만 사회로 환원되지 않는 무언가 더 있다고 느낀다면, 예술이 그 알 수 없는 무언가를 가리키는 하나의 표식이 될 수도 있을 거예요. 애초에 예술학은 이 이상한 표식에 대한 호기심으로 추동됩니다. 이 수수께끼 같은 것은 대체 뭘까? 어떻게 이런 것이 존재하게 된 걸까? 하지만 이런 궁금증이 생겼다는 건 이미 예술을 의심 없이 향유할 수 있었던 무고하고 충만한 시간에서 이탈했음을 의미합니다. 예술은 더이상 사회의 일부로서 자연스럽게 동작하지 않고 어딘가 외부적이고 과잉의 것으로 감지됩니다.

이것은 예술철학이 드물지 않게 예술의 종언, 상실, 또는 어떤 어긋남에 대한 의식을 그림자처럼 끌고 다니는 한 가지 이유예요. 19세기 초반에, 그러니까 거의 200년 전에, 헤겔은 미학 강의를 시작하면서, “우리 시대에” 예술이 본래의 자명한 근거를 상실하고 그 자체로 만족을 줄 수 없는 것이 되면서 그에 대한 이론적 고찰이 요청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예술이 끝나고, 예술의 철학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철학자의 관점에서 예술은 이미 죽은 것으로서 명징한 인식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예술가의 관점에서 예술은 죽은 것은 되살릴 수 없다는 원칙을 거스르고 되살려야 하는 것, 저승에서 데리고 돌아와야 하는 불가능한 사랑의 대상이 되지요. 이것이 낭만적 접근입니다. 하지만 예술가는 스스로 철학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술을 살거나 죽는 것이 아니라, 고유한 지속을 가진 하나의 자율적 과정으로, 자기 자신을 생성하고 추동하는 어떤 본질에 따라 나름의 역사를 가지는 것으로 이해하고, 그 전개를 추적하는 겁니다. 이것이 근대적 접근이죠. 또한 예술가는 스스로 마법사가 될 수도 있는데, 말하자면 프랑켄슈타인 박사처럼 기술의 힘을 빌려서 죽은 것을 살아 움직이게 하고 심지어 그로부터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것이 영화적 접근입니다.

원한다면 지난 200년의 예술사를 이런 접근들의 흥망성쇠로 도표화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 속에서 미술과 영화의 역사가 어떻게 분기하고 교차하는지 살펴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것들을 특정한 시대나 분과에 배분하는 것보다는 누구나 조합해서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벡터로 보는 편이 좀 더 실용적일 겁니다. 실제로 어떤 인공물, 그것을 만든 사람, 그것이 속한 시대는 언제나 복합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는 그런 혼성성이 유독 과하니까요. 이것이 정말로 우리 시대의 특징인지, 아니면 가까운 시간은 원래 더 혼란스러워 보이는 것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미술은 이런 혼란에 비교적 면역이 있는 편입니다. 예술이 끝나고, 적어도 하나의 예술적 체제가 한계에 도달한 후에 다른 어떤 예술의 가능성이 남아 있는가 하는 질문은, 특히나 현대 미술의 역사에서 그렇게 낯선 것이 아니니까요.

상대적으로 최근의 사례로, 1990년대 초반에, 그러니까 약 30년 전에, 아서 단토는 「예술의 종언 이후 30년」이라는 미술관 강연에서 예술의 종언을 하나의 역사적 귀결로 설명했습니다. 단토는 원래 1984년에 「예술의 종언」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요. 그는 그 글에 관해 부연하면서 애초에 그 글 자체가 실제로 일어난 종언보다 늦게 나온 거라고 해요. 여기서 그는 1960년대에 일어난 모더니즘 미술의 종언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그 사건은 이미 30년이나 지났으니까, 그는 이제 사후적 관점에서 이 종언의 의미를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어요.

단토는 헤겔을 참조해서, 19세기 이후의 근대 미술사가 실제로 자신의 본질을 올바르게 인식하려는 철학적 동기에 의해 견인되었고, 이 예술철학적 탐구가 20세기 중반에 모더니즘 미술을 거쳐 최종적인 결론에 도달했다고 보았어요. 그는 이 결론을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다른 것보다 더 참된 예술은 없다. (…) 예술이 반드시 그래야 하는 단 하나의 방식 같은 것은 없으며, 모든 예술은 동등하고도 무차별적으로 예술이다.” 그러니까 진짜 예술을 보증하는 어떤 올바른 양식도 없고, 역사적으로 필연적인 진보의 단계도 없으며, 그런 것의 추구가 무의미하다는 깨달음이 지난 30년 동안 천천히 끈질기게 비가역적으로 예술을 변화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동시대 미술이라는 것이죠.

단토는 원래 철학자였는데 “예술의 종언”을 쓴 1984년부터 2009년까지 《네이션》 지의 미술 비평가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동시대 미술을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그건 예술에 대한 철학적 탐구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했지요.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단토는 더이상 예술의 본질을 고민할 필요가 없는 세계에서 사람들이 예술을 다루는 창의적인 방식들에 흥미를 느꼈던 것 같아요. 그는 자신이 속한 세계에 비교적 만족했고, 특히 동시대 미술을 통해 인간에 대한 낙관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것을 매우 90년대적인 말투로 일체의 거대서사가 불필요해진 다원적 세계로 묘사합니다. 그것은 거창한 이야기로 자기를 정당화하지 않고도 서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세속적이고 사교적인 인간들의 세계입니다. 물론 당대의 사회적 질서를 규정하는 법과 제도에는 여전히 억압적인 면이 남아 있지만, 이제는 우리가 그에 대항하기 위해 어떤 종교, 이념, 또는 예술의 초월적 권능에 의지하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우리 뜻대로 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거예요. 또는 적어도 그것이 동시대 미술이 보여주는 예술의 종언 이후의 세계이고, 자기는 그것이 매우 흥미롭고 희망적으로 느껴진다는 거죠.

지금 시점에서 이것은 너무 오래된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그 이후에, 또는 그 이전부터,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요? 이 이야기는 어떻게 고쳐 쓰일 수 있을까요? 이것이 기나긴 세기 전환기에 속하는 저의 질문입니다. 아직 저는 명확한 답이 없지만, 일단 우리의 임시 방위판으로 다시 돌아가 보죠.

예술 이후의 예술로서, 동시대 미술은 기존의 사회학적, 예술학적 지향과 또 다른 세속적이면서도 약간은 비현실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미술은 삶, 문화, 예술의 위계와 경계가 없는, 어떤 ‘자유로운 인간’을 기반으로 하는 공통 교양의 세계를 꿈꾸었어요. 지역에 따른 편차가 있었겠지만, 적어도 세기 전환기 한국에서 동시대 미술은 ‘우리가 이제는 이런 세계에서 살 것이다’라는 모종의 미래지향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시간 속에서 미술과 영화는 어느 정도 문화적인 공통분모를 가졌어요. 방식은 다르지만 공통의 세계를 그리고 있었던 거죠. 이것은 어느 정도 기술에 의해 가능해진 것이었지만 여전히 인간에 의해 꿈꿔진 것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저는 제가 어렸을 때를 기억하려고 하면 제가 살았던 부산과 TV에서 본 서울과 비디오로 본 홍콩과 위성방송으로 본 도쿄가 뒤섞인 어떤 허구적인 아시아 도시를 떠올리게 됩니다. 실제로 제 기억이 그런 식으로 윤색되어 있어서 그때 사진을 보면 기억이랑 달라요. 이렇게 실제로 사는 세계와 살고 싶은 세계가 섞이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는 이 합성적 세계가 지금처럼 개별화되지 않았습니다. 이게 그저 현실과 가상이 특정하게 혼합되는 게 아니라 현재와 미래가 중첩되는 거였으니까요. 말하자면 지금 우리는 서로 다른 곳에 살지만, 조만간, 또는 어쩌면 이미, 하나의 세계에서 만난다는 거죠. 동시대 세계는 그런 만남의 광장으로서 경험되고 꿈꾸어졌고, 미술과 영화는 그런 공통의 지평에 관여함으로써 서로 접속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의미의 세계는 순수하게 사회학적인 것도, 순수하게 예술학적인 것도 아니예요. 그리고 순수하게 인간학적인 것도 아니죠.

전통적으로 사회학과 예술학의 궁극적인 관심의 대상은 인간이에요. 방식은 다르지만 둘 다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합니다. 같은 질문을 공유하니까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거죠. 그렇지만 동시대 미술이 관여하는 예술 이후의 세계는 단순히 자기가 누군지 궁금해하면서 책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인간들의 모임으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이 세계는 그 나름의 논리에 따라 자기 자신을 가시화하고 변형하는 모종의 기계이기도 해요. 말하자면 세계 자체가 하나의 장치로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그 장치 속에서 조각되고 작동하는 말랑말랑한 부품이 되겠지요. 이런 관점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원래 사회학은 개체가 아닌 집단의 수준에서 인간의 움직임을 분석해 왔으니까요. 사회를 하나의 거대한 기계로 본다면 인간은 그 부품이 됩니다. 그렇지만 사회학적 관점에서 인간은 그런 집단적 신체를 이룸으로써 거대화되죠. 큰 힘을 가진 큰 인간이 되어 역사를 움직이는 겁니다. 예술은 그런 집단화에 저항하면서 개체의 수준에서 보편적인 것과 특수한 것, 일시적인 것과 영원한 것이 결합하는 신비한 국면을 추구하고요. 하지만 이렇게 인간을 해명하고 강화하고 위엄 있게 하려는 노력은 인간의 승리로 귀결되지 않습니다. 그 모든 노력의 끝에서 우리가 이 세계의 왕이 된 것이 아닙니다. 이 세계는 역사상 유례없이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건 우리의 것이라고 할 수 없는 무언가가 되었지요. 이것이 근대 이후에,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근대와 함께 시작된 미스테리입니다.

이렇게 인간에 의해 가공되었지만 인간이 온전히 소유하고 통제하지 못하는 이질적인 세계에 대한 탐구를 외계학이라고 칭해 봅시다. 사회학과 예술학이 서로 얽히는 것처럼 인간학과 외계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와 이 세계는 서로를 조각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외계학은 인간 중심의 서사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전통적으로 서사적 예술은 인간사를 재현해 왔기 때문에, 우리가 처한 상황을 이야기하려고 하면 자연스럽게 인간의 이야기가 됩니다. 매체 연구는 그런 인간 중심적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형식과 장치들을 드라마의 등장인물로 끌어 올린다는 점에서 외계학적 성격이 있어요. 그러니까 인간을 둘러싼 사물들의 질서를 드러내 보인다는 점에서요. 이것은 인간의 드라마에서 누락된 부분을 보충할 수도 있고, 인간 중심적인 극장의 전경과 배경을 역전시켜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는 전환이 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비인간을 이야기에 포함시키지 않는다고 해도, 하나의 예술 작품이 존재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비인간의 도움을 받아야 해서, 거기에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외계학적 차원이 포함됩니다. 사실은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그래요.

이를테면 미술은 원래 서사적 예술이 아니고 살아 움직이는 세계를 사물들의 질서로 변환해 왔다는 점에서 외계학과의 친연성이 있어요. 영화는 기술적 장치에 의존하기 때문에 그 장치들을 통해 비인간 행위자들이 유입되고요. 이런 외계학적 차원은 미술과 영화가 사회에 귀속되지 않고 인간으로 환원되지 않는 자율성을 구축하는 근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술이 인간들의 사회를 넘어서는 더 광범위한 것들의 연결망 속에서 재정의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죠. 잠시 방위판으로 돌아와 봅시다.

인간사회로 환원되지 않는 더 거대한 연결망, 일종의 기계로 해석할 수 있는 질서가 존재한다고 했을 때, 이 연결망을 지도 그리려면 현재로서는 크게 두 가지 접근이 있는데요. 하나가 전산학적인 접근이고, 다른 하나가 지질학적인 접근이에요.

간단히 말하면 전산학과 지질학은 각각 데이터와 물질의 차원에 주목합니다. 양쪽 모두 우리가 사는 세계를 모종의 거대한 미디어 시스템으로 이해하는데, 한쪽은 데이터의 흐름에 집중하고, 다른 한쪽은 물질의 이동과 그 조성의 변화를 살피는 거죠. 이것은 결국 세계라는 기계의 양가적인 차원이라서, 두 접근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접하면서 세계 전체를 서사화할 수 있는 새로운 지평을 개방합니다. 여기서 인간이나 사회가 삭제되는 건 아니에요. 인간 사회는 지질학적 행위자로 재정의되고, 데이터 기반의 연결망으로 확장되지요. 다만 이 물질과 데이터의 세계는 텅 빈 공간이 아니라 이미 언제나 인간이 아닌 여러 가지 것들로 충전되고 그것들 사이의 상호 관계 속에서 가동되는 모종의 기계로 인식되기 때문에, 그 속에서 우리가 움직이는 데는 제한이 있어요. 우리는 자유롭지 않아요.

전산학적 접근과 지질학적 접근은 이 부자유를 대하는 태도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전산학적 접근은 데이터의 흐름에 접속해서 이 세계라는 기계의 제한을 해제하고 더 큰 자유와 권력을 획득하려고 해요. 이 세계와 그에 속한 우리 자신을 통째로 재코딩함으로써 과거의 인간을 괴롭히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바꿔 말하면, 우리 자신이 외계적인 존재가 됨으로써 비로소 불완전한 우리 자신에게서 해방된다는 것입니다. 전산학적 관점에서 예술은 이렇게 세계와 우리 자신을 재창조하려는 모든 사변적이고 현실적인 활동으로 확대될 수 있어요. 반면 지질학적 접근은 우리의 물질적 조건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고 우리가 그걸 벗어날 수 없다는 전제 하에서, 우리 자신을 포함하는 이 유한한 세계를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세계를 구성하는 물질의 움직임을 잘 관찰함으로써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속에서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있고, 그럼으로써 세계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기반했던 과거의 인간과 다른 존재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질학적 관점에서도 역시 예술은 세계와 우리 자신을 고쳐 그리는 활동에 연관됩니다.

두 접근 모두 우리가 어떤 시간과 공간에 있고 그 속에서 어떤 궤적을 그릴 수 있는지 해명할 수 있어요. 이건 장점이지요. 다만 이 두 가지 접근은 정말로 거대서사가 될 수 있어서, 그러니까 인간의 정의를 수정하면서 세계관을 통째로 갈아엎을 잠재력이 있기 때문에, 받아들여지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도 그렇게까지 변하고 싶진 않거나, 설령 변하고 싶다고 해도 어떻게 해야 그렇게 급진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모르니까요. 그래서 이 두 가지 접근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공통의 미래를 그리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사변적 예술의 방법론으로서 기존 예술 분과들, 특히 미술과 문화산업의 영역에서 번성하게 되는 거예요. 이게 정말로 어떤 미래의 씨앗이 될지 아니면 지나가는 유행이 될지는 저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미래는 알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건 우리가 살아가는 견고한 현실에 비교했을 때 이런 접근이 너무 비현실적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의 현실은 그렇게 견고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미래에 관해 말하기가 어려운 거예요. 우리의 미래가 실현되는 장소로서 ‘세계’를 상상해 보면, 비슷비슷하게 이색적으로 꾸며진 제네릭한 대도시에 우리의 미래가 있으리라고 낙관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그런 도시는 바다에 잠길 수도 있고, 바이러스에 오염될 수도 있고, 너무 비싸져서 우리가 살 수 없는 곳이 될 수도 있고, 여튼 우리 모두가 살 수 있는 곳으로 보이진 않아요. 그렇다고 시야를 넓혀서 지구 전체를 우리 모두의 거주지로 볼 수 있느냐 하면, 또 그렇게는 잘 되지 않죠.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공통의 세계를 그릴 수가 없어요. 결과적으로 지난 삼십 년 동안 세계는 대체로 살기 힘든 환경에서 전지구화의 결실을 누릴 수 있는 소수의 위치를 둘러싼 양극화된 경쟁 시스템이 되었습니다.

역설적이지만 우리는 냉전 이후의 자유주의적 체제를 보존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지금과 같이 변화한 세계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말로 미래는 알 수 없어요. 여태까지 해오던 대로 계속 변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면 우리는 계속 변할 거예요. 계속 더 분열되고 분할되겠죠. 이렇게 쪼개진 세계에서 미술은 미술의 제도에 속하고 영화는 영화의 제도에 속하고, 둘은 위협적이고 경쟁적인 환경에서도 각자 자기를 지키려고 최선을 다할 겁니다. 합법적으로 그 사이를 넘나들 수 있는 일종의 통관 시스템이 있지만, 그 사이에서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별로 없어요. 지금 우리는 공통의 세계가 없고, 그래서 내가 앞으로 있을 자리가 있을까 하는 불안이 유일하게 남은 공통의 감성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불안에 기반한 예술은 결국 공통 세계의 부재에 기반한 것이라서 근본적으로 텅 비어 있어요. 물론 그건 그것대로 정교하게 발전해서 어떤 완성에 도달할 수도 있겠지만요.

이를테면 저는 이 발표문을 쓰는 동안 위켄드의 [Dawn FM] 라이브 스트리밍 레코딩을 자주 틀어놓고 있었습니다. 이 앨범은 말 그대로 연옥의 사운드트랙으로 제작되어서 처음 들었을 때는 약간 마법 같았어요. 그러니까 조금 영화 같았다는 말이죠. 세 번 정도 연속으로 듣고 나니까 마법이 살짝 깨지면서 이 작품이 실제로 어떻게 구성됐는지 뜯어볼 수 있게 됐는데, 지금은 이 앨범을 팬데믹의 시간을 기억하기에 좋은 기념품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쨌든 연옥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서 이런 장르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런 장르를 많이 접했기 때문에 이게 계속 파고들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넓고 깊은 땅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요. 연옥은 끝이 없고 방향이 없지만 무한하진 않아서 의외로 쉽게 고갈됩니다. 은 루프로 계속 반복 재생할 수 있는 앨범이지만 대낮에 듣기는 좀 그래요. 어차피 밤이 되면 똑같은 꿈으로 돌아갈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낮에는 낮의 이야기가 있어야 하는 거예요. 요즘에 제가 생각하는 건 그런 부분이에요.

저는 어쨌든 밝은 방의 인간이라서 우리가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영화 이야기로 시작했으니까 영화 이야기로 끝을 맺지요. 저는 케이블TV에서 유료 영화 채널을 구독하고 있는데요. 얼마 전에 저녁 먹고 TV를 틀었더니 크리스티안 페촐트의 <피닉스>를 해주더라고요. 별 생각 없이 앉아 있다가 끝까지 봤습니다. 이 영화는 아무도 알고 싶어하지 않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그걸 아주 아름답게 합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과거의 진실이 아니에요. 앞에서 이야기한 바디 스내처 미스테리를 조금 고쳐 쓰자면 이렇습니다. 만약에 영화처럼 생긴 것이 정말로 영화라면 어떻게 해요? 거울에 비치는 낯선 내가 정말로 나라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상처받았고 더 이상 과거와 같을 수 없지만 그 단절을 가늠하지도 못하는 충격 속에서 자기 자신을 연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앞으로 자기가 얼마만큼 변화를 감수할 수 있을지, 그런 변화를 거치고도 여전히 자기 자신으로 남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살아가면서 그걸 천천히 알아 나가는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아요. 그건 영화의 안팎에서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이야기예요. 누구보다도 이 주인공이 그런 결론을 바랐던 게 아니에요.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영화는 설득시키고 그럼으로써 우리는 간신히 미래의 입구에 서게 됩니다. 이것도 연옥을 벗어나는 또 하나의 루트가 될 거예요.

제가 준비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시간에 맞추느라 좀 짤뚱하게 끝낸 느낌이 있지만 제가 하려던 말은 다 한 것 같아요. 혹시라도 질문 있으십니까.

질의응답의 답변 부분은 녹취를 풀면서 발표자가 고쳐 쓴 것으로, 여전히 잠정적이지만 발표 당시의 말보다는 좀 더 정돈되어 있습니다. 이 답변은 차후에 계속 변동될 수 있음을 알려 둡니다.

[객석1: 마이너한 질문이지만, 저는 이론을 하는 사람이라서 저 여섯 개의 머리가 달린 뱀이 아니라, 하나의 입방체라 보고 싶은데요. 그럴 때 걸리게 되는 지점이, 예술학과 사회학은 하나의 좌표축으로서 성립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인간학과 외계학의 축 안에 지질학과 전산학의 축이 말하자면 꼬여 들어가서, 인간학과 외계학의 말하자면 오르가논으로서 전산학과 지질학이 들어가는 동시에, 축 자체로서 기능할 수 있는지, 그런 의심이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이런 것입니다. 지질학이라고 할 때 유시 파리카 같은 사람도 떠오르지만, 저는 천개의 고원 3장의 ‘도덕의 지질학’이 떠오르는데요. ‘도덕의 지질학’의 기본적인 분류 자체가 전산학에서 다룬다고 할 수 있는 정보 내지는 표현 층위와, 저 분류에 따르자면 지질학에서 다룬다고 할 수 있는 내용 내지는 물질 층위 이렇게 나누는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굳이 전산학이라는 것이 지질학과 별개로 성립될 이유가 있는지, 그리고 이걸 조금 더 확장시켜보면 인간학과 외계학의 축에서 다뤄지는 기계로서의 세계라는 것이, 기계들로서의 세계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를 기계적 시스템으로 바라본다면, 그 시스템을 목적론적으로 조직하기 위한 사이버네틱스가 필연적으로 요청될 수밖에 없고, 그런 점에서 앞서 말씀 주신것처럼 인간학과 외계학이 하나로 엉켜 들어감으로써 기계적 세계관이라기보다는 기계론적인 하나의 거대한 전체론적일 수도 있는, 전체주의적일 수도 있는 그런 세계관이 되지 않을까 생각 하는데요. 간단히 이야기하면 이런 것입니다. 지질학이 있는데 굳이 지질학과 별도로 전산학이 성립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에 비춰 물론, 이것이 축은 아니라고 말씀 하셨지만, 말하자면 두 번째 세 번째 축은 붙어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두 개의 축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거기에 답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지질학과 전산학 파트는 만일 이게 두 시간 분량이었으면 좀 더 긴 이야기가 됐을 거예요. 아직 생각이 완전히 정리된 게 아니라서 지금 제가 어디까지 말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는데요. 여기서 제가 전산학과 지질학을 굳이 구별하는 건, 경험적으로 그런 상반된 지향이 관찰되기 때문이에요. 어디를 바라보는가 했을 때, 말씀하신 파리카 같은 경우는 전형적인 지질학적 접근이죠. 지구 전체를 일종의 기록시스템으로, 시간의 흔적이 누적되는 저장 매체로 다뤄요. 우리가 그걸 다 독해할 수는 없고 망실된 데이터도 있지만, 어쨌든 남은 기록이 있으니까 그걸 통해서 이 세계를 다르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거예요. 이건 인류세 담론과 연합해서 세계와 역사와 그 속에서 우리 자신을 재정의하는 더 큰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전산학적 접근이라고 한다면, 이를테면 메타버스의 세계인데요. 순수하게 데이터의 층위에서 우리가 사는 현실을 재구성할 수 있고, 그 속에서 새로운 부동산을 개발하고 금융 상품에 투자하고 그래서 부자가 될 수도 있고 유명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그 안에서 삶이 펼쳐지는 거죠. 허황된 이야기 같지만 실제로 거기서 움직이는 돈과 권력이 있으니까 이 가상이 현실이 됩니다. 물론 옛날에 이야기하던 것처럼 정신을 업로드 하는 게 아니라 코인으로 돈을 벌어서 실물로 집을 사는 거니까 여전히 물질적 차원에 연결되어 있지만, 말하자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처럼, 물질을 우선하는 접근과 데이터를 우선하는 접근이 나뉜다는 거죠. 특히 팬데믹 동안에는 우리가 물리적 공간에서 해오던 일들이 있는데 그걸 스크린 기반으로 옮겼을 때 얼마나 재연이 가능하고 또 어떤 변화가 가능한가가 중요한 의제가 되었기 때문에, 데이터 중심의 미래주의와 그에 반발하는 접근의 차이가 더 첨예하게 보였던 것 같아요. 말하자면 스크린에 보이는 것과 그것을 보이게 하는 하드웨어 중에서 무엇을 우선시하겠다는 선명한 판단이 있고, 그 판단에 따라 대단히 다른 세계상을 그리고 그 속에서 미래로 향하는 상반된 노선들을 그리고 있는 거죠. 이 분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제대로 글을 써서 좀 정리해 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일단은 답변이 되었을까요?

[객석1: 그러면은 인간학, 외계학이랑 지질학, 전산학을 축과 오르가논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적절한 해석일까요?]

제가 제대로 이해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오르가논이 별도의 축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은, 그러니까 인간학이나 외계학으로 환원되지 않는 지질학과 전산학의 고유한 목적이 있는가 하는 걸까요? 제 입장에서 이 세 개의 축은 세계와 우리 자신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 상응하는 면이 있는데요. 사회학-예술학의 틀에서 세계는 온전히 인간의 세계입니다. 그걸 개개인의 관점에서 볼 거냐 아니면 집단 속에서 볼 거냐는 차이가 있을 뿐이죠. 그렇지만 이것이 인간학-외계학의 틀로 확장된다는 것은, 이 세계에 근본적으로 인간 외적인 차원이 있음을 인식하는 거예요. 그 소외감 속에서 인간과 주변 환경을 새롭게 바라보는 것이죠. 철학하는 인간의 관점에서 지질학과 전산학은 이 낯선 세계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서로 다른 접근이 될 거예요. 거기에는 여전히 인간과 인간에게 속하지 않는 것의 구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질학-전산학의 틀로 완전히 넘어오면 인간은 더이상 그런 특별한 기준이 아니고 단지 세계를 구성하는 많은 객체들 중 하나가 돼요. 그러니까 우리는 전통적인 의미의 인간 위치가 아닌 곳에 있게 되고. 인간학과 외계학의 구별이나 그걸 추동하는 문제의식 자체가 흐릿해져요. 저는 여기서부터는 또 조금 다른 차원이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맞는 개념이 필요할 것 같아요.
저는 나중에 이걸 기록시스템의 문제로 정리해 보고 싶은 생각이 있는데요. 기록시스템이라는 개념은,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키틀러의 『기록시스템』은 이 세계 전체를 하나의 복합적인 미디어 장치로 대합니다.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있고, 그것들이 남기는 흔적이 있고, 그 흔적들이 불러일으키는 꿈들이 있습니다. 이 기계는 어떤 면에서는 시계 장치 같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터무니없는 단절과 비약에 의해 움직이는데, 이 애매한 틈새에 인간이 끼어 있는 거죠. 키틀러는 이 부드러운 부품의 관점에서 인간의 역사를 기록시스템의 역사로 재해석했어요. 그것은 무엇보다도 고통의 역사이고, 그래서 키틀러는 해방을 꿈꿔요. 90년대의 키틀러는 디지털 미디어의 해방적 역량에 관심이 있었는데 그것은 상당히 인간학적이고 전산학적인 것이었습니다. 말년으로 갈수록 인간학적인 회귀가 강해졌던 것 같아요. 반면에, 이를테면, 제가 작년에 번역한 『사이클로노피디아』라는 책이 있는데요. 이건 훨씬 더 외계학적이고 지질학적입니다. 그에 따르면 이 지구 전체가 하나의 기록시스템으로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는데, 이게 그냥 장부가 아니라, 거기에 누적된 죄의 흔적이 늘어나면 어느 순간 지옥이 되면서 자동으로 우리 모두를 처벌하는 기계가 됩니다. 정말로 그런 이야기예요! 하지만 이걸 인간의 드라마로 보는 건 인간들뿐이에요. 우리는 특별한 감시와 처벌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이 지옥의 한 부분이고, 그걸 지옥으로 보는 것조차 인간의 관점일 뿐이죠. 『사이클로노피디아』는 확실히 인간과 인간 아닌 것의 구별이 무의미해지는 지점까지 나아갑니다. 그 다음은 미지의 영역이에요. 그 너머릍 굳이 탐사할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조차 아직은 알 수 없죠. 이 주제는 나중에 좀 길게 써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객석2: 강연 내용과는 빗겨나갈 수 있는데, 영화 사람들이 영화를 사랑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미술 사람들은 그럼, 미술을 사랑한다고 이야기를 하지 않는지, 아니면 어떤 방식으로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비교가 될까요?]

이 이야기를 2020년에 미술관에서 미술관 강연을 하면서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 있거든요. 영화 사람들은 영화를 사랑의 대상으로 대하는데, 미술 사람들은 아무도 미술을 그렇게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요. 그때 팬데믹 때문에 전부 마스크 쓰고 무척 근엄한 분위기였는데, 그 순간에 다들 웃었어요. 그러니까, 동의의 웃음이죠. 우리는 별로 사랑 안 해요. 사랑의 대상과는 조금 달라요. 제가 그나마 미술 쪽에서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라는 제일 많이 쓰는 축에 속할 텐데, 미술은 미술대로 역할 분담이 있으니까요. 작가들의 입장이 다르고, 기획자의 입장이 다르고, 글 쓰는 사람의 입장이 다르고, 행정가나 경영자의 입장은 또 다르겠지만, 동시대 미술은 현실의 일부로서 세속화된 면이 있어요. 물론 모더니즘 미술의 유산을 물려받아서 미술을 다분히 신성시하는 접근도 남아 있지만요. 어느 쪽이든 영화와 미술을 같이 놓고 보면 가장 큰 차이라고 느끼는 점은, 미술은 스스로 허구를 다룬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현실에 참여하고 있거나, 설령 회화나 조각을 한다고 해도 그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니까. 현실 바깥에 별도의 영역을 구획하고 거기서 현실의 규범과 어긋날 수도 있는 허구를 펼친다는 발상이 약해요. 그러다 보니까 이런 말은 하면 안 된다, 이런 건 보여주면 안 된다는 규범이 분명히 있는데, 왜냐하면 이건 꿈이 아니고, 우리가 보여주는 건 벌건 대낮에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거꾸로, 미술 안에서 표현 가능한 것의 범위를 확장한다는 것은 그 규범을 건드리는 것이 돼요. 벌건 대낮이지만 이런 걸 보여줄 수 있다, 벌건 대낮이니까 오히려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요. 그런데 영화는 일단 불을 끄고 생각을 하잖아요. 밤이라고 했을 때, 낮에는 안 되지만 밤에는 꿈꿀 수 있는 것들이 있잖아요. 미술은 그런 예외를 두지 않거나, 또는 적어도 그걸 자기의 영역으로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이게 사랑의 대상과는 조금 다른 게 되는 것 같아요. 인상 비평입니다.

[객석3: 원래의 제목이 ‘암막커튼을 열며’라고 하셔서, 암막커튼 안에서 영상을 보는 것과, 밝은 방에서 스크린을 틀어두고 영화를 보는 것은 다른 것일 텐데요. 마찬가지로 밝은 방에서 스크린을 틀어두는 것과, 이것을 온라인 공간으로 옮겨서 보는 건 또 다르잖아요? 요즘 미술 같은 것은 미디어 전시가 굉장히 많은데, 제가 사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미디어시티비엔날레 때문에 하는 건데요. 굉장히 스크린이 많았어요. 3층 높이의 건물이 전체가 스크린이고, 제가 그 작품을 솔직히 다 보지도 못했어요. 단순 계산만 해봐도 1주일 내내 여기에 와도 부족하겠다고 생각했는데요. 그게 아까 보여주신 멀티스크린과도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이것과 더불어서 또 하나 생각해본 게, 회화 작품 같은 경우에 질감을 가지잖아요 일반적으로. 근데 이제 온라인 팬데믹 상황이 되면서 이것을 사진으로 찍어서 온라인에 전시하는 경우가 생겼는데, 제가 개인적으로 사적인 자리에서 어떤 사진 작업하시는 분께서, 사진 작업하면서 돈도 벌어야하니깐, 다른 작가의 작품을 찍어서 파시는 일을 하셨는데, 그 작가가 실제 작품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미지를 보정해주길 원했다고 하셨어요. 실제로 현장에 갔을 때는 이미지로서의 작품이 존재하지 않는 거죠. 그래서 제가 생각하기에는, 저는 미술을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미술은 기본적으로 물질의 세계에 있어서 영상작업을 한다고 하더라도, 사실 미술의 영상은 온라인으로 옮겼을 때, 영화의 영상을 온라인으로 옮길 때와 다른 효과가 난다고 생각하거든요. 가령 채널이 다채널인 경우에는 공간을 염두에 두고 작업하기 때문에, 온라인에 올릴 때 다른 효과가 나잖아요. 이런 것에 대해서는 혹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요?]

이건 굉장히 많이 이야기되는 주제인데요. 미술관에서 영상 전시를 보는 것의 피로함에 관한 이야기는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많이 합니다. 이렇게 다른 관람 조건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애초에 관객이 영화관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볼 거라고 기대하지 않고 작가가 작업을 해야 하는지, 그렇다면 관객도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지 않고도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는지,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글 쓰는 사람은 전시작을 다 안 보고 전시 리뷰를 쓸 수 있는지? 그렇지만 실제로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한 달 내내 봐야 다 봐야 하는 분량의 전시가 있다고 하면, 그걸 어떻게 보고 뭐라고 글을 써야 하나? 그런 이야기를, 한 20년 정도 했습니다. 여기서 이 문제에 대한 이론적인 접근을 다 개괄할 수는 없겠지만, 현장에서 실제로 일하는 사람들이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는 조금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떤 작가들은 하나의 작업을 여러 가지 버전으로 구현합니다. 일테면 멀티 채널 설치 영상을 인터넷에서 보여 주기 위해 싱글 채널로 재편집했다면, 그건 동일한 작업의 다른 버전인 거죠. 어떤 작가들은 동일한 작업의 미술관용 버전과 영화관용 버전을 상당히 다르게 만들기도 해요. 왜냐하면 내가 실제로 똑같은 작업을 틀더라도, 미술관에서 작가와의 대화를 하고 또 영화관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해 보면 나오는 이야기의 결이 많이 다르고, 작업을 대하는 관점이 경험적으로 차이가 있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 가는 거죠. 또는 미술관용으로 만든 영상을 영화관에서 틀어 보니까 내가 의도한 것과 너무 다르게 보여서 가능한 그런 형태의 상영은 안 하려고 한다는 작가들도 있어요. 이건 물리적인 관람 환경의 차이도 있지만 그 공간의 맥락을 만드는 문화적 차이가 분명히 있어요. 실제로 두 분과를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은 그 차이를 분명히 인지할 수 있으니까 각자 여기에 대응하는 절충적인 방식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객석4: 선생님이 아까 ‘기록시스템’ 말씀해주셔서, 사실 선생님 성함을 번역서로 먼저 봬서 혹시 번역을 하시게 된 계기랑, 저서가 2015년? 16년쯤 나온 걸로 알고 있는데요. 사실 그 내용을 제가 문학을 공부해서 파우스트나 헤르더의 언어 기원에 대한 예시들만 초반에 봤고, 책을 다 읽어보지는 못했는데요. 혹시 그때 번역 하셨을 때랑 아까 도식화 보여주셨는데, 지금 오셔서 기록시스템에 대해 생각이 변한 게 있으신지 여쭤보고 싶어졌습니다.]

『기록시스템』은 대학원 다닐 때, 2000년대 초중반에 영어로 처음 읽었고, 키틀러 책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책입니다. 나중에 독일어를 조금 공부하고 막연히 키틀러를 번역해볼까 했을 때도 원래는 일순위였고요. 근데 그때는 이미 판권이 다 넘어간 상태였으니까, 그나마 남아 있었던 게 󰡔광학적 미디어󰡕였던 거죠. 그리고 한참 잊어버리고 있다가, 문학동네에서 다른 번역 건으로 미팅을 하다가 『기록시스템』 이야기가 나온 거예요. 자기들이 예전부터 이 판권을 갖고 있었는데 아무도 하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묵혀놨다고요. “하실래요?” 그래서 “하죠,” 그렇게 하게 된 거예요. 제가 뭘 몰라서 할 수 있었던 거예요. 애초에 제가 그 책을 번역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도, 영어로 읽었을 때 엄청 재미있는데 잘 모르겠으니까, 번역을 하면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근데 아직도 이걸 말로는 잘 설명은 못 하겠어요. 내장으로는 이해가 됐는데 머리로는 소화가 덜된 것 같아서, 언젠가는 글을 제대로 써서 정리해야 하는 숙제 같아요. 어쨌든 『기록시스템』이라는 책은 1800년과 1900년의 기록시스템을 비교해서 다루는데요. 2000년 전후의 상황은 또 다르니까요. 나중에 키틀러가 디지털 미디어에 관해 쓴 글들도 있지만 그건 여러 가지로 20세기 후반의 조건에 엮여 있어서 현재에 대입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2000년의 기록시스템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했을 때, 지금 생각에는 『사이클로노피디아』를 하나의 레퍼런스로 삼을 수 있을 것 같은 거죠. 이를테면 슈레버 판사의 회고록이 1900년의 기록시스템에 대해서 그랬듯이, 2000년의 기록시스템과 아주 이상한 방식으로 대결하면서 그 작동을 각인하는 사례로서요. 20세기에는 그런 책이 존재할 수 없었는데 21세기에는 갑자기 존재할 수 있게 된 거란 말이에요. 그런 조건의 변화가 저는 재미있고,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 부분을 조금 더 파보고 싶어요. 이건 정말로 책을 써야 하는 문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