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스트릿 패션 씬에는 ‘스지’
라는 단어가 있다. ‘스트릿 지인’의 줄임말로 어렴풋이 안면을 트고 인사를 주고받는 씬 안에 있는 사람을 칭하는 단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난공불락의 요새로 여겨진 백화점에 처음으로 입성한 도매스틱 브랜드 BROWNBREATH의 전 공동대표 현 AECA WHITE의 서인재 대표. 라이풀(지금은 분리되었다)로 시작해 지금은 LMC 등 여러 브랜드의 수장인 LAYER의 신찬호 대표. 옥승철 작가가 아직 아오키지라는 이름으로 활동할 당시 티셔츠에 선정적 일러스트를 박던 그 ‘퍼킹 썸머’라는 로고를 쓰는 브랜드, LEATA의 수장 손희락은 스지의 왕으로도 불린다. 해당 씬의 인물 나열 말고 위 각주 글의 한 대목을 인용하여 상술하자면, ‘띵보다 꽁술 한잔하고 나와 입구에 모인 친구들과 함께 길빵, 고성방가, 타인의 간지 체크를 일삼는’ 사람이다.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주기를 청탁받았으면서 왜 패션 쪽 사람들의 이름을 읊고 있냐고? 저 씬에 꽤나 긴 기간 적을 두다 그다음으로 넘어온 시각예술 씬에서도 이와 동일한 행태가 있었고 앞서 말한 날것의 시쳇말보다 좀 더 정돈된 단어로 칭해졌지만, 실상은 그다지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로나 3년차를 막 발 디딘 지금은 언제 그랬었나 싶지만 (이러한 시국에도 어떤 전시는 오프닝날 보러 가면 케이터링이 놓여있고 마스크를 벗고 하하호호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전시 오프닝, 클로징 그리고 작가와의 대화를 빙자한 셀털 지인파티를 가면 어딘가 모를 기시감이 들었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면 여기에도 고스란히 스지 컬쳐가 있는 거였다. 그렇게 내 머릿속의 아트솔라리스를 업데이트해 가며 전시와 전시의 크레딧을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