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6
REVIEW
유지원

웹툰처럼 재미있는 〈오징어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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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6
REVIEW
유지원

웹툰처럼 재미있는 〈오징어 게임〉

2021년 9월 넷플릭스에 공개된 ‹오징어 게임›의 전세계적인 열풍과 더불어 논객들은 마치 필수 과제를 제출하듯 연이어 이 시리즈가 성공한 요인을 분석하거나 ‘파격적’인 소재로 인해 투자 유치에 난항을 겪던 드라마 제작을 감행한 넷플릭스의 혁신성에 대해 한마디씩 거들었다. 이런저런 관점이 포화되기 전에 별생각 없이 공개 첫날 정주행했던 것이 다행이었을까. 스트리밍 사이트가 여럿 생겼고, 콘텐츠가 너무 많아서 무엇을 보아야 할지 혼란스럽다는 이들도 많은데, 어려울 것 없다. 틀어주는 것 아무거나 보던 TV 시청 습관을 살려 전면에 가장 크게 띄운 것을 누르면 그만이다. 드라마의 ‘미술’이 별로라는 중론을 깔고 그 대신 시간을 들여 볼 만한 ‘진짜’ 훌륭한 콘텐츠를 서로 추천하던 미술인들 사이에서 나는 그 드라마 정말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마치 웹툰이 흥미진진하듯 말이다. 


1화를 보자마자 ‹오징어 게임›의 원작이 웹툰일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검색을 했는데, 웬걸 감독이 각본도 썼다고 한다. 넷플릭스만 해도 ‹스위트홈›(2020)처럼 이미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가 인기를 끈 사례가 있었으니 아주 동떨어진 착각은 아니었다. 많이들 일본의 서바이벌/데스 게임 장르물과의 유사성을 언급했지만, 특유의 슬래셔 요소를 탐닉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었고, ‹이스케이프 룸›(2019) 같은 방탈출 스릴러물로 생각하기에는 게임 장치 자체가 그다지 중요하지도 정교하지도 않다. 오히려 누구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상징성, 둔탁하기에 안전한 비판성, 그리고 보편적인 감정 스펙트럼을 적절하게 건드려주는 관계성은 ‹헝거 게임›과 같은 영미권의 영어덜트 장르물이나 국내에서는 동시대 청소년 문학을 대체하다시피 한 웹툰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감동툰이나 일상툰이 강세를 보인 2000년대는 콘텐츠 IP를 활용한 파생 상품 개발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이전으로, 스타일과 소재, 서사가 획일화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대형 플랫폼의 웹툰은 대체로 양산형으로 쏟아져 나오는 웹소설을 원작으로 삼거나 주요 사용자인 10대를 겨냥한 학원폭력 정의구현물, 타임루프 혹은 타임슬립 설정물, 좀비 아포칼립스, 삼각연애물, 빙의물 등 몇 가지 장르에 안착한다. 그중 돈이면 다 되는 이 세상을 비관한 흙수저 주인공이 큰 대가를 치르고 막대한 부를 얻게 되는 내러티브는 시대정신과 호흡하며 인기리에 반복과 변주를 거듭했다. 특히 네이버에서 연재한 ‹머니게임›(2018-2020)과 그 후속작 ‹파이게임›(2020-2021)은 돈이 없어서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 수상한 배후의 초대를 받아 한정된 공간에서 거액을 걸고 게임을 한다는 설정으로, ‹오징어 게임›과 포개진다. 평범한 정도의 능력치와 도덕성을 가진 주인공, 압도적인 체력이나 두뇌로 게임을 주도하는 캐릭터, 그리고 경쟁력을 갖지 못해 뒤처지며 양심을 자극하거나 기회주의적인 주변 인물의 구성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를 일차원적으로 비판하는 동시에 인간의 본성에 대한 단순하고 직관적인 코멘트를 일갈하는 점까지 유사하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과 웹툰을 겹쳐 본 이유는 내용의 유사성이 아니라 경제성에 있다. 우선 ‹오징어 게임›는 클리셰를 적당량 가미해 신속하게 캐릭터를 만든다. 도박에 빠져 가산을 탕진했지만 딸에게는 좋은 아버지이고 싶은 ‘기훈’, 횡령 금액을 선물 투자로 날려먹은 금융 엘리트 ‘상우’, 보육원에 있는 동생을 데려오겠다는 일념으로 아등바등 살다 범죄에 연루된 탈북자 ‘새벽’ 등 인물이 처한 상황을 펼쳐내며 각자의 성격, 동기와 아픈 구석을 설정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심지어 참여자 중 기훈과 상우, ‘덕수’와 새벽은 게임에 참여하기 전 바깥 세상에서 이미 친구이거나 채무 관계로 얽혀있어 인물 파악에 도움을 준다. 게다가 인물들의 동기가 가족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부터 비롯된 점은 이들을 마치 웹툰 특유의 그림체처럼 헐겁게 한다. 각 사람의 취향과 성향, 욕망과 꿈 등 여백으로 남겨둔 인물 설정은 출연 배우의 매력으로 만회될 뿐이다. 기훈은 게임의 주최 측이 자신을 사람이 아닌 말 취급한다며 분노하지만, 사실 이들을 충실한 말로 써먹는 것은 드라마의 시나리오다. 정에 약한 기훈, 이기적인 성우, 경계심이 많은 새벽, 선량한 알리, 폭력적인 덕수, 기회주의적인 미녀는 이미 설정된 역할과 관계성, 활동 범위에 따라 게임에 임한다. 


세트 디자인 및 미술에서 경제성이 한층 더 돋보인다. 물론 예외는 있으나 양산형 웹툰에서 배경은 대체로 인물의 말과 행동을 통해 이끌어가는 서술에 최소한의 개연성을 제공할 뿐이다. 웹툰 특성상 연재 일정을 맞추기 위해 정착된 분업 체제에서 배경은 누구나 손 빠른 사람이 척척 그려내면 그만인 것이다. 때문에 웹툰의 배경은 행간의 의미나 복선을 숨기지 않는다. 건물이 빡빡하게 그려져있다면 대충 대도시로 알아보면 되고, 호롱불 같은 소품을 보면 시대물인 줄 알면 충분하다. ‹오징어 게임›가 제시하는 물리적인 설정은 군더더기 없다. 특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는 운동장이나 구슬치기를 하는 옛 동네 골목은 게임의 창시자이자 어렸을 때 했던 재미있는 놀이를 큰 판에서 해보려는 ‘오일남’표 테마파크를 벗어나지 않는다. 별다른 특징이 없는 이 공간은 그 누구의 기억 속 운동장과도 맞바꿔 놓을 수 있는 세트에 불과한 것이다. 줄다리기와 징검다리 건너기를 하는 높은 구조물은 관중을 의식한 일종의 서커스 무대처럼 설계되었는데, 어두운 배경에 구조물만 조명을 비추어 공간 설정에 효율성을 더한다. 참가자는 모두 체육복 같은 유니폼을 입고, 진행자들은 ‹종이의 집›(2017-)의 은행 강도들을 상기시키는 빨간색 점프 수트와 가면을 착용한다. 최소한의 배경을 뒤로 하고 색감이 두드러지는 옷을 입은 캐릭터가 움직이는 장면들에서 우리가 집중할 것은 배우의 연기와 대사뿐이다. 


나아가 경제성은 이 작품의 메시지를 보조하는 상징을 견인하는 원칙이기도 하다. VIP가 오징어 게임을 관람하는 프라이빗 룸은 사람을 유희의 수단으로 취급하는 잔혹한 상류층의 사고방식을 폭로하는 중요한 장소다. 이곳에서 펼쳐지는 디스토피아 설정의 정점은 호피무늬 옷을 입은 신체가 쭈그려 가구처럼 배치된 부분인데, 이는 액면가 그대로 ‘인간=도구’라는 정식을 적용하여 상징의 능률을 극대화한다. 게다가 기훈이 오일남의 침상에서 인류애를 얼마간 회복한 뒤 빨갛게 염색을 하고 상우와 새벽의 가족을 찾아다니는 장면은 웹툰의 장면을 그대로 연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의아할 정도였다. 기훈에게 일어난 심경의 변화를 쌓아가는 것이 아니라 한 방에, 확실하게, 의심의 여지없이 노출시켜버린다.


이처럼 인물 설정과 배경, 상징의 사용법에서 시종일관 경제적인 선택을 이어온 ‹오징어 게임›은 그 핵심 메시지도 어김없이 단순 간결하다. 돈보다 사람이 먼저다. 어쩌면 456명의 참가자가 456억을 걸고 경쟁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미 결정된 결론이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 게임의 최후 우승자가 된 기훈은 상금에 아예 손도 대지 않은 채 폐인이 되어버리는 극단적인 모습으로 이 메시지를 재차 확인시켜준다. 드라마가 잔상 대신 한두 마디로 요약될 수 있는 교훈을 남기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인데, ‹오징어 게임›이 그것을 해내고 만 것이다. 


‹오징어 게임›의 전개에 의문을 갖거나 철저하게 따지기 시작하면 경제적인 재미는 소멸된다. 기훈은 왜 세상으로 나가자마자 상우와 새벽의 가족을 돕지 않고 피폐한 삶에 이르렀나? 상우의 노모에게 아직 어린 새벽의 남동생을 맡기는 것은 기훈 외에 도대체 누구에게 좋은 선택인가? 회차마다 456명씩 사라지고 이 중 극소수만 살아나오는데 여태 의심조차 받지 못한 채 게임을 이어오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나? 순수하게 재미를 위해 최상류층이 모여 수백 억을 출자할 수 있다는 설정은 자산가를 바보 취급하는 것 아닌가? 이런 질문은 굳이 하지 않기로 한다. 웹툰은 누워서 모바일로 보기에 최적화된 콘텐츠고, OTT 시리즈는 모니터에 틀어놓고 그 앞에서 밥 먹다가 굳이 정지하지 않고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간단한 집안일을 한다. 외출할 일이 있으면 모바일로 이어서 보기도 하고, 지루해지면 유튜브에서 줄거리 요약 영상으로 진도를 나가기도 한다. ‹오징어 게임›의 경제적인 접근은 산만한 관객과 만났을 때 빛을 본다. OTT 플랫폼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기조를 유지하여 제작자는 기존 제작 절차로는 불가능했던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넷플릭스에서는 배경처럼 깔아두기 썩 괜찮은, 시청자가 굳이 애쓰지 않아도 쉽게 이해하고 만족할 만한 콘텐츠가 쏟아진다. 


다른 한편, ‹오징어 게임›의 경제성은 보편성으로도 작용한다. 군더더기 없는 설정과 장면, 메시지의 여백을 누구든 채워가며 뛰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징어 게임›에게 쏟아지는 서방 세계의 찬사는 희망적인 가사와 덜 외설적인 룩으로 수많은 10대의 사춘기(emo phase)를 구제해주어 케이팝이 고맙다는 피드백과 공명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희망찬 미래를 꿈꾸고, 당당하게 하루하루 살아가자는 케이팝의 메시지는 피상적인 만큼 보편성을 획득한다. 청소년 자녀가 성적인 외설과 마약, 폭력을 옹호하는 음악 대신 건전한 케이팝을 듣는다면 케이팝 산업의 병폐는 알지 못한 채 응원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오징어 게임›은 자본주의 사회에 일침을 날리며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을 주는 훌륭한 작품인 것이다. 


인기에 힘입어 ‹오징어 게임›의 두 번째 시즌 제작이 확정되었다고 한다. 세계관을 확장할 수 있는 떡밥은 충분히 뿌려두었다. 극중 오징어 게임은 이미 수차례 진행된 바 있었고, 심지어 한국에 한정되어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여기서 웹툰 ‹머니게임›의 후속작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파이게임›은 역대 머니게임의 승자를 대상으로 한층 더 잔인하고 정교한 설정으로 독자몰이에 성공했다. 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전개가 느려지고, 초월적인 단일 인물이 모든 떡밥 회수의 책임을 지는 등 설정이 서서히 녹아내리면서 평점 7.6으로 불명예스럽게 업로드가 중단됐다. 후속작을 통해 세계관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애초 설정에 대한 신선도는 떨어지는 한편 계속해서 첨가되는 플롯 장치를 헐겁게 가설된 설정이 견뎌내지 못했던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오징어 게임›은 재미있는 드라마다. 다음 시즌에서는 기왕이면 치명적인 주제의식 및 설정 추가를 단행하기보다 그만의 미덕—경제적으로 구현된 재미—을 또다시 확인하고 싶다.

‹오징어 게임›의 영희 인형, 일러스트: 류한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