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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적 계급의 소멸을 함께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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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적 계급의 소멸을 함께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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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리알 서한 13가지 질문 중, ‘리스트에 대하여’ 에 “우리는 90년대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아트하우스 영화 제도와 영화적 고전의 목록을 목도합니다. 에드워드 양이나 빔 벤더스, 로메르, 고다르는 죽어도 죽지 않는 강시처럼 2020년에도 꾸준히 소환됩니다.” 단락을 읽다 문득 여기서 ‘우리’라는 단어가 눈에 걸렸다. 아마 여기서의 ‘우리’는 아트하우스와 독립극장, 시네마테크가 존재하는 수도권과 부산, 그리고 몇 군데 광역시에 거주하는 영화광을 지칭하는 말이 다름아닐 것이다. 2018년부터 CGV 아트하우스,(그중에서도 압구정과 명동을 중심으로) 계속해서 개봉하는 에드워드 양의 영화들과 올 상반기 서울아트시네마와 부산 영화에 전당에 빔 벤더스와 로메르, 그리고 고다르 영화가 상영되었던 것이 그러한 반증이다. 지리적 접근의 한계를 넘지 못해 트위터나 토렌트, 시네스트와 같은 불법적인 루트를 통해 고전영화에 닿아 가는 지방 시네필은 사실상 배제되어있는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 아닐까. 이 문제는 올 초 씨네21에서 진행한 우리 시대의 씨네필 기획에서도 동일하게 배제된 문제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내 생각에 우리는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이 문화가 더이상 확장될 수 없는 이유는 사실 자명하다. 시네필 문화는 아트시네마나 독립극장이 존재하는 서울과 수도권, 부산 등 일부 광역시를 제외하면 접근성을 극복하기 어려운 문화다. 가령 코로나 이전의 상황을 예로 들어 서울에 거주하는 시네필이라면 매달 개봉하는 아트시네마 영화를 관람하는데 무리가 없다. 씨네21이나 필로, 오큘로나 마테리알과 같은 영화잡지를 읽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영화에 관한 애정과 무관하게 주마다 개봉하는 예술영화와 시네마테크 기획전을 관람할 수 있고, 최신 미술계 동향을 알기 위해 국립현대미술관에 드나들 수 있으며, 그마저도 부족하다 싶으면 영화 평론가가 진행하는 GV나, 한겨레 교육문화 센터나 미디액트 수업을 들으면 된다. 오늘 날의 시네필 문화는 이런 지리적 조건과 시간적 조건을 갖춰야만 비로소 대화가 가능한 공간이다. 한국에서 영화 비평이 가능한 장소 또한 그와 비슷할 것이라 예측한다. 마테리알이 ‘질식’을 이야기하고 새로운 ‘우리’를 상정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 지점에 관해 함께 이야기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