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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금동현

임창정—설사도 참아서 변비로 만드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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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현

임창정—설사도 참아서 변비로 만드는 남자

1.
남한의 아버지는 금방 풀이 죽는다. 하나의 세대는커녕, 10년의 마디마다 아버지들은 명예를 실추했고, 살아남은 아버지들은 실추에의 두려움을 신경증으로 앓으며 권력을 과용하며 명예를 잃는다. 그러므로 아버지를 정점으로 한 서구의 형제애 모델로 남한의 호모 소셜(homosocial)을 설명하기는 부적절하다. 그 아버지의 빈자리를 형이 채운다. 악다구니와 괴성이 가득함에도 술자리에 주먹다짐이 잦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술자리의 말다툼을 주의 깊게 본 적 있나? 그들은 말다툼의 형식을 빌려 실은 하나의 의례로서 족보정리: “니 ○○ 형 아나?!”를 수행한다. 아킬레우스와 달리기를 하는 거북이처럼, 함께 아는 형이 나올 때까지 주먹다짐은 조금씩 지연된다. 영리한 선택이다. 승자와 패자가 나뉘기 마련인 주먹다짐에는 위신을 걸어야 하지만, ‘형’의 질서 아래 정확히 위치할 수만 있다면 위신도 지킬 수 있고 내일 아침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다. 행님, 어젯밤에는 제가 죄송했습니다. 아니다 동상아, 내도 술이 돼갖고 실수한 거 같다.

요컨대, 형이 없으면 형제애도 없고, 형 없이는 정념의 제압도 없다. 그러므로 형을 표상하는 스타(star)의 자리가 중요하다. 그 자리를 통해 남성은 자신의 정념을 해소하고 협상한다. 그런데 오늘날 형들은 어디에 있는가? 요사이 대중문화에서 주의를 끈 남성 스타들이야 많지만 그들은 형이 아니다. 남성성의 체현이라 할 수 있을 호쾌한 태도와 근육질 몸: 직립한 야수(erected predator)들은 결코 형이 되지 못하거나 않는다. 마동석은 마요미로 불리며 퀴어의 취향으로 미끄러지고, 추성훈은 아조씨로 불리며 오지콤 혹은 미래의 좋은 남편으로 발견된다. 지소사指小辭 ‘ㅗ, ㅣ’가 달라붙어도 흠이 나지 않는 하이퍼 남성들은 호모소셜의 바깥에 위치한다. 응당 형이라면 ‘우리 남자’들이 서로 안다고 느낄 만큼 가까워야 한다. 그러나 스타는 ‘우리 남자’들로부터 너무나 멀다. 이러한 맥락에서 형으로서 스타 되기는 까다롭다.

임창정은 이 까다로운 위치에 있는 단 한 명의 스타다. 납득이 가지 않으면 ‘창정이형’이라고 발음해보라, 이응이 네 번이나 반복되는 가벼움보다 형이라는 낱말에 잘 어울리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믿음이 가지 않는다면 아무 임창정 뮤직비디오나 검색하고 댓글을 보라, “부산촌놈이 처음 봤던 연예인…… 십대시절 처음보고 ‘임창정이다’가 아닌 ‘형님’이란 단어가 나왔었는데 먼저 다가와서 ‘동생 이름이 뭐야 싸인 한 장 해줄게’ 십 수 년이 지났지만 잊지 못할 추억이네요.” 그와 비슷한 수준으로 대중과 가까웠던 스타는 많겠지만, 임창정 정도로 형으로 옹립된 스타는 없다. 왜? 여기에 한국남자의 정체성이 있다.



2.
2000년대 초반 유사(pseudo) 극영화의 형식이었던 뮤직비디오처럼—〈시실리 2km〉를 감독한 신정원이 연출한 「슬픈 혼잣말」과 「소주 한 잔」의 뮤직비디오는 한국 뮤직비디오의 영원한 클래식일 터이다…… 특히 「슬픈 혼잣말」의 뮤직비디오는 남한의 〈라라랜드〉다. 아니 「슬픈 혼잣말」이 2002년에 나왔으니, 〈라라랜드〉가 미국의 ‘슬픈 혼잣말’이라고 하는 게 정확하겠다. 무슨 소린가 하면, 꼭 한 번 보기를 권한다.—다양한 분야의 종합에서 스타가 만들어진다. 스타는 매체를 가로지르며 서로 다른 실천이 종합된 상호텍스트적 구조물이다. 그러므로 스타論이 으레 그렇듯, 임창정論의 범위도 그의 활동 분야 전반을 가로지른다. 그리고 우리는 배우로 임창정을 알기 전에 일찍이 그의 노래를 먼저 듣거나 심지어 부르기까지 한다. 한국남성에게 김광석의 노래가 종종 통과 의례의 기능을 한다면, 임창정의 노래가 들리는 노래방은 자꾸만 돌아오는 원환이다—“광석이는 왜 그렇게 일찍 죽었대니……”는 가능하지만, 임창정에게 저런 대사는 가당치않을 것이다. 그는 원치 않아도 자꾸만 돌아온다.

알랭(Alain)은 예술의 목적을 정념의 정화에서 그리고 예술의 과정과 그 근거는 신체에서 찾았다. 가령, 음성에 한해 말하자면 외침이나 울음은 예술이 될 수 없다. 예술은 외침과 울음 같은 소음을 박자, 가락, 화성 등의 형식으로 정복하는 과정에 있다. 임창정의 노래는 어떠한가? 창법을 환히 아는 사람이라면 벨팅을 사용했다고 반문하겠지만 ‘생목’으로 인지되고 평가 받곤 하는 임창정의 노래는 막대한 정념을 제압하고자 하는 차력에 가깝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거대한 정념에 패배하길 바라는 것 같다. 그리하여 누군가 그 노래로부터 위안을 얻을 때, 누군가에겐 그 정념의 크기 자체가 구질구질하고 징그럽다고 느낀다.

「그때 또 다시」(임창정, 1997)의 가사가 좋은 예시다. 이 노래의 가사는 음악에 의한 정념의 패배를 예시하는 것 같다. 이별한 화자는 그간 사랑할 수 있었던 시간에 감사하며 참아보고 잊어보겠다고 다짐하지만 노래의 결론은 “허나 그래도 안 되면 기다릴게 그때 또 다시”다. 정념을 통제하기 위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지만 그 정화를 예단할 수 없음을 넌지시 비춘다. 더구나 저 노랫말은 반복됨으로, 정화가 아니라 오히려 지속을 표한다. 통제의 시도가 그르쳐졌기 때문에 지속될 정념은 더 엉망진창일 터이다. 더구나 「그때 또 다시」의 정념은 오직 ‘나’를 향해있다. ‘내 슬픔’이 터져 나오고, ‘내가 살고 싶었던 삶’이 이게 아니며, ‘나에게 허락되지 않은’ 연인과의 삶을, ‘난 사랑했잖아’라는 이유로 다시 꿈꾸지만, ‘나를 완전히 태울 수 있었던 축복을 내게 줬’다는 기억이 있으니 괜찮다고 말한다. 저 수많은 ‘나’의 반복 뒤에 이제야 ‘널 위해서라면’ 잊어보겠다고 다짐하지만 ‘~면’의 음을 끝맺지 않고 ‘허나 그래도 안 되면’으로 연결할 때, 그 다짐은 바로 부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기적인 정념.

그 또한 ‘나’로 가득한 「소주 한 잔」—‘여보세요, 나야, 거기 잘 지내니? / 여보세요, 왜 말 안 하니? / 울고 있니, 내가 오랜만이라서 / 사랑하는 사람이라서’라는 가사는 얼마나 자기애로 가득한가. 그는 수화기 너머의 말 하지 않는 전 연인이 울고 있다고, 심지어 그를 사랑해서 울고 있다고(!) 가정하고 있다.—의 뮤직비디오에서 이 정념은 이제 뚜렷한 서사와 영상까지 얻는다. (@축축-y2x의 감상이 눈에 띤다. “창정이형 낭만양아치 연기 아무도 범접할수 없다. 정말 수백 번을 봤지만 어떤 멜로영화보다도 여운이 남습니다. 진심으로예술작품입니다. 이건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록되야합니다.”)

뮤직비디오 「소주 한 잔」의 이야기는 간단하다. 건달인 ‘창수 형(그렇다. 이 뮤직비디오에서도 임창정의 배역은 형으로 불린다)’이 한 여대생을 사랑하게 된다. 창수는 여대생과 짜장면도 먹고 밤거리도 걷고 전화통화도 하지만 여대생의 부모는 창수를 탐탁치 않아한다. 어느 하루 여대생이 삐삐를 잃어버린 날, 창수는 꽃다발을 들고 여대생의 학교와 발레 연습실을 찾아가지만 그를 만나지 못해 집 앞에서 기다린다. 마침 그 날 여대생은 친구인 남대생과 함께 집에 왔고, 창수는 갑자기 그를 폭행하곤 홀연히 사라진다. 여대생이 창수의 행방을 한 번 묻지만 찾을 수 없고, 그 사이 창수는 길거리 싸움을 하다가 급습한 적에게 쇠파이프로 머리를 맞는다. 그리고 그는 바보가 된다.

그리고 하나의 반전이 마지막에 삽입되어 있다. 실은 창수는 발레 연습실에 갔을 때 여대생이 홀로 연습하고 있는 모습을 엿보았다. 이로 인해 창수가 남대생을 때린 이유가 사뭇 달라진다. 창수는 그날 자신이 여대생에게 어울리지 않는 사람임을 절감했으며 이를 여대생에게도 알리기 위해 과한 행동을 했던 것이다. 한 블로거는 이 반전으로 인해 흔한 비극적 사랑 이 오래도록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 되었다고 평했지만, 나는 이 반전으로 인해 창수가 좀 더 징그러워진다고 생각한다. 반전을 모르는 상황에서도 창수는 여대생-남대생의 관계를 오해하는 막무가내로 비치지만, 반전을 아는 상황에서 창수는 오해가 아니라 모든 것을 홀로 생각하고 결정내리는 사람이 된다. 시종일관 도탑게 대해줬던 여대생의 의견을 물어볼 생각은 없다. 창수는 한 마디도 물어보지 않고 관계를 홀로 생각하고 정리하고 폭력적으로 끝낸다. 여대생은 놀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다. 여대생이 홀로 있는 시간은 극히 드물며, 그 시간도 모두 모두 창수의 비조를 더 하는 기능적인 역할을 할 뿐이다. 「그때 또 다시」처럼, 다시 한 번 ‘혼자’만의 이별이자 슬픔이다.

‘창정이형’의 동생들이 이러한 메타적 위치에 서는 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죄악으로 인해 꾸지람 받는데, 심지어 꾸짖는 사람이 실은 죄악을 저지른 경우인 상황에 놓여있는 느낌 속에서, 그의 노랫말을 듣고 영상을 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조금만 거리를 두면, 이기적이고 과한 관계의 셈법이다. 임창정의 헌신: 상대와의 관계를 점검하거나 속도를 맞추지 않았기에 그의 헌신은 상대방에게 언제나 바라지 않은 크기와 방식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바라지 않은 헌신이 좌절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헌신 자체에 도취하여 그 정념을 어찌할 줄 몰라 하곤 한다. 문제가 곤란해지는 것은 그가 바라지 않은 헌신을 일종의 교환 관계로 셈하고 상대방에게 밀린 명세서를 들이밀기 시작할 때겠지만…… 어쨌거나 임창정의 노래는 그 끝이 확실한 음으로 항상 닫힌다. 그러므로 패배를 향해 경주하는 노래도 순간적으로—끝이라는 형식으로—승리할 터이고, 그 불완전한 승리의 반복을 통해 정념도 점차 감쇠되어 갈지도 모른다. 임창정이 임창정을 징그럽게 한다.



3.
김성수는 〈비트〉(1997)를 촬영할 때 정우성이 분한 민이 상상 속 허구의 인물이라면 임창정이 분한 환규는 철저한 현실이 되어야 한다고 지도했다고 한다. 「#방구석 1열」에서 임창정이 전한 말이다. 이 말은 배우로서 임창정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한다. 하지만 오해해서는 안 된다. 임창정이 ‘철저한 현실’의 캐릭터라는 뜻이 아니다. ‘철저한 현실’ 따위는 없다. 인간은 세계 안에 포함되어 있어 세계를 객관화 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저 말은 하나의 관점으로 읽혀야 한다. 임창정은 한국남성이 지각하는 ‘철저한 현실’이다. 잠깐 시간을 돌려 〈비트〉에 임창정이 굴러오는 과정을 짧게 소묘해보자.

〈남부군〉(정지영, 1990): 까까머리 남부군 임창정은 어리고 아파서 바닥을 구르다가 총에 맞아 죽고, 〈장미여관〉(서영수, 1991) 장미여관[성의 낙원의 은유]으로 떠난 누나를 찾아 서울의 뒷골목—수많은 여관들 사이를 굴러다니다가 누나에게 뺨을 맞은 다음, 〈걸어서 하늘까지〉(장현수, 1992): 말단 건달이 되어 화가 난 보스가 언제라도 잡아 팰 수 있는 위치에 가만히 서 있다가, 〈게임의 법칙〉(장현수 ,1994): 나이트클럽의 삐끼가 되어 다시 한 번 다른 조직의 습격을 받아 얻어맞는다. 그는 하나의 돌멩이 같다. 굴러다니고, 고개를 숙이고, 맞는다. 바닥에 질질 끌리고, 무릎을 꿇고, 넘어진다. 데구르르. 마모되는 창정은 점점 얼굴이 동그래진다. 그렇게 구르는 창정이 하나의 ‘철저한 현실’로 〈비트〉에서 소환된다. 정우성과 유오성 옆의 현실성인 임창정—이응과 시옷의 부드러운 발음에 비하면, 파찰음으로 시작하는 창정은 얼마나 현실적인가—은 여기서도 끊임없이 구른다. 그는 구르기 위해서 영화에 있는 것 같다. 정우성에게 (유치한) 사색의 시간이 주어지는 반면, 〈비트〉의 임창정에게 그런 시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는 끊임없이 굴러야 한다.

그렇게 구르는 임창정과 함께 그의 노래가 들린다. 메타적인 위치를 조망할 수 없는 오직 ‘나’의 굴러가기다. 이러한 현실적 남성으로서 스타 이미지가 구축된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배우 임창정과 가수 임창정은 보조를 맞췄다. (그가 배우로서 스타는 결코 아니었던 시기였으므로 자율성이 없었던) 배우 임창정은 타격의 소리와 함께 굴러갔고, (이미 상당한 스타의 자리였고 스스로 작사 작곡을 할 줄 알았던) 가수 임창정은 타격의 소리와 기억이 쌓인 정념을 자신의 장르적 자원으로 활용해갔다. 그는 “설사도 참아서 변비로 만들”었다.(〈사랑이 무서워〉)

그리고 2000년대—한국영화의 ‘비천한’ 시기의 임창정이 있었다. 2000년대는 그 역시 얼굴이 둥그런 송강호가 ‘작가’ 감독들의 페르소나이자 소시민적 남성의 역할을 함께 수행했다고 기억되고 기억되겠지만, 기실 소시민 남성의 형은 임창정이었다. ‘철저한 현실성’을 기반으로 한 수줍은 고백(〈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이나 서투른 감정(〈색즉시공〉)은 모두 그의 몫이었다. 송강호의 성장은—지긋지긋한 예술적 표현의 자중!—내면에서 조용히 일어나는 것이었다면, 임창정의 성장은 타격음과 울분 괴성과 소리로 가득한 시끌벅적한 것(〈파송송 계란탁〉, 〈스카우트〉)이었다. 공교롭게도 송강호의 작가인 봉준호와 임창정의 작가 (그의 뮤직비디오로 활동을 시작했고, 〈시실리 2km〉를 연출한)인 신정원도 묘하게 비슷한 부분이 있다. 봉준호가 농촌 스릴러 〈살인의 추억〉(2003)을 찍은 이듬해 신정원은 농촌 공포물 〈시실리 2km〉(2004)를 찍었다. 봉준호가 한강을 배경으로 한 괴수물 〈괴물〉(2006)을 찍은 다음 신정원은 교외 산지를 배경으로 한 괴수물인 〈차우〉(2009)를 찍었다. 봉준호가 실내극이자 침입자를 다룬 〈기생충〉(2019)을 찍은 같은 해 신정원 역시 실내극이자 에일리언(alien)을 다룬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2019)을 찍었다.

신정원과 임창정은 ‘충무로의 찌꺼기’ 같은 감독이자 배우였다. 한 명은 죽었고, 한 명은 사회적 파문을 일으키고 스스로 관짝을 닫았다. 공교롭게도 코로나가 끝난 직후, 영화가 대중문화로서 힘을 잃고 도서관이나 박물관에서 생존 모델을 찾기 시작한 즈음이었다. 이제 술자리에서 싸움이 붙으면 누구의 이름을 대야할까? 이제 영화는 더 이상 더러운 술자리를 좀스럽고 초라하게 배회하지 않는다.



4.
그런 상상을 한다. 백은하 평론가처럼 ‘배우 연구소’를 차리고 배우와 영화제를 동행하는 상상을. 나는 어둠의 배우 연구소를 차리고 임창정으로 책을 낸다. 그 책이 잘 돼서 함께 영화제에 가게 되었다고 말한다. 임창정은 답장한다. “씨부랄~~~~~삼식이같은새끼….. 할지랄도 졸라게없었나부다~~~~~ㅠㅠ 나이 50먹은 보잘것없는 연예인이~모가 좋다구~!!…………….. 사랑한다~~~~~~” 그리고 그에게 존나게 쪼인트를 까이고 싶다. 썩 행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