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7
REVIEW
박유진(기획자)

배후지의 음파 탐지기 — «힌터랜드(Hinterland)»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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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7
REVIEW
박유진(기획자)

배후지의 음파 탐지기 — «힌터랜드(Hinterland)» 리뷰

사방을 둘러보자. 우리가 이 세계의 풍경을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관조할 수 있을까? 시선 닿는 곳 어디든 비보와 속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해수면의 변화나 매시간 상승하는 기온, 심해와 우주를 떠도는 쓰레기 역시 전부 우리 탓인 것만 같다. 전 지구적 재난에 연루된 기분이 들 때 불안을 진정시킬 수 있는 것은 머리 위의 둥그런 달뿐이다. 그 일관된 모양과 변화하는 양상만은 우리 책임이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브뤼노 라투르, 『나는 어디에 있는가? 코로나 사태와 격리가 지구생활자들에게 주는 교훈』, 김예령 옮김(서울: 이음, 2021), 12. 그러나 달을 계속 보아도 우리의 발은 여전히 지구에 있다. 눈을 감으면 이어지는 질문들이 메아리처럼 몸에 부딪힌다.

온라인 전시 «힌터랜드»는 대답을 삼키는 대신 수심 2,413m의 심해로 질문을 가지고 가 묻는다.«힌터랜드»에 접속하고 싶다면 클릭하라. 심해의 한가운데에서 눈을 뜬 관객은 중력의 반대 방향으로 가라앉는다.(이미지 1) 자신도 모르게 중앙의 눈동자를 통과하면 ‘메타버스 홀로그램 & 발굴된 데이터-화석’을 뜻하는 낯선 형상의 언어가 관객을 반긴다. 공간의 중앙에는 홀로그램이 건축적인 지형도를 보여주는데 이는 오래된 데이터가 남긴 터전으로 인류의 역사를 추적하는 중요한 사료이다. 발견한 화석을 자랑스럽게 선보이는 전시의 기획 주체는 25세기 인류로, 데이터-화석을 발굴한 그들은 23세기 인류의 삶과 문화를 소개하는 자리로 관객을 초청한다. 로비에서 뻗어나가면 이동할 수 있는 환경관, 삶과 노동관, 해양생활관 등 각각의 관에는 25세기에 활동 중인 작가들의 작품도 설치되어있다.

이미지 1 «힌터랜드»
«힌터랜드»는 좌표가 불분명한 바다 어딘가에서 시작한다. 빈 공간의 푸른 물 사이로 관객을 지켜보는 눈이 등장하고, 관객은 그대로 눈동자의 홍채를 통과하게 된다. 이는 이후 눈만 감으면 메타버스에 도달할 수 있는 23세기 인류의 접속 장치를 은유하기도 한다. 관객은 본인의 눈을 감는 대신 입구의 눈으로 수직 낙하한다.

25세기의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전시에 몰래 초청받은 21세기의 관객은 복수의 시간선에서 시점을 달리하며 전시를 방문하게 된다. 환경관에서 관객은 심해의 짙은 형광색 화살표를 따라 공간을 선회하며 힌터랜드의 주요 거주 환경을 둘러보고, 삶과 노동관에서는 은빛 길을 따라 메타버스의 안과 밖을 구성하는 다양한 문화를 상징하는 사물들을 만날 수 있다. 해양생활관에서는 23세기 인류의 주요 구성원 중 하나인 해양인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된다.(이미지 2) 몇 세기의 전과 후를 가늠해보며 공간을 부유하도록 하는 전시는 지구를 대체할 행성을 찾아 떠난다는 시나리오와 반대되는 방향성으로 잠수하며, 멸망의 무기력함에 대처하는 방법을 묻는다.

결말이 가까워져 더 이상 아무런 이야기도 할 수 없는 날, 어슐러 K. 르 귄(Ursula K. Le Guin)은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는 힘을 논한다. 그는 다시 먼 과거의 선조들에게로 돌아가, 그 힘을 지지하는 도구로 캐리어 백(carrier bag)을 제안한다. 캐리어 백은 씨앗, 풀, 뿌리, 과일, 베리, 씨앗을 포함한 온갖 잡다한 것들을 넣을 수 있었던 주머니로, 수렵 채집 시절의 인류의 생존 도구이자 인류 최초의 창조적 도구이기도 하였다.Ursula K. Le Guin, “The Carrier Bag Theory of Fiction: Introduced by Donna Haraway”, (London: Ignota, 2019).

캐리어 백을 교환하는 일은 해가 진 뒤 어두워져 외부 활동이 어려울 때 인류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행위였다. 르 귄에 따르면 해가 질 때 일과를 마친 사람들은 둥글게 모여 자신이 하루 종일 담은 것들을 꺼내고 교환하였다. 겨울의 긴 밤과 여름의 짧은 해 질 녘 아래 씨앗과 씨앗을 부딪혀 새로운 이야기의 종자를 만들어내고, 그것은 또 다른 교환으로 이어져 허밍, 노래, 별자리, 신화, 역사를 만들어냈다. 각양각색의 교환 속에서 이야기가 탄생한 것이다.

공동의 이야기 짓기는 우리를 무력한 상태가 아닌 창조적 상태로 전환한다. 캐리어 백이 하나의 우주를 창조할 수 있는 방법론을 제안한 것처럼 본 전시는 공동 창작과 상상력의 상보적 관계를 실험한다. 음파가 심해의 사물과 존재들에게 부딪혀 지상의 우리에게 위치와 모양을 알려주는 것처럼 «힌터랜드»가 판(plate)으로 삼는 질문과 큐레토리얼 방법론, 세계관과 연결된 작품들은 기술이 인류에게 해방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믿음을 유보하고, 경계와 또 다른 경계 사이에 충돌하며 일어날 수 있는 역사의 윤곽을 제안한다. 이 제안은 예언이나 계시처럼 선명한 상으로 전달되기보다는 서로 다른 음파의 반향을 끊임없이 교차하여 상을 조합하듯이 전달된다. 이야기를 함께 만드는 것의 중요성, 이야기의 형태를 결정짓는 도구의 필요성, 가능한 세계를 다시 현실과 관계 맺게 하는 필연성이 우리의 인식에 부딪혀 반사된다.

이미지 2 «힌터랜드» 웹사이트 전시관 설명.

음파 1: 세계관

«힌터랜드»를 기획한 PACK의 말에 따르면 기획의 방향을 조정하는 첫 키는 서사적인 접근과 세계관 설정이었다.“📼 ‘Hinterland BTS’ 토크 다시 보기📼”, 유튜브, 2022년 7월 12일. 오프라인 전시장과는 달리 바닥과 벽이 없어 무한한 선택이 가능한 뉴 아트 시티(New Art City)에서 힌터랜드의 세계관은 입구이자 길이 되었다.뉴 아트 시티(New Art City)는 2020년 만들어진 플랫폼으로 디지털 아트를 전시에 특화한 공간이다. 개발에 대한 높은 이해도 없이 창작자라면 누구나 온라인 전시를 만들 수 있게 돕는 것이 목표이며, 유저 또한 별도의 가입이나 고사양 기기 없이 접속이 가능하다. 현재까지 많은 작가, 기획자, 공간에서 이 플랫폼을 활용하여 코로나 시기에 전시를 개최하였으며, 웹사이트(https://newart.city)에서 여러 전시를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그러나 전시의 특수성은 단순히 세계관을 토대로 한다는 점에서 오지 않는다. 힌터랜드의 개별성은 지금의 현실로부터 시작했다는 것에서 온다. 필 닐(Phil A. Neel)의 「힌터랜드: 미국의 계급과 갈등의 새로운 풍경(Hinterland: America’s New Landscape of Class and Conflict)」(2018)에 등장하는 배후지 개념에 주목하여, 전시는 자본주의가 잠식한 도시와 플랫폼에서 장막 뒤로 끝없이 밀려난 공간과 존재에 집중한다.

예를 들어, 가속화된 속도로 이동하는 자본과 블록체인의 관계, 파편화되는 노동 생태계 속에서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 국가와 기업이 해체되면서 겪게 될 전 난민화 현상, 인적 자본의 분배와 빈부격차, 탈중앙화 자율조직(DAO)의 필요성, 웹 3.0와 기후위기의 관계,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우리가 겪게 될 일상 변화 등의 질문을 공유한다. (이미지 3) 이 질문들은 세계관을 경유하여 환경관에서는 무국적 난민들이 생활했던 배의 스케치, 삶과 노동관에서는 교육, 농축산, 메카닉 DAO 등의 아이콘, 게임과 엔터테인먼트를 즐기기 위한 기기, 해양생활관에서는 조리 도구, 식물 재배기 등과 같이 구체적인 사물로 등장한다. 전시장 곳곳에 등장하는 오브제들은 우리가 박물관에서 디오라마를 통해 고대 인류의 생활상을 추측하듯 여러 질문을 업로드한다.

즉, 일련의 사물들이 겨누고 있는 곳은 현 상황이다. 기후 위기, 플랫폼 노동, 끊임없이 배후지로 밀려나는 소수자와 타자화된 존재들, 극우화와 전쟁 위기, 가짜 뉴스와 진짜 뉴스들이 피드로 뒤죽박죽 새로고침 되는 현상 속에서 이야기의 나침반을 어디로 둘 것인가? 세계관을 만든다는 것은 감지된 위기의식을 이용하여 현재에 대한 질문을 재조합한다는 것과 같다. 제목이 함축하듯이 임계점 없이 중심으로부터 밀려나는 도시, 노동 환경, 계급, 인종의 복합적인 역학 관계와 모순을 드러내기 위해 새로운 세계를 구축한 것이다. 오히려 이 세계 짓기에 동참하는 것은 도피가 아닌 다른 시나리오로 현실을 침투하고 균열을 내는 일이다. 따라서 가상 공간 안에서의 세계관은 현실로 접촉할 수 있는 피부 역할을 한다. 피부가 무언가를 만지고 접촉할 수 있는 면을 우리에게 제공하듯이 이야기가 진입 경로이다.

이미지 3 «힌터랜드» 환경관 전경.
환경관의 바닥에는 힌터랜드를 디오라마로 선보이는 지도가 있다. 자원이 된 위성 인터넷, 무국적 난민이 거주하는 하우스 보트, 내륙인과 해양인의 공간을 분리하기 위해 세워진 장벽, 바다 위 땅이 된 인공 쓰레기섬 등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TRPG는 예술가가 창작한 세계관을 배급하는 방식과 달리, 여러 구성원의 관심사를 하나의 보드 아래에 모으고 섞을 수 있게 돕는다. 게임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하나의 시나리오가 되었고, 추후 가이드라인과 소스 북에서도 등장한다.PACK은 전시 소개(https://www.hinterland.kr/about)에서 전시를 만들었던 주요 질문들과 함께 힌터랜드의 지역, 역사, 이동과 주거, 종족 등의 세계를 총망라하여 설명하는 소스 북(https://www.hinterland.kr/sourcebook)을 공유하였다. 소스 북은 주로 게임에서 핵심 소재를 보충하고 보완하기 위해 발간되는 출판물로 게임에 대한 플레이어의 이해도를 높이고 활용을 보다 확장하기 위해 사용된다. 시나리오와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는 소스 북과 가이드라인은 세계관을 플레이어에게 강제적으로 주입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세계관 설정은 일종의 규칙이며 이 규칙 안에서 SF 소설가, 시각예술가, 컨셉 아티스트, 3D 모델러, 기획자, 사운드 아티스트, 플레이어 등 다른 시야와 입장을 취하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세계는 더욱 살아있는 것이 된다. 따라서 세계관 만들기는 시작과 끝이 명확한 일이 아니라 늘 현재 진행 중인 공동의 일이다.

공동 창작을 방법론으로 택한 전시는 작가의 창작자 커뮤니티와 창작 환경을 고민하는 PACK의 비전과도 맞닿아 있다. 블록체인, 웹3.0, 메타버스에 쏟아지는 찬사와 급변하는 기술의 변화 속에서 그 매체를 습득하거나 학습하기를 권유하는 대신에 창작의 환경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사유를 바탕으로 한다. 애플리케이션 시그널(Signal)의 설립자 목시 말린스파이크(Moxie Marlinspike)가 언급했듯 웹3.0의 핵심은 플랫폼의 개발이 아니라 신뢰(trust)를 분배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웹3.0에 대한 나의 첫인상(My first impressions of web 3),” Moxie Marlinspike, https://moxie.org/2022/01/07/web3-first-impressions.html. 본 레퍼런스는 PACK의 큐레이터 류다연이 부산 비엔날레 저널에 출간한 글, 「미래에서 온 화석」에서 참조하였다. “미래에서 온 화석,” 2022 부산 비엔날레 물결 위 우리, 2022년 8월 수정, http://www.busanbiennale2022.org/learn/journal/2/future-fossils (이미지 4) 기획팀은 이 과정에서 작가와 디지털 환경의 특수성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공백을 논의한다. 예시로 최근 PACK은 힌터랜드에 등장하는 작품을 NFT로 발행하였는데, 이는 재화적 가치 획득을 우선순위로 두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의미와 환경을 다시 모색하게 하고, 또 우리의 현실로 어떻게 치환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의 일환이다.최근 힌터랜드 내부에서 만날 수 있었던 작가들의 작품이 NFT로 에어드롭되었다. 다른 세계의 일부가 현 세계와 연동되는 결정적인 증거이다. https://foundation.app/collection/htld?sortOrder=DEFAULT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은 결국 생태계에 영향을 미친다. 이야기의 입자들이 생태계를 작동시키기 때문이다.

이미지 4 «힌터랜드» 삶과 노동관 전경 중 DAO 아이콘 전경.
다오(DAO, 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는 탈중앙화 자율 조직이라는 뜻으로 블록체인과 함께 등장한 형태의 공동체이다. 서열과 위계 없이 투명한 규칙에 따라서 의사결정이 자율적으로 이루어진다. 힌터랜드에서는 농축산 DAO, 창고 DAO, 메카닉 DAO, 엔터테인먼트 DAO, 종교 DAO, 교육 DAO, 의료 DAO, 데이트 DAO, 재판 DAO 등 총 9가지의 다오가 대표적으로 등장하는데 각각은 자신들이 대변하는 가치와 목표를 상징하는 동시에 조직화한다. 각 다오에 대한 설명은 다음 링크(https://www.hinterland.kr/sourcebook?menu=2)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음파 3: 발굴과 번역

세계관의 설정과 공동 협업은 더 나아가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힌터랜드»의 세계가 쌓아 올린 독특한 시차 덕분에 작가들은 번역가와 발굴가가 되어 힌터랜드를 접속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 고고학자들의 임무는 화석을 발굴하고 연구하여 이를 사료로 만드는 것이다. 새로운 미디어 또한 시간이 지나면 유물이 되기에 메타버스 아카이버, 메타버스 고고학자들은 침식된 데이터에 쌓인 먼지를 불며 화석을 심해 속에 전시하고자 한다. 작가들은 발굴가의 역할을 자처하며 이 화석을 들여다보고 의미를 심층으로부터 캐낸다. 그 과정에서 세계가 확장된다.

전시에 참여한 시각예술가 4인 오가영, 이현우, 고경빈, 로랭과 4인의 SF소설가 김창규, 돌기문, 문이소, 황모과의 작품은 본인의 작업 세계를 세계관과 디지털 공간이라는 특수한 환경을 조건으로 번역하여 질문의 질문을 파생한다. 대상을 고정하는 사진 매체의 확장성을 탐구해 온 작가 오가영은 로 힌터랜드 안에서 눈만 감으면 접속할 수 있는 메타버스로 이행하는 해양인들의 풍경을 구현하였다.(이미지 5) 관객은 사방에서 겹쳐진 여러 눈을 자유롭게 통과하며 간접적으로 메타버스의 풍경을 경험한다.

이현우는 다양한 재료를 결합하여 새로운 오감으로 작품을 바라보게 하는 작가로, 힌터랜드에서는 제각각의 방식으로 움직이는 변이 생물체를 거대하게 만들어 관객들로 하여금 안과 밖을 자유롭게 유영하도록 유도하는 작업 를 선보였다. 뾰족한 조각적인 형상과 애니메이션의 리듬은 가상 공간에서 획득할 수 있는 생명성의 경계에 대해 묻는다. 기술과 노동의 문제를 연구해 온 작가 고경빈의 <리셋>은 소프트웨어 버그와 장내 세균 간의 대화를 은밀하게 들려주어 시스템을 전복시키고자 하는 음모론에 관객을 동참시킨다. 둘이 공모하는 현장은 유일하게 힌터랜드 특별전에서만 목격할 수 있다.

이미지 5 «힌터랜드» 삶과 노동관 전경. 오가영, , 2022, 3D 설치.
오가영 작가의 작품은 여러 층위의 번역을 수행하는 사례를 보여준다. 디지털카메라, 아이폰 등을 이용하여 도시 풍경을 해체하고 합치는 것을 방법론으로 삼아온 작가는 힌터랜드를 통해 눈만 감아도 메타버스에 접속할 수 있는 인류의 시점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물질세계와 메타버스를 왕복하며 발생하는 복합적인 감각은 작가의 사진 매체에 대한 관심과도 맞닿아 있다. 동시에 단순히 이미지 파일을 네모난 프레임에 업로드한 것이 아니라 상을 왜곡하는 여러 오브제를 하나의 군집으로 배치한 것은 가상 공간의 특성을 고려하여 작품을 제작하고 설치한 것이다. 가상 공간 내에서의 작품 제작은 무한한 자유가 주어진다는 믿음과 달리 주어진 환경의 규칙에 따라서 작품을 제작해야 하는데 PACK은 토크에서 이것이 ‘번역'의 과정임을 언급한 바 있다.

한편 소설가들은 지질학적 방법론을 활용하여 서사로 세계의 단면을 잘라 보여준다. 김창규의 「온 세상의 정물화」에는 물질세계와 데이터 추상공간 사이의 세계에서 데이터를 추출하는 ‘메타 아카이버’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등장한다. 현 사회에 대한 이들의 갈등과 갈망은 메타버스가 아닌 중간 세계로 향하는 길목을 제안한다. 황모과의 「플로팅 패트리어트: 인공섬 대한호의 마지막 순혈주의」에서는 디지털 고고학을 연구하는 대학원생이 과거의 시간층에 살았던 인물과의 대화를 통해 사료를 발굴하는 부분이 나온다. 이 발굴을 통해 힌터랜드 초기 시절, 국가가 해체될 때 인종과 국가의 개념이 어떤 식으로 공동체에 작용하는지 차별과 연대의 상황들을 보여준다.

작가들의 작품은 2022년과 25세기, 23세기의 막을 가로지른다. 앞서 언급했듯 세계관이 공간에 진입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다면 작품은 세계를 설명하지 않고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어쩌다 구멍이 생겨도 이는 입구가 된다. 관객의 진입 경로에 따라서 문이소의 소설, 힌터랜드 소스 북, 오가영의 작품으로 도착할 수도 있고, 힌터랜드의 로비, 황모과의 소설, 로랭의 <산투아리안 생체기계적 럭셔리 상품 및 서비스: 힌터랜드의 자동화 공장 및 배달 생태계> 경로로도 도착할 수도 있다. 단일한 경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번역의 번역을 거듭하며 작품은 배후지의 새로운 과거, 오래된 미래, 유동하는 현재에 대해 질문하는 동시에 이 환경을 만들어내는 주체들의 역할을 재고하기를 권유한다.

«힌터랜드»의 목적은 세계를 고해상도로 모사하는 것이 아니었다.(이미지 6) PACK이 힌터랜드의 ‘디지털 리얼리즘’이 시나리오와 설정에 있다고 한 것처럼 전시장을 함께 편집하는 감각은 오프라인 전시 기획과는 다른 태도로 이루어진다. 한 주머니 안에서 침범할 수 있기에 함께 이야기를 쓸 수 있다. 음파가 사물에 부딪혀야 되돌아오는 것처럼 힌터랜드의 확장 가능성은 그동안 비가시적이었던 물음에 부딪히며 우리에게 반향할 것이다.

이미지 6 «힌터랜드» 해양생활관 전경. 이현우, , 2022, 3D 설치.
뉴 아트 시티의 용량 한계로 인해 작품들은 낮은 폴리곤 수로 제작되었으나 이는 작품을 이해하거나 감상하는 데에 있어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는다. 손에 잡힐 것처럼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 때문에 오프라인에서와 달리 작품은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통과하고, 안에 머무르는 공간이 된다. 의 낮은 텍스처는 오히려 변이생명체의 텍스처를 더 살아있는 것으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