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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담(마테리알 편집인)

00년대부터 지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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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담(마테리알 편집인)

00년대부터 지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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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이렇게 됐을까?

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영화잡지 붐은 00년대 초반까지도 계속해서 이어졌다. 2000년 “필름2.0”과 “씨네버스”가, 2001년에는 “무비위크”가 창간했다. 그러나 이 호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0년대, 평론(가)의 권위는 다음의 몇 가지 이유로 추락했다.

– 잡지 줄폐간과 기자들과의 지면경쟁
2003년 “키노”, “로드쇼”, “씨네버스” 폐간을 시작으로 2008년에는 “필름2.0”이, 2009년에는 “프리미어 한국판”, 2010년에는 “스크린”까지 영화잡지들의 줄폐간이 이어졌고, 급기야 정기간행되는 영화잡지로는 한겨레신문사 계열의 “씨네21”과 중앙일보 계열의 “무비위크”만이 남게 되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영화비평의 장소로 기능하지는 못했다. “씨네21”은 2015년을 마지막으로 전문비평 코너인 ‘전영객잔’과 ‘신,전영객잔’을 폐지하는 등 영화비평지보다는 스스로를 ‘영화전문지’로 정체화하면서,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종합 영화정보와 기사를 제공하는 매체로 자리매김했다. “무비위크” 역시 영화업계 정보와 개봉영화 콘텐츠를 다뤘다. 척박한 상황 가운데 2013년 영화예매 사이트 맥스무비에서 “맥스무비 매거진”을 창간하면서 영화잡지 3파전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무비위크”는 2013년 폐간과 함께 무가지인 “매거진M”으로 사업부를 통합하면서 재도약을 시도했으나 이마저도 2017년 폐간 수순을 밟게 되었고, “맥스무비 매거진”도 2017년 9월호를 마지막으로 잠정 휴간상태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정보 위주의 콘텐츠를 굳이 평론가에게 맡길 필요는 없었다. 평론가들은 이제 기자들과 같은 지면을 놓고 경쟁해야 했다.

– 잘난척쟁이들
2007년 ‹디 워› 사태 이후 영화 평론가라는 직함은 교조적이고 알은체 하는, 이를테면 스노비즘의 대명사 같은 것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오해의 연장선상에서 2019년 ‹기생충›에 대한 이동진의 한줄평이 크게 논란을 빚었다.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라는 단평에서 사용된 ‘명징’과 ‘직조’를 두고, 쉬운 말이 아닌 생소한 한자어를 사용한 이유가 대체 뭐냐, 현학적인 단어를 써서 허세를 부리는 것이 아니냐 하는 비판이 줄을 이은 것이다. 이러한 일들을 두고 타임즈의 리처드 시켈은 “나는 책을 읽지 않습니다!”라고 자랑스럽게 외치는 사람들의 광란에 지적이고 신중한 양질의 온라인 리뷰들이 너무 자주 가려진다고 비꼰다.

비평가는 자신의 시각과 견해를 강하게 제시하고 평가를 내리며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과 갈등할 수도 있지만, 영화에 대해 정식화된 보편 접근법을 제공하는 사람은 아니다. 스노비즘이 일반적으로 정보권력에서 발생하는 것임을 생각해 보았을 때, 영화업계 정보 기사가 아닌 진지한 비평문에서는 독자로 향하는 그 어떤 문장도 정보전달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므로 이 오해는 생각보다 쉽게 불식될 것이다. 한편 특정한 비평틀이나 이론틀이 위계를 갖고 구성된다는 문제도 비평의 자유를 제한하고 축소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령 윤리나 정치, 민족주의 이슈와 미학이 충돌할 때 미학은 동등하게 고려받을 수 없으며 언제나 패배해야 한다. 미투 운동으로 드러난 영화계의 비윤리적인, 심지어는 악하고 지저분한 일면들은 관객들과 비평가들, 그리고 제작자들을 포함한 모든 영화인들을 딜레마에 시달리게 만들었다.

이러한 일련의 오독을 거쳐 대중에게 영화 평론가란, 영화 속에 지극히 일부로 존재하는 모든 개별의 파편들을 모조리 코딩하여 관객 앞에서 해설하는 사람이 되었다. 혹은 비윤리적인 영화를 심판 내리고 효수 퍼포먼스를 벌이는 망나니가 된 것 같기도 하다. 근자에 영화 평론가에게 허락되는 자리는 대개 그러한 (‘효수’나 ‘해독’의) 욕망을 평론가라는 자격 내지 권한을 가지고 대리 실현하는 어떤 곳이다.



2. 무엇이 시도되어 왔을까?

– 오프라인 비평지
한편 2010년대 전후로 새로운 흐름이 포착되기 시작했다. 『독립영화 제46호』에서 평론가 성상민(2016)은 독립출판과 언리미티드 에디션(UE)의 호황을 등에 업고 기존 출판시장의 흐름과 논리에 매달리지 않는 독립 영화잡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한다. 2007년 창간된 “필름에 관한 짧은 사랑”을 시작으로 2012년에는 본격영화수다잡지를 표방한 “녹록지X”가, 2013년에는 “영화잡지 아노(anno.)”와 성장영화 팬진 “더 썸머”가 창간되었다. 이 시기를 즈음하여 (2013년 “무비위크”가 “매거진M”으로 통합된 것을 제외하면) 새로이 창간되는 영화잡지는 모두 독립잡지였다. 2015년에는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깨나지”와 여러 키워드로 영화를 조망하는 “시선일삼”이 창간되었다. 2016년은 정말로 많은 영화잡지들이 쏟아져나온 해였다. 서울독립영화제 자원봉사자 출신을 주축으로 창간된 “모션(Motion)”, 미디어버스와 영화평론가 유운성이 발행한 영상비평 전문지 “오큘로(Okulo)”, 하나의 영화에 대한 다양한 재해석을 다루는 “프리즘오브(PRISMOf)”, 입체성이 지워진 영화 속 여성 캐릭터를 탐구하는 여성주의 영화잡지 “세컨드(SECOND)”가 창간되었으며, “필름에 관한 짧은 사랑”이 “캐스트(CAST)”로 재편되기도 했다. 이 시기 창간된 영화잡지들은 영화 담론을 위한 지면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으나, 2000년대 영화잡지들의 줄폐간 사태와 유사한 어려움을 겪었다. 이들 가운데 많은 수가 텀블벅 같은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창간호의 출판 비용을 마련했다. 이후에도 특별한 이유 없이 (아마도 자금 문제로) 비정기간행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심지어 무기한 휴간이나 잠정 폐간에 이르는 기간도 짧은 편이었다. 이후 2018년에는 영화평론가 정성일, 남다은, 이후경 등 기존에 지면을 보유하고 있던 평론가들을 중심으로 정통 영화평론지를 표방하는 격월간 “필로(FILO)”가 창간되었다. 또한 영화 혹은 영상비평지가 아닌, “보스토크(Vostok)”나 “미술세계”처럼 영화의 영역과 때때로 공집합을 이루는 시각예술 잡지들이 영화평론지와 필자를 공유하는 현상 또한 주목할 만한 점이다.

– 온라인 비평 지형
온라인 비평 사이트들은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볼 수 있다. 여타 기관이나 시설에 부설된 것이 아닌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웹진으로는 “리버스미디어”, “더 스크린”, “모션”, “오큘로”가 있다. 이 가운데 “모션”과 “오큘로”는 오프라인 잡지에 모체를 두고 있는데, “모션”은 잡지에 실리는 글을 그대로 온라인에 게재하는 반면 “오큘로”는 잡지에 실리는 콘텐츠와 온라인 콘텐츠를 구분하고 있다. 콘텐츠가 동일한 이유에서인지 “모션”은 웹진 런칭 이후 오프라인 잡지를 발행하지 않고 있다. “더 스크린”은 2000년대 간행되었던 영화잡지 “스크린”을 전신으로 하는 ㈜에디토리알 계열의 영화 미디어로, 2018년경에 오픈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기관이나 시설에 소속된 웹진/페이지로는 인디스페이스 부설 “인디즈” 블로그, 인디다큐페스티발 부설 “독립비평TAKE”(현재는 더이상 사용되지 않으며, 대신 관객모니터단의 리뷰를 영화제 기간중 웹에 게재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한국영상자료원 KMDB의 “KMDB 영화글” 코너 등이 있다.

개인이 소유한 미디어 가운데 단독적으로 운영되는 사이트로는 영화평론가이자 SF소설가인 듀나가 운영하는 “듀나의 영화낙서판”, “시선일삼”의 온라인 버전인 “시선웹”이 남아 있으며, 그 외에 유투브 채널이나 팟캐스트 등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영화를 주제로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는 많지 않다. 맥스무비 계열의 “익스트림무비”와 dvd 타이틀 수집 커뮤니티로 시작한 “dvd 프라임”, 그리고 “듀나의 영화 낙서판”에 딸려 있는 “듀나의 영화 게시판”과 DC 인사이드의 “영화 갤러리”, “누벨바그 마이너 갤러리” 정도가 전부다. 앞서 열거한 온라인 커뮤니티보다 비교적 연령대가 낮고 전공자 비중이 높은 것으로 보이는 트위터 시네필들을 특기할 수 있겠지만, ‘집단’으로 통칭하기 어렵고 커뮤니티의 성격보다는 개인의 생각이나 단평 등을 기록하는 것에 가까운 형식 때문에 ‘커뮤니티’로 특정할 수는 없으며 이러한 점에서 오히려 한줄평, 별점, 단평 등을 위한 메타크리틱 플랫폼과도 유사한 속성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내에서 운영되는 메타크리틱 플랫폼은 “CGV 골든에그”,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 사이트 영화평, “왓챠”, “키노라이츠” 등이다.



3. Everyone’s a Critic

이제 비평의 ‘장소’는 비고정적인 것이 되었고, 심지어는 일시적으로 고정될 만한 타공판조차 마련하기 어려운 처지에 있게 되었다. 비평의 절대적인 수량이 줄어들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전문 평론가의 직함을 달지 않고도 누구나, 어디에나 영화에 대한 인상이나 소회, 진지한 분석, 새로운 이야깃거리, 혹은 도식적인 암호해독을 남긴다. 유투브, 블로그, 브런치 등의 플랫폼은 하나의 간행물로 개별의 글들을 묶고 검토하는 대신 단독적인 1인 미디어가 순항할 수 있도록 돕는다. 2010년대 이후로 가장 눈에 띄는 움직임은 단연 이러한 플랫폼들을 이용한 개인 채널들이다. 블로그, 브런치 등에서 사진과 텍스트 중심의 콘텐츠 공간을 제공했다면, 최근에는 라디오 형식의 팟캐스트와 동영상 플랫폼 유투브에서 셀 수없이 많은 영화비평 채널들이 운영되고 있다. 짧은 호흡과 빠른 컷 전환, 지루하지 않은 내레이션, 그리고 잦은 업로드가 요구되는 유투브 미디어의 특성상 개중 상당수의 채널들은 중심 줄거리를 축으로 삼아 영화를 순식간에 요약해 주거나, 영화 속 상징이 숨겨놓은 의미들을 채굴하여 보여주는 스타일을 표방하고 있다. 이러한 유투브 영화해설이 각광받는 이유는 영화에 다이제스트가 먹힌다는 생각, 좀 비약하면 서사가 전부라는 믿음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영화 요약’ 유투브 댓글창에는 시간을 절약하게 해 주어서 감사하다는 코멘트가 상위에 랭크된다. 영화에 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낭비라는 통념 사이에서, 그럼에도 굳이 영화 해설 유투브가 인기를 얻는 까닭은 새로운 서사와 얘깃거리에 대한 대중의 갈망이 전부일까? 그러나 숨은 그림 찾기처럼 펼쳐지는 상징 해독 콘텐츠들은 미쟝센 비평의 일환이 아니던가?

물론 이 현상 자체가 비평의 위기라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비평 담론장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비평과 리뷰의 구분이 모호해졌다는 사실이다. 1인 미디어를 제외하고 “씨네21”과 포털 영화평이 거의 유일한 레퍼런스이던 시기를 거치면서, 5개 만점의 별점 제도와 한줄평은 영화를 선택하거나 평가할 때 사용하는 가장 대표적인 형식으로 자리잡았다. 모 평론가가 5점을 준 영화들, 혹은 1점을 준 영화들이 리스트업되고 온라인으로 구전되기 시작했다. 중층결정된 영화들은 이 과정 속에서 정량화되고 납작하게 수치화된 상태로 독자들에게 날라졌다. 미학적으로 큰 성취를 이룬 영화가 윤리적으로 큰 문제를 갖고 있거나 반대로 윤리적으로 큰 귀감이 될 만한 영화가 미학적으로 끔찍할 때, 이러한 영화들은 각자가 생각하는 더 큰 가치의 범주 아래에서 과대/과소평가되거나 심지어는 평균내어지곤 한다. 단 한 문장으로 하나의 영화를 설명해야 하는 시스템 내에서 평가가 수사로 점철되거나 단편적으로 설명될 수밖에 없음은 물론이다. 이 가운데 ‘씨네토크’ 이벤트가 인문학 열풍을 등에 업고 스포츠화 되면서 특정 평론가들이 “씨네21” 등의 단평 리뷰 시스템 내에서 구사했던 스타일이 벤치마킹할 만한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고, 왓챠와 같은 메타크리틱 어플이 크게 성공하면서 수사 중심의 단평 스타일은 어느 순간 비평 전체를 대표하게 되었다.

국내의 가장 대표적인 메타크리틱 플랫폼인 “왓챠” 어플리케이션은 IMDB, 로튼토마토 같은 시스템의 한국 버전이라고도 볼 수 있으나 몇 가지 점에서 차별화되었다. 특히 “왓챠”가 내세우는 가장 큰 특징은 ‘취향 분석’과 개인화 추천이며, 이를 집계하기 위해 사용자로부터 관람한 모든 영화에 대한 별점을 유도하고 데이터베이스화한다. 그러나 “왓챠”를 이용하는 대부분의 유저들은 이 집계를 통한 개인화 서비스보다는 오히려 집계를 위한 ‘별점 매기기 행위’ 그 자체를 오락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씨네21”로부터 수용된 ‘영화 평론가의 일’을 사용자 스스로, 그것도 아주 단순한 드래그 앤 드롭(혹은 스와이프 앤 드롭) 한 번으로 모사할 수 있다는 점이 상당한 지적 만족감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런칭 초기 별점을 매긴 개별 영화마다 앱 내에서 100자 이내의 짧은 코멘트를 작성할 수 있게 하면서 수많은 “씨네21” 스타일 한줄평이 집결하기 시작했다. 이후 코멘트의 글자수 제한을 없애고 다른 유저들의 ‘좋아요’와 댓글을 받을 수 있게 시스템을 개편하면서 “왓챠”는 사이비 로저 이버트, 혹은 포스트 이동진과 제2의 박평식을 대거 양산해낼 수 있게 되었다. 별점식 메타크리틱에서 영화에 대한 평가가 단순화되고 정량화된다는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완성도와 취향에 대한 평가를 이원화하여 집계하는 “키노라이츠”가 “한국의 로튼토마토”가 되겠다는 기치 아래(로튼토마토는 평균 점수가 아닌 호평한 유저의 비율을 보여준다.) 2018년 런칭했으나 주목할 만한 반향을 이끌어내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 이면에 대중들이 영화에 대한 담론, 특히 비평 담론을 직접 생산하고자 하는 어떠한 욕망이 기거하고 있으며, 이 무의미해보이는 한줄평의 홍수 속에서 새롭고 진지한 비평으로 향할 잠재 스피커가 발생할 수 있고, 이미 일부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마테리알은 신춘문예나 극소수의 평론공모라는 게이트키핑을 통해서만 직업 평론가로서의 상징자본을 쟁취할 수 있다는 문제에 저항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이미 홍수처럼 영화에 대한 후일담이 쏟아지는 와중에 굳이 비평의 지면을 찾겠다고 나선 것은 어떤 오만에서인가? 물론 이것은 ‘오만이 아니’라는 말을 하기 위한 서론이다. 우리가 모색하려 하는 우리 [젊은 직업 평론가들]의 자리는 앞서 열거한 것들과 다른 축에 있다. 오늘날 평단의 곤란함은 영화평이 이루어지는 지점들이 너무나 산발적이고 다단하다는 데 있다. 우리는 우리가 쓰고자 하는 방식의 글을 읽고자 하는 독자들이 우리를 쉽게 찾아올 수 있도록 담론의 연속성을 갖춘 별도의 새로운 장소를 구축하려 하는 셈이다. 우리를 찾아온 독자들은 그들이 읽고 싶었던 것들이 어떤 ‘태깅’을 통해 모여 있는지를 습득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