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체 현실 유령』 연계 비디오 에세이 공개 (+ 후기)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저 옛날부터, 나는 언제나 비디오 에세이 제작자가 되고 싶었다. [드림코어로 편곡된 토니 베넷(Tony Bennett)의 “누더기에서 떼부자로(Rags to Riches)”가 흘러나옴] 이 세상 수많은 엔터테인먼트 양식 중 내가 유일무이하게 콧방귀를 기본으로 장착해 파고드는 동네가 거기뿐이니까. 나는 이를 되지도 않게 ‘비됴 엤쎄’라고 줄여 부르곤 하고 특정 제작자의 채널과 그들의 영상마다 A+에서부터 D-까지 간헐적인 평점을 속으로만 매겨대거나 적어도 고따위의 AVGN식 ‘네임드 리뷰어’ 짓거리하는 척이라도 상상한다. 아마 내 첫 채널과 영상은 PBS의 아이디어 채널(Idea Channel)이거나 에브리 프레임 어 페인팅(Every Frame a Painting)이었던 거 같다. 일종의 영어 청해 연습 느낌으로 너드라이터(Nerdwriter)나 로얄 오션 필름 소사이어티(Royal Ocean Film Society)도 곧잘 봤던 거 같고. 성인이 되어 랩톱을 갖고 인기 인디 게임을 하고 다니면서부터는 게임 메이커즈 툴킷(Game Makers Toolkit)이라던가 그쪽의 채널들을 많이 구독했던 거 같다. 니들 드(The Needle Drop)의 대량 생산되는 리뷰들은 해외 음악을 알아갈수록 재미가 없어졌고 대중음악과 관련해서는 도통 지긋이 눌러앉아 시청할 비됴 엤쎄 영상도 채널도 턱없이 부족한 것만 같다. 2010년대의 부질 없는 온라인 문화전쟁에 대중적인 좌파 관점으로 굳이 참전하는 채널들을 두루뭉술하게 일컫는 브레드튜브(Breadtube)가 잠시간 유행을 타면서는 (우악스레 광기에 빠져드는 H봄버가이(Hbomberguy)를 제외하자면 그들의 영상을 제대로 시청한 적 없음에도) 화려한 분장을 한 다음 카메라만 쳐다보고 기본 몇 시간 동안 떠들기만 하는 영상이 추천 목록에 오르내리는 게 짜증 났다. 그리 생겨난 비됴 엤쎄에 대한 나의 지론이란, 당신이 식사하는 동안 배속을 돌리지 않고도 내내 시선을 낚아챌 수 있을 몇십 분 동안만 이야기를 전하는 게 최우선이라는 거다. 물론 라디오가 그리 쓰이듯 단순 디지털 노동 중의 작업용으로 이들 영상을 틀어놓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래도 이씨, 난 익숙한 새벽 3시에 수면을 미루는 머리통을 자극해 줄 뭔가가 필요하다고!

운 좋으면 한 주 정도 정말 운수 좋으면 몇 달 정도 관심을 낚아채 가는 엔터테인먼트가 생길 때마다 유튜브에 검색을 해 잠시라도 머릿속이 비어있는 듯 느껴질 때마다 비됴 엤쎄들을 삽입했고 그들 대부분은 반쯤 뇌를 통과해 지나갔다. 써머닝 솔트(Summoning Salt)의 거대한 스피드러닝 연대기는 갈수록 재생 시간이 몇십 분씩 덧붙여졌고 제이콥 겔러(Jacob Geller)는 한창 재밌다가도 쓸데없는 곳에서 존재론적 위기로 뽕을 채워댔고 엠프레몬(EmpLemon)은 YTP 제작자였던 제 과거가 부끄럽다며 입을 다물지 못하고 헛소리를 주절거렸고 톰 스콧(Tom Scott)은 결국 자신이 10년 넘게 진행해 온 이 일을 이대로 영원히 이을 수는 없다고 시인했다.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웹상 ‘마이크로 셀레브리티’의 흥망성쇠나 21세기의 첫 15년 정도 동안 온라인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소동에 대한 설명질이나 지금 유행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조회수에 기여할 만한 문화적 이벤트에 대한 하나 마나 한 불평불만을 몇 시간씩 읊어 대는 비됴 엤쎄들이 디지털 소음처럼 범람하는 흐름 속에서 우연히 아름다운 비디오 에세이의 섬광을 낚아채는 빈도는 차차 줄어들 듯 느껴졌다. 『사이트 앤 사운드(Sight and Sound)』에서 매년 ‘비디오 에세이’ 연말 결산을 할 때마다 유심히 정독했지만 내가 대부분 무심하거나 가끔은 열광해 온 ‘비됴 엤쎄’들은 거의 올라가지 않았다. 키슬리·미텔·그랜트의 『비디오 에세이 만들기』나 영상자료원의 공모를 지향하고 제작되는 것만 같은 이들 격조 있고 우아한 ‘비디오 에세이’들은 케빈 B. 리(Kevin B. Lee)의 근사한 영상들과 함께 비메오에 보존된 편이었다. 나는 다시 유튜브의 검색어와 알고리즘으로 돌아가 시청각적 유사 학술 불량식품을 열심히 섭취했다.

「사이렌헤드의 경우」를 제작하게 된 계기는 순전히 내가 『대체 현실 유령』에서 그 제작자인 트레버 헨더슨(Trevor Henderson)에 대해 언급이라도 하겠다는 걸 까먹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마테리알』 편집진께서 이와 연계된 비디오 에세이를 만들 의향이 있냐고 물어보셨고, 나는 일종의 부록처럼 헨더슨과 사이렌헤드에 대해 다루겠다고 결정했다. 여전히 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다루지 못하기에 단행본의 무시무시하게 귀여운 유령 캐릭터를 디자인해 주신 류한솔 작가님께서 감사하게도 편집을 맡아주시며 거의 모든 큰일을 담당하셨다. 본격적인 작업은 2022년 4분기에 진행되어 가을에는 스크립트를 작성했고, 겨울에는 당시 거주하던 꽤 좁은 기숙사 방에서 8년 된 랩톱의 웹캠과 OBS 스튜디오를 사용하고 초록 이불을 그린 스크린 삼아 영상 촬영을, 작가님께 빌려온 마이크와 apk를 사용하고 아까 그 초록 이불을 간이 방음재 삼아 대사 녹음을 진행했다. (지금 드는 생각이란 『대체 현실 유령』은 한 해 동안 거주한 그 골방에서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올해부터는 본가의 방구석에 돌아와 처박혀 있기에 내가 그 정확한 방구석으로 돌아갈 일이 아마도 다시는 없을 테다). 연초에 마침내 완성된 영상은 이후 23년 봄과 여름 두 차례의 북토크에서 너무 넓거나 적절한 크기의 화면에 상영되었고, 남은 동안 적절한 웹 공개 일자를 탐색하다가 작년에 촬영과 녹음이 막 진행되던 이맘때의 성탄 겸 연말 선물로 공개된다. 요 전후로 『대체 현실 유령』과 관련해서는 22년도 가을에 「닫힐 준비가 돼 있어」와 23년도 봄에 「4X」를 썼고, 단행본은 뜬금없게도 2023 서울국제도서전에 전시되었다가 (제보받은 바에 의하면) 주빈국인 아랍 에미리트의 샤리자까지 날아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당장에 나는 대체 현실보다는 정신 분산에 대해 생각을 더 많이 하고 있지만 이게 또 어찌 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비디오 에세이 제작자’로서의 나를 상상하며 가장 바라는 이상향이란 물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채널들인 ‹그게 뭐가 그리 대단하다는 건데? (What’s So Great About That?)›의 유려한 편집 및 인용 기술과 에세이 자체에 대한 명상이나 ‹바비브로콜리 (BobbyBroccoli)›의 웅장한 3D CGI 도표 잔치와 이 위를 산뜻하게 유영하는 관찰자의 시선 같은 것이지만, 「사이렌헤드의 경우」에서는 이를 고대로 실행할 수는 없으니 그 대신 랩톱 화면을 무대 삼아 오르내리는 창과 탭을 써먹기로 했다. 스크립트를 위해 헨더슨과 사이렌헤드에 대해 좀 더 파고들면 들수록 이들과 얽힌 이야기가 어쩌면 『대체 현실 유령』에서 구분되는 저 모든 시기와 조금씩은 어떤 식으로든 맞닿아 있다고 느껴졌고, 급기야 이 확성기 대가리가 단행본 전체에 관해 매우 적합하고 훌륭한 상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기까지 느껴졌다. 달리 말하자면, 작업을 진행하면서는 나 스스로가 헨더슨과 사이렌헤드를 로어화하고 있는 듯 느껴졌으며 그것은 물론 22년도 상반기 동안 연재와 단행본 원고를 쓰는 내내 강렬하게 들었던 느낌, 거대하고 복잡하게 이어진 무언가 그럴싸하게 말이 되는 꼴을 띤 채 뒷면과 안쪽에 숨어들었다는 직감 혹은 믿음이기도 했다. 나는 이 이상야릇한 기분을 아주 좋아하는 만큼 아주 두려워하기도 하며, 이는 나의 글쓰기 대부분을 꾸역꾸역 밀어붙인다. 나는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본업이든 현생이든 도피이든 책무이든 간에 암튼 비디오 에세이, 그보다는 D급에서 C급 비됴 엤쎄 제작자의 마음가짐으로 글쓰기를 해온 듯싶다. 아마도 나는 그런 감정에서 영영 벗어나거나 아니면 실제로 완결지은 글들에 온전히 만족할 수는 없을 테다. 『대체 현실 유령』을 쓰고 한 해 정도가 지나는 동안 천천히 깨달은 게 있다면 그 사실인 거 같고,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나는 「사이렌헤드의 경우」를 부끄러운 만큼 자랑스럽게 느낀다. 물론 내 눈앞에서 이 영상을 틀면 최대한 자리를 벗어나려 애쓰겠지만.

영상은 그러므로 헨더슨과 사이렌헤드에 대해 다루는 동시에 내가 나 자신과 나의 글쓰기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과장되게 반영하는 식으로 짜일 수밖에 없었는데, 이를 위해 대체 현실의 내가 방구석 웹캠으로 열변을 토하며 온갖 정보를 떠들어대는 화자의 모습을 취했다. 그를 위해 크게는 ‹언래블드 (Unraveled)› 시리즈에서 브라이언 데이비드 길버트(Brian David Gilbert)가 막대한 비디오게임 로어에 정신머리를 짐짓 희극적으로 잃어가는 모습과 ‹CGP 그레이 (CGP Grey)›가 가장 사소한 세부 사항 하나의 역사적 진위 때문에 서서히 미쳐가는 모습을 참조했다. (BDG의 어구를 따오자면 이들은 “관료제적 신동 (bureaucratic wunderkind)”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비됴 엤쎄의 유형이기도 하다) 이런 글을 쓰며 내가 다섯 번째 문단까지도 존 보이스(Jon Bois)를 언급하지 않은 건 기적적인데, 거두절미하자면 「사이렌헤드의 경우」를 위해서는 『꽤나 좋은 (Pretty Good)』 시기에만 최선으로 가능했던 꽤나 좋은 아마추어리즘 겸 애드호키즘을 따와 「로니 스미스 (LONNIE SMITH)」편의 재생 분량 빨리 감기, 「안 돼!!!!!! (NO!!!!!!)」편의 액자들, 그리고 「가장 멍청한 놈 (THE DUMBEST BOY ALIVE)」편의 결말 연출을 참고했다. 작업을 진행하면서는 한국어로 만들어진 최고의 비디오 에세이 「던전, 전능, 불능: 게임에 관한 비디오 에세이」를 언제나 마음의 지침으로 두고 있었다. 이렇게 「사이렌헤드의 경우」는 내가 여태 시청해 오고 좋아해 온 다른 비됴 엤쎄들을 짜깁기해서만 이리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저 수많은 비됴 엤쎄들처럼 「사이렌헤드의 경우」(와 물론 『대체 현실 유령』) 또한 “자기답지 않은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나아가 ‘자기를 탐구하고’, ‘자기의 원본을 뽑아내며’, 자기를 알고 또 만들기 위해 애쓰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며 ‘힘든’ 노력(essayer)이요, 그 과정의 기록 (「옮긴이의 말」, 미셸 드 몽테뉴, 『에세 1』, 심민화·최권행 옮김, 19쪽)”이 충실히 되고 싶어 하지만 끊임없는 분열 편집으로 계속해서 정신 분산되는 완전 소음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결국 도피하고 싶던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이상한 경로를 따르는 듯싶다. 내가 읽으라는 글도 책도 냅둔 채 정신 빼놓고 유튜브나 들여다보는 것도 그러한 궤적의 기묘한 매혹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22년도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만 23년도에 가장 재미있고 감명 깊게 시청한 비됴 엤쎄들로는 일단 언급한 채널 중에선 WSGAT?의 「묵시록의 네 이북_기사 (The Four horse_ebooks of the Apocalypse)」와 바비브로콜리의 「인간 복제를 조작한 남자 (The man who faked human cloning) / 복제 범죄자를 잡는 방법 (How to catch a criminal cloner)」 2부작이 있고, 여기에 새로이는 크리스 하넬(Chris Hanel)의 「미네소타 트윈스와 스포츠 역사상 최악의 연패 (The Minnesota Twins and the Cruelest Streak in Sports)」, 파워 팩(Power Pack)의 「마이하우스.wad – 둠의 가장 경악스러운 모드 안으로 (MyHouse.wad – Inside Doom’s Most Terrifying Mod)」, 멜로디 노써네임(Melody Nosurname)의 「당신이 본 적 없던 최고의 TV쇼 (The Greatest Show You’ve Never Seen)」, 제노7(geno7)의 「와리오 랜드 4의 기묘한 음악과 사운드 디자인 (The Bizarre Music and Sound Design of Wario Land 4)」, 루벤gv(reubengv)의 「라이브 TV에서 러시안룰렛을. 뭐가 잘못되겠어? (Russian Roulette on live TV. What could go wrong?)」, 그리고 갤럭틱 홀(Galactic Hole)의 「가면 쓴 무용가들: 내가 알지 못했던 신들을 만나기 (Maksed Dancers: meeting the gods I never knew)」 등이 있다. 내가 이런 영상들을 시청하는 동안 즐겼던 만큼 「사이렌헤드의 경우」가 여러분들에게 나름대로 먹을 만한 반찬 영상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