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자신의 과거를 스스로 불지르지 않았다.”
어제의 노동으로 인해 몸 구석구석 특히나 허리 끝에서 꼬리뼈 사이 이음매가 저리는 와중에 신생공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해당 작업이 차라리 휴먼 다큐가 됐으면 좋겠다는 심정이다. 노동 집약적 노동을 통해 전시를 전시장을 건사하는 (미술계) 사람들의 노동 집약적인 며칠 같은 것. 그렇다. 전시를 만들고 부수는 일은 심지어 매년 최고치를 갱신하는 폭염 하에서 그런 일을 감행한다는 건 여러모로 미친 짓이다. 물론 이때의 미침은 병리적인 현상을 의미하는 게 아니며… 다만 어제 가설 무대에 망치질 하다가 그냥 내 머리를 갈기는 게 어떨지 문득 고민했던 순간들이 파노마라처럼 스쳐갈 뿐이다. 물론 어제의 노동은 신생공간이 아니라 00미술관에서 진행됐다는 사실 그렇기 때문에 파노라마는 한층 비대한 영사기와 스크린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 그렇기 때문에 양자의 사실을 종합했을 때 어찌됐든 폭염은 병리적이다.
기후는 갈수록 이상하고 왜 우리는 전시를 부수고 있는지 그게 더 이상하다. 당분간 전시 폐기물 이전에 폐기물을 전시하고 있다는 느낌이 도처에서 엄습할 것이다. 태초에 영상이 있는 게 아니라 영상을 물리적으로 지지하기 위한 가설 무대와 화려한 복합 구조물과 마스킹 테이프로 대변되는 어떤 위상학적 감각이 선행한다. 영상이 시간성을 다룬다는 가설은 현장의 관점에서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작가 및 기획자와 설치 노동자의 고충을 이분법적으로 사고하고 싶지는 않다. 사실 그렇게 하고 싶지만 나에겐 미술 비평가로서의 윤리 의식이 있으므로… 그러나 줄담배 피우면서 나에게 이런 노동을 위탁한 (물론 페이는 받았음.) 클라이언트를 저주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 없는 바로 그 순간에 윤리 같은 건 무쓸모다. 그것 자체가 또 다른 폐기물이다. 예컨데 XX! XXX들. 아니 XX을 만들었으면 XX가 XX을 져야지 지금 그 XX들은 어디에 있어? 진짜 X같음.
이 모든 건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하기 위해 담배 타임을 반복하는 동안 조성되는 공유재다.
바야흐로 2010년대 중반.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신생공간이라 불렀으나 아무도 그 이름에 감응하지 않은 채 각자의 터에서 소규모라기보단 그냥 청년 임차인의 겸허한 자세로 운영 중인 전시장들이 점차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비평하기 위해 앞으로 그것들을 신생공간이라고 눙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숙지하자. 화이팅. 그 당시의 우리를 수소문해서 인터뷰를 하고 싶다. 세간이 유포했던 세대론과 무관하게 어쩌다 전시장 아니 신생공간 운영이라는 고역을 택하고야 말았는지. 고역은 정말 고역이었는지. 사실 운영 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거의 상부 상조하며 다양한 역할 노동극을 수행했고 개중에는 나처럼 비평하는 사람들도 엿보였다. 지금보다 덜한 폭염을 체감하며 신생공간에서 기획한 전시 및 각종 프로젝트를 관람하기 위해 서울 도처를 헤맸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가지만 그건 노동이 아니었음을. 그 이상으로 비평이든 뭐든 우리는 자발적으로 노동에 종사했다 카더라. 비록 나는 임대료에 기여하지 못할 글만을 재/생산했지만.
일전에 연선 씨가 언급한 ‹바벨›(2015)이 처음으로 상영됐던 그 역사적인 순간에 나는 없었다. 어디 처박혀서 뭔가 다른 작업에 대한 글을 쓰고 있었던 것 같은데 도대체 왜 그랬는지 왜 나에게 역사는 항상 불발되는지 모를 일이고. 통칭 ‘반지하’에서 ‹바벨›의 최초 관객으로 회자될 법한 사람들도 수소문해서 인터뷰를 하고 싶다. 어쩌면 나의 신생공간 다큐멘터리는 바로 그들의 인터뷰로 서두를 떼야할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물론 김희천은 김희천에 불과하다. 그는 신생공간의 선지자가 아니다. 그냥 어느 날 문득 GV 같은 걸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바벨›을 만들었다는데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바로 그 믿거나 말거나와 연루된 경험을 좀 더 추궁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그날 ‘반지하’에 있었던 관객 분들은 ‹바벨›을 감상하면서 믿거나 말거나의 느낌을 공유했는가? 작업에 선행하는 GV와 GV를 위해 만든 영상 작업의 공모는 어쩌다 이렇게 됐는가?
앞서 열거한 질문들은 인터뷰를 통해 함께 곱씹을만하다. 이를테면 그 당시엔 (내가 ‘반지하’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은 차치하고) 아무도 ‹바벨›이 국내 미술계에서 정전으로 남을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믿지 않았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리는 영험한 분위기라고는 1도 없는 실제 반지하에 모여 앉아 수근거렸을 뿐이다. 그런데 누가 정전을 감히 정전이라고 부르는지 정전을 공인하기 위한 무슨 가이드라인이 배포된 것도 아니고 설사 가이드라인이 있다 한들 왜 하필 ‹바벨›을? 이렇게 인터뷰는 미궁 속으로 빠진다. 신적 의지가 개입하지 아니한 ‹바벨›의 반지하 탈출기를 회고하다 바야흐로 2023년에 도달한 김희천의 작가적 위상에 대한 사담으로 자꾸만 새는 것. 그러다 우리는 다시 미로의 정점인 신생공간으로 회귀하고 만다. 신생공간은 서울 특정적 현상이다. 전시장으로 삼을 만한 임차 공간은 서울 외부에도 널려 있지만 지금도 그 당시에도 미대와 그것의 사회적 인프라는 대개 서울에 분산 투자돼 있으며 그러므로 우리는 서울에서 미대 졸업생의 이름으로 파산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즉 80년대생 미술가들도 한때 얼치기 미대생이었다.
상부 상조에 기반한 역할 노동극은 보다 심화된 버전의 졸업 전시라고 할 만하다. 일단 작업할 필요를 절감하는데 아티스트 피를 포함해 우리끼리 지금 당장 노동의 대가에 대한 정당한 합의에 이를 수 없으니 일단 더불어 뭔가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최소한 커먼센터 이전까지는 XX! XXX들. 아니 XX을 만들었으면 XX가 XX을 져야지 지금 그 XX들은 어디에 있어? 진짜 X같음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드물었다. 미술 생산자 모임은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을 테지만 사실 그것은 우리가 아닌 현행 제도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경제적 권한과 생존 욕구의 문제에 가깝다. 그리고 나는 아직까지도 나의 경제 수준에 비추어 스스로 납득할 만한 페이를 받은 적이… 있나? 잘 모르겠다.
‹바벨›은 서울을 다룬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서울만을 다룬다. 이제 중요한 것은 웹에서 대량으로 배출되는 3D랜더링 폐기물로 인한 전세계적 인지 과부하와 비/환경 재난이 아니라 우리에게 세계는 서울과 동의어이며 고로 서울 멸망=세계 멸망이라는 사실이다. 글로벌리즘의 종식. 물론 ‹바벨›의 내레이션은 아르헨티나어로 구술되지만 아르헨티나는 지방 미술대와 유사한 맥락에서의 타지일 뿐이다. 즉 타지가 아닌 서울을 거점으로 삼을 수 밖에 없는 신생공간과 결부된 어떤 운명론적인 하중이 존재한다. 다시 백 투 더 2010년대 중반. 서울. 내 기억 상으로 ‘반지하’는 상봉동 즈음에 있었고 ‘교역소’라는 또 다른 신생공간도 상봉동과 그리 멀지 않았다. 심지어 그 당시 내가 지금은 해체주의의 말로에 빠진 정상 가족과 함께 살았던 모 브랜드 아파트에서 상봉동까지는 지하철로 세 정거장 남짓이었다. 만약 부모님께서 그 아파트를 성급하게 매물로 내놓지 않았더라면! XX! 그와 별개로 ‹바벨›의 최초 상영이 우리 집 근처에서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었다니 이게 운명이 아니라면 모든 운명론은 아마 K-로맨스 드라마의 각본으로 좌초될 것이다. 즉 나는 미술 비평가로서 ‹바벨›을 감히 정전이라 부르며 그에 관해 쓸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러나 주지하듯 ‹바벨›이 모든 사건의 전모는 아니다. 그건 다큐멘터리의 서두일 뿐 인터뷰는 계속된다. 나는 2015년 여름 즈음에 ‘교역소’에서 밤새 진행했던 도무지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기억력 좋으신 분들의 제보 부탁 드림.) 릴레이 퍼포먼스 및 상영회를 거의 끝까지 주행했다. 사실 주행까지는 아니고 ‘교역소’의 옥상에 가설된 무대 비슷한 곳에서 이어지는 누구인지도 모를 작가들의 작업을 보다 말다 주변 사람들과 가끔 수다도 떨었다. 모든 게 평화롭다. 왜냐하면 우리 집은 여러분과 달리 여기서 고작 지하철로 세 정거장 남짓… 이때의 여러분은 지금 모두 어디에 있을까? 물론 개중에는 나와 동행한 80년대생 아닌 비수도권 미대 출신 동기들도 있다. 심지어 그 중 하나는 신생공간에 대한 오타쿠적 애착을 느끼던 관객 1인으로서 나보다 한참을 초과하는 빈도수로 전시 보러 다니다 00미술관에서 무슨 굿즈에 가까운 훈장도 수여 받았다. 조만간 그 분의 기억을 심폐 소생해서 다큐의 해상도를 높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 듯. 아마도 집 어딘가에 소장하고 있을 훈장이랑 같이 기념샷도 찍고 말이다. 훈장이라니. 생각만으로 기분이 고조된다.
상봉동 카르텔이든 뭐든 신생공간에는 분명 아직 드러나지 않은 역학 관계가 있다. 이를테면 박해천 같은 선생님을 인터뷰에 섭외해서 신생공간 중심으로 당시 서울의 사회지리학적 생태계를 조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사자성을 넘나드는 인터뷰의 연속체 가설. 물론 노동 집약적 노동을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과거의 내가 트위터에서 미술 제도에 대한 억까를 습관적으로 구사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나를 현실 블락했지만 그 사실을 무릅쓴 채 어떻게든 여러분에게 호소할 필요를 절감하는 바이다. 심지어 그런 억까마저 본 작업에 사료로서 포함될 수도. 억까의 근원지인 SNS가 초래한 타임라인의 감각은 우리가 경유하고 있던 과거를 실시간으로 무산시켰다. 혹은 과거가 무산된 자리에서 신생공간이라는 이름이 갈수록 유포되고 공유되고 심지어 당사자들마저 그것을 일종의 상징 자본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 또한 억까라면 나는 이제 미술 비평가로서 수장될 운명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이번엔 화이팅이 아니라 아멘. 아멘을 중얼거린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의 비극적인 말로가 아니다. 우리에겐 정말이지 과거를 숙고하기 위한 의욕이 지나치게 부진하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는 항상 논외로 둔 채 신생공간 너머로 파쿠르에 가까운 비약을 반복하다 보니 대다수는 사라졌고 무슨 작업은 정전의 위치를 저 혼자 선취한 것처럼 보이고 지금으로선 나조차도 믿지 않는 정전만을 원체험으로 삼을 뿐이다. 다시 ‹바벨›에 대한 얘기로 바로 그 지점으로 돌아가보자. 작년 여름 즈음에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진행 중이던 모 전시에서 우연찮게 ‹바벨›을 맞닥뜨렸을 때 사실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다시 작업실 가는 길에 구글로 확인해보니 <바벨>이 아니라 <썰매>(2016)였다. 일단 우리는 이런 기억의 오기를 ‘바벨 트라우마’에서 연원한 것이라고 추정하자. 흑백 처리된 (무빙) 이미지. 아르헨티나어인지 뭔지 모를 내레이션이 염원하는 총체적 파국의 현장. 3D랜더링 폐기물로 전시된 서울을 계속 부수고 만드는 1인칭 시점. 기타 등등. 갑자기 단체 관람하러 온 교복 차림의 학생들이 전시장에 등장했고 그들의 관점에서 ‹바벨›이 어떤 의미나 가치가 있을지 궁금했으나… 그냥 속으로 결론지었다. 이제서야 ‹바벨›은 여러모로 시대착오적이다. 그것이 다루는 서울은 더 이상 현전하지 않는다. 그것이 다루지 않았으나 이미 포함돼 있던 서울도 마찬가지다.
이번 다큐에는 카메라로 기록할 만한 장면이 사실상 부재한다. 지금은 전시장 아닌 서울 곳곳을 명소로 삼아 떠나는 다크 투어리즘은 신생공간이 파국에 불과했다고 토로할 뿐이다. 나를 포함한 인터뷰 당사자들의 포즈도 궁금하지 않다. 다만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은 한때 신생공간과 연루됐던 경험을 과거가 아니라 각자의 사적인 기억으로 날조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혹은 그런 기억의 네트워크를 통해서만 과거를 가까스로 체감할 수 있다. 신생공간은 아카이브의 총체가 아니다. 무엇보다 애초에 신생공간으로 수렴되는 아카이브 기록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억의 네트워크가 노출하는 무방비한 틈새에서 때때로 역류하는 과거에 대한 정동이야말로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전부다. 그런 사실이 어떤 의미 작용을 생성하면서 스스로 지속할 수 있는지 ‘나’는 어떻게 그 과정에 합류할 수 있을지 가늠하는 동안 우리라는 모호한 범주는 갈수록 모두를 포괄할 것이다.
이는 모두가 우리와 동화된 채 오로지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의 눈치를 보면서) 조성되는 유사 카르텔을 전망하지 않는다. 더불어 신생공간이 그런 진정한 파국을 일시적으로 초월했다는 식의 터무니 없는 낙관론을 유포하고 싶지도 않다. 설사 유포한들 트위터 아니 X의 종사자들은 그게 사실이 아님을 직감하고 나를 또 다시 현실 블락할 것이다. 다만 신생공간을 지금처럼 모두에 의해 억압된 상태로 계속 방치한다면 우리는 과거의 안팎에서 서로를 매개할 수 있는 역량을 지속적으로 상실할 것이다. 물론 신생공간은 폐기돼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바야흐로 2023년 그것이 최소한 암시라도 할 수 있는 새로운 관계의 형식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관계가 누구에게 혹은 누구를 위해 새로운가? 국내 미술계에서 점차 이슈로 소급되는 퀴어 및 소수자 정치를 위한 베리어프리? 물론 베리어프리는 반드시 새롭지 않은 관계의 형식에 코드화된 복잡한 암호 체계를 구성한다. 그러나 이 모든 건 자연발생적으로 도래한 결과가 아니다.
우리에겐 여전히 현재 혹은 현재를 유지하기 위한 동시성의 감각이 필요하다. 과거는 분명 현재에 대한 징후로 혹은 그 역의 관계를 통해 잔존해 있다. 지금 시점에서 신생공간을 다큐멘터리적인 관점에서 재/구성한다는 것은 우리가 각자의 영역에서 결속된 상태가 어떤 과거와 능동적으로 적대하거나 최소한 연루될 수 있는지 모색하는 과정과 다름없다. 곧이어 나는 ‹바벨›이 재현한 세계상이 그 자체로 붕괴될 조짐을 느낀다. 그 세계상의 배후에서 ‘우리’는 언제든지 분주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