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5
Critic
우정은 실패를 알아차리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 폴 W.S. 앤더슨 영화와 액션의 교환
함연선
마테리알 편집인



〈몬스터 헌터〉(2020)의 예고편을 보고 극장에 들어섰다면, 당신은 조금 의아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고편만 언뜻 보고 이 영화의 내용을 짐작한다면, 군인 대여섯 명으로 이뤄진 작전팀이 우연히 차원 이동을 하여 (기이하게도 우리가 ‘아는’ 공룡과 비슷하게 생긴) ‘몬스터’들과 싸우는 내용일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 영화의 맨 앞부분 중에서도 앞부분에 해당할 뿐이다. 군인들은 모두 죽고 남은 것은 특별한 이름을 가진 아르테미스 대위(밀라 요보비치 분)뿐이며, 영화의 대부분은 거대한 바위산이 있는 광활한 사막의 풍경에서 고군분투하는 그녀와 몬스터 헌터(토니 자 분)가 액션의 교환 과정에서 쌓는 우정의 내용을 담고 있다.

아르테미스와 몬스터 헌터 간의 액션 교환에 앞서 존재하는 것은 ‘말’소리다.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한 두 인물은 서로에게 의미가 되지 못하는 말소리를 내뱉는데, 이때 의미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무의미’가 된다는 것이라기보다는 ‘가닿을 수 없는 의미’가 된다는 것에 가깝다. 아르테미스가 하는 말을 몬스터 헌터가 이해하지 못하고, 몬스터 헌터의 말을 아르테미스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상대가 어떤 의미를 가진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이때 의미화의 ‘실패’를 알아차린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 실패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액션은 교환될 여지 없이 그저 단행될 뿐이다.

계속되는 의미화의 실패 앞에서 곧장 취해지는 ‘액션’이란 다음과 같은 데에서 발견할 수 있다. 결박하고 결박당하며 목숨을 건 격투를 벌이고 난 뒤, 아르테미스는 화해를 청하는 의미에서 몬스터 헌터에게 허쉬 초콜릿을 건낸다. 몬스터 헌터는 초콜릿 냄새를 맡더니 즉각 인상을 찌푸리고, 초콜릿은 다시 아르테미스에게로 간다. 그녀는 초콜릿 한 조각을 부러뜨려 입 안에 넣고 ‘음~’하며 신음소리를 낸다. 이때 과장되게 움직이는 구강구조 주변 근육에 의해 행해지는 액션은 몬스터 헌터에게 미약하게나마 신뢰를 주고, 그로 하여금 다시 초콜릿을 건네받아 먹는 것을 한번 시도하게끔 한다. 바위 벽에 난 이끼를 먹으며 연명하던 그에게 입안에 들어간 초콜릿은 당연히 달고 맛있다. 이러한 액션의 교환 이후, 의미는 상대에게 가닿을 수 있다. 아르테미스가 초콜릿을 가리켜 ‘초콜릿’이라 말하자마자, 몬스터 헌터는 ‘초콜릿!’이라 외치며 칼을 들이민다. 물론 아르테미스가 자신이 가진 게 그뿐이라며 바지 주머니를 모두 뒤집어까고, 몬스터 헌터가 자신의 가슴팍에서 물통을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며 두 사람의 사이는 원만하게 마무리된다. 우정의 시작이다.

혹은 두 사람이 1m 이내에서 대면접촉을 처음 한 순간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다. 처음 보는 몬스터들에 의해 지칠 대로 지친 아르테미스가 목마름에 시달리며 홀린 듯이 난파된 선체에 오른다. 선체 깊숙한 곳에 이르러 주변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그녀가 작은 칼을 빼들고 주변을 살피자 몬스터 헌터는 그녀의 뒤에서 급습하여 목에 칼을 들이밀고 무어라 소리친다. 아르테미스는 항복의 의미로 칼을 바닥에 떨어뜨리지만, 그건 몬스터 헌터가 방심하는 틈을 타서 그를 공격하기 위함이었다. 이 액션의 교환은 일견 ‘가닿을 수 없는 의미’가 아닌 ‘(이미 그 의미가 닿고 닿아) 너무도 명확하게 인지된 적의’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몬스터 헌터가 이(異)세계에서 온 아르테미스와 그녀의 부하들을 (몬스터로부터) 도망치도록 도우려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난파선에서의 액션과 그 교환 역시 ‘가닿을 수 없는 의미’로부터 시작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폴 W.S. 앤더슨의 영화는 ‘가닿을 수 없는 의미’에 의해 동력을 갖는다. 의미가 ‘가닿을 수 없다’는 것은 요컨대 이런 뜻이다. 의미는 ‘초콜릿’이라고 말하는 아르테미스에게 내적으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그러나 관객은 아르테미스의 언어만을 해독할 수 있으므로 그녀에게 ‘초콜릿’이라는 내적 의미가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녀의 ‘말’소리를 ‘해독’할 수 없고 단지 해독의 불가능성만을 감지한 몬스터 헌터에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가닿을 수 없는 의미’란 이미 ‘의미’가 아니며—그러므로 무의미(無意味)도 아니다—전의미(前意味)라고 할 수 있겠다. 전의미는 ‘말하는 사람’의 실패와 ‘듣는 사람’의 실패 모두를 전제한다. 액션의 교환은 이 실패를 딛고 상대를 해독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발현되며, 그 의지는 해독에 대한 일말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이어진다. 말하자면 그들은 해독의 가능성을 ‘믿는다.’ 따라서 액션의 교환은, 반응과 재반응의 사슬로만 이어지는 액션의 단행과는 다르다.

〈몬스터 헌터〉에서 CGI 몬스터들이 인물들에게 가하는 무자비한 공격은,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인물들의 죽음은 액션의 교환보다는 단행의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할 것처럼 보인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오직 이 영화의 인물들만을 공격하기 위해 유도미사일처럼 수많은 몬스터들이 한 지점으로 달려드는 일은 의아하기까지 하다. (도대체 이 괴물들은 어떻게 연명한단 말인가? 심지어 네르슐라는 거미떼처럼 무리지어 인물들을 쫓는다. 그 많은 네르슐라는, 그리고 그들이 낳은 수만 개의 알과 그 알에서 태어난 새끼들은 가끔씩 차원 이동을 해서 아무것도 모른 채로 잡아먹히는 이세계의 인간들 외에, 무얼 먹는단 말인가?)  그러나 존재론적인 측면에서라면, CGI 괴물들과 인물들의 합작 장면 역시 액션의 교환 행위로서 바라볼 수 있다.

폴 W.S 앤더슨이라는 기이한 필모를 가진 감독의 영화에는 CGI 괴물들과 그 쌍둥이 형제들이 빈번히 등장한다.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의 좀비들은 괴이하여 언제나 매력을 갖는다. 좀비에서 더 나아가 생체무기로서 개발된 괴물들 역시 그가 탄생시킨 형제들이다. 한편 생물체는 아니지만 〈폼페이〉의 베수비우스 화산과 그것이 고통스럽게 내뿜는 붉은 파편들도 CGI 괴물과 한배에서 태어난 쌍둥이다. 앞서 다룬 근작 〈몬스터 헌터〉의 몬스터들 역시 떠올릴 수 있다. 폴 W.S 앤더슨은 그 어떤 감독에게 질세라 아주 적극적으로 그리고 ‘가시적’으로 이 CGI 괴물들을 사용한다.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에선 실외의 풍경마저 CGI로 가득차 있다. 좀비 새들이 날아다니는 하늘과 완전히 폐허가 된 도시의 풍경은 CGI적 수공예품이다. 이 CGI들과 액션을 합작해야만 하는 행위자로서의 액터는(혹은 등장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는), 없는 존재 혹은 불충분한 존재들에 대응해야 하는 숙제를 안는다. 실사 〈라이온 킹〉(2019)의 경우와는 다르게, 대부분의 CGI는 촬영과정이 아니라 촬영 후에 덧입혀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CGI 괴물들과 풍경은 액터에게 있어 전의미적 과제가 된다. 그러한 당면 과제는 CGI 괴물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두 행위자에게 상대는 이세계의 타자(외국인, 아이, 동물)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CGI 괴물들과 액터 사이에서 발생하는 액션의 교환은 〈레지던트 이블〉과 〈폼페이〉, 〈몬스터 헌터〉를 관통하는 각별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폴 W.S. 앤더슨의 영화에서 눈에 띄는 액터는 밀라 요보비치다. 내게 처음으로 그녀가 각인된 영화는 뤽 베송의 〈잔 다르크〉나 〈제 5원소〉였지만,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에서의 액션이 밀라 요보비치라는 액터를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에 이견을 제시할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녀가 T-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전능한 힘을 가지게 되는 ‘앨리스’를 연기하면서 보여준 액션들은 단순히 좀비들을 제압하고 (시리즈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이해할 수 없는) 엄브렐라사(社)의 임원진들을 총으로 쏴 죽이는 데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쇳소리 섞인 목소리에서 비어져나오는 신음, (매우 능숙하면서 습관적으로 보이는) 무기를 휘두르는 손목의 회전, 돌격 진적의 찡그림 같은 것들도 쾌감을 주기에 충분한 액션이다.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에서 본 그 모습들 때문에 〈몬스터 헌터〉에서의 밀라 요보비치가 전혀 새로워 보이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같은 이유로 ‘앨리스’가 좀비 천지가 된 세상을 구하고(〈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의 마지막 편에서 T-바이러스에 감염된 존재는 모두 죽고 세상은 정화된다) ‘아르테미스’로 개명하여 이세계의 몬스터들과 싸우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말도 안되는 설정을 상상케 할 만큼 두 영화에서 그녀가 연기하는 인물은 비슷한 구석이 많다. (후자가 조금 더 잘 웃고 농담도 할 만큼 호쾌하다는 차이는 있다.) 이러한 사실은 배우 개인의 실패나 캐릭터 구성의 실패로, 더 나아가 극영화로서의 〈몬스터 헌터〉의 실패로까지 여겨질 수도 있을 만하지만, 나는 거듭 교환되는 액션 속에서 ‘앨리스-요보비치’가 조금씩 새롭게 구성된다고 주장하고 싶다. 이는 폴 W.S. 앤더슨도, 배우인 밀라 요보비치도 원하지 않는 결론일 테지만, 〈몬스터 헌터〉에서 새로운 템플릿에 적응하는 앨리스-요보비치가 (〈레지던트 이블〉의 팬으로서 내게) 흥미로워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시리즈가 끝남과 동시에 종료되어 버렸다고 할 수 있을 ‘캐릭터-액터’의 삶이 연장됨과 동시에, 〈레지던트 이블〉 - 〈몬스터 헌터〉라는 새로운 시리즈가 발명되는 것이다. 이 새로운 시리즈에서 ‘캐릭터-액터’와 ‘CGI 괴물’은 전의미를 매개로 액션을 교환하며, 이 교환은 또한 ‘가 닿을 수 없는 의미’로서의 ‘캐릭터-액터’를 관객에게 제시함으로써 새로운 우정 쌓기를 시도한다.






노매드랜드에서 노-매드-랜드로

책상의 측면 돌기: 〈에란겔 다크 투어〉 기행

노동을 구하지 마라: 〈깃발, 창공, 파티〉와 상황주의에 대한 소고

공원의 풍경(들): 다미앙 매니블의 〈공원Le Parc〉

“안심하시고 (...) 편안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신정균 개인전 ⟪아크로뱃⟫의 영상에 관한 노트

쓸쓸한 불빛 아래 활자들: ⟪동시대-미술-비즈니스: 동시대 미술의 새로운 질서들⟫

Unboxing: 발생하는 유기체

우울, 냉소, 충격의 트라이앵글을 넘어서: 공개서한 이후의 메모
시리즈의 감각: 예능 < f(다음 화 이어보기) < 영화

대화를 멈춰선 안돼: 〈마인드헌터〉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 〈스위트홈〉에 대한 노트는 아닌 글

︎ 우정은 실패를 알아차리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폴 W.S. 앤더슨 영화와 액션의 교환

스콧 긍휼 평강 사랑: 〈메트로폴리스〉, 〈프로메테우스〉 그리고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

이래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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