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5
Critic
Unboxing: 발생하는 유기체
함윤이
작가



언박싱(unboxing)이라는 단어를 먼저 살펴보아야겠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언박싱’의 순화어로 ‘개봉(기)’를 제안하며, 위키백과에서는 “첨단 소비자 제품의 포장 풀기”로 설명한다. 원어 자체의 풀이는 “새 상품을 개봉하고 사용해 보는 것”이다. 통틀어 직역하자면 “포장 풀기” 또는 “상자 열기”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언박싱’을 풀이하거나 정의할 때마다 전제되는 시간대가 있다. 특히나 국립국어원에서 제안한 ‘개봉(기期)’가 직접적이다. ‘언박싱’의 시간대는 필수적인 움직임을 필요로 한다. 움직임은 특수한 상황을 기약(期約)한다. 이 상자 안에는 무엇인가 있다. 그것을 꺼내어 당신들과 함께 공유하겠다.  

PRACTICE COLLECTIVE(이하 프랙티스)의 전시 《Unboxing》의 “상자 열기”는 관객들의 입장과 동시에 이루어진다. 관객들이 문을 열고 모퉁이를 돌아가는 순간, 빛과 소리들이 몸들과 맞부딪친다. 그 순간의 충돌을 활자로 전달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Unboxing》은 무엇보다도 신체적 체험을 목적으로 기획된 전시이기 때문이다. 프랙티스는 빔 프로젝터와 스피커 등의 기계 장치가 순환하는 일정한 시간대를 설정하고 있다. 정해진 시간마다 빛과 소리가 반복된다. 프랙티스는 이 빛과 소리를 “오디오 비주얼이라는 개념”으로 정의한다. 전시 서문에 따르면, 프랙티스는 바로 이 개념을 탐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들이 말하는 오디오 비주얼이 무엇인지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랙티스의 일원인 권시우의 글, 「오디오 비주얼에 대한 가설 (1) – 의사-지지체로 작동하는 ‘이미지’」(이하 「오디오 비주얼에 대한 가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은 2016년에 발간한 『오큘로』 1호의 특집 「오디오비주얼 리서치, 지식과 감각 사이에서」를 언급하며 시작한다.  
        권시우는 해당 텍스트들이 오디오 비주얼의 정의에 집중하기보다 “아티스틱 리서치에 기반한 무빙 이미지” 작업을 다루고 있으며, “무의식중에 오디오 비주얼과 무빙 이미지를 혼용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권시우는 무빙 이미지와 차별화되는 오디오 비주얼의 조건을 나열한다. 오디오 비주얼이란 무빙 이미지의 하위 장르가 아니며, 그와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개념이다. 오디오 비주얼에서 작업을 주도하는 쪽은 이미지가 아닌 소리다. 여기서 이미지의 역할은 그에 반응하는 서포터(supporter)에 가깝다. 『오큘로』 1호에서도 언급하였듯, 소리는 “시각적 이미지보다 덜 재현적인 양식”이며, “모호하고 임시적인 공간”**이다. 따라서 소리에 반응하는 이미지는, 기존의 극적 서사에 기반을 둔 방식과는 상이한 방식으로 기능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오디오 비주얼은 서사에 의존하여 이미지를 부차적으로 다루는 무빙 이미지 작업의 대안적 경로로 거듭날 수 있다.
        「오디오 비주얼에 대한 가설」의 주장은 《Unboxing》이 설치된 방식 곳곳에서 드러난다. 전시는 세 대의 빔 프로젝터와 네 개의 스피커, 마주보고 선 여섯 개의 좌대로 구성되었다. 각 모서리마다 설치된 스피커가 반복하여 특정 소리를 주고받는다. 이는 프랙티스의 일원 송치호가 직접 제작한 사운드로, 정해진 루틴에 따라서 핑크 노이즈와 사인파를 주고받는다. 벽에 영사되는 빛의 너울거림은 음향을 가시화한 움직임처럼 보인다. 송치호는 마찬가지로 자신이 만든 레진 오브제를 빔 프로젝터 앞에 위치시킨다. 프로젝터 렌즈 앞에 설치된 레진 오브제는 제각기 상이한 크기와 굴곡으로 만들어졌다. 프로젝터 안의 이미지-슬라이드 쇼는 레진을 투과하며 흐릿해지고 일그러진다. 결국에 관객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오브제에 의하여 한없이 묘연해진 빛의 움직임, 또한 슬라이드 쇼의 간격마다 찾아오는 깜빡임뿐이다.  
        이들이 서로에게 공명하는 과정을 통해서, 《Unboxing》은 자신을 하나의 상자로서 꺼내놓는다. 전시장의 촬영 기록을 감상하거나, 소리만을 청취하는 방식으로는 상자의 알맹이를 오롯이 경험할 수 없다. 관객들은 상자를 열어젖히는 동시에, 그 내부로 들어서야만 한다. 입장하는 순간 그들은 상자를 열어젖히는 몸짓인 동시에 핵심적인 알맹이가 된다.  
        신체들은 빔 프로젝터들의 사이를 지나다니며 빛의 방향을 해친다. 그들은 벽 앞을 가로막고, 좌대 위로 그림자를 드리운다. 전시를 감상하는 이상, 관객들은 스크린으로 기능하던 벽-좌대와 빛의 관계를 필연적으로 침해할 수밖에 없다. 동시에 그들은 자신의 신체로써 빛을 반사시킨다. 영사의 방해물인 동시에 순간적인 스크린으로 거듭나는 셈이다. 이는 극장과 같이, 일정한 방향으로 스크린을 응시하는 장소와는 다른 방식의 관계를 성립시킨다. 바로 이 관계야말로 《Unboxing》이 목적하던 장소다. 시선의 일방적 대상(스크린)을 흐트러뜨리면서, 보다 능동적으로 조형성을 감각할 수 있는 장소. 전시는 거기서부터“오디오 비주얼이라는 개념”이 쌓을 수 있는 관계를 제안한다.    

프랙티스는 이번 전시를 통하여 오디오 비주얼이라는 특정 ‘지식’을 (시청각 장치를 통한) ‘감각’적 실천으로 탐구***한다. 이 같은 과정은 흥미롭게도, 『오큘로』 1호가 주목한 “아티스틱 리서치”의 적합한 사례처럼 보인다.  
        다만 그들이 논하는 오디오 비주얼이 내부의 ‘이미지’를 적절한 지지체로 활용하고 있는가는 아직 모호하다. 과연 전시의 공간을 점유하는 빛을 ‘이미지’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미지를 “지각 가능한 형태를 지닌 상”이라는 사전적 정의로서 가정할 때, 전시 공간을 점유한 빛은 형상이라기보다 감각적 파동에 가깝다. 이들은 상(像) 또는 영상(影像)이라기보다, 그것의 기본 요소로만 읽힌다. 물론 전시의 조형적 경험을 ‘이미지’로 한정하는 대신, 오디오 비주얼의‘비주얼(visual)’-사전적 정의는 1. 시각의 2. 눈으로 보는 3. 시각 자료 등이 있다-로 넓혀서 읽을 수도 있겠다. 다만 그 경우, 오디오 비주얼이 기존의 ‘무빙 이미지’의 대안으로 새로운 ‘이미지’의 조건을 창출할 수 있다는 주장은 얼마간 흐릿해진다.  
        이 점은 프랙티스의 일원들 사이에서도 미리 인지된 듯하다. 전시 서문은 《Unboxing》 내부의 시각적 요소를 이미지가 아닌 “이미지의 자취”로 정의한다.  이어서“원본의 가치가 무산된 곳에서, 비로소-무빙 이미지를 대체하는-시청각적인 경험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약속한다. 이 같은 약속은 결국 전시의 시각적 경험이 ‘이미지’라고 불리기에는 충분치 않다는 점, 또한 무빙 이미지의 대체제로서 오디오 비주얼은 이미지의 “자취” 정도만을 꺼내 보일 수 있다는 한계를 인정하는 듯 보인다. 물론 앞서 살펴본 권시우의 글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는 오디오 비주얼에서 작업을 주도하는 역할은 이미지가 아닌 소리(사운드)에 있음을 강조한다. 실제로 전시장 전체에 영사되는 빛은 스피커의 소리(노이즈)를 수용하고, 이에 반응하는 듯 보인다. 빛이 일종의 서포터로서 소리의 파장을 묘사한다는 점에서,《Unboxing》의 빛을 기존과 다른 메커니즘의 ‘이미지’로 읽을 수도 있을 테다.  
        그러나 여기에서 또 다른 질문이 고개를 든다. 과연 전시의 시청각적 경험이 명확한 선후 관계를 제시하고 있을까? 전시장 내부로 들어갈 때, 관객이 먼저 접하는 것은 빛도 소리도 아닌 그들이 총체적으로 혼합된 하나의 환경이다. 여기서 이미지/사운드, 혹은 오디오/비주얼을 해체하여 구분하려는 시도는 인위적으로 느껴진다. 물론 전시장에 설치된 각종 장치들(빔 프로젝터, 레진 오브제, 좌대, 스피커 등)은 서로 상이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관객이 마주하는 전시 환경은 각 기계 장치들의 위계보다는 그들 자체의 상호작용에 더 가깝다.  
        영화이론가 V.F 퍼킨스는 그 자신의 저서 『영화는 영화다(Film as Film)』에서 영화예술의 특유한 성질을 구성 요소 간의 복합체(complex)로 상정한다. 그는 영화예술의 기준을 정하기 위하여 각 구성 요소를 분리시킬 필요가 없음을 강조한다. 음악에는 음량, 음의 고저, 음색 등의 고유한 요소가 있고, 그러한 요소들이 항상 다른 것들의 움직임과 함께 어우러지듯**** 영화 역시 구성 요소 간의 유기적 연결로 구성된다. 각개 요소-이미지와 소리, 편집, 배우와 배경 등-들은 서로에게 반응하고 결합된다. 이들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통하여 영화예술은 자신의 매체특정성을 확보한다. 비록 일방향의 스크린을 지양하고 있다고 하나, 《Unboxing》이 작동하는 원리 또한 이와 유사하다. 전시는 내부의 구성 요소-빛, 소리, 레진 조각을 비롯한 오브제-가 결합하면서 비로소 활성화된다. 관객이 이들 사이로 들어갔을 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구성 요소들 간의 선후 관계가 아닌, 그들이 서로에게 반응하는 과정이다. 관객의 입장하며 상자가 열리는 순간, 전시는 각 요소들이 혼합된 유기체로 발생한다.    

프랙티스의 유기체를 작동시키려면 무엇보다도 실제의 공간이 필요하다. 그 안으로 들어설 수 있는 신체 또한 필수적이다. 그들이 제안하는 오디오 비주얼은 관객과 전시가 다양한 방향으로 연결되는 경험을 추구한다. 이미지를 관람할 수 있는 장소가 무수히 분할된 오늘날, 또한 물리적‘실체’로부터 거리를 늘려가는 지금에 와서, 이들이 제안하는 오디오 비주얼의 물질적 조건은 한계이자 새로운 가능성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대체로 온라인 동영상을 통해서 ‘언박싱’을 본다. 화면 너머의 인물이 포장을 뜯고 상자를 열어서 새로운 물건을 꺼내든다. 《Unboxing》의 그와 반대 방향의 운동을 요구한다. 관객은 화면 너머로 들어선다. 서버상의 커서나 좌표에서 뛰쳐나와, 물리적인 신체로서 등장해야 한다. 조건이 충족되는 순간 그들은 상자를 열어젖히며, 내부로서 참여한다. 실체의 타인과 환경을 강력히 요한다는 점에서 PRACTICE COLLECTIVE의 탐구는 지금의 미술이 어떠한 관계를 창출할 수 있는지에 관한, 유의미한 질문이 될 테다. 어쩌면 질문을 번복하는 과정이야말로 상자에서 물건을 꺼내어 발견하거나 발굴하는 몸짓,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 권시우, 「오디오 비주얼에 대한 가설 (1) – 의사-지지체로 작동하는 ‘이미지’」, 집단오찬.

** 박이현, 「민속지학에서 출현한 영화들 : 하버드 감각민속지학연구소」, 『오큘로』 1호, p. 48.

*** 오준호, 「지식생산과 비판적 담론생산 사이에서 예술적 실천의 함의」에서 인용 및 변형, 『오큘로』 1호.

**** V.F 퍼킨스, 『영화는 영화다』, 윤대협 옮김, 현대미학사, p. 16.





노매드랜드에서 노-매드-랜드로

책상의 측면 돌기: 〈에란겔 다크 투어〉 기행

노동을 구하지 마라: 〈깃발, 창공, 파티〉와 상황주의에 대한 소고

공원의 풍경(들): 다미앙 매니블의 〈공원Le Parc〉

“안심하시고 (...) 편안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신정균 개인전 ⟪아크로뱃⟫의 영상에 관한 노트

쓸쓸한 불빛 아래 활자들: ⟪동시대-미술-비즈니스: 동시대 미술의 새로운 질서들⟫

︎ Unboxing: 발생하는 유기체

우울, 냉소, 충격의 트라이앵글을 넘어서: 공개서한 이후의 메모
시리즈의 감각: 예능 < f(다음 화 이어보기) < 영화

대화를 멈춰선 안돼: 〈마인드헌터〉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 〈스위트홈〉에 대한 노트는 아닌 글

우정은 실패를 알아차리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폴 W.S. 앤더슨 영화와 액션의 교환

스콧 긍휼 평강 사랑: 〈메트로폴리스〉, 〈프로메테우스〉 그리고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

이래도 될까요?






마테리알(ma-te-ri-al)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북아현로 132-1 | 사업자등록번호 633-94-01282 | ‌통신판매업신고번호 2020-서울서대문-1730 | ‌발행인 다함께 박차차·정경담‌·함연선 | 편집인 다함께 박차차·정경담‌·함연선 | 문의 ‌carolblueagassi@gmail.com | C‌OPYRIGHT © 2019~. 마테리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