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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세영

축하합니다, 부산이 아시아의 미디어 아트 허브 도시로 거듭났습니다(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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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세영

축하합니다, 부산이 아시아의 미디어 아트 허브 도시로 거듭났습니다(겠냐고)

*본 원고는 예술경영지원센터의 ‘2025 한국미술 비평지원’ 사업의 후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부산시립미술관은 2024년부터 리노베이션 공사가 진행 중이다. 예정된 재개관은 2026년이다. 일상에서 가까이 두던 이 미술관이 얼마간 부재한 상태가 되니, 지역에서의 전시 관람 빈도는 확연히 줄어들었다. 부족해진 전시로 갈증을 느낄 것이라고 염두에 두었단 듯이, 부산시립미술관은 올해부터 지역을 벗어나거나(서울이나 온라인 공간), 지역 내 다른 전시 공간을 활용하며 본격적으로 기획전시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루프 랩 부산 Loop Lab Busan》(이하 ‘루프랩부산’)페어: 《루프 랩 부산 페어》(2025.04.24~26., 그랜드조선 부산)
포럼: 《미디어 아트 컬렉팅》(2025.04.24~25., 그랜드조선 부산), 《미술과 자본》(2025.04.25., 그랜드조선 부산)
전시: 《루프 랩 부산 전시》, 공간별로 기간은 상이함, 부산시립미술관 야외, 도모헌, 김해공항, 영화의전당, 부산박물관, 부산문화회관, 고은사진미술관, 부산 프랑스문화원 아트 스페이스, 카린 갤러리, 이웰 갤러리, 리앤배, 오케이앤피, 뮤지엄 원, 부산문화재단 F1963, 국제갤러리, 부산국제비디오아트페스티발(공간 힘), 디오티 미술관, 조현화랑, 리빈 갤러리, 소비지 갤러리, 해운대 플랫폼, 유카로 오토모빌, 시청 청사 미디어월, 영주맨션, 라우어 시니어타운, 동서대학교 디자인대학 (루프랩부산 홈페이지에 기재된 순서를 따름.)
역시 그렇게 마련된 전시 가운데 하나로, 국제적인 규모의 페어와 포럼, 그리고 지역의 여러 공간을 활용한 대형 전시-페스티벌이다. 그리고… 나는 반가워 마땅해야 할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절망과 비참함을 견디며 겨우 글을 쓴다. 오랜만의 부산시립미술관 전시를 볼 수 있게 된 것에서 오는 기쁨이 아니다. 그런 것은 오직 ‘전시가 예정되어 있다’라는 짤막한 소식으로 처음 접했을 때,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를 때, 찰나의 순간으로만 지나갔던 것 같다.

이 글을 다 쓰고도 (그리고 쓰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한동안 계속해서 우울감과 무력감이 이어질 것 같다. 화면 속 비어있던 흰 면에 잔뜩 쏟아낸 최초의 말들은 ‘국민신문고’나 ‘정보공개청구 포털’로 향할 만한 것들이 주를 이루었다. 이 글이 실릴 곳이 비평 웹진이라는 점에서, 나름대로 비평의 언어로 담아내려 노력했으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는 다음과 같은 맥락에 상응하는 “곤경”으로, 2년 전에 읽어두었던 것이 다소 늦게 도착한 기분이다. 미국의 미술평론가이자 미술사학자인 핼 포스터(Hal Foster)는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시대의 미국을 개탄하면서 “좌파 미술가들(과 비평가들)이 처한 곤경”을 다음과 같이 표한다: “부끄러움을 모르는(postshame) 정치 엘리트를 어떻게 흠잡으며, 또는 부조리를 일삼는 정당 지도부를 어떻게 조롱한단 말인가?”핼 포스터, 『소극 다음은 무엇? -결괴의 시대, 미술과 비평』, 조주연 옮김, 워크룸프레스, 2022, 7쪽. 이 글은 애당초 비평이 성립될 수 없는 이 기획 앞에 던지는 백기에 해당한다.

도널드 트럼프와 윤석열 정권에서 나타나는 통치의 방식은 언제나 사회의 미학적 상상력을 순식간에 초과, 압도, 말소시킨다는 공통점을 갖는다(물론 그 둘만이 그러하진 않겠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을 희생시키고 억압하며, 사회적 분열을 심화시키는 것이 주된 업무에 가까운 그들의 정치 행위 말이다. 이들은 “자신이 실행한 정책들이 야기한 가장 부정적이고 가장 재앙적인 결과를 자기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면서 위기에 의지해 살아남고 스스로를 강화”시킨다.피에르 다르도, 크리스티앙 라발, 『새로운 세계합리성』, 오트르망(심세광·전혜리) 옮김, 그린비, 2022, 9쪽. 이는 신자유주의의 특징이다. 신자유주의 그 자체는 어떤 재현으로도 쉽사리 선명하게 가시화되지 않겠지만, 동시에 너무나 분명하게 우리 일상에서, 그리고 최근의 부산시립미술관에서도 나타나있다. 부산시립미술관에, 루프랩부산에, 그 주위에 고스란히 맴돈다. 리노베이션 공사로 인해서 물리적인 공간적 실체를 갖지 않게 되어서 잠시 잠깐 그런 것일 뿐일까? 어느 시점에서부터인가 부산시립미술관은 신자유주의의 기류 위에서 떠다니고 있다.

1.
루프랩부산은 “기술과 인간이 융합되는 미래를 대비하는 시간성 기반의 디지털, 미디어 아트 플랫폼이며, 이에 페어, 포럼, 전시로 구성되어” 있다.루프랩부산 공식 홈페이지, ‘소개’ 카테고리, 내용 일부를 수정하여 인용, https://www.looplabbusan.com/about (최종 접속일자: 2025년 07월 01일), 이하 루프랩부산 공식 홈페이지 인용시 링크 주소를 생략함. 세 요소 중 페어의 경우, 본 전시-페스티벌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부산시립미술관이, 루프랩부산이 모델로 삼는 《루프 바로셀로나》(Loop Barcelona)가 본격화된 배경에서 잘 나타난다. 이 페어, 포럼, 전시 기반의 페스티벌은 2003년 “영상 예술을 홍보, 판매, 연구하기 위해, 콜렉터인 에밀리오 알바레즈(Emilio Álvarez)와 카를로스 듀란(Carlos Durán)이 바르셀로나의 한 호텔”을 거점으로 삼아 진행한 아트페어로부터 비롯되어, 이후 “2014년부터는 페어에 퍼포먼스를 비롯하여 도시 곳곳의 스크린 환경을 활용하여 공공성을 확보한 페스티벌”로 저변을 넓혀나갔다.김신재, 송지현, 「REVIEW_루프 바로셀로나 《프로듀스, 프로듀스, 프로듀스(드) Produce, Produce, Produce(d)》」, 『OKULO(오큘로)』온라인, 2019.04.15., https://www.okulo.kr/2019/04/review-001.html (접속일자: 2025년 07월 01일) 루프랩부산의 경우 해운대 소재 호텔 ‘그랜드조선 부산’의 13층이 페어에 활용되었다. 해당 층의 객실 전체는 참여 갤러리 단위로 구성된 일종의 부스로 운영되었다. 관람객은 여러 호실을 넘나들며 침대나 소파에 앉거나 누워서, 작품을 관람하고 작가나 갤러리 관계자 등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루프 랩 부산 2025》 메인 포스터 (출처: 부산시립미술관)


두 번째로 포럼은 《루프 바르셀로나》에서 페어 기간에 집중적으로 편성, 운영되는 ‘루프 스터디즈’라는 섹션을 차용한 것이다. 강연을 비롯한 “아티스트 토크, 전문가 미팅, 워크숍 등이 현장성과 학술성을 기반으로 밀도 있게 진행된다”.김신재, 송지현, 「REVIEW_루프 바로셀로나 《프로듀스, 프로듀스, 프로듀스(드) Produce, Produce, Produce(d)》」, 『OKULO(오큘로)』온라인, 2019.04.15., https://www.okulo.kr/2019/04/review-001.html (접속일자: 2025년 07월 01일) 마지막으로 전시의 경우, 페어와 포럼에 연계되어 함께 묶인 여러 전시를 가리킨다. 이는 지역 내 문화예술 기관과 공간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선보인 전시들로, 부산의 경우 26곳에서 개최되었다. 부산시립미술관 관장 서진석은 루프랩부산의 이러한 구성 특징을 아래와 같이 말한다.

“비엔날레처럼 전시가 중심이 되면 포럼 같은 연계 행사가 부수적이게 되기 마련이고, 프리즈 같은 페어가 중심이 될 때면 연계 전시나 포럼이 그 하부에 놓이게 된다. 루프랩부산은 세 가지 행사가 주체성을 가지고 연대한다. 마치 ‘포트럭 파티(potluck party)’처럼 공동체적 연합체를 가지고 이뤄진다. 시립미술관뿐만이 아니라 ‘에이플럭션’이라는 민간단체, ‘루프 바로셀로나’라는 해외의 단체, 그리고 부산 전(全) 지역의 문화 공간들까지 수평적으로 연대한다. 수직적 조직에서 수평정 공동체의 의미를 가져, 지속성과 독립성을 갖고 운영할 수 있다.”‘자갈치아지매’, 부산MBC 라디오 방송, 2025년 02월 12일, 서진석 전화 인터뷰 중 일부 수정하여 발췌, 다시듣기(보기) 링크 주소는 다음과 같다: https://youtu.be/1gk-NbWD-F8?si=_c8ncD1JJtStiUG8 (최종 접속일자: 2025년 07월 01일)
《루프 랩 부산 2025》 뉴스 보도 화면 (출처: 부산MBC)
《루프 랩 부산 2025》 개막식 (출처: 부산광역시)

2.
이 상황은 다소 기만적으로 연출되었다. 국공립미술관은 기본적으로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수익 창출과 관련하여 자유롭지도, 유연하지도 못하다. 이 기관들은 국고에 의해서만 운영되어야 하는 법적 제약을 받는다. 예외가 인정되더라도 수익은 다시 국가의, 기관의 공적 예산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예컨대 다음과 같은 내용을 참조하라: 정준모, 「쓰지도, 쓸 수도 없는 입장료, 기부금」, 『아주경제』, 2024.06.03., https://www.ajunews.com/view/20240603141958332 (최종 접속일자: 2025년 07월 01일), “우리나라 국공립미술관, 박물관은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에 소속된 관계로 모든 수입은 국가에서 지원하는 것에 한한다. 혹시 입장료나 기타 수입이 발생하면 국고나 지방 금고에 즉시 여입 즉 반납해야 한다. 즉 벌어들인 돈은 ‘환불’ 된 것으로 취급한다. 따라서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입장료를 받아 수십억 원이 들어와도 임의로 미술관의 전시나 박물관의 교육사업에 사용할 수 없다. 일단 수익이 발생하면 즉시 국고나 지방 금고에 여입하고, 추후 추가경정예산을 세워 그 수익을 국회 또는 지방자치단체 의회를 거쳐 예산으로 편성, 배정받은 후에나 쓸 수 있다. 따라서 제아무리 많은 입장 수입을 올려도 사용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법적으로 상업적 활동이 제한되는 현실이 있기에, ‘시립’미술관이 아트페어라는 형식적 장을 마련하고 제공하는 것조차도 쉬운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해 경제적 이해관계에 얽혀있는 바로 그 시장을 직접적으로 운영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부산시립미술관 측의 “공동체적 연합체”라는 낭만적 수사는 아트페어를 포괄하는 전시-페스티벌을 선보이기 위해서 필연일 수밖에 없는 외주화(아웃소싱)의 결과일 뿐이다. 서진석 체제의 부산시립미술관이 우리에게 선사해주는 미학적 경험은 바로 이런 대범함이다. 그렇게 부산시립미술관은 법과 관행을 우회하는 혁신을 이뤄내고,‘에이플럭션(A-Fluxion)’이란 민간단체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아트페어 파트의 주최사로, “수직적 조직” 체계라는 기존 세계관에서 벗어난 “공동체”의 일원으로, 향후의 “지속성과 독립성”을 담보해주는 단체로, 부산시립미술관 옆에 나란하게, “수평적”으로 자리매김한다.

《루프 랩 부산 페어》 전시 전경
《루프 랩 부산 페어》 전시 전경


페어를 담당한 ‘에이플럭션’은 루프랩부산의 홈페이지에 별도로 소개되어 있지만, 그 실체를 파악하긴 어렵다. 경영 컨설팅 전문회사인 ‘한국 딜로이트 그룹’ 출신 미술품 콜렉터 김영은(Amy Kim)이 운영하는 “‘아티비스트(Artivist)’의 새로운 프로젝트”로 ‘에이플럭션’이 있을 뿐이다.루프랩부산 공식 홈페이지. 이외에도 다음을 참조하라: 김현주, 「전시·페어·포럼…부산서 만나는 디지털·미디어 아트의 모든 것」, 『국제신문』, 2025.02.06.,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250207.22014001515 (최종 접속일자: 2025년 07월 05일). “에이플럭션은 2023년 젊은 컬렉터들이 모여 설립한 문화기획단체로, 산업계와 예술계의 가교 역할을 하는 곳으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페어는 디지털아트란 영역을 통해 새로운 미술 시장을 발굴하고 선점한다는 측면에서 주목받는다.” 이들은 ‘한국 딜로이트 그룹’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하여 루프랩부산의 페어를 준비했다: “한국 딜로이트 그룹 디지털자산센터는 루프 랩 부산의 파트너사로 참여해 행사 기간 동안 예술과 금융의 접점을 넓히고, 예술 산업의 디지털 전환을 촉진하는 데 협력할 예정이다. (…) 한국 딜로이트 그룹 디지털자산센터는 특화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회계 처리, 세무 문제, 리스크 관리 전략, 비즈니스 모델 개발 등 기업들이 직면한 다양한 도전 과제 해결을 지원하고 있다.”‘한국 딜로이트 그룹’ 홈페이지, News Room 게시판, ‘한국 딜로이트 그룹, 아시아 최초 디지털·미디어 아트 페스티벌 ‘루프 랩 부산’ 파트너사 참여’, https://www.deloitte.com/kr/ko/about/press-room/press-2025-04-10.html (최종 접속일자: 2025년 07월 01일)

이 프로젝트 단위의 민간 사업체가 루프랩부산의 페어 부문 주최사로 전대미문의 미디어 아트 판매 실적을 기록해내고, 새로운 시장 개척에 성공하진 않았다. 이는 부산시립미술관이 기자회견에서 답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 이미 예정된 결과이다. “미디어 아트페어 특성상, 큰 수익성을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애당초 부산시립미술관은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조우하게 된 ‘에이플럭션’은 (적어도 이들이 답한 내용에 따르면) “영리성보다는 시장의 활성화에 목적을 두어 갤러리 참가비를 최소화했고, 프리즈나 바젤처럼 지원금도 따로 받지도 않았다.”이은영, 김연신, 「현장에서-아시아 최초 미디어아트 페스티벌 ‘루프 랩 부산’…미디어아트 생태계 선순환 꿈꾼다」, 『서울문화투데이』, 2025.02.10., http://www.s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497 (최종 접속일자: 2025년 07월 01일)

이런 장면이 무어라고 내가 읊고 있는가? 이들이 성공적으로 수익을 내지 못한 것을 질책하기 위해서? 아니면 투명하지 못한 방식으로 주최사가 선정되었다는 의심을 확산시키기 위해서? 전혀 아니다. 내가 굳이 이런 장면을 남겨두고자 하는 것은 부산시립미술관이 루프랩부산이라는 전시를, 아트페어를, 포럼을, 향후의 “독립성”과 “지속성”을 유지하며 “온고잉”유튜브 영상 일부 참고, 미술평론가 김진부 저널리스트, ‘루프 랩 부산이란?… 토니 아워슬러 전시 해설’, 2025.04.27., https://youtu.be/fRFRcrviKbA?si=7QSyZPNGHERy98Fh (최종 접속일자: 2025년 07월 05일), 서진석 관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루프 랩 부산 페스티벌은 올해 처음 열리는 행사이고, 온고잉 행사입니다. 앞으로 계속 열릴 예정입니다.” 시킬 계획이라는 측면에서, 이는 분명 의미심장한 장면이기에 그렇다. 훗날에라도 부산시립미술관의 비전이나 정책의 흐름에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여겨진다면, 언제든 다시 이 지점에서 돌이켜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는 기존의 운영방식과는 또다른 결을 만들어낸 일종의 변곡점이기 때문이다. 첫째, 부산시립미술관은 근대적 국민국가 법체계의 그물망을 빠져나가는 자율성과 “독립성”을 구축했다. 둘째, 이것은 기존의 “조직적”이고 “수직적”인 체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수평적”이고 “민주적”이며 “공동체적”이다. 셋째, 앞으로 이를 기반으로 하여 부산은 “국제적”으로 “세계화”될 수 있다, “디지털, 미디어 아트의 아시아 허브 도시”로……. 이는 “자본과 예술”“자본과 예술”은 루프랩부산에서 진행된 포럼 제목 가운데 하나이다. 서진석이 지난 몇 년간 (부산시립미술관 관장이 되기 이전부터) 강연 프로그램 타이틀로 고유하게 유지하고 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사례가 있겠다: 가천대학교, ‘2023 지성학 (1) 예술과 자본 – 서진석(2023 서울라이트 광화문 빛 축제 예술감독)’, 2023년 09월 12일자, 온라인(유튜브) 강연, https://youtu.be/ysHB3NANU7c?si=caEQWgSNZtB6DwZ4 (최종 접속일자: 2025년 07월 05일)이라는, 너무나 선명하지만 동시에 도무지 실체가 파악되지 않는 모호한 타이틀이 이제 막 부산에 심어지는 장면인 것이다.

3.
그들이 심어놓은 씨앗에 바로 싹이 트고 열매가 맺을 리는 만무하다. 부산시립미술관도 이미 예견하고 있지 않던가? 시장은 아직 모색 단계라고, “영리”는 이번에는 아직 제대로 추구하지조차 않았다고. 언뜻 조심스럽고 소박한 관점으로 시장에 접근하는 듯 보이지만, 지극히 이율배반적인 이 발언에서 신자유주의가 기존의 “사회적 관계와 제도 변형을 목적으로 하는 통치 방식”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피에르 다르도, 크리스티앙 라발, 『새로운 세계합리성』, 오트르망(심세광·전혜리) 옮김, 그린비, 2022, 7쪽. 무엇을 위하여? 자본의 팽창을 지속시키기 위하여.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지 못하면 기다리는 중에 언제고 뿌리 뽑히거나, 이식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가 수익과 성과를 굳이 거부하겠는가? ‘이번엔’ 혹은 ‘아직은’이란 말은 “‘구태의연한’ 자본주의의 준거들을 해방”하고 갱신하여, 향후 강화될 ‘신자유주의 합리성’을 근간으로 삼아 도약하고 팽창하기 위한 과정과 단계로 얼마간 필요에 따라 취하게 되는 것에 가깝다.

‘신자유주의 합리성’에는 “불안정과 불평등이 의도”된다. 특히 “혁신과 경쟁의 우월성을 기능”으로 삼아서 ‘낡은 것’과 ‘무용한 것’, ‘적응하지 못한 것’을 제거하는 ‘창조적 파괴’를 필히 자연화시킨다.피에르 다르도, 크리스티앙 라발, 『새로운 세계합리성』, 오트르망(심세광·전혜리) 옮김, 그린비, 2022, 27쪽. 아울러, 부산시립미술관의 사례는 아니지만 부산의 부산현대미술관의 경우에는 《부산현대미술관 정체성과 디자인》(2023.04.29.~07.09.) 전시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난 증상이다. “사실 부산현대미술관 정체성과 디자인 재정비라는 이 용역은 내부적으로 은밀하게 진행한 후 간단히 그 결과만 통보하는 방식으로 진행해도 될 일이다”라고 운을 떼며 기획된 해당 전시는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 “미술관의 실패를 인정”하고, “공공성”을 확보한 디자인 입찰 과정을 전시의 형식으로 선보였다. 이러한 기획은 어떠한 맥락이 전제되었든 그 자체로 모순을 내재한다. 관람객들은 투명하게 공개된 것 같은 기관의 행정업무에 민주적으로 참여함으로 시민의식을 갖게 되거나, 미술관 내부의 직무 유기를 떠안게 되는 피로감, 이전의 미술관으로부터 누적시켜왔던 미흡한 행정의 미학을 관람객으로서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하는 현장에 놓이게 된다. 예정 전시 홍보 게시물로 소셜네트워크에 업로드된 게시물의 경우를 참고하라: https://www.instagram.com/p/CrKl6N5hm2Z/?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MzRlODBiNWFlZA== (최종 접속일자: 2025년 07월 01일). 부산시립미술관은 이와 같은 홍보 게시물을 통해 자기 자신을 ‘공개처형’과도 같은 맥락에서 시각화하고, 이를 문화자본이자 상징자본이 새로이 유동할 수 있는 활로로 삼아 제 몸을 새로이 디자인해낸다. (또한 이러한 전시가 전임 관장의 임기 종료 시점과 신임 관장의 취임 시기로부터 그리 오래지 않은 때에 개최되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비전으로의 미술관의 운영=통치 이념을 맥락화하는 장치로도 (의도와는 무관하게) 작동한다.) 관람객에 고스란히 전달되는 예상 가능한 (앞서 말한) 분열되고 상반될 수밖에 없는 정동 유발의 뮤지올로지 내파와 그 진동에서, 정치적인 것을 심미적인 것으로 둔갑시키며 다중적인 쟁점을 출연시키지만, 그것이 다자간의 투쟁으로 가시화되지 않게 은폐시킨다. 달리 말해 미술관의 큐레토리얼 실천은 “경제적인 경쟁”과 “정신적 차원의 도덕”, 그리고 “개인주의적 취향의 문제”로 봉합하여 가시화되지 못하도록 통제한다. 이와 같은 위기 관리와 재도약이 신자유주의적인 것이며, 그 결과로 부산시립미술관의 낡은 문화적 지식-상징적 자본은 비로소 다시금 (부활적으로) 도약한다. 이 과정에서 없어져 마땅한 것의 기준은 시장으로의 도약에 보탬이 되느냐 아니냐일 뿐이다. 예컨대, 여태껏—개관 이래 단 한 번도 빠짐없이, 도시 부산의 지역미술을 연구해온 부산시립미술관의 자체적인 실천들조차도 그들에게 이젠 짐이 된다면, 가뿐히 내던질 수 있다. 부산시립미술관은 관장의 입으로 하여금 “지역성이라는 게 내용적으로, 어떤 차별화된 미학적 내용이 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만, 저의 결론은 ‘없습니다’, 입니다.”라고 발화하게 한다.부산시립미술관, 《젊은 시각 새로운 시선 2025》(2025.04.10.~07.06., 성곡미술관(서울)), 〈참여작가 아티스트 토크〉(2025년 05월 24일)의 일부 내용 수정 발췌, 기록영상의 링크주소는 다음과 같다: https://youtu.be/jTCKAk_-UYk?si=dRLbIHK9NBH56hfO (최종 접속일자: 2025년 07월 04일) ‘없다’는 말에 충분히 공감하고,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내가 지금 상술하고 있는 맥락에 한해서는 분열의 한 증상에 가깝다. 부산시립미술관은 새로운 ‘지역의 세계성’을 위해서 문화적 맥락과 미시 수준의 미학적, 일상적 삶을 편의에 입각해서 초국적 자본의 시장 세계와 아무런 장치도 없이 매끈하게 동질화시킬 준비가 되어있는 셈이다. 이것은 “그 어떤 합리성과도 무관한 순수 ‘광기’가 아니다. 제도와 사회관계 그리고 통치방식의 총체적 변형에 참여하는 국가들 자신의 지속적이고 편재적이며 다형적인 행위의 결과”인 것이다.피에르 다르도, 크리스티앙 라발, 『새로운 세계합리성』, 오트르망(심세광, 전혜리) 옮김, 그린비, 2022, 29쪽.

루프랩부산을 통해서 (재)생산하게 될 부산의 이미지, 다시 말해 부산이 세계적인 “디지털, 미디어 아트”의 도시가 되는 방식은 120명의 국내외 작가들이라는 국제적인 규모로 된 “디지털, 미디어 아트”를 뒤집어씌우는 것, 이것들을 부산에 ‘때려넣음’으로 얼마든 가능해진다. 스스로 위기를 초래하고 활용한다는 신자유주의의 특징에서 위기가 지닌 힘은 무궁무진하다. “디지털, 미디어 아트 도시로의 부산”이 갖는 향후의 “발전성”을 위해서라도 일단 한 번 뒤집어써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시-페스티벌에 작품들을 이렇게, 문자 그대로 ‘때려 넣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느끼기에, 부산시립미술관은 전시가 지역 안에서, 그리고 전시장 내부에서 어떻게 보이는지를 고민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바깥으로 잘 보여질 수 있을지만을 염두에 둔 것 같다. 시장 개척과 진입을 위해서 말이다. 루프랩부산에 큐레이터십은 없다. 오직 전시주의자들의 연출만이 있다. 자긍심의 언어만이 가득한 보도자료는 제아무리 살펴보아도, 언제 어디에서 어떤 전시에서 어떤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지는 베일에 가려져있다. 작정하고 관객을 받지 않게 하려는 전략이 기획에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닌지, 시험에 빠지게 하는 것을 기본 정서이자 태도로 삼고 있다. 페어는 “전 세계의” “국제적인” 갤러리 관계자들이 참여했기 때문에 영어로 안내가 되어있으면 그만인 것이 된다. 한국어는 옵션 정도에 해당한다. 어느 갤러리가 참여했는지, 이것의 실체가 있기는 한지는 당일에 직접 호텔에 가봐야지만 알 수 있다. 전시는 사태가 더욱 심각하다. 많은 사례를 읊을 수 있겠지만 지면의 한계상 생략한다.

도모헌 소소풍 라운지에선 다음 작가들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투안 마미(베트남), 에녹 첸(홍콩), 이본느 카니(인도네시아), 푸와민 인디(태국), 게리-로스 파스트라나(필리핀), 타오 응우옌 판(베트남), 유스케 사사키(일본), 암리타 헤피(호주), 헤일리 밀러 베이커(호주), 킨 테타 라트(미얀마), 다와자르갈 차시커르(몽골), 코라크릿 아루나논드차이(태국), 라길 드위 푸트라(인도네시아), 장우진(한국), 헤이디르 함단(말레이시아), 리 오캄포(필리핀), 게리 젝시 장(중국), 바트에르덴 바트출룬(몽골). 그리고 이들의 작품은 한 공간에 ‘때려넣어’져 있다. 작품이 2채널인지 등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주어진 모니터가 1대면 그 하나에서 선보여진다. “디지털, 미디어 아트”에 ‘사운드’가 있는지 없는지도 별 대수가 아니다. 설치 방식의 파격은 우리들만의 비밀로 묻어두자. 영화의 전당에서 루프랩부산 기간 동안 진행된 《무빙 온 아시아》에 대해서는 큐레이터들과 작가들의 외국 인명으로 가득한 텍스트만이 유일무이한 정보다. 어떤 큐레이터가 어떤 작가의 작품을, 어떤 이유에서 선정하여, 이들이 어떻게 각기 다른 시리즈별로 묶였는지는 수소문해도 아는 이가 없다…. 이 모든 것이 오직 ‘루핑’되기만 한다. 어떤 현장을 가든 큐레토리얼 실천으로의 전시는 만나기가 어려운, 배신의 연속과 반복이 이어진다. 전시나 스크리닝 행사에서 구체적인 주제와 기획된 맥락이 있는 경우, 루프랩부산과 무관하게 원래 진행될 예정이었는데, 루프랩부산의 기간 중에 열리는지라 그저 함께 ‘맵핑’되었다는 식이다.

4.
해마다 개최되는 《루프 바르셀로나》의 경우, 사회적으로든 미학적으로든 현안이 되는 주제를 바탕으로 기획된다. 반면 루프랩부산에서는 페어든 연계 전시든 기획이, 하다못해 주제가 되는 키워드조차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나마 확인되는 것이 포럼으로 구성된 “미래미술관”이라는 의제와 (앞서 언급한) “자본과 예술”이 유일하다. 내가 이 전시-페스티벌에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미술시장의 필요성에 부치는 의문이나 지나친 경계, 적대를 드러내고자 함에 이 글을 쓰는 것도 아니다. 그런 건 《프리즈》 같은 것을 두고 사유할 일이다.다음을 참조할 것: 이연숙, 「시장이 전부다」, 웹진 『비유』, 68호, 2024.08.07., https://sfac.or.kr/literature/epi/D0000/epiView.do?epiSeq=1174 (최종 접속일자: 2025.07.01.) 부산시립미술관은 이제(서야) 신자유주의의 흐름 속에서 본격적인 궤적을 그릴 것 같은데, 잘 그릴 수 있을까? 이대로라면 시장으로의 도약은커녕, 오직 낙하만이 예정되어 있지 않을까? 옛날엔 환등상이나 거품도 멋이 있었는데, 이젠 그런 것도 없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작가와 작품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방식으로 작품을 설치하고, 적절한 전시 환경을 조성하여, 관람객을 유도하라고 말해야 하는 상황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서진석 체제의 부산시립미술관이, 그가 울산시립미술관 관장으로 있던 시절에 제작, 수집되었던 작품들을 사적 소유물처럼 활용하지 말아야 할 텐데, 이에 대해 아무도 쓴소리를 하는 사람이 없다. 이것은 지역이 지역을 착취하는 최악의 뮤지올로지이다. 이 전시-페스티벌에 재미와 기대를 품고서 방문해준 이들이 갖게 된 실망감에 대해서라면 나는 아직도 그들에게 미안하다.

《루프 바로셀로나》의 포럼-심포지움 전경 (출처: loop-barcelona)

아울러 “아시아의 디지털, 미디어 아트 허브 도시로의 부산” 같은 것만큼이나 시대착오적인 판타지도 없다. 그것은 이를테면 아직 분명 전시 기간에 해당하지만, 관람을 위해 접속 링크를 클릭하면 ‘베타 버전이 끝났으니, 다음에 또 보자’라고 표시되는 알림창 같은 것이다.부산시립미술관에서 현재 진행 중인 다음 세 개의 메타버스 전시를 말한다: 《콜렉션 99.999》(2024.12.24.~2025.12.31., 메타버스(슈퍼플랫)), 《부산미술, 그 시작》(2024.12.24.~2025.12.31., 메타버스(슈퍼플랫)), 《BMA: Busan museum of art’s Media Art》(2024.12.24.~2025.12.31., 메타버스(슈퍼플랫)) 써 내려가면 갈수록, 작금의 부산시립미술관발(發) 풍경에 외상을 겪고 있는 나의 밑천이 드러날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외상에 대한 미약한 대응으로의 글쓰기를 마친다. 루프랩부산에 대해서라면, 비판적 시각을 견지할 수 있는지/없는지의 능력 문제도, 그것을 발화할 수 있는 권력의 차원도 초월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무력감 혹은 패배감에 젖어있다. 적어도 부산의 작가나 비평가들이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그러한 것처럼. 이상하지 않은가? 언론이 대대적으로 옮긴 보도자료의 내용에 비해, 즉 ‘규모’와 ‘위상’에 비해서, 이토록 찬사도 열광도 냉소도 욕도 안 보이는 이 조용한 상황이 말이다. 나는 쓰지만 이미 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써본다. 써 내려가지만 나는 졌다. 나는 이 루프에 갇혔고, 이것이야말로 부산의 루프이다.

 

“재앙의 규모 자체가 엄청나서 통상의 방식은 거의 효력이 없다.”핼 포스터, 『소극 다음은 무엇? -결괴의 시대, 미술과 비평』, 조주연 옮김, 워크룸프레스, 2022, 5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