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테리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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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서한

질식자의 편지: 영화문화의 현재에 관한 13개의 질문
질식의 날 - 못다 부친 편지
회신1. 질식자에게
회신2. <비평(권력)에 대하여> 의 질문
회신3. 쉰들러 리스트: 무너진 낙원에서 완전함 찾기

수신인: 씨네21
회신4. 형제애: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회신5. 답변?
회신6. 창작과 비평의 관계에 대하여.....
등단 = 검증?
회신7. 지리적 계급의 소멸을 함께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회신8. 공개서한에 대한 회신입니다.
ㄴRE: 별로 어렵지 않은 이야기
회신9. 질식자에게

비평? 우리는 웃고 있다




3호 2020년 8월

1. 특집/ 여섯 빛깔 스크린 너머: 한국퀴어영화제 20주년에 부쳐
2. 특집/ CRY, FUCK, BEAT UP(울고 하고 패고)
3. 특집/ “퀴어영화 연구는 정말로 노다지”: 『한국퀴어영화사』 책임편집 이동윤 인터뷰
4. 특집/ 한국 게이/레즈비언 영화와 호모-특정적 난관들
5. 특집/ 샷다 내린 퀴어랜드: ‘디스코팡팡’과 ‘방 탈출 게임’ 사이에서
6. 특집/ 뱀파이어의 딜레마: 누구를 위한 ‘착즙'인가?
7. 정전에 속하기, 정전 밖에 있기: 사프디 형제의 방법
8. 검고도 밝은: 조주현의 ‘흑공’과 스크린 안의 미로
9. 아이돌 기표의 '트랜스' 해부하기: NCT 127의 〈슈퍼휴먼〉과 아이돌 피상성
10. '접촉'에서 '접속'으로: NCT 127의 경우
11. 아직도 굳이 〈무한도전〉을 논할 필요가 있는 건
12. 듣는 여자: 〈그리고 베를린에서〉
13. 박세영의 무한 도시
14. 추상化와 픽션: 이소정의 영상 작업에 대해
15. 이미 흩어진 '밀레니얼 시네필’
16. 비천함, 실패, 나쁜 것에 관한 정직한 성찰(우회하지 마세요)

A BACK NUMBER

2호 2020년 3월  

1. “오른손으로 비비고 왼손으로 비비고(잠깐!)” 2019 한국 코미디 영화의 ‘비빔면적 경향’과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윤리’: 영화 ⟨극한직업⟩, ⟨걸캅스⟩, ⟨엑시트⟩를 중심으로
2. 봉준호 월드 유람
3. 창문과 창문 ‘너머’—오연진의 《Lace》와 백종관의 ⟨추방자들⟩
4. 갱신과 추동 사이에서 기업가∽노동자∽DIY로서의 작가
5. 구체적 세부: 2019년을 함께한 독립극영화 속 여자들
6. 특집/ 액체의 단상들: 리퀴드(liquid)와 플루이드(fluid), 그 언저리에서
7. 특집/ 15초 곱하기 240의 실험: 이소윤의 ⟨450⟩
8. 특집/ 보여주는 대신 믿게 하기: 박시우의 ⟨변신⟩
9. 특집/ ‘플레이스’와 ‘플레이’로 규명되는 영화 ⟨소녀의 기도⟩
10. 특집/ 연결하고, 순환을 주장하기: 독립영화협의회 낭희섭 대표 인터뷰
11. 영화제가 활짝 피었습니다—대안적 영화제를 상상하기 위한 생산적 망각
12. 디스코팡팡적 시네마: ⟨알라딘2019⟩ 4DX
13. 걷잡을 수 없는/겉잡을 수 있는: 2019년의 영상 작업을 통해서
14. 테니스와 바둑의 신체를 상상하며: 되받아치기와 이중구속의 비평


BACK NUMBER

1호 2019년 9월

1. 환영에 대한 두 가지 입장: ⟨라이온 킹⟩과 ⟨야광⟩
2. 유령의 기술: 차이밍량의 ⟨더 데저티드⟩
3. 괴물, 일레븐, 무전(하)기
4. 장재현의 보이 스카웃은 무엇을 단련하는가?
5. 비체(abject) 생산라인의 작동방식을 드러내는 무빙이미지들: Maotik의 ⟨FLOW⟩와 이은희의 ⟨Contrast of Yours⟩
6. 무한 가정해보기: 류한솔 작가의 ⟨크리크리 메리크리 스마스⟩를 중심으로
7. 픽션의 증언
8. 다음 세기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의 ⟨힘의 한 세기⟩
9. 특집/ 영화평론가 김소영 인터뷰
10. 특집/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한국 영화비평계의 86세대에 대해 반추하며
11. 특집/ 한국영화비평계의 00년대부터 지금까지


0호 2019년 5월

1. 철의 꿈, 믿음의 끝: 박경근의 ⟨철의 꿈⟩
2. 펼치고 다시 조립하기: 백종관 감독론
3. ⟨로맨틱 머신⟩에 대한 짧은 소고: 카메라-눈의 체험을 체험하기
4. 경험되지 않는 영화에 대하여



비평의 비평 2019년 11월

듀나와 이동진과 기타등등‘씨네21식 비평’ 비판오큘로에 대해서반면교사정면교사?



선언문




갱신과 추동 사이에서 기업가∽노동자∽DIY로서의 작가

이상희



재생산 시대에 베르토프의 유명한, 카메라를 사나이는 편집실에 앉은 여성으로, 그녀의 무릎에 앉힌 아기로, 그녀가 앞두고 있는 24시간 근무로 대체된다.
(히토 슈타이얼, 「컷! 재생산과 재조합」)[1]

당신은 몇 개의 외장하드를 보유하고 있는가? 당신의 외장하드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가? 만약 당신이 작가라면 당신의 외장하드에는 완성되었으나 세상에공개되지 못한 무언가가, 또는 미처 완성되지 못한 자투리로서의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영화를 보기 좋아하고 전시를 보러 가는 것을 좋아한다면당신의 외장하드에는 이런저런 동영상 파일들과 아이폰으로 촬영한 전시 전경들이 jpg 또는 HEIC 파일의 형태로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이 모든 파일은 비록외장하드라는 물질덩어리 안에서 데이터의 형태로 저장되어있으나 언젠가(라는 알 수 없는 미래의 시점에) '보이기' 위한 잠재적 상태에 놓여 있다. 생산물로서의 이미지 파일들은 현재의 비가시적인 상태에서는 무용할지언정 '보기(looking)'라는 '비물질 노동'에 의해 가치를 창출한다.
        여기서 비물질 노동이란, 정보와 문화라는 상품의 내용적 측면을 생산하는 노동이다. 비물질 노동의 '정보적' 측면이 싸이버네틱스와 컴퓨터 통제등의 기술들과 그로 인한 변화를 지시한다면, '문화적' 측면은 "문화적 내용"을 생산하는 활동과 관련하여 전통적으로 "노동"이라고 인식되지 않는 (유행들, 취미들 그리고 의사소통 능력과 지적 능력 등의) 일련의 활동들을 포함한다. 이미지라는 상품의 경우 그것을 생산하는 노동자의 노동뿐만 아니라 감상하는 자의신체로부터 나오는 '보기'라는 산 노동(living labor)으로부터 가치가 생산되고 유통되기도 한다. 「비물질 노동」이라는 글을 쓴 마우리찌오 랏짜라또는 비물질노동은 유동적인 네트워크의 형태로 자기 자신을 구성하며 우선적으로 사회적 관계를 만들고 상품들뿐만 아니라 자본관계를 생산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를이해하기 위해 "물질적인" 생산모델 대신에 작가(저자), 재생산, 수용을 포함하는 "미학적인" 모델을 선택할 것을 제안한다. 미학적인 생산모델을 지닌 자본주의에서, "비물질 노동의 역할은 의사소통의 형식과 조건 속에서 (그리고 따라서 노동과 소비 속에서) 지속적 혁신을 촉진하는 것이다. 그것은 필요들, 이미지적인 것(the imaginary), 소비자의 취향 등등에 형태를 부여하고 그것들을 물질화한다. 그리고 이 생산물들이 이번에는 필요들, 이미지들, 그리고 취향들의 강력한 생산자가 된다."[2] 오늘날 강력한 생산자가 된 생산물로서의 이미지는 (생산물로서의 예술작품이 그렇듯) 또 다른 이미지의 형태들을 결정짓고 물질화시킨다.
        이와 같은 현상은 스톡 이미지의 세계에서 관찰된다. 상품으로서의 스톡 이미지는 대체로 고해상도를 강조하며 프리 스톡을 제공하는 플랫폼일 경우 무료임을 강조한다. 프리 스톡 이미지 플랫폼인 언스플래시(unsplash.com)에 접속하면 검색창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띄워져 있다. "Search free high-resolution photos."(무료로 고해상도 사진들을 찾아보세요.) 익히 알려진 프리 스톡 이미지 사이트인 픽사베이(pixabay.com)의 헤더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Over 1 million+ high quality stock images and videos shared by our talented community."(우리의 관대한 커뮤니티를 통해 공유되는 1.9백만 개의 이미지와 비디오를 살펴보세요.[3]) 스톡 이미지는 대개 3-4 종류의 픽셀 양에 따라 제공되는데 이는 저화질-저용량에서 고화질-고용량(대용량)의 스펙트럼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용 용도에 따라 필요로 하는 픽셀의 양이 결정되겠지만 스톡 이미지는 대체로 고해상도로 이루어져 있다. 홈페이지에 접속하였을 때고해상도의 부재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즉, 감상용 상품으로서의 이미지 세계에서 하이-레솔루션은 하이-퀄리티 자체이며 고해상도-고품질로 이어지는 상품 형식은 수용자(소비자)의 취향뿐만 아니라 이미지의 미감과 같은 형태들을 결정짓는다. 그리고 하이-퀄리티의 프리 스톡이미지는, 그 자체로 고품질인 것 이상으로 무료라는 점이 강조되는데 이와 함께 대표적인 유료 스톡 이미지 플랫폼인 게티이미지(gettyimages.com)와 비교해보면 이미지라는 상품에서 작가는 어떻게 조직되는지가 나타난다. 게티이미지는 익히 알려졌듯이 판매 전에 워터마크를 삽입한 형태로 공개하는데 플랫폼의 명칭인 "gettyimagesⓒ" 아래에 사진가의 이름이 함께 기재된다. 사진가의 이미지는 플랫폼에 귀속되고 저작권은 플랫폼의 소유로 표기된다. 저작권 마크하단에 작게 적힌 누군가의 이름은, 그가 작가임을 나타내주지만, 그는 플랫폼이라는 조직된 형태로부터 노동자임을 인정받는다. 한편, 프리 스톡 이미지 플랫폼에서 이미지 제공자는 계정(account)과 같은 형태로 공개된다. 계정으로서의 작가는 (그가 제공하는 상품은 무료이기에) 물질화폐가 아닌 ‘좋아요’와 추천을 받으며 바이럴(viral)과 같은 방식으로 기업가로서의 위치를 획득한다. 게티이미지의 작가도 크레딧(credit)의 형태로 독자적인 이름과 페이지를 지니기에이 또한 기업가, 자영업자로서의 작가가 된다. 무료와 유료로 구분되는 플랫폼에 따라 스톡 이미지가 화폐가치를 형성하는 방식은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모든상품으로서의 이미지 생산을 위해 노동하는 자는 기업가적 노동자가 된다.
        자본주의 아래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 작가는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갱신하는 상태에 놓인다. 작가의 눈은 이미지의 해상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고해상도 이미지라는 생산물의 한 형태가 다른 이미지의 형태뿐만 아니라 우리의 눈에게도 계속해서 고해상도를 향한 추구를 부추기고 그것들의 생산을 지속시키기 때문이다. 자유로울 수 없는 작가는 자신의 눈과 능력을 업데이트하게 된다. 아이튠즈가 동기화되듯이 작가는 변화하는 이미지 생산 체계에 자신을 상동적으로 맞추는 것 이상의 상향화를 향하게 된다. 그리고 업데이트는 쉬우나 다운그레이드는 어렵기에 과거의 해상도, 인터페이스, UI 양식 등 과거의 형태들은 자칫 노스텔지어 또는 무능함으로 오해받기 쉬워진다.
        게다가 작가는 즉각적으로 가리워져야만 한다. "창조 과정의 세 단계, 작가, 재생산, 수용의 모델은 즉각적으로 지워지고 실질적인 생산적 순환의분절 결합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마우리찌오 랏짜라또) 오늘날 비물질 노동과 함께 초래된, 변화한 생산관념이 점거한, 포스트프로덕션의 이미지 세계에서작가는 은폐되어야만 한다. 여기서 은폐되는 작가란 고전적인 창조의 관념 아래 '저자성'을 부여받던 특권적 주체로서의 작가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비물질노동자로서의 창작자이다.

"유튜브용, 단순 편집자를 구인합니다. 단순 컷편집이며, 트랜지션, 효과적용, 자막배치, 음악배치 정도의 편집이 메인입니다. 에펙은 필수가 아닙니다. 포토샵을 이용한 웹사이트의 이미지 편집도 합니다."
시급 9000원

히토 슈타이얼이 「컷! 재생산과 재조합」에서 포스트프로덕션이 오늘날 자본주의의 주된 양식이 되었다고 밝힌 바와 같이 오늘날 영상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방식은 더 이상 촬영으로 표상되던 제작(production)에 머무르지 않고 색보정, CGI 합성 등의 후반작업, 포스트프로덕션까지 모두 제작에 포함되는 쪽으로 변화하였다. 이로 인해 생산에 필요한 노동자는 더 이상 제조업 노동자로서의 작가로만 대표되지 않으며 컴퓨터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카메라 등의 기계들도 생산에 가담한다.
        하룬 파로키가 〈평행(Parallel I,II,III,IV (2012-2014))〉시리즈를 통해 이미지의 리얼리즘이 더 이상 현실과의 합치성에 국한되지 않음을드러냈지만, 〈평행〉을 비롯한 여러 작업에서 비가시화된 노동의 단면들을 지속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라. 노동하는 사람에게 디지털이미지는 마감(deadline)을 제시한다. 원론적으로 손에서 마우스로, 마우스에서 이미지로 이어지는 제작 과정에서 디지털 이미지는 저마다의 목적점에다다른 상태에서 마무리되어야 한다. 마감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디지털 이미지가 합성될 때, 합성물들은 배경(e.g. 어도비 포토샵의 이미지 캔버스) 안에서 서로 잘 들러붙어야 한다. 예를 들어, 크로마키 합성을하려고 할 때 피사체 뒤의 블루스크린/그린스크린은 말끔히 지워져야 한다. 말끔히 따인 피사체의 가장자리에는 블루 혹은 그린의 어떤 흔적도 보여서는 안 된다. 사용 목적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합성된 것임을 의도적으로 노출해야 하는 상황이 아닌 이상 대개의 합성 CGI는 도려내고 이어붙인 흔적이 보이지 않도록 "말끔하게", "매끄럽게" 마무리된다. 합성을 시도하는 인간의 노동은 마감질(finissage)로 이어지지만, 그 결과물로서의 이미지는 인간의 노동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매끄럽지 않은, 인간적인 무언가가 나타나면 그것은 미완(imperfect)의 상태로 읽히게 된다. 미완이라는 것은 문자 그대로 완성이 되지 않은상태만을 지시하기도 하지만 어떤 평가의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예를 들어, 드라마의 CG가 미숙하고 부자연스러우면―이 부자연스러움이란 완벽의 근사치에 다다르지 못한, 미완성 결과물을 지적하는 표현이다―수준미달 혹은 유치하다는 평을 듣는 경우들이 있다. 다른 일례로, 망한 3D봇(@3D82524743)이라는 트위터 계정에는 모델링에 실패한 이미지들이 제보되어 업로드된다. 제보된 이미지들은 렌더링 되기 이전의 작업창을 캡쳐하거나 녹화한 것들이 주를 이룬다. 이들은 대부분 '과정 중'에 있는 것으로 모델링 소프트웨어의 도구 양식들을 숨기지 않는다. 디지털 이미지의 완결에 이르기 전 단계를 노출시키는 데에서 인간의 노동이 보이는 것이다. 한편, 극도로 완결된 양식에서 인간의 노동이 보이는 경우도 있다. '3D 모델링'과 '디지털 스컬핑'을 사용해 만화 캐릭터를 인간화시키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디자이너 미겔 바스케스(Miguel Vadquez)가 제작한 스누피와 찰리 브라운은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피규어와는 다른 모습이다. 미겔 바스케스의 스누피와 찰리 브라운은 카툰 캐릭터의 형상이 현실의 인간과 개의 질감으로 구현된 상태에 가깝다. 소름 끼치도록 모델링된 피부의 질감과 털의 질감은 고해상도로 표현되어 있다. 여기서 인간적인 어떤 노동이 감지되는데 이는 아마도 피규어의 기계 공정과는 또 다른 모델링을 거쳐 카툰(드로잉) 이미지라는 인간적인 이미지가 인간적인 노동으로 완결에 이르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인간적인 노동이란, 수작업에 가까운 형태로 이해되는 것으로 "회화적 자유(the liberty of painting)"(히토 슈타이얼)에 따른 붓질과 유사한 방식으로 감지되는 노동을 가리키고 있다. 기계를 활용한 인간의 노동은 생산 과정 이면에 인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계적인 것으로만 (은연중에) 수용되는 반면 고도로 인간적인 관점을 내비치는 것들은 노동을 암시한다. 미겔 바스케스의 고해상도 스누피와 찰리 브라운은 그가 목표한 데드라인으로서의 해상도와 모델링에 근거하여 완결된 상태이지만 피규어와 같은 통상적 3D 모델링의 데드라인과는 거리가 먼 불완전한(imperfect) 결과물이기도 하다.
        인간의 노동이 은폐되고 소외되어야만 하는 것은 비단 CGI, 합성 이미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디지털카메라로 촬영되는 영상들에서도 인간의 노동은 소외된다. 미시적인 차원에서, 카메라 디바이스는 계속해서 업그레이드되기에 창작자 또한 자신의 영상물을 위해 디바이스를 업그레이드시킨다. 카메라와 같은 장비들에 투자되는 비용은 창작자 개인의 몫이 되면서도 그러한 창작자의 노고 같은 것은 영상물로부터 관객에게 보편적으로 수용되지는 않는다. (물론 해상도, 영상미 등의 미학적 양상을 통해 어느 정도 수용되고 가치를 생산한다고 생각되지만, 그 노동은 여전히 추상적으로 감지될 뿐이다.) 예들 들어 "아이폰으로 촬영한 영화"라는 단어는 아이폰으로 쉽게 촬영된 것 같은 기대감을 불러일으키지만, 막상 껍데기를 까보면 그렇지 않다. "아이폰으로 촬영한 영화"를 검색해보면 아이폰에 커다란 카메라 렌즈가 어댑터를 통해 함께 결합된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렌즈를 고정하기 위해서는 클램프라는 장비가 또 필요해진다. 그리고 여타의 영화 촬영 현장과 마찬가지로 촬영 현장에는 카메라 뒤의 스태프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장비뿐만 아니라 촬영된 영상에 필요한 색보정, 사운드 믹싱의 모든 후반작업에도 인간 노동자가 존재한다.
        인간뿐만 아니라 컴퓨터 또한 노동하는 기계로서 작업 시간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다. 모든 영상은 렌더링을 통해 완성된다. 렌더링은 시간이 걸리고 그 시간은 전적으로 컴퓨터의 성능에 달려 있으며 렌더링에 필요한 소스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에 따라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나는 3분짜리의 영상을 렌더링하는데 3일이 넘는 예상 시간을 맞닥뜨린 적이 있다. 디테일하게 설계된 모델링 소스를 구매하여 카메라의 동선을 짜고 렌더링을 돌리는 순간, 작업창으로 볼 때 보이지 않던 다양한 재질들(material)이 렌더링 되기 시작하였다. 섬세한 질감(texture)을 얻기 위해 컴퓨터는 3일간 계속 일을 해야만하였다. 우리 눈에 표면적으로 복잡해 보이지 않는 이미지의 한 부분조차도 렌더링 되어야 하기에 모두 픽셀로 가득 채워져야 한다. 이는 컴퓨터의 노동이기도하지만 나의 작업 시간이기도 하기에 나라는 인간의 노동에도 일정 부분을 차지한다. 기계 노동과 인간 노동은 완벽히 분리되지 못한 채, 비물질 노동자의 노동은 공장으로의 출퇴근으로 표상되던 노동 시간이 아닌 항시적인 시간과 장소에서 이루어진다.
        노동자는 기계 노동을 포함해 어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해서도 대처할 수 있어야 하므로 ‘트러블슈팅(troubleshooting)'까지 고려해야 한다. 트러블슈팅이란 정보기술 업계의 용어로, 시스템이나 장치 등에 발생한 문제를 진단해 처리하는 것을 뜻하며, 영상 작업의 맥락에서는 포스트프로덕션 과정에서발생하는 물리적인 한계와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 단어가 암시하듯이, 창작자(작가)는 촬영의 순간부터 제작의 순간, 그리고 포스트프로덕션의 순간까지 작업의 전체 과정에서 찾아올 문제에도 대처할 수 있어야만 한다.
        노동자로서의 창작자, 컴퓨터는 모두 업데이트의 상황에서 미래를 향해 계속되는 상향화⋅가속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업데이트(update)'라는용어가 보여주듯 새로운 버전으로의 전환, 업데이트(up-date)는 미래라는 시제와 결부되어 있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가속되는 진보적 발전과 같은 것으로서의 업데이트. 그와 반대로 '다운그레이드(downgrade)'라는 용어가 암시하듯이 과거로의 회귀는 급(grade)의 하락 또는 쇠퇴로 여겨진다. 그런 현실에서 계속해서 생산되는 이미지는 또 다른 이미지의 생산 형태와 그 모양새를 물질화시키고 우리의 눈을, 취향을, 미감을 결정짓는다. 이런 현실의 가운데서 비물질노동을 재구성하고 그를 가로막는 은폐의 공작을 걷어내려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는 자본주의 현실에 맞서 어떤 강령을 실행하려는 자일 테다.


Parallel-IIIIIIIV-2012-20141.jpg: 캡션  Harun Farocki, Parallel I,II,III,IV (2012-2014)
(출처: http://sensesofcinema.com/2016/featurearticles/harun-farocki-interview/ )


Vasquez.jpg: ⓒMiguel Vasquez facebook (@MiguelVasquez3D) (출처https://www.facebook.com/MiguelVasquez3D/)


sample render.png: 렌더(render) 중인 시네마 4d, ⓒ이상희

에필로그

저화질의 이미지를 보다 현실과 근접하다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작년 겨울, 나는 4K 같은 고해상도는 어딘가 현실적인 것과 거리가 멀다고 말했고 내 말에 대해 친구는 웃으며 자신은 그 반대라고, 저해상도가 별로 현실적인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그때 가지고 있던 생각이 완전히 폐기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현재까지 전적으로 동일하게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 무렵에 나는 좋은 장비로 고해상도의 영상 이미지를 얻으려고 하기보다, 즉각적으로 촬영할 수 있도록 가볍고 적당한 만족감을 주는 캠코더, DSLR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촬영장비가준비되지 않는다면 아이폰을 꺼내 들 수밖에 없다.) 약 6개월가량 지나고 나서 돌이켜 보니 저해상도에 편안해하던 나는 팬시한 이미지를 추구하고 있었다. 여기서 '팬시함'이라는 모호한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이것이 화소라는 특정한 수치로 규정되기 보다는 매끄러움과 같은 미감적인 규준이자 (무조건적으로 수치화된 고해상도, 저화질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가변적인 척도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이폰 6S PLUS로 풍경을 촬영한 동영상은 3840*2160 (4K) (30fps), 1920*1080 (1080p HD) (120fps), 1280*720 (720 HD) (240fps) 중 한 포맷일 것이다. 만약 확대 없이 아이폰 6S PLUS의 후면 카메라로 촬영하였다면 우리는 5.5인치 스크린 상에서 1,200만 화소의 퀄리티의 영상으로부터 별다른 노이즈(noise)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동일한 영상이 영화관의 스크린으로 옮겨간다면? 5.5인치 스크린에서 고화질로 생각되었던영상은 흰색의 천으로 이루어진 스크린에서 (끔찍한) 저화질로 보일 것이다.
        작업하는 과정에서 욕심을 가지지 않는 작가는 없을 것이다. 어색한 호흡과 색보정은 수습되어야 하고 컷과 컷 사이가 붉은 화면으로 튀는 순간은빨리 고쳐져야 하며 마음에 들지 않는 모델링은 쓸 수 없다. 이미지를 보면 볼수록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로 인해 작가는 이미지를 끊임없이 만지고 손을댄다. 작가는 작업 과정에서 작업물의 탄생에 이르는 시간 동안 생성되는 모든 필요조건을 충족시키고자 한다. 이렇게 끊임없이 노동하는 작가는 우울하다. 현실은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예술의 체제에서 노동자로서의 작가는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이다. 그뿐만 아니라 기껏 작업한 작업물이 부당대우를 받는 상황은 비일비재하며 작업을 공개할 공간과 기회조차도 희박하다.
        그로인해 노동자로서의 작가는 자기-추동의 삶에 놓이는 듯하다. 1인 기업 혹은 DIY("Do-It-Yourself")로서의 작가. 작업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과시간, 기술에 스스로의 역량을 투자해야만 하는 작가.
        이미지를 만들고 촬영하고 편집하는 몇 개의 경험에서 출발해 글을 써 내려간 나는, 시스템 이전에 '이미지'라는 현실에서 이미지를 생산하는 노동은 어떻게 비가시적인 상태에 놓이는지 하나씩 추적해보고자 하였다. 그러한 트래킹 끝에 나온 이 글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미지와 그 생산에 대한 사전과도 같은 문서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나는 이 글을 통해 이미지에 보이지 않는 어떤 과정의 양상들이 단편적으로나마 가시화되길 바란다. 어쩌면 이 글은 매우단순하고 당연한 사실 하나를 말하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미지 이면에는 창작자가 존재한다." 이미지는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생산되지 않는다. '보기'라는 행위에서 촉발되는 이미지 생산에 대한 오해들을 헤쳐나갈 수 있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1] 히토 슈타이얼, 「컷! 재생산과 재조합」, 김실비 옮김, 김지훈 감수, 『스크린의 추방자들』, 워크룸 프레스, 2018, 225-242쪽.

[2] 마우리찌오 랏짜라또, 「비물질 노동」, 조정환 옮김, 『비물질노동과 다중』, 질 들뢰즈⋅안또니오 네그리 외, 갈무리, 2005, 181-206쪽.

[3] 픽사베이의 한국 플랫폼(pixabay.com/ko/)의 헤더에 적인 말로 '유능한', '재능 있는' 등으로도 번역될 수 있는 "talented"는 "관대한"으로 번역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