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5
Critic
스콧 긍휼 평강 사랑
: 〈메트로폴리스〉, 〈프로메테우스〉, 그리고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
정경담
마테리알 편집인



︎메트로폴리스후서

1. 어느 시네필 무리가 영자원 앞에서 스콧의 신작을 매표하는 것을 보고 사도 바울이 크게 노하여 가로되

2. 주께서 연속극을 HBO Max에서 구원하여 내셨도다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실지라


풍화되는 태양열 전지와 위성, 모래바람, 행성의 고리와 섬광, 아름답게 붕괴하는 지구, 그리고 틀림없이 1927년의 〈메트로폴리스〉로부터 백 년간 이세계로 비행해 왔을 안드로이드의 ‘수색하는’ 눈. 무엇인가 끝장나고 폭발하고 흩어지는 것의 연속. 부르주아들을 현혹시키기 위해 유혹의 춤을 추던 마리아 안드로이드는 이제 지구와 행성을 감시하고 캠피온의 아이들을 해칠 수 있는 모든 것을 무차별 살육한다. (그것이 십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자신만을 위해 헌신해 온 일지라 해도?)

〈메트로폴리스〉의 세계는 노동자 혹은 부르주아가 점유하고 있는 공간에 따라 양분된다.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의 세계는 미트라교(敎) 신도와 무신론자의 세계로 나뉜다. 그리고 〈메트로폴리스〉에서 부르주아인 프레데센이 미치광이 과학자 로트방을 통해 노동자인 마리아를 복제하여 로봇으로 만들었던 것처럼,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에서 무신론자 엔지니어인 캠피온은 미트라교 진영이 개발한 살인기계 네크로맨서를 개조하여 무신론자-인류-양육-로봇인  안드로이드를 완성한다. 마리아가 로트방이 사랑했던 여자 ‘헬’의 기계화 버전이었듯, 캠피온 역시 자신이 개조한 마더 안드로이드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무기화된(weaponized) 마더는 마리아와 정말로 똑같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마리아처럼 개조를 통해 현재의 모습이 되었고, 마리아와 마찬가지로 개조를 집행한 기술자와 치정 관계에 놓인다. 다른 점이 있다면 춤을 추는 기예 외에는 무능력했던 마리아와 달리 마더는 예수 형상으로 사지를 뻗고 날아다니면서 유신론자들을 죽이는 초강력 살인병기라는 것이다.

이렇듯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에는 확실하고 큰 전제들을 공유하는, 레퍼런스 그 이상이면서 그렇다고 해서 그 나열을 프랜차이즈라고는 부를 수 없는 참조점들이 있다. 이를테면 그 옛날 프릿츠 랑의 본격 AI물 〈메트로폴리스〉(1927)가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에 막대한 모티브를, 리들리 스콧 본인의 괴물신화 〈프로메테우스〉(2012)/〈에이리언〉(1979~2017)이 직접적인 세계관을 제공했지만 세 집합이 서로의 전편이나 속편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숨은 연관성을 길어올리는 일은 언제나 재미를 보장한다. 세 작품, 그중에서도 특히  〈프로메테우스〉와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는 어떻게 묶여 있는지, 어떤 소스를 공유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그러나 가장 흥분되는 지점은 같은 세계관 속에 존재하는 두 이야기가 서로의 모순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일한 두 여인

3. 바울이 이어 하늘에 계신 주여 마더와 쇼가 동일하오나 세계가 협소하매 한 여인을 멸하심이 어떠리이까 하니 이는 그가 영화와 연속극을 분별하지 못함이라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는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세계를 공유한다. 명백한 일이다. 그러나 그 세계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프로메테우스〉는 2093년에서부터,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는 2130년에서부터 시작하지만, 둘 사이에는 선후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지구 멸망의 순간에서 분기되는 두 가지 가능성의 세계다. 아니다. 지구 멸망이 ‘예견된’ 순간에서 분기된다. 그러니까, 리들리 스콧의 세계관이 영화와 시리즈 양자에서 동일하게 표출되는 것을 보려면 과거에서 미래가 아니라 미래로부터 과거를 향해 회고적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 진행방향은 종교와 신도를 바보, 멍청이, 광인, 위선자 취급하면서 동시에 진지병 걸린 무신론자들의 진화론조차 벗겨 뒤집는 스콧의 고약함과도 일치한다. 스콧의 세계에서 인류는 고등화되어온 것이 아니다. 인류/호모사피엔스의 미래는 미끌미끌한 ‘엔지니어’다. 그러나 그 미래는 과거와 동시에 존재한다. 스콧은 그것을 케플런-22b에서 확실하게 보여준다.

여기서 오류를 일으키거나 혼선을 빚는 것은 뻔뻔하게 자행되는 시간의 비약이다. 그러나 리들리 스콧의 세계에서 이 비약은 기만적이지 않다. 안드로이드는/크툴루는 나이들지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가 볼 수 있는 외양의 차원에서, 그들은 똑같아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은 기만을 기만 아닌 것으로 포장하는 이중 기만이다. 왜냐하면 스콧의 세계에서 태어난 안드로이드/크툴루들은 머신-러닝을 통해 위기 대처 능력이나 최단경로 따위만을 학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감정을 익히고, 축적하고, 따라서 과부하 걸린다. 그리고 우리는 감정을 절제하려 애쓰는 안드로이드에게 마음을 주게 된다.

구체적인 증거로, ‘마더 안드로이드’는 각성 이후 점점 유신론에 흔들린다. 무신론자 인류의 번식과 양육을 위해 설계된 자신의 프로그램과 인정, 사랑, 슬픔 같은 것들 사이에서 번뇌한다. 안드로이드가 번뇌를 하다니.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의 마더는 인류를 재건하기 위해, 기꺼이 지구를 떠나 행성에 안착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로봇이다. 마더의 시스템이 이상 없이 작동하고 마더가 자신의 체계에 순응하던 시절, 마더는 무신론자 인류의 미래를 위해 모델링된 정교한 기계였다. 별무리가 소용돌이치는 어두운 밤에, 마더는 아이들과 둘러앉아 과학 이외에는 믿을 것이 없다고 냉정한 프랑스 부모처럼 말한다. 이렇듯 마더는 모든 ‘비(非)’—비존재, 비인간, 비정—로부터 시작되었지만, 그 접두어를 모두 떼는 것을 목표로 선회한다. 그 선회는 본격적이라기보다는, 마더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진다.

반대로, 〈프로메테우스〉의 주인공인 ‘쇼(Shaw)’는 각성 이후 열혈 신도에서 무신론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쇼는 평온한 상태를 깨뜨리고 싶어하는 무의식적 욕망이나 인간의 호기심, 어리석음에서 시작하여 완전한 멸망으로 질주한다. 사실 쇼가 살던 지구는 망하지 않았다. 그러나 쇼에 의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서, 쇼의 지구는 쇼 자신에 의해 망한 것 같다. 산 것에서 죽은 것으로, 미래(라고 믿었던 것)에서 기원(이라 믿었던 것)을 향해 간다.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의 마더와 〈프로메테우스〉의 쇼가 그들 각각의 세계에서 거의 동일한 속성을 지닌 평행 개체임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들은 지구에서 행성—케플런-22b와 LV-223—으로, 그리고 신도에서 무신론자로 이동—언급했다시피 마더 역시 무신론자인 캠피온에 의해 개조되기 이전에는 미트라교 세력에 복무하던 살인병기였다—하고, 비/인간의 아이를 비범한 방식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임신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갖게 되며, 홀로 복중의 괴물을 출산하지만 생식기를 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괴물을 격리시키고자 시도했다는 점에서 노골적으로 흡사하다. 결국 두 개체가 다른 포맷 내에 위치해 있을 뿐인 동일인물이라면,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 시즌 2에서 마더의 친자식은 (〈프로메테우스〉의) 트릴로바이트가 될 것인가? 아니면 가르강튀아가 될 것인가? 그녀들의 자식들이 생식기가 아닌 신체부위에서 별안간 태어나는 것은 그들이 ‘신’적 존재임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라브레가 그렇게 의도했다시피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콧은 신화를 좋아하니까. 그렇다면 ‘그녀들’ 역시 신일지 모른다. 혹은 동정녀 마리아이거나. 여기에 특별한 논리적 근거를 갖다붙일 수는 없다. 신화의 세계란 본디 무작정 믿는 것에서 시작되는 게 아닌가.

“나는 여러분이 이 기이한 출생을 분명 믿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만일 믿지 않는다 해도, 나는 개의치 않겠다. 그러나 선량한 사람, 양식있는 사람은 누가 말해주거나 글로 씌어진 것을 보면 언제나 믿는 법이다. (…) 제발, 이런 헛된 생각에 정신을 혼란시키지 말기 바란다. 아무것도 불가능한 것이 없는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면, 여자들이 앞으로는 귀를 통하여 아이를 낳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여러분에게 장담하는 바이다.

바쿠스는 유피테르의 넓적다리에 잉태되지 않았던가?

로크타유는 어머니의 발꿈치에서 태어나지 않았던가?

크로크무슈는 유모의 실내화에서 태어나지 않았던가?”**

혹은, “보여주어야 할 사물이나 인물은 없다. 드러내거나 계시되어야 할 사물이나 인물은 없다. 계시(revelation)를 숨은 실재의 드러냄이나 신비의 해독으로 생각하는 것은 기독교나 유일신교 일반의 종교적 혹은 신앙적 양태일 뿐”***이라던 장 뤽 낭시의 입을 빌어올 수도 있을 것이다.


︎만지지 말지어다: 시리즈를 위하여

4. 스콧께서 이르시되 보라 바울아 쇼를 영원토록 지연시키라
5. 이에 시네필들이 쇼를 붙드매 곧 스콧께서 전능의 손을 드사
6. 쇼가 마더로 변하니 이는 영화와 연속극이 서로 교통하는 것이로다 하시니라


그래서 도식적으로 (무엇보다, 스콧이 보여주고자 한 대로) 신화에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를 끼워맞춰 보면, 제우스는 (기술자) 캠피온이며, 마더는 제우스가 인간 세계(의 재건)을 위해 행성으로 내려보낸 인류 최초의 여자 판도라다. 정확히 말하면, 인류를 되살릴 새로운 세계로 보내진 최초의 여자[안드로이드]다. 쇼와 마더, 두 주인공은 각성 이후 정반대의 토픽을 가지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기이하게도, 안드로이드인 마더의 토픽이 인간인 쇼의 그것보다 더 성찰적이고 인간적인 양태를 띤다. 쇼와 마더는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면서도 서로를 계속해서 뒤집고 또 배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의 동일한 세계를 영화와 시리즈로 구획하고 다시 서로 다른 장르의 토지 사이를 ‘교통’하게 하는가? 영화 속에서 순식간에—대개는 두 시간 내외로—벌어지고 마는 어떤 플롯을, 시리즈물이 끝간 데 없이 지연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지연은 언제나 한 시간짜리 에피소드 단위로 발생한다. 지연이 열 번 혹은 스무 번 가량 반복되면 한 시즌이 막을 내린다. 그러니까, 스콧에게 있어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는 〈프로메테우스〉라는 계시의 연속적인 지연이다.

성경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나사렛 예수의 텅 빈 무덤을 발견한다. 그는 슬피 울다가 부활한 예수를 만난다. 예수는 마리아에게 말한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만지지 마라(Ne me touche pas).” 마리아는 물러선다. 그리고 곧장 제자들에게 가서 주님을 뵈었다고 전언한다. 접근금지는 즉각 더 큰 믿음을 생성하고, 믿음의 종결을 지연시키는 셈이다. 낭시에 따르면 기독교에서 예수는 접근불가능한 존재가 결코 아니다. 신도들은 성찬식에서 그의 피인 포도주를 마시고, 그의 살인 카스테라를 먹는다. 또한 예수는 낮은 자들과 함께하는 자이며, 언제나 만질 수 있는 존재다.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를 만지지 마라” 외친 것은 무척 예외적이며, 단 한 번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건은 부활한 예수에 대한 굳은 믿음을 영원한 방식으로 연속시키는 가히 효과적인 지연이었음을 이제 우리는 생각한다.

마더가 예수의 형상으로 비행하는 것은 우연일까?


︎블랙홀이 까뒤집는 것은

7. 시네필들이 재차 영자원 앞에 모였을 때 스콧께서 당도하시매 일제히 그에게 몰려들어 외치는도다 주여 연속극을 구하소서
8. 스콧께서 이르시되 보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붙들지 말지어다
9. 그리하면 ‘다음 편’의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아멘


암흑물질이 없다는 새로운 연구결과가 발표된 이후에도 우주는 (여전히) 팽창하고 있다. 이 낯선 발견에 의해 우리는 다시 점과 선만으로 대충 구획된 미확정의 시/공/간에 몇 개의 세계를 아무렇게나, 동시에 던져놓을 수 있게 됐다. 과학을 합법적으로 무시할 수 있게 될 때 우리는 좀 더 혼란스러워지고, 그 혼란은 곤란한 감각을 주고, 우리를 낭만상태에 빠뜨린다.

케플러-22b의 한가운데 뻥 뚫린 죽음의 블랙홀 아래에는 메트로폴리스와 같은, 사전에 부르주아들에 의해 설계되고 격리된 무엇이 있을까? 적어도 마더와 파더는 그럴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 같고, 그래서 마더가 낳은 괴물을 죽이고 인류의 신기원이 될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탐사선에 스스로를 가둔채 자살 혹은 영원한 격리를 기도했던 것 같다. 그러나 10화에서 밝혀졌듯이 그 ‘구멍’은 지상과 지하를 연결하는, 처리 곤란한 것들을 밀어넣기 위한 구멍이 아니었다. 단순히 길고 무섭기만 한 통로가 아니라, 삶과 죽음을, 또는 존재와 비존재를, 과거와 미래를, 그리고 어쩌면 평행세계의 대당까지도 까뒤집는 그야말로 ‘블랙홀’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그 구멍에 빠져 운명을 달리했던 탈리가 별안간 “도자기를 많이 만들어요(doing lots of pottery)” 한두 소절의 노래밖에는 흥얼거리지 못하는 유령의 형상으로 되돌아온 것도, 폴의 생쥐가 별안간 다시 나타난 것도 말이 된다.

위키에서 가져온 설명에 따르면, 블랙홀은 “항성이 진화의 최종단계에서 폭발 후 수축되어 생성된 것으로 추측되는, 강렬한 밀도와 중력으로 입자나 전자기 복사, 빛을 포함한 그 무엇도 빠져나올 수 없는 시공간 영역”이다. 화이트홀은 에너지보존법칙에 위배되는 블랙홀의 이론적 공백을 보완하기 위해 제시된 것으로, 과학자들은 블랙홀에서 빨아들인 것들이 화이트홀로 빠져나와 다른 우주에 도달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 시즌 1의 엔딩에서, 구멍 속으로 한참을 추락한 끝에 다시 모종의 세계로 솟아오른 마더, 파더, 그리고 마더가 낳은 괴물은 명백하게 화이트 홀에 귀속된 것처럼 보인다고 얘기할 수도 것이다. 그들이 솟아오른 세계는 과연 익숙해 보일 뿐인 이세계인가? 그게 아니라면 되돌아온 세계? 혹은 시간상의 이동인가? 어느 쪽이든 괴물은 승천하는 이무기와도 같은 모습으로 방사되었고 인류는 단단히 위험에 처한 것처럼 보인다.

케플러-22b 행성에 널려 있던 거대한 뱀의 해골을 상기한다면, 그것이 (어쩌면) 마더가 낳은 괴물의 잔해일 수도 있다는 추측을 하게 된다. 답답한 점은, 이 추측이 들어맞는다 해도 구멍이 까뒤집는 개념이 ‘존재’인지 ‘시간’인지 ‘공간’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구멍이 어떤 철학적 개념들을 까뒤집는 기이한 통로라면, ‘환청’의 정체가 구멍을 두 번 통과한 존재, 혹은 여전히 구멍 아래의 세계에 있으면서 구멍 위의 세계로 향하는 모종의 언어전달체계를 사용할 수 있는 존재일 수 있다.

다시, 이 진행방향은 종교와 신도를 바보, 멍청이, 광인, 위선자 취급하면서 동시에 진지병 걸린 무신론자들의 진화론조차 벗겨 뒤집는 스콧의 고약함과도 일치한다. 스콧의 세계에서 인류는 고등화되어온 것이 아니다. 인류/호모사피엔스의 미래는 미끌미끌한 ‘엔지니어’다. 그러나 그 미래는 과거와 동시에 존재한다. 스콧은 그것을 케플런-22b에서 확실하게 보여준다.


* ‘마더 안드로이드’는 과학적으로 임신 불가능한 기계 인간이며, 쇼는 불임 판정을 받았다.
**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 유석호 역, 프랑수아 라블레, 문학과지성사, 2004. p. 49.
*** 나를 만지지 마라, 이만형 정과리 역, 장-뤽 낭시, 문학과지성사, 2015, p. 11.





노매드랜드에서 노-매드-랜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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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콧 긍휼 평강 사랑: 〈메트로폴리스〉, 〈프로메테우스〉 그리고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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