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5
Critic
대화를 멈춰선 안돼: 〈마인드헌터〉
조일남



Talking Heads의 〈Psycho Killer〉, Toto의 〈Hold the Line〉···  회마다 보이스 오버로 음악이 흐르면 한 에피소드가 끝났음을 감지하고 지체 없이 다음 화 버튼을 누르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힌다. 19시간에 달하는 드라마를 한 번에 몰아 볼 여력이란 개인마다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에 따라 다름이 분명하겠지만,  그럼에도 〈마인드헌터〉를 감상하는 모두는 이 시리즈를 보는 과정이 화면 너머 인물들이 겪는 황폐와 피로를 지속해서 전달받는 일임을 부정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서 그 지난한 감각을 ‘중단하고 싶지 않다’는 충동이 함께해 참 아이러니하다. 이는 나만이 겪는 모순점은 아닐 거라 믿고 싶다.

〈마인드헌터〉를 본다는 건 무언가 끊이지 않고 계속 되풀이되고 있음을 감지하는 일이다. 여기서 '끊이지 않는다'라는 효과는 숏/역숏 구도를 기반으로 한 대화 장면을 반복해서 지켜봤을 때 오는 기시감에 근거한다. 그렇다면 왜 〈마인드헌터〉는 대화를 중단하지 않는 걸까? SE01의 첫 장면, 홀든과 인질범 밀러가 대면하는 시간으로 잠시 돌아가보자. 우리는 왜 홀든이 처음 대화를 시도하는 인물이 에드먼드 켐퍼나 몬티 러셀, 찰스 맨슨이 아닌 밀러인지 인지할 필요가 있다. 그는 정신과 약을 먹긴 했지만, 아내의 증언에 의하면 평범한 가장이었으며 불과 며칠 전 자신이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다는 말 만을 남긴 채 사라진 뒤, 갑작스럽게 원인 모를 분노에 휩싸여 다섯 명에게 총구를 겨눈 인질범으로 변모한 이다.

여기서 홀든은 무사히 인질들을 구출하지만 밀러를 설득하는 데엔 실패한다. 밀러는 홀든과의 협상을 갑작스레 중단하고 끝내 총구를 자신의 얼굴에 겨누고 방아쇠를 당겨버리고 만다. 이 두 이미지의 연결은 자살을 감행한 밀러의 외화면 영역에 있던 홀든만이 아니라, 두 대화를 영상 밖에서 바라보던 감상자에게도 무언가를 놓쳤음을 시사하는 충격 효과다. 말하자면 1화가 시작하자마자 이뤄지는 협상의 실패는 홀든이 대면한 상대인 밀러의 ‘얼굴이 완전히 소멸한다’란 충격 이미지로서, 이후 홀든이 수행하는 협상의 변화를 촉구하도록 하는 기폭제다. 〈마인드헌터〉는 어떤 의미에선 사라진 밀러의 얼굴을 계속해서 재구축하는 시도의 연속이다. 마크 에임스의 말처럼* 광란의 살인자를 만드는 것은 살인자 개인의 내적 심리 장애가 아니라 외적 요인, 즉 환경적 요인이란 시사점을 던져주며 프로파일링은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마인드헌터〉에서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다는 감각은 어딘가 데이비드 핀처가 연출한 〈조디악〉을 봤을 때와 유사한 감정을 전달해주는 것 같다. 이는 어디에 기인할까. ‘레딧’의 한 유저인 ‘Spoilerish’는 〈마인드헌터〉와 〈조디악〉 두 작품의 유사성에 관한 물음을 올렸는데 ‘DavidAtWork17’란 유저가 응답한 내용에 힌트를 얻었다. 그는 대화 장면에 쓰인 테크닉에서부터 두 작품의 유사한 촬영기법으로 제작되었음을 지적했는데, 나는 그 지적에 동의하며 이렇게 보충하고 싶다. 두 작품은 러닝 타임의 지속과 무관하게 사건이 해결되지 않고 감상자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음’을 상기하도록 하도록 설계돼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 계속 벌어지는 살인사건과 이를 파헤치려는 주연들의 이동을 지켜보는 과정이나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대화 장면에 오가는 말들이 맥락을 형성하고 곧 다음 서사에 영향을 주는 레이어의 중축으로 이어진다. 이 비가시적인 레이어들이 회가 지나면 지날수록 두터워져 간다는 사실을 감상자라면 쉽게 감지할 수 있으며, 이것이 〈마인드헌터〉와 〈조디악〉을 보는 이라면 공통으로 느낄 수 있는 두려움과 피로감과 연결돼 있다고 말이다.

물론 2시간 37분이란 러닝타임을 지닌 〈조디악〉을 본 경험과 〈마인드헌터〉를 등치하기 위해선, 〈마인드헌터〉가 지닌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영화라는 자리에 놓을 수 있는 몇 가지 특수성을 짚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19시간 동안 반복적인 피로감을 선사하는 〈마인드헌터〉를 보며 우리는 어떤 희열을 기꺼이 감당하려고 하는 걸까.  일단 〈마인드헌터〉란 영상을 우리는 영화로 부를 수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 설령 아니라면 (이 기획이 시리즈라 명명하긴 했지만) 영화도 드라마도 아닌, 두 매체 사이를 오가는 이 영상을 무엇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게다가 〈마인드헌터〉를 한 주에 1~2회 방영하는 TV드라마 형식의 연장으로만 치부하기에 몇몇 넷플릭스 시리즈물이 지닌 특수한 유통방식에 나타나는 특성이 이를 쉽게 정의하기 어렵게 한다. 첫 화부터 마지막 화까지 한 시즌을 통째로 한 번에 공개하는 방식은 우리가 TV 드라마를 감상하는 방법과 달리, 감상자가 자신만의 고유한 시차를 경유해 작품과 만난다는 데 차이가 있다. 그렇기에 오히려 이 시리즈는 (총 러닝타임의 길이를 감상자가 인지하고 시작한다는 점에) 극장이라는 상영조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영화처럼 여겨질 여지가 있다.

촬영 감독인 에릭 메서슈미트가 〈Go Creative Show〉와 진행한 인터뷰엔**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메서슈미트가 합류할 당시 파일럿 드라마로 제작되고 있었다는 사실(그는  2화부터 합류했다고 한다)과 카메라 움직임을 비롯해 디테일한 장면들이 제작 초기부터 핀처의 지시 아래 이뤄졌다는 지적이다. 공동 연출자가 작업했음에도 불구하고 데이비드 핀처의 영향력이 시리즈 전반에 크게 미치고 있음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마인드헌터〉엔 배우의 순간적인 움직임이나 제스처를 추적하는 패닝 카메라를 사용하는 시도는 데이비드 핀처란 영상작가의 자의식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읽힐 여지가 있으며 16:9가 아닌 시네마스코프 화면비(2.35:1)를 고집하는 방식 역시 TV 드라마로 비칠 수 있는 시리즈란 장소에 영화적 효과를 불러일으키려는 장치 구성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시리즈물의 사례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짐작해볼 수 있을까. 좀 더 이전으로 돌아가 보자. 하나의 큰 이야기를 필두로 각각의 단락들을 묶어 이를 극장에 상영한 사례의 시작점으로. 오늘날 시리즈물이라 불리는 매체는 영화사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난 초기 상영방식 중 하나로부터 파생되었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무성영화 초기 연쇄극으로 알려진 〈팡토마〉와 1915년과 1916년, 2년에 걸쳐 10편의 연쇄극을 파리 극장에 상영한 루이 푀이야드의 〈흡혈 강도단〉과 같은 작품들에서부터 tv시리즈로 방영되기도 했던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이나 데이빗 린치의 〈트윈픽스: 더 리턴〉과 같은 작품들로 이어졌음을. 푀이야드의 사례가 애초부터 연쇄물을 염두에 둔 시도가 아니었고 1913년까지 매년 80편의 영화를 찍고 〈흡혈 강도단〉을 연출하며  2주마다 새로운 에피소드를 준비해야만 했던 푀이야드의 초인적인 작업량과 텔레비전이 없던 시기 당대 영화 산업이 만나 우연으로 탄생한 결과였지만, 흥미롭게도 파일럿이란 임시로 완결된 서사 뒤에 계속해서 이야기를 덧붙여나가는 제작 방식의 시작이라는 점에, 푀이야드의 작업과 〈마인드헌터〉의 연결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여기서 생각해볼 지점은 정성일이 〈흡혈 강도단〉을 회고하며 “부서지기 쉬운 경계에서 ‘영화다움’의 정체성을 찾고 있는 영화였다.”라 말한 곳에 있다.*** 이를 〈마인드헌터〉의 사례로 옮겨온다면 이 작품 또한 극장이라는 상영 조건이 아닌 곳에서 러닝타임의 한계를 밀어붙여, ‘영화다움’의 정체성을 모색하는 시도라는 데 연쇄극 역사의 계보에 세울 수 있는 한 편의 영화로 접근해보고자 한다.

연쇄극이 범죄 스릴러 장르를 필두로 영화사의 출발과 함께했다는 사실은 몽타주의 발전과 연관돼 있어 보인다. 바쟁의 이야기대로 영화는 이미지 내용상의 조형성과 몽타주의 다양한 가능성에 힘입어 무수한 수단을 동원하며 관객들이 재현된 사실을 특정 방향으로 이해하게 한다.**** 〈흡혈 강도단〉에서 사진기자 필립이 이르마 베프를 필두로 한 ‘흡혈 강도단’을 추적할 때, 관객은 ‘흡혈 강도단’이 변장의 귀재이자 파리 도시 전역에서 나타날 수 있다는 불안을 인지한 채로 누가 시민으로 변장한 범인인지 가려내기 위해 상상의 몽타주를 만들어내며 영화를 이해한다고 가정해보자.

여기서 다시 〈마인드헌터〉로 돌아가보면 우리는 유사한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연쇄 살인마와의 인터뷰 장면이나, 혹은 홀든과 빌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살인 현장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말이다. 이 시리즈에 나타나는 대화 장면들 속엔 언제나 시체나 살해 현장과 같은 구체적인 이미지가 재현되지 않는다. 오직 발화자가 구술하는 사건에 대한 인상과 기억들이 제시된다. 이는 언어 묘사와 발화자의 기억 이미지를 기반으로, 살해 현장과 연쇄 살인마의 외부 환경이나 사적인 배경을 감상자가 떠올려 보게끔 한다. 즉 〈마인드헌터〉에서는 관객이 저마다 상상하는 사건 현장의 몽타주가 만들어진다.

이때 범죄 스릴러 장르에 나타난 상상의 몽타주와 영화 매체의 관계는 사진과 범죄 수사의 발달과도 닮아 보인다. 『박상우의 포톨로지』가 이러한 사유를 뒷받침하는데, 박상우는 사진기가 대상을 찍는 이른바 프로젝션 방식이 인간이 눈으로 사물을 지각하는 과정과 유사함을 이야기한다.***** 차이가 있다면 인간의 눈은 사진기와 동일한 투사 기하학 방식으로 눈앞의 대상을 식별하지만 여기서 기억을 매개로 활용한다. 이때 알퐁스 베로티옹의 사례가 나오는데, 베르티옹의 연구는 사진이란 매체가 정보의 과다(담고 있는 피사체의 모든 특징을 보여준다는 점에 식별의 어려움이 함께함)로 인해 범죄자를 사진만으로 식별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음을 역설하며, 그 때문에 용의자의 구체적인 특징들을 인간이 언어로 묘사하는 ‘초상 언어’란 방법론으로 발전해 왔음을 언급한다. 박상우는 언어가 정신에 어떤 이미지를 유발하는 수단일 뿐 아니라 유동하는 정신 이미지를 기억 속에 확고히 정착시키는 수단이라는 점을 근거로 ‘글로 쓴 초상화’의 탄생 단계라 주장한다.

〈마인드헌터〉에서도 사진이 등장한다. 여기서 사진은 범인의 얼굴을 식별하는 도구가 아니라, 살해 도구와 시체, 현장 기록으로만 존재한다. 누가 범행을 저질렀는가에 초점을 맞춘 게 아니라, 이러한 살인 행각들이 외부 환경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음을, 따라서 앞서 이야기한 밀러의 얼굴은 부재한 것이 아니라 도처에 떠돈다는 것, 즉 대화와 기억에 의존해 미완의 프로파일링을 계속 수행하는 것이다. 우리가 〈마인드헌터〉를 감상하며 계속 느끼게 되는,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감각은 되려 놓치는 게 아니라 무언가 더해지고 있는 걸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 〈마인드헌터〉라는 시리즈는 우리에게 이 감각들을 느끼도록 요청함으로써 ‘사이다’라는 완결 서사가 불가능하며, 프로파일링이란 저명한 방법론조차도 어떤 해답이 아니라 끊임없는 대화의 시도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불편함을 반복하는 에피소드들을 붙들고 있으면서 시리즈를 보는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건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되는) 존 더글라스가 저술한 프로파일링 이론의 가시적인 개요와 그 이론을 적확한 용의 대상에게 적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매끈한 서사의 완결일 테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는 시즌 2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잔인하게 부숴진다. 웨인 윌리엄스의 검거를 마치고 애틀랜타 연쇄 살인사건 희생자들이 식사하는 장소에 찾아간 홀든이 받는 냉대를 떠올려보자. 이후 웨인 윌리엄스가 아동 대상 연쇄 살인 건에 대해 기소를 받지 못하는 결과가 TV 화면으로 송출되고, 이를 무력하게 바라보는 홀든의 표정을 마주하는 일 말이다. 우리는 ‘그때 완결되었다고 믿었던 사건’의 시간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음을, 지난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홀든과 빌, 카 박사가 다시금 콴티코로 시작해 보스턴과 애틀랜타와 마이애미 등지를 넘나드는 여정이 〈마인드헌터〉 시즌 3에서 다시금 이어지길 바란다. 그리고 화면 바깥에서 이미 끝났다 여겨지는 이야기들에 잔존하는 부재를 감지하기 위해 분주히 누군가 붙잡고 대화를 이어갈 테다.


* 마크 에임스,『나는 오늘 사표 대신 총을 들었다』,박광호 옮김, 후마니타스(2016), p. 236

** Mindhunter Cinematography (with Erik Messerschmidt)”, 〈Go Creative Show〉 GCS219, 2020. 5. 5. https://youtu.be/GoLrVjL4wgo

***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준 생애의 영화”, 서울아트시네마, 2010. 2. 11. https://trafic.tistory.com/entry/‘영화란-무엇인가’라는-질문을-던져준-생애의-영화

**** 앙드레 바쟁, 『영화란 무엇인가? I. 존재론과 언어』, 김태희 옮김, 퍼플(2018), p. 197

***** 박상우, 『박상우의 포톨로지』, 문학동네(2019), p. 2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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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화를 멈춰선 안돼: 〈마인드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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