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5
Critic
책상의 측면 돌기: 〈에란겔 다크투어〉 기행
정경담
마테리알 편집인



전염병 시대에 용감하게 개관한 중랑의 어느 영화관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C열 7번 좌석에 앉아서 〈노매드랜드〉의 무수히 교차되는 원경들을 반복해서 바라보다 나는 문득 깨닫는다. “나는 왜 전 세대를 아울러 보려는 강박에 빠져 있는가?”그 원경들이 동일한 톤의 색감으로 보정되어 있지 않다고 느끼면서 나는 ‘마치 인스타그램 화면을 스와이프해서 필터를 바꾸는 것 같네’라고 느끼고, 흠칫 놀라 서둘러 ‘아니. 그게 아니지. 그런 M세대적 감각으로 영화를 보면 안 된다’라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러자 마음을 고쳐먹는 나 자신의 위선적 영화감상이 지긋지긋해져버리고 말았다. 이전 세대의 맥락을 어설프게 파악하고, 그로부터 현재에 대한 인식을 시작해야 한다는 착실한 강박이 얼마나 많은 영화들을 재미없게 만들었는가? 나는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과 3d 터치의 사용자화된 모션들, 노션과 윈도우10과 iOS 7.0 이후의 플랫한 UI 디자인에 길들여진 동세대적 나로부터, 당장의 느낀 바로부터 글을 개진해보기로 마음먹는다. 아, 이 글은 〈노매드랜드〉에 대한 것은 아니다.

지난달 중순 나는 처음 방문하는 가상의 섬으로 여행을 떠났다. 이 섬은 ‘배틀그라운드(Player Unknown’s Battlegrounds)’라는 게임의 정거장을 경유해서만 접속할 수 있는 공간이며, 당연하지만 세계에 물리적으로 실존하는 곳은 아니다. 나는 투어를 주관한 기획자들의 프로모션을 통해서 이 여행을 알게 됐다. 그리고 이 투어에 참여하기 위해 스팀 계정으로 한화 3만 2천 원의 게임팩을 구매하고, 기존 유저들에 비해 내 캐릭터가 지나치게 초라해보이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 미화 11달러를 들여 NBA 농구팀인 레이커스의 유니폼을 샀다. 여행을 일주일 앞두고는 포항 육거리 스타벅스에서 친구의 윈도우 노트북을 빌려 리허설에 참여했다. 게다가 여러 상황이 꼬이는 바람에 여행 전날 멀쩡한 자취방을 놔두고 시청 근처의 호텔에서 하루를 묵게 되면서, 이 여행은 진짜 여행다운 것이 되고 말았다. 비상금까지 탈탈 털어 썼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내가 방문한 섬 ‘에란겔’의 풍경은 현실과 유사하다. 건물 외벽의 텍스처, 침엽수림의 정교한 잎사귀, 폐허로 변해가는 철골 구조물의 녹. 덕지덕지 이어붙인 에셋*의 집합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조화로운 경관이다. 에란겔은 종종 업데이트된다. 이 업데이트는 현실에서 건물, 조경, 공간을 더 깨끗하게, 더 편리하게 만들기 위해 수행하는 업데이트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데, 간단히는 공간의 유용성을 ‘다운그레이드’하기 위한 업데이트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서 테마 파크의 비주얼 업데이트와는 유사한 목적을 가진다.) 에란겔의 기본 설정은 1950년대 군사실험을 위해 소련에서 건설했다가 버려진 폴란드 양식의 섬이라는 것이다. 에란겔의 비주얼 업데이트는 섬을 더욱 더 버려진 것처럼, 폐허의 모습으로 정교화하기 위해 시행된다. 그러나 여기서 공간의 유용성이 곧 공간의 합목적성을 말하지는 않는다.

광장 앞의 커피숍은 경찰과 시위대의 대치 장소가 될 수 있다. 낭독회가 끝난 서점은 SNS 친구들 간의 회합 장소가 될 수 있다. 빈집은 노숙인의 쉼터가 될 수 있고, 술집은 일시적인 사무실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용도변경이 이루어진다면, 공간의 법적 주인인 특정인의 의지로 그 현상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에란겔: 다크 투어〉를 그렇게 소개해도 될까? 이 투어는 가상 공간에서 집결한 현실의 유저들, 그리고 그들이 수행한 퍼포먼스로 간단히 정리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맛이 있다. 이는 서바이벌 슈터 비디오게임인 ‘배틀그라운드’가 유용하고 있는 지대의 용도변경, 나아가 배틀그라운드라는 게임 자체의 용도변경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적 움직임이다. 기획자들이 투어를 가이드하며 계속해서 ‘60년대 상황주의자들’이라는 모티브를 언급한 것은 애초부터 그러한 집단행동의 도모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네. 그럼 조금 있다 제 구호와 함께 낙하하시죠. 준비합시다. 3, 2, 1, F키 낙하. (…) W키를 꾹 누르고 계시면 더 빠른 속도로 지상 낙하가 가능합니다. 어느 쪽 낙하도 상관없지만 웬만하면 물가는 피해주십시오. (…) 조금 있다 스쿨에서 만나요.”

‘배틀그라운드’는 모든 참가자가 수송기 C-130에 일제히 탑승했다가, 경기를 시작하고 싶은 지역에 알아서 뛰어내리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이 투어에서 나는 사전에 ‘스쿨 코스’ 멤버로 배정되었고, 디스코드를 통해서 스쿨 코스 전담 조교의 구호에 맞추어 낙하했다. 이것은 규칙이었고, 리허설을 통해 대대적으로 연습될 만큼 중요했다. 지상에 떨어진 나는 서둘러 낙하산에서 빠져나와 스쿨 존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헤드셋에서는 계속해서 조교가 멤버들을 가이드하고 있었다. 학교 건물 안에 있는 강당에 모여 조교들과 리드 퍼포머를 기다려 달라는 지시 이후, 혹시 강당 위치를 찾지 못한다면 동상 앞에서 기다리라는 안내가 이어졌다. 골목의 분위기로 지리를 가늠하는 나는  에란겔에서도 꼼짝없는 길치였고, 나는 결국 동상 앞에 허망하게 앉아 조교를 기다려야 했다. 길을 잃은 자는 나 말고도 또 있었다. 나는 그를 흘끔 쳐다보았고, 디스코드를 통해 말을 걸어볼까 하다가 조금 머쓱해져 그만두었다. 마침내 방독면을 쓴 조교가 우리를 찾으러 동상 앞으로 뛰어왔을 때부터 본격적으로 기분이 이상해졌다. 이 투어는 정말로 ‘배틀그라운드’가 아니었던 것이다.

강당 안에 모인 스쿨 코스 멤버들과 나는 저마다 흩어져서 쭈그려 앉아 있기도 했고, 폴짝폴짝 뛰면서 제스처를 주고받거나 괜스레 강당의 무대 위로 올라가 피아노나 단상 같은 것들을 살펴보기도 했다. 몇몇 관광객들이 엎드린 채 팔꿈치와 무릎으로 계단을 기어오르는 기행으로 무료함을 달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벽면에 난 통창으로 학교 인근의 마을 풍경을 구경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이 곳에서 자동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즐기거나 돌아다니면서 기념사진을 찍어 간직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아주 평화로운, 그래서 이상한 심정으로.

정밀하게 설계되고 업데이트(다운그레이드)를 반복하는 이 아름다운 섬은 오로지 전투를 위해서만 일시적으로 대여되곤 했다. 배틀그라운드는 우승자가 마지막 한 명을 살해할 때 종료된다. 모든 자연 에셋과 지형지물은 참호와 경비의 용도로만 쓰인다. 전투에 뛰어든 뒤 개인적으로 산책하는 일도 불가능하다. 순수한 관광을 시작하는 순간 머리에 총알이 박혀 죽을 것이고, 죽은 다음에는 에란겔에서 자동으로 ‘아웃’되기 때문이다. 한 번이라도 보이지 않는 총에 맞아 죽었다면 더 이상 여유로운 마음으로 지대를 둘러볼 수는 없을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면 에란겔에서 ‘걷기’라는 동작은 유명무실하다. 에란겔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오로지 달리거나(W+Shift) 전속력으로 뛰거나(=), 엎드리고(Z) 앉아서(C) 은폐/엄폐하는 동작만이 가능하다. 당신이 서있거나 걷고 있다면 그것은 전방을 예의주시하다가 목표물을 발견한 뒤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있을 때뿐일 테니까. 〈에란겔: 다크 투어〉는 완전하고 성공적인 용도변경을 위해서 해당 라운드에 참여하는 모든 서바이버들에게 사전 지령을 공유한다. “여러분, 동료들을 챙기면서 달리세요”, “집결지에서 벗어나지 말아주세요”, “대화하고 있는 상대 앞에서 총구를 겨냥하지 말고 총기를 집어넣어 주세요.”**, “우리 여기에다 무기를 버립시다”, “모두 함께 춤을 춰요.”그리고 나의 여행은 아무도 서로를 죽이지 않은 채 무사히 끝났다. 기획자들이 우려했듯 ‘배틀그라운드’의 법을 전복하기 위해 외려 새로운 규칙들을 양산하고 그에 따르기를 종용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긴 했지만, 끝끝내 모든 관광객들이 살아남은 채로 자기장이 좁혀올 최종 구역에 모여 공멸하기를 기다리는 풍경은 (인위적이긴 해도) 놀라웠다. 복수화가 내재된 조각의 과정에서, 형틀이 의도한 주물이 되지 않기로 주물 스스로가 결단하는 일. 따라서 주물과 형틀이 정반합을 이루지 않고 돌연 커다란 균열을 생산하게 만드는 일. 그것은 붕어빵틀로 밀가루풀을 구웠는데 국화빵이 되는 것만큼이나 기묘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여행을 소회하는 단체메일에서 기획자***는 “(우리는) 다만 다른 룰을 넌지시 제시했을 뿐이고 그것을 지키는 일과 지키지 않는 일, 빈틈을 이용해 (이를) 창의적(으로) 사용하는 일은 모두 관광객 여러분들의 몫이었습니다”라고 공을 돌린 뒤, “섹션에서 멀리 떨어져서 다른 재미있는 일을 하신 분, 일부러 트롤링하려 하셨던 장난꾸러기, 오류로 튕겨져 나가신 분 등은 꼭 리플레이 파일을 제게 주시면 좋겠습니다. 가능하실까요?”라고 물어왔다. 어쨌든 프로그램의 기획 차원에서 배틀그라운드 게임이 플레이되는 코드를 변경하지 않고 다만 ‘위반’으로써 엔딩을 뒤트는 일은 ‘위반’에 대한 집단적 합의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닌가? 최소한 누군가를 향해 대검을 꺼내 들거나 총구를 겨누지 않는 선에서. 물론 그것은 여전히 아이러니다.

그러니까,

“거실 중앙에서 책꽂이로 가기 위해서는
책상의 측면들을 돌아야 하며
창가로 가기 위해서도 역시
모서리를 피하고 의자를 피하고
전선들이 발에 걸려
모든 것을 망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마지막 생존자만을 남기는 것 외에 게임의 ‘한 턴’을 끝내기 위한 타임리밋 수단이 하나 더 있다. (앞서 잠깐 언급했던) 점점 경기 지역을 좁혀오는 푸른 자기장(정식 명칭은 ‘블루 존’)이 그것인데, 이는 소련군이 저항군 탄압을 위해 실제로 사용했던 무기를 차용한 것이다. 보통 자기장이 최고 범위로 좁혀왔을 때 살아남는 유저는 5인 미만이다. 그러나 〈에란겔: 다크 투어〉에서는 누구도 죽지 않은 상태로, 살아남은 수십 명의 전 인원이 자기장에 둘러싸인 최종 수렴점에서 자폭하게 된다. 서로를 죽이지 않는다 해도 자기장에 노출되면 체력이 급격히 감소하게 되고 곧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플레이 상황에서라면야 에너지 드링크를 열심히 마셔서 생존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겠지만, 다크 투어의 관광객들은 모두 1차 집결지에 무기와 약들을 버리고 왔기 때문에 그대로 공멸하는 낭만적인 엔딩을 무사히 치러낼 수 있었다.

실재하지 않는 어딘가에 건설된 상상의 섬은 언제나 전쟁의 장소였다. 이곳은 새로운 장소로 기능할 수 있을까? 공간인류학자 이-푸 투안은 아직 인간의 경험과 의미가 투영되지 않은 추상적인 세계를 ‘공간’으로, 인간이 경험하고 인식하고 가치를 부여한 이후의 공간 범위를 ‘장소’로 명명하지 않았던가? 〈에란겔: 다크 투어〉는 게임의 메인 코드를 위반함으로써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가상의 (일회용) 전장이었던 에란겔을 (최소한 투안의 개념 내에서는) 명백히 존재했던 장소로 만들었다. 옆구리에 총을 끼고, 코앞의 유저를 쏴 죽이기 위해 달리던 에란겔의 대지와 음악을 들으며,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바닷바람을 느끼며 질주하던 초원은 완전히 다르다. 그럼에도 이 여행은 행복한 세상, 도래할 공동체에 대한 믿음 따위를 담보하지는 못한다. 에란겔이 ‘장소’가 된 이후에도, 결국 그 장소는 일회적인 것으로 되돌아가고 그 실체를 폭파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60년대의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들은 자본주의적 생산/소비 양식을 전용하여 자본주의적 생산/소비를 조롱하는 방식으로 아방가르드가 되었다. 에란겔의 상황주의자들은 무엇을 조롱하거나 반대하지 않는다. 단지 배틀그라운드의 지대를 전용할 뿐이다. 〈에란겔: 다크투어〉는 다만 위반과 저항에 대한 추동이며, 위반을 위한 수단으로 연대를 도모하는 투어다. ‘동물의 숲’에서 이주해 온 리드 퍼포머가 슈팅 게임의 잔혹성을 언급하고, ‘동숲’ 세계관 속에서의 친교 활동과 ‘배틀그라운드’ 세계관의 무기 파밍을 대비시키면서 평화로운 에란겔의 가능성을 설명하긴 했다. 그럼에도 이 프로젝트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약속하는 투어가 아닌 이유는, 이들이 영원히 지속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플랫폼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다크 투어리즘이란 비극적인 역사, 혹은 재난 및 재해가 지나간 자리를 ‘관광’ 함으로써 과거를 돌아보고 의미를 되새기는 일을 일컫는다. 그래서 ‘역사 교훈 관광’이나 ‘그리프(grief) 투어리즘’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우크라이나 키예프주에서 체르노빌 다크 투어를 법적으로 허용한 지 올해로 10년이 되었다. 히로시마나 아우슈비츠, 그리고 멀리 갈 것 없이 제주 4.3사건의 유적들과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에 방문하는 것도 다크 투어의 일종이다. 그렇다면 〈에란겔: 다크투어〉는 무엇에 대한 다크 투어인가? 에란겔이 내비치는 역사적 알레고리는 모티프로 그칠 뿐이다. 무엇을 슬퍼하는가? 낡음과 폐허됨이 그저 맵, 스킨, 머티리얼일 뿐인 이 땅은 하루에도 수천 수만 번씩 자기장에 의해 파괴되고, 서버 속으로 사라지고, 다시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온다. 다시 말해 에란겔은 언제나 갱신되고 있기에 역사를 만들 수 없다. 무수히 많은 평행세계만을 병렬로 늘어놓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럼 이제 ‘다크 투어’가 돌아보는 게 무엇인지는 실재하는 땅에 발붙이고 있는 〈에란겔: 다크투어〉 관광객들의 차원에서 찾을 수밖에 없게 됐다. 에란겔은 결국 자기장의 구역 제한이라는 리밋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 다시 말해 언젠가는 끝난다. 관광객들이 예약하는 것은 관념적 죽음, 그것의 체험이다. 어쩌면 〈에란겔: 다크투어〉의 관광객들이 추모할 것은 스스로의 죽음일지도 모른다. 단언하건대, 코로나 이후 최고의 여행이었다.


게임 제작 및 디자인을 위해 사용되는 리소스를 말한다. 건물, 차량, 나무 같은 오브제, 오브제에 적용할 수 있는 무늬나 광택, 사운드 등을 포함하며, 언리얼 마켓플레이스나 에셋스토어에서 레디메이드 에셋을 구매할 수도 있다. 배틀그라운드는 상당수의 에셋을 직접 만들지 않고 구매하여 사용했다는 이유로  ‘에셋을 짜깁기한 것에 불과’한 ‘페이크 게임’이라는 오명에 시달려 왔다. 배틀그라운드 측은 “개발 초창기에 에셋을 많이 구매해 사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은 점차 비중을 줄여나가고 있다”고 해명하며, “신작 프로젝트를 테스트하기 위해 40명에 달하는 아트팀을 고용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이들을 위해 에셋 스토어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발언했다. 참조: ‘배틀그라운드’, 에셋 짜깁기 게임?… 펍지 공식 반박, 한경닷컴 게임톡(http://gametoc.hankyung.com/news/articleView.html?idxno=48260).

** 〈에란겔 다크투어 매뉴얼 북〉(참가자 이메일로 배포), p.9.

*** 〈에란겔 다크투어〉 관광객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는 기획자 오영진입니다. (2021. 3. 23.)

**** 타이피스트, 김이강, 민음사, p.64. 거실 중앙에서 책꽂이로 가기 위해서는 책상의 측면들을 돌아야 하는 것처럼, 에란겔을 용도변경하는 〈에란겔: 다크투어〉 역시 몇 가지 규칙을 엄수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노매드랜드에서 노-매드-랜드로

︎ 책상의 측면 돌기: 〈에란겔 다크 투어〉 기행

노동을 구하지 마라: 〈깃발, 창공, 파티〉와 상황주의에 대한 소고

공원의 풍경(들): 다미앙 매니블의 〈공원Le Parc〉

“안심하시고 (...) 편안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신정균 개인전 ⟪아크로뱃⟫의 영상에 관한 노트

쓸쓸한 불빛 아래 활자들: ⟪동시대-미술-비즈니스: 동시대 미술의 새로운 질서들⟫

Unboxing: 발생하는 유기체

우울, 냉소, 충격의 트라이앵글을 넘어서: 공개서한 이후의 메모
시리즈의 감각: 예능 < f(다음 화 이어보기) < 영화

대화를 멈춰선 안돼: 〈마인드헌터〉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 〈스위트홈〉에 대한 노트는 아닌 글

우정은 실패를 알아차리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폴 W.S. 앤더슨 영화와 액션의 교환

스콧 긍휼 평강 사랑: 〈메트로폴리스〉, 〈프로메테우스〉 그리고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

이래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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