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5
Critic
노매드랜드에서 노-매드-랜드로
함연선
마테리알 편집인



<노매드랜드>가 사회의 현실(특히나 지적받는 것은 아마존 캠퍼포스(CamperForce)의 현실)을 직시하지 않거나 고발하지 않는 동시에 노매드의 고통을 은폐하고 그들의 삶을 단순히 낭만화하기 때문에 나쁘다는 비판은 온당치 않다. 나는 오히려 노매드의 삶을 섣불리 ‘고통’으로 범주화하여 보여주지 않고 끝까지 그것의 명명을 결정하지 ‘못’한 데에서 이 영화의 미덕을 찾는다. 비판자들이 말하듯, 정말 이 영화가 캠퍼포스를 (가짜) 공동체성으로 사포질하는가? 비트 농장에서 수십 개의 비트가 담긴 포대를 옮기는 펀(Fern)의 육체에서 단순히 노동의 자발성만이 강조되는가? 노매드의 삶이 단순하게 낭만화되는가?
        오히려 이 영화에서 노매드의 삶은 복잡하게 낭만화되며, 나는 이 낭만화에 대해 굳이 비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고발과 비판의 형식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클로이 자오(Chloé Zhao)가 섣불리 비전문 배우들로부터 고통을 착취하고자 했다면 자본주의와 2008년 모기지사태 이후의 미국사회에 대한 고발은 더욱 명확하고 용이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타 많은 활동가 영화로부터 그러한 고발과 비판이 얼마만큼 그 영화를 찍는 감독 자신을 위한 것이 되어버리는지 감지할 수 있지 않은가. 자오가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비전문 배우들을 통해, 그리고 특별히 펀과 맥도먼드를 통해 픽션의 자리를 이 영화 속에 마련해놓은 것은 적절한 선택이었다. 그것은 비록 펀이 엠파이어로 돌아가서 눈물을 흘리는 영화 후반부 무렵 다소간 헐거워지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 고통의 착취를 방지하기 위한 잠금장치로서 기능해낸다.

끊임없이 서부의 랜드스케이프를 떠도는 듯한 <노매드랜드>가 정주하지 못하는 영화의 상태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는 생각은, 이 영화를 <노 홈 무비>(샹탈 아커만, 2015)와 <노 데이터 플랜>(미코 레베레자, 2019)과 나란히 놓았을 때 확신이 된다. 이들은 끝없이 떠도는/움직이는 영화들이다. <노 홈 무비>는 거의 대부분의 장면이 집(house) 안에서 촬영되었음에도 결국에는 집(home)-없는-영화에 대해 얘기하고 있고, <노 데이터 플랜> 은 “서류상 미등록된 따라서 국적 없는” 1인칭 화자가 불가피한 이유로 기차를 타고 미대륙을 서에서 동으로 횡단하며 바라보는 풍경과 사물들을 담았다. 이들 세 영화는 (대문자 시네마의) 방랑을 다룬다. 그것이 여행이 아니라 방랑에 가까운 것은 이들 영화의 목적지가 길 위에 있는 것도, 길 끝에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목적지는 온데간데없고 심지어 아득한 출발 지점마저도 관객은 가늠할 수 없다. 중간에, 어쩌면 아주 오래 지속될 중간에서 우리는 만난 것이다.
        세 편의 ‘노-’ 영화(나는 지금 <노매드랜드>를 ‘노-매드-랜드’로 읽고 싶은 유혹을 참는 중이다)가 끊임없이 떠돌거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이들 영화 모두에서 카메라는 스스로 움직이기를 꺼려한다. 그것은 집안의 의자나 탁자 위에 놓여 어머니와 딸의 (비)일상적인 대화를 기록한다. 혹은 기차 좌석 한편에 숨겨져 있다가 차창과 차창 너머의 풍경을, 그리고 기차 안에서 고결하게 흔들리는 사물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또는 다소 보잘것없는 RV(recreational vehicle)에 덜컥 탑승하여 무한히 펼쳐진 것처럼 보이는 황야(desert)를 마주한다. 일종의 탈것이 카메라의 움직임을 관장한다. 카메라는 단지 어딘가에 탑승할 뿐이다.
        재밌는 것은 이들 세 영화의 카메라들이 취하는 태도다. <노 홈 무비>의 카메라는 대상을 화면 가운데 적절하게 위치시키지 못하는 어떤 불능상태에 시달린다. 대신에 그것은 화면 뒤로 숨지 않고 스스로를 드러낸다. 사막(desert)에서는 시청각적 노이즈를 그대로 받아내는 방식으로써, 집(house) 안에서는 (절대 삼각대 위라고는 할 수 없을) 이상한 곳에 위치함으로써 말이다. <노 데이터 플랜>의 카메라는 “국적 없는” 1인칭 화자와 동기화되어 (육중하고 오래된) 기차가 전진하는 방향과 수직을 이루는 곳으로 시선을 향한다. 옆으로 빠르게 슬라이드되는 창/프레임 속 풍경은 정확히 대문자 시네마를 지시한다. 터널을 지날 때 찾아오는 객실의 어둠과 터널 중간 중간 설치된 조명등을 지나치면서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기를 반복하는 빛의 조합 역시 그러한 가리킴을 더욱 강력하게 만든다. 그러다가도 미코 레베레자(Miko Revereza)의 카메라는 종종 지나온 철로와 터널을 오래도록 돌아본다. 그곳에 두고 온 기억이라도 있는 듯 말이다. 반면, <노매드랜드>의 카메라는 뒤를 돌아보는 일이 없다. 여기선 탈것의 이동 방향과 카메라 시선의 방향이 대부분 일치한다. 선봉대(Vanguard)라 이름붙은 펀의 RV는 그 이름처럼 카메라의 움직이는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카메라는 자연스레 전방을 주시한다. (간혹 펀의 시점 숏을 위해 정면과 우측면을 비스듬히 향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이들 영화는 정지해봄으로써 정주할 수 없음을 오히려 체감하고 정주의 실패를 보여주든가(그래서 그런 방식으로 떠돌든가), 도망이 여행이 되고 여행이 도망이 되는 시간 속에서 지나치게 되는 풍경들을 바라보든가, 선봉대의 자세로 거대한 순환(처음과 끝이 이어지는 ‘원형’은 <노매드랜드>에서 중요한 모티프이다)의 트랙에 탑승하여 전진한다. 탈것으로서의 대문자 시네마에 탑승한 소문자 시네마로서의 이들 세 작업은, 정주하지 못하는 영화의 상태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분해하고 흡수한다. <노 홈 무비>가 정주할 수 없다는 사실에 방점을 둔다면, <노 데이터 플랜>은 육중하고 거대하고 오래된 대문자 시네마의 자취를 기록하고 그 안에서 바깥으로 향할 수 있는 틈을 모색한다. 이 영화에서 카메라가 풍경을 비추다가도 문득 그 풍경을 매개하고 있는 차창—창/틀의 유비로서 파악될 수 있는 영화의 육체—의 얼룩들로 초점을 바꾸는 것은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진다. 한편, 탈것과 탑승한 것이 같은 방향을 향하는 <노매드랜드>에선 소문자 시네마와 대문자 시네마가 합일한다. 추레한—극중 스웽키는 펀의 RV/Vangurd를 보고 추레하다(ratty)고 말한다—탈것에는 손수 설치한 가구와 장식들이 있다. 누군가는 그것을 팔아버리고 새로운 것을 사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러나 저러나 집(home)이고, <노매드랜드>는 그 집을 떠날 수 없다.

황량한 엠파이어의 거리를 돌아다니던 펀이 남편과 함께 살았던 집(house) 뒷문의 광야로 나가는, 그리곤 끝내 화면 밖으로 나가버리는 씬에서 <수색자>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릴 수밖에 없듯이, <노매드랜드>의  곳곳에서 우리는 오랜 시네마의 장면들을 떠올릴 수 있다. 그리고 이 영화의 마지막은 <모던 타임즈>(1936)의  마지막과 겹쳐질 수 있다.

새벽 시간, 아무도 다니지 않고 주변이 황량한 차도를 익스트림 롱 숏으로 비추며 마지막 씬이 시작된다. 화면은 컷되지 않고 그대로 패닝하여 길가에 앉아 쉬는 두 사람을 비춘다. 소녀는 엎드려 울며 “살려고 노력한들 무슨 소용이 있죠?”라고 묻는다. 남자는 “포기하지 말아요. 우린 잘 해낼 수 있어!”라며 기운을 북돋운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차도를 걷는 두 사람을 정면으로 촬영한 숏이 이어진다. 그들 뒤로는 (아마도 그들이 지나왔을) 언덕 길이 쭉 펼쳐져 있고, 남자는 소녀에게 ‘smile’하라고 한다. 두 사람은 웃으며 손을 꼭 잡고 걷는다. 마지막 숏에서 카메라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익스트림 롱 숏으로 잡는다. 그들 앞에는 첩첩이 쌓인 산들이 놓여있지만, 두 사람은 손을 잡은 채 계속 걸어가면서 카메라로부터 멀어진다.

추레한 (탈)것은 멀리 보이는 산을 향해 나아간다.



︎ 노매드랜드에서 노-매드-랜드로

책상의 측면 돌기: 〈에란겔 다크 투어〉 기행

노동을 구하지 마라: 〈깃발, 창공, 파티〉와 상황주의에 대한 소고

공원의 풍경(들): 다미앙 매니블의 〈공원Le Parc〉

“안심하시고 (...) 편안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신정균 개인전 ⟪아크로뱃⟫의 영상에 관한 노트

쓸쓸한 불빛 아래 활자들: ⟪동시대-미술-비즈니스: 동시대 미술의 새로운 질서들⟫

Unboxing: 발생하는 유기체

우울, 냉소, 충격의 트라이앵글을 넘어서: 공개서한 이후의 메모
시리즈의 감각: 예능 < f(다음 화 이어보기) < 영화

대화를 멈춰선 안돼: 〈마인드헌터〉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 〈스위트홈〉에 대한 노트는 아닌 글

우정은 실패를 알아차리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폴 W.S. 앤더슨 영화와 액션의 교환

스콧 긍휼 평강 사랑: 〈메트로폴리스〉, 〈프로메테우스〉 그리고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

이래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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