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4
Critic
해적을 위한 변명
: 위디스크와 ‘리스트’
정경담

마테리알 편집인



위디스크는 한때 해적들의 단골 정박지였다. 여기에서 장단편과 메이저 마이너를 가리지 않는 실로 수많은 해외 영화들의 수입이 이루어졌다. 필로거(업로더)들을 국제 무역상에 비유할 수 없는 까닭은 그들의 존재가 어디까지나 불법의 영역에만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식 무역선이 아니라 통통배를 타고 온 보따리장수들이었다. 다운로드 1회당 고작 2-30전을 받아가는 이 한낱 상인들이 80-90년대생 시네필들에게 미친 영향은 생각보다 컸다.

비디오 키드와 지금의 OTT/유튜브 세대 사이에 엄연히 자리하지만 공개적으로 논의되지 않는 이들이 바로 웹하드 키드, 불법의 존재다. 해적판 비디오와 LP에 대한 이야기를 심심풀이 땅콩처럼 까먹는 7080과 달리 우리가 웹하드와 토렌트에 대해 말할 수 없었던 이유는, 재미는 없지만, 이 시기에 저작권법이 전례 없던 형태로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굿 다운로더만이 윤리적 입장을 견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기에 대해 입을 다문다면 우리를 역사화할 수 있을까?

내가 중학생이었던 2005년, 전송권에 의해 인터넷에 음악을 업로드하는 일이 불법이 됐다. 이전까지는 소리바다나 벅스나 멜론, 맥스MP3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모든 노래를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었다. 소리바다 시절에 저작권이라는 것은 유명무실했고, 다만 팬들이 자기 가수의 밥줄을 챙겨주기 위해 스스로 p2p 속에 잠입하는 전략을 썼다. 최신 인기곡으로 위장한 제목의 파일을 내려받으면 “야, 야 이놈의 자식들아, 이제 그만 잠에서 좀 깨라, 얼굴에 붙은 눈꼽은 떼고” 로 시작하는 난해한 랩송이 재생됐다. (이 노래는 강일이라는 가수의 〈러닝맨〉이라는 곡인데, 수백 수천 곡의 낚시에 사용된 탓에 모두가 제목을 다르게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노래가 휘성 4집에 수록된 것이라고 오랜 시간 착각했다.) 이후에는 블로그 첨부파일로 mp3를 조달했고, 그것마저 막힌 이후에는 모두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음악 다운로드 이용권을 구입했다.

그러나 웹하드 세대에게는 소장과 콜렉션의 욕구가 분명히 남아있었다. 시디장에 빼곡히 정리된 음반들에 대한 미메시스를 갈망했기 때문에 사이버 시디장에 ‘꽂을’ 파일이 필요했고. 그래서 MP3 플레이어에 저장할 수 있는 (반)물리적 형태의 파일이 필요했기 때문에 스트리밍 이용권보다는 다운로드 이용권의 수요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여기에 아이튠즈7과 함께 등장한 아이팟의 커버플로우(coverflow)가 불을 지폈다는 걸 굳이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크네이머(darknamer)와 마니아디비(mania DB)와 커버홀릭(coverholic.com)이 집착적 콜렉션의 완성을 도왔다. 지금 모두가 싸이월드 마이룸 꾸미기와도 같은 사이버 시디장 만들기에 몰두하기를 그만두고 스트리밍 서비스에 무리 없이 적응한 것은 웹 내에서 지원하는 정식 앨범아트와 플레이리스트 기능으로 콜렉션을 만들고, 클라우드와 DRM의 형태로 그것을 어딘가에 안전하게 저장할 수 있다는 든든한 합법의 뒷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영화의 경우는 어떤가? 웹하드 키드는 되는대로 비디오 대여점에서 제목과 몇 장의 스틸 이미지와 카피만을 보고 골라온 영화를 보며 우발적으로 취향을 발견/발전/정립시켜나가는 경험이 불가능한 세대였다. 안타깝지만 음반/음원과 달리 p2p에서 내려받은 영화 파일들로는 비디오 가게를 모사할 수 없었다. 그 시기 우리의 저장소 용량은 고작 30GB 내외였고 영화 파일은 4GB에 육박했다. 2TB짜리 하드디스크를 사서 맘에 드는 파일을 무제한으로 소장하기에 우리는 너무 가난했다. 웹하드에 올라오는 영화들은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이름 붙여지면서 저작권법의 마수를 피해갔다. (‘10월 릴리즈 떠따 [ ㅡ 죽 은 오 r 이 프 그 림 ㅈ r ㅡ ] 초고화질 완벽자막’, ‘늙은 왕립 해병 할아버지를 건드린 10대들..’, ‘겁나웃겨 찌질간첩 공유와 만난 4차원 미녀’, 대체 이게 다 무슨 말인지 여러분은 알아볼 수 있는가? 차례로 〈레베카〉, 〈그랜 토리노〉, 〈그녀를 모르면 간첩〉이다.) 검색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영상의 영역에서는 클럽박스가 어느 정도 그 역할을 담당하긴 했다. 큐레이션은 아니었지만, 마구잡이로 업로드되는 일반적인 p2p/웹하드와는 달리 개봉일, 감독, 특징 등에 기반하여 카테고리를 세분화해두었기 때문이다. 엄밀히 비유했을 때 클럽박스는 비디오 가게라기보다는 동아리방의 아카이빙 존 같은 곳이었다. 영화에 특화된 공간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주변인들에게 영화 이외에 어떤 클럽박스를 이용했었는지 물었다. 슈퍼주니어, 시트콤, 미드, 야오이, 모닝구무스메, 판타지소설, 레즈비언 영화. 그러니까 클럽박스는 자신의 취향을 정확히 알고 있을 때, 그 취향을 더 강화시킬 수 있는 보물창고였다. 내가 모르고 몰랐던 어떤 것과 우연히 만나고 취향의 클러스터를 키워나갈 수 있는 가능성은 미미했다. 그러나 위디스크 필로그에서는 그것이 아직 가능했다. 영화교육도 ‘비디오 가게’적 조우도 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홉스봄’은 잉마르 베리만, 끌로드 샤브롤, 아키 카우리스매키, 타르코프스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같은 고전적 거장들의 필모그래피를 빼곡하게 리스트업했다. (고전 일체, 모든 메뉴 됩니다.) 반면 ‘sazizuldan(사지절단)’은 업로드하는 자료 제목에 절대 감독의 이름을 쓰지 않았다. 제작 연도도, 장르도 들쑥날쑥, 대신 제작 국가로 말머리를 달았다. 이란, 타지키스탄, 체코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은 sazizuldan의 필로그가 아니었다면 절대 스스로 보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미세한 공통 정서가 그의 자료와 자료 사이를 연결했다. 이런 타입의 업로더들은 필로그 내에 자유게시판을 운영하면서 그의 취향에 전염당한 이들과의 대화를 시도했고, 필로그에 배경음악을 깔기도 했다.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그의 자료들은 배경음악(이스라엘의 가수 사리트 하다드의 〈Bein Kol Habalagan〉)의 분위기로는 묶일 수 있었다. 업로더 한 명 한 명이 프로그래머가 됐다. 영화감상과 교육의 형태로 위디스크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이유에서다.

이들의 큐레이션은 심지어 대안적이기까지 했다. 그간의 큐레이션들이 사랑, 우정, 영화를 사랑하는 우리들의 연대에 기대면서 계속 그러한 단어들을 강조해왔지만 실상 그 우아하고 정념적인 말들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아무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영화를 둘러싼 정서들은 끈적하고 축축하고, 때로는 퀴퀴해졌다. 이를 다시 정화하고 시네필과 시네마 사이를 유영하는 정서를 다시 매력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단서가 “위디스크”에 있었다.그들의 콜렉션은 명분(수상, 감독 필모 뽀개기, 교양 제고하기)이나 요소(시대적 구분, 형식적 특질, 소재, 주제)를 통해 구성된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들 자신의 정서나 관심에 의한 큐레이션이었다. 콜렉션을 설명할 수 있는 명실공한 단서 대신에 사잇소리와 같은 감각으로 간신히 지탱되는 노드들만이 존재했다. “덕분에 ㅇㅇ기의 ㅇㅇ 감독 영화를 다 봅니다. 감사합니다.”보다, “님 취향 너무 좋아요. 더 많이 올려주세요.”가 우세한 댓글난을 보자면 그러한 확신은 더 분명해진다.

위디스크 필로거들의 큐레이션은 제목을 붙일 필요가 없는 거의 유일한 “리스트”, 이 리스트를 만든 자들과 영향받은 자들 간의 ‘우정’이란 규정될 수 없는 감각을, 언어화되지 않은 본능적인 감흥과 분류기제들을 전이시키고 교환하면서 만들어졌다. 이들의 리스트는 규정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확장되고 변형되는 와중에도 그 확장과 변형의 사실을 굳이 상기시키면서 계보를 만들지 않아도 되었다. 때때로 하고 싶은 말이 생긴다면 그것은 이미 전유될 대로 전유된 그 시점의 단면에 대한 설명으로서 심플하게 구체화되는 방식으로 언표되었다.

이 글을 쓸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위디스크가 사장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원래 내가 하려던 것은 나의 취향에 영향을 미친 위디스크의 헤비 필로거들을 익명으로 인터뷰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양진호 사태 이후 매우 많은 필로거들이 (아마도 이 사이트의 수익구조에 기여하는 것이 윤리적인 차원에서 부담스럽거나 역겹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고, 이후 침체된 분위기 속에서 수익이 시원찮았을 수도 있고, 그런 몇 가지 이유로) 위디스크에서 자취를 감췄고, 그나마 남아있는 이들의 필로그도 관리를 그만둔 지 최소 2년 이상씩이 지난 상태였다. 다른 루트로라도 그들과의 직접 대화를 시도하는 건 어려워 보인다. 해적들에게 명함이나 이메일 따위가 있을 리 없으므로?

앞서 우리를 역사화하기 위해서는 위디스크에 대해 말해야 한다고 썼지만, 사실 이 역사화는 필패할 것이다. 웹하드가 순항하던 시기, 해적들이 훔쳐온 파일들의 수혜자들은 누구도 제때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보편적이나 불법이었고, 그래서 공식 지면에 기록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그 어떤 자료도 직접적으로 참고할 수 없었고 역으로 참고할 수 있는 그 어떤 자료도 없었으며 순전히 나의 경험과 기억에 의존하여 쓰인, 당신이 진위를 의심한다 해도 별 반박거리를 찾을 수 없는 수기에 불과하다.

또다른 당위 하나를 얘기해야겠다. 스무 살의 내가 시네마테크나, 영상자료원이나, 심지어는 무비꼴라주의 존재조차도 알지 못한 채, 경상북도 변방의 소도시에서도 무사히 취향을 세공할 수 있었던 것은 팔할이 해적들의 섬세하나 거친(이 무슨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인가? 그렇지만 분명 이해하고 있지 않나요?) 큐레이션의 덕택이었다는 것이다. 준법을 위하여 기록하지 않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것이었다. 나는 단지 그것을 분명히하고 싶을 뿐이다. 지금 시점에서는 이 정도가 한계인 것 같지만, 사실은 조금 더 분명한 어투로 더 많은 것을 말해야 한다. 특별히 중요한 것들을 일러줄 수 있는 이들, sazizuldan, 흑인허벅지, 홉스봄, 이강산88, 디스크촌, 화이트갸또 님의 비밀스런 전보를 기다린다. 그런데 해적들을 호명해도 괜찮은 건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템포러리에서 콘스탄트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가장한 (지역) 영화제의 문제

질식자의 편지에 부치는 소고

[구인공고] 언더커버 혹은 오버커버

아, 감은사 감은사 감은사 탑이여: 때로는 조심하는 것이 문제다

썼다 지운 질문과 소회

대화(dialog): 퍼포먼스를 위한 카메라-도큐멘테이션에 관한 고민들

보지 않고 보기: 정여름의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

아이돌 기표의 ‘트랜스’ 해부하기: 아이돌 서사와 타세계의 시선을 경유하며

'접촉'에서 '접속'으로(2): 〈문명특급〉의 경우

협잡꾼 당신: 「김기영 평전」을 위한 단편

︎ 해적을 위한 변명: 위디스크와 ‘리스트’

독백과 방백 사이: 브이로그(VLOG)의 나르시시즘

한국 영화 비평장에 대한 비평 초고: 계속 말해야 하는 것들






마테리알(ma-te-ri-al)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북아현로 132-1 | 사업자등록번호 633-94-01282 | ‌통신판매업신고번호 2020-서울서대문-1730 | ‌발행인 다함께 박차차·정경담‌·함연선 | 편집인 다함께 박차차·정경담‌·함연선 | 문의 ‌carolblueagassi@gmail.com | C‌OPYRIGHT © 2019~. 마테리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