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4
Critic
아이돌 기표의 ‘트랜스’ 해부하기
: 아이돌 서사와 타세계의 시선을 경유하며
조랭
사운드 디자이너, 뮤지션



작년 여름 즈음, 라이브 공연을 하기 위해 참석한 서울의 한 행사에서 낯익은 얼굴들을 만났다. 오랜만이네요. 우리는 몇 년 전 퀴어문화축제 뒤풀이 자리에서 처음 만나 우연히 합석했는데, 술잔이 오가는 사이에 나눴던 다른 이야기는 거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유독 아이돌에 관해 사뭇 진지한 대화로 접어들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SM 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 그룹 NCT 127의 신곡 〈無限的我 (무한적아;Limitless)〉(2017)가 막 발매된 무렵이었고, 트위터리안들과 언더그라운드 리스너들은 그들의 ‘네오한 SM 재질’에 대해 아끼지 않고 찬사를 보내곤 했다. 비주류 아이돌의 케이팝을 들으며 새로움을 감각하는 흐름에 탑승한 나 역시, 취향이 맞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다가 불이 붙기만 하면 아이돌에 관한 온갖 주접을 늘어놓았는데, 그 내용이란 아날로그 필름 스타일로 뮤직비디오를 촬영했네, 의상과 퍼포먼스가 한창 때의 HOT를 연상시키네, 포스트모던 케이팝이란 이런 것이네,.. 하는 것들이었다.
        고백하자면, 같은 또래의 친구들이 중고등학교 시절 교실에서 유행하는 아이돌 가수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춤출 때, 나는 한쪽 구석에서 슈게이즈(Shoegaze)나 클래식 음악, 실험 음악을 듣던 괴짜였다. 과거를 떠올려보면 성인이 되어 갑자기 신인 아이돌에게 열광하는 모습이 주변 친구들에게는 기묘한 인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지만, 뒤늦게 올라온 이런 소심한 일탈은 진성 팬들의 열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술자리에서 만난 이들은 단독 콘서트에 꾸준히 참여하거나, 머천다이즈와 포토카드를 모으거나, 팬사인회에 당첨되기 위해 여러 장의 앨범을 사는 등 아이돌 팬덤 문화에 쌓은 내공이 남다른 사람들이었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팬으로서 아이돌 덕질을 ‘합리적인 취미생활’로 가져갈 수 있는 어른의 여유까지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행사장에서 보자마자 과거에 나눴던 일련의 대화들을 상기했고, 농담처럼 넌지시 말을 건넸다. 요즘도 NCT 콘서트 가시나요? 그들은 여전히 음악을 듣기도 하고, 새로 나오는 뮤직비디오를 찾아보기도 하지만, 더이상 콘서트 티켓이나 관련 상품을 구매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어느 순간 남자 아이돌 그룹에 돈을 쓰는 게 회의감이 느껴지더라고요.”
        비슷한 세대의 타임라인을 공유하면서도 특정 장르에 가치판단을 내리는 방식은 상이하다.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재화의 양이 정해져있을 때, 어떤 소비자들은 직관적인 이미지가 주는 쾌락보다 이미지가 가진 배경과 서사에 투자하는 것을 택한다. 일반적으로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것 이외에, 물성을 주고받는 전형적인 ‘거래’의 의미 바깥에 있거나 여러 가지 레이어로 겹쳐있어 본질을 파악하기 힘든 다양한 방식의 거래를 경험할수록, 소비자(관객, 팬)는 자신이 최종적으로 선택한 거래가 어떤 구조를 지지하고 덜 지지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담론과 맞닥뜨리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케이팝 아이돌 음악의 소비에 한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종종 ‘케이팝 아이돌은 과연 아티스트인가?’라는 논란과 아이돌이라는 재화를 다루는 저의가 부딪히면서 정당한 소비와 길티 플레져 사이 판단에 잡음이 발생한다. 특히나 솔로 아이돌에게 ‘아티스트’라는 호칭을 붙일 때 적합성을 따지는 반발이 별로 없는 것에 비해, 그룹 아이돌은 개인보다 팀의 조화를 중시하고, 개인의 결함에 연대책임을 묻기 때문에 하나의 아티스트 정체성으로 평가받기 어렵다. 더 나아가 혼성 그룹의 상대적으로 저조한 인기를 데이터로 삼아 기획 단계에서부터 걸그룹과 보이그룹으로 분명하게 나뉘어 아이돌이 양산되는 경향은, 현대의 젠더 담론과 부딪혀 젠더의 상품가치를 논하는 비판적인 여론을 환기시킨다. 그룹 내 멤버가 예능 프로그램, SNS에서의 태도와 언행으로 논란이 되면, 도의적인 측면을 지적하는 것을 떠나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 권력 차이가 은밀하게 조명된다. 여성 아이돌이 자신의 몸과 얼굴에 대해서 말할 때, 일을 통해 벌어들인 재화를 드러내려 할 때, 소수자 인권과 여성 인권에 대해 넌지시 이야기할 때 그는 상품으로 가치가 정해진 구조의 틀을 넘어, 성애적 대상-판타지 캐릭터로서 발화해서는 안되는 금기를 말하는 것이 된다. 여성 아이돌은 아이돌이라는 편견을 넘어서, 특정 젠더를 향한 편견으로부터도 안전하지 못하다.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과 마찬가지로 아이돌 간의 경쟁을 주요 소재로 삼지만, 걸그룹 컴백 서바이벌 프로그램 〈퀸덤〉의 몇몇 장면들이 혁명적으로 화제가 되고 관객들이 이입했던 것 또한, 이미 데뷔한 걸그룹들이 그룹 내부의 컨셉을 거부하고 기존의 음악을 재해석해 무대에 올리는 과정을 지켜보며, 여성 아이돌이 잠시나마 주어진 구조에 저항하는 용기를 지켜보는 데서 오는 카타르시스였을 것이다.
        아이돌 음악의 수요는 대중들이 문화적 이데올로기를 해석하는 방식에 영향을 받아 꾸준히 변화했다. 해가 지날수록 귀여운 소녀 감성을 강조하는 동향에서 멀어져, 신인 데뷔 때부터 “네 기준에 날 맞추려 하지 마 / 난 지금 내가 좋아 나는 나야(ITZY - 〈달라달라〉)”를 외치며 등장한 걸크러시, 피어스한 컨셉의 여성 아이돌이 대중적인 셀링 포인트를 잡는 것은, 여성의 자기긍정 메시지에 수용적으로 변화해나가는 사회의 시선을 반영한다. 물론 페미니즘 관련 서적을 읽은 것만으로 여성 아이돌에게 즉각적으로 쏟아지는 비난, ‘너랑 결혼까지 생각했었는데...’라며 보이콧을 선언하는 일부 남성 팬들의 반응이 보여주듯, 아이돌을 성애적 대상으로 한정하고 이성 간의 사랑을 노래하는 음악의 수요는 사라지기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사의 중심은 분명히 이동하고 있다. 아이돌 음악에서 여성은 이성애 정상성을 중심으로 남성이라는 대립항을 통해 성찰의 기회를 얻거나, 상처 받거나, 사랑을 갈구하는 역할에서 완벽하게 분리될 수 없지만, 케이팝 가사가 스토리텔링을 포기하고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언어의 ‘씹는 맛’을 중심으로 구축되는 경향이 정착되면서, 더이상 은유하는 대상이 남성일 필요가 없어졌다. ‘그’와 ‘그녀’처럼 특정한 성별을 지칭하는 대명사, 동시에 ‘오빠’와 ‘누나’의 태도를 지시하는 단어들로 낭자한 2000년대, 2010년대를 주름잡던 유행가들은 오늘날 대부분 ‘숨어 듣는 명곡’으로 치부되며 현시점을 기준으로 시대에 뒤쳐진 정서이자 밈으로 평가받는다. 대부분의 아이돌은 여전히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사랑이 가리키는 대상은 리스너와 담론적 구조에 맞춰 확장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여성 아이돌 그룹 레드벨벳이 시사하는 미묘한 레즈비어니즘은 남성들의 페티시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레즈비언 문화에서 강조하는 여성 간의 교감, 터치, 시선을 교류하는 감정을 뮤직비디오에 꾸준히 노출시키면서 여성들의 속삭임을 비밀스러운 암호(대리 감정으로도, 자매애로도, 성적 욕망으로도 연결될 수 있는)로 풀어낸다. 2017년에 발매된 레드벨벳의 타이틀 곡 〈피카부(Peek-A-Boo)〉에서는 은유의 대상으로만 존재했던 남성(피자 배달부)의 모습이 처음 등장하는데, 피자를 배달하러 왔다가 소녀들과 즐겁게 시간을 보내던 남자는 오바야시 노부히코의 코미디 호러 영화 〈하우스(ハウス)〉에서 별장을 방문한 아이들이 엽기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것처럼, 소녀들의 음침한 계략에 의해 집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살해당한다.
        메타-아이돌 서사에서도 남성과 여성은 스스로를 자본주의의 상품으로 자각하고 선언하는 방식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포스트 휴머니즘, 히어로, 초능력자 등의 이미지를 빌려 나타나는 남성 아이돌의 탈신체화는, 거대 담론에 의해 신체가 변화되는 구조를 받아들이며 완벽하고 더 야망 있는 존재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다. 반면 여성 아이돌은 공장식 생산라인을 타고 흘러가거나, SNS 상에 전시되는 이미지에 이면이 있음을 지적함으로써 변하지 않는 현실을 고발하려 한다. 여성은 구조의 바깥을 상상하기 위해 먼저 사회적 성을 둘러싼 세상의 편견을 똑바로 마주해야 한다. 성찰의 단계를 뚫고 나가려면, 기존의 구조에 전염되었기 때문에 몸을 깎아 싸워야 하고, 전염된 사실을 인지했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과정이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일반 대중들이 기대하는 아이돌의 본분, ‘상품 기획 단계에서 무엇이 의도되었는가’를 논하기 전에, 젠더 차이로 인해 사회적으로 보여지는 시선, 몸이 드러나는 특정한 방식이 어떤 패턴을 가지고 변화하는지를 보면 특정 시기에 쏟아져 나오는 아이돌 서사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케이팝 아이돌은 과거 서구권에서 자신의 뮤즈와 음악적 우상을 ‘idol’로 칭한 것처럼, 오늘날 실제로 우상이거나 이상(ideal)을 대변한다.
        걸그룹 애프터 스쿨의 유닛 그룹, 오렌지 캬라멜의 복고풍 코미디 곡 〈까탈레나(Catallena)〉에서 인어(물고기)에서 인간으로 환생한 여자들은 초밥 재료가 되어 컨테이너 벨트 위를 돌면서 가게의 손님들에게 ‘먹히’거나, 가게 마감이 가까워 처분 직전인 상품처럼 몸 위에 층층이 할인 스티커를 달고 등장한다. 뮤직비디오는 인간이 된 인어들이 자신이 전시되었던 초밥집을 방문해 만들어진 음식을 입에 넣고, 알 수 없는 감정에 눈물을 흘리면서 끝이 난다. 판타지 전생물에 가까운 가벼운 코미디를 의도하고 만들어졌겠지만, 유머가 가리키는 방향은 부조리극에 비유할 수 있다. 원더걸스로 데뷔해 일찌감치 JYP 엔터테인먼트에서 솔로로 활동하는 선미는, 중소기업으로 이적하고 나서 본인의 아이덴티티를 살린 트랙을 직접 프로듀싱하기 시작했다. 2019년에 발매된 곡 〈누아르(Noir)〉는 SNS 상에서 활동하는 어텐션 시커(attention seeker)들의 행동 양식을 바탕으로 디테일한 레퍼런스들을 재현한다. 관심을 받기 위해 위험한 행동을 불사하거나, 실제보다 과장하거나, 미디어상의 삶과 현실이 도치되면서 광기로 치닫는 어텐션 시커의 모습을 연기하는 선미의 태도는 사뭇 자조적이다. 카메라는 말미에 세트장을 비추고, 재연 배우는 무대를 내려온다. 이는 사람들이 관심을 유도하는 방식이 연출된 허구이고, 자극적인 이미지 뒤에 숨겨진 이면에 대해 경계하라는 메시지를 던지지만,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불타오르는 자동차 앞에서 태연하게 셀카를 찍는 선미의 모습은 이따금 별다른 연출이 없는 일상 자체가 자극적이라는 사실을 다시 일깨운다.
        선미의 뮤직비디오는 한편으로 시선을 비트는 것을 넘어, 영상을 감상하는 팬들의 반응에 대해 상상하게 한다. 비디오 스트리밍이 보편화된 이후 아이돌 기획 전문 기업들은 대부분의 홍보를 유튜브와 SNS를 통해 진행하며, 팬이 개인 채널에 업로드하는 아이돌 그룹 개인의 퍼포먼스를 담은 4K 직캠 영상이나 팬사인회 영상은 물론이고, 케이팝 리액션 비디오를 주제로 전문적인 채널을 만드는 유튜버의 숫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최근에 와서 리액션 비디오는 인상적인 주제의 비디오에 대한 순수한 반응을 전달하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자리 잡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케이팝 뮤직비디오 관련 리액션 영상들이 유독 높은 조회수를 보이는 이유는 단발성 밈(meme)의 기능이 강화된 다른 리액션 콘텐츠에 비해 팬덤과 소통하는 커뮤니티의 기능이 케이팝 리액션 비디오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팬덤 문화의 정동을 타인이라는 세계로부터 전달받기 위해 리액션 비디오를 클릭한다. 리액션 비디오에는 문화 콘텐츠를 접할 때 기대하게 되는 새로운 정보가 등장하지 않으며, 맛본 적 있는 음식이지만 그 경험을 환기시켜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 먹방 비디오를 찾는 것처럼, 리액션 비디오는 익숙한 소비의 현장을 재현한다. 변형이라고 할 만한 것은 원본 동영상을 그 자리에서 처음 시청하고 즉각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낯선 개인이 공간에 놓여있다는 사실뿐이다. 이와 같은 비디오가 유도하는 타깃은 대개 한 번 이상 원본 영상을 시청한 사람들이다. 팬들은 가상의 시선을 통해 스스로를 세계의 시선으로 치환하고, 발견되거나 발견하는 형태로 공감대를 형성한다. 좋아하는 영상을 보며 리액션을 취하는 타인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자기 자신을 3인칭 시점에서 바라보고 감정을 복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아이돌의 메타-서사가 연출과 현실의 경계를 흐리듯이, 아이돌 팬덤의 행위적 주체들도 미디어 매체를 통해 드러나고 재구축된 서사에 포함되면서 자기반영의 가능성을 잠재하고 있다.
        아이돌 문화가 사용자-소비자에게 이루어지는 전이를 한국 바깥에서는 어떻게 경험하고 있을까. 2000년대 초중반 글로벌 전략이 아이돌 업계의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면서, 이웃 나라인 일본과 중국을 넘어 동남아시아, 아메리카 대륙과 유럽을 타깃으로 아이돌 그룹 마케팅 경쟁이 시작됐다. 케이팝은 여전히 서브컬쳐스러운 면모를 지니고 있지만, 타문화를 융합하고 적응하는 과도기를 거쳐 이제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대중적인 영향력을 가지는 문화자본이 되었다. 그 가운데 백인들 사이에서 케이팝 문화가 적극적으로 소비되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1세대 아이돌 음악의 경우 특히 북미의 아시아타운에 거주하는 2-3세대 아시안 디아스포라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아시아계 이민자의 자녀로 자라나면서 국가의 헤게모니와 인종 간 문제 사이에 필연적으로 고민하게 되는 자아인식 과정, 인종차별, 박탈감 등을 해소하고, 아시안 아이돌의 음악을 즐기며 취향의 영역을 공유하는 것으로 잠재적인 연대를 조직했다. 매년 미국에서 개최되는 케이팝 축제 KCON을 방문하는 관객들을 보면, 여전히 아시아계와 히스패닉계 여성 관객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케이팝은 소수인종뿐만 아니라, 성소수자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기도 한다. 서구권의 팬들 사이에서 공식적인 ‘게이퀸’으로 불리는 여성 아이돌이 있는가 하면, 케이팝 아이돌 그룹들의 해외 콘서트는 흡사 퀴어 퍼레이드에 온 것처럼 LGBT 플래그가 날리고 성소수자 혐오세력, 인종차별주의자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세이프티존’이 자발적으로 형성된다. 마초이즘이나 섹시즘으로 종종 비판받기도 하는 아이돌들의 태생적 논란은 한국의 문화적 특수성에 대한 몰이해 때문에 가려지고 마는 걸까. 마르고 예쁘장한 남자 아이돌의 미적 기준은 서구권에서 쉽게 그들의 정치적 올바름을 담보하거나, 규범적인 헤테로 정상성을 전복하는 듯한 ‘퀴어니스’의 환상을 유발한다. 특히 서구권의 게이들이 기가 쎈 아시아 여성 아이돌의 이미지를 흠모하는 것은, 이수 김 리가 애니메이션 캐릭터에 이입하는 서구 퀴어들을 분석한 내용처럼 ‘약하고, 순결무고하면서도 강한 타자’가 되고자 하는 욕망의 투사가, 엑소티즘(exotism)의 레이어를 거쳐 발현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우려 속에서 ‘동양의 미’를 강조하는 몇몇 아이돌 그룹의 홍보전략이 매번 달갑지는 않은 것은, 아이돌 글로벌 시장이 자리 잡은 서구권에서 ‘동양인 스타’에게 열광하고 환상을 부여하는 과정이 백인들이 타인종을 문화적으로 전유(cultural appropriation)하는 고질적인 문제를 어쩔 수 없이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케이팝도 기존의 다른 장르를 인용하고 복제하면서 프로덕션을 구축했고, 흑인 음악과 문화적 특수성을 내포하는 타장르를 재해석하면서도 크레딧을 명시하는 일을 게을리하고 있으므로 전유를 말하는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반면 전유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 이따금 특수한 문화, 특정 인종과 얽혀있는 서브컬쳐를 적극적으로 조명하고, 출처를 훼손하지 않는 정도로 차용하여 아이돌 음악 내부에서 구사하려는 섬세한 노력을 중소 엔터테인먼트의 기획 사례에서 발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댄스 장르인 보깅(voguing)은 이전에도 아이돌 음악의 여러 안무에서 찾아볼 수 있었지만, 스타일리시한 안무 언어로 차용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LGBT 문화에 뿌리를 두고 발전되어온 역사에 대한 미쟝셴은 퍼포먼스로 드러나지 않는 편인데, 왁킹 댄서 출신인 솔로 아이돌 청하가 립스틱을 짙게 바른 남성 보깅 댄서들과 함께 디스코 신스팝 컨셉의 음악 〈Stay Tonight〉을 부르는 모습에서는 흑인-히스패닉 트랜스젠더 여성들의 볼룸(Ballroom) 문화를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드랙(Drag)은 점차 아이돌 뮤직비디오, 특히 여성 아이돌 그룹이나 여성 솔로 아이돌의 노래에서 등장하며 문화적 코드로 자리를 잡아나가고 있다.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뮤직비디오 〈Wonder Woman〉에서 웨딩 드레스를 차려입은 드랙퀸들은 서구권에서 트랜스젠더에게 가하는 오래된 미디어 폭력의 내용—싸이코패스, 대상화, 어두운 감정의 표상—과 대조되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한다. 또한 제이블랙 & 제이핑크의 걸리시 댄스 트랙 〈Move, Groove, Smooth〉은 커밍아웃하고 활동하는 미국의 흑인 게이 아티스트이자 소수자들의 롤모델 토드릭 홀(Todrick Hall)의 곡 〈Nails, Hair, Hips, Heels〉에서 분명한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공중파 아이돌 관련 프로그램에서 퀴어 코드를 방송하는 것이 이런 식으로 조금씩 용인된다면, 이제는 영화판에서 논의되듯이 아이돌 무대와 뮤직비디오에 소수자들을 위한 가상의 벡델 테스트(Bechdel Test)를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공연자와 관객, 생산자와 소비자, 당사자와 제삼자, 주체와 타자, 절대적인 포지션이 존재하지 않고 맥락의 변화에 따라 숨 가쁘게 흔들릴 수도, 잠잠할 수도 있는 세계에서 시선은 일방향으로 보거나 드러나는 게 아닌 서로 경유될 것을 요구한다. 아이돌 서사의 변화는 아이돌 개인의 저항이나 기업 차원의 프로파간다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진동하며 팬덤과 인종주의, 소수자 담론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을 담지한다. 아이돌 기표와 아이돌 음악이 복잡한 담론에 둘러싸여 매섭게 팽창하는 과도기를, 우리는 이제 즐겁게 맞이해야 한다.



*서구의 퀴어들의 ‘타자로서의 자기긍정’ 제스쳐에 아니메 캐릭터들이 가면, proxy로써 갖다 쓰이는 건, 그들이 ‘먼 동양의 문화, 다른 세계의,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기에 그리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서구의 퀴어들에게, 동양의 하위 문화가 그들의 현실로부터 갖는 안전한 거리, 엑소티즘 덕분이다. 서구 게이들이 기묘한 자기동일시 환상을 기반으로 기 쎄고 피어스한 아시아 여성을 흠모하는 것도 분명 일맥상통한다. 결국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기묘하고 괴물같은) 연약하고, 순결무고하면서도 강한 타자’가 되고자 하는 욕망의 투사가 큰 한몫을 하는 것 같은데, 과연 그들이 본인들의 욕망의 투사 뒤에 살아있는 ‘타자가 아닌’ 동양의 존재, 하위 주체들의 실재에 얼마나 관심과 애정을 가질 지는 의문이다. 그렇기에 이 기묘한 역학에서 분명 페티시즘이 흔하지 않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 이수 김 리(Isu Kim Lee)의 페이스북 글 〈낯설면서 익숙한... 사이보그, 아니메, 트랜스, it〉에서 발췌, 2020년 5월 21일 작성.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템포러리에서 콘스탄트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가장한 (지역) 영화제의 문제

질식자의 편지에 부치는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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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감은사 감은사 감은사 탑이여: 때로는 조심하는 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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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돌 기표의 ‘트랜스’ 해부하기: 아이돌 서사와 타세계의 시선을 경유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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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잡꾼 당신: 「김기영 평전」을 위한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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