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3
Feature
여섯 빛깔 스크린 너머: 한국퀴어영화제 20주년에 부쳐

신효진
한국퀴어영화제 집행위원장



영화를 통해 ‘퀴어의 창을 열다’
〈퀴어문화축제 무지개 2001〉 행사의 일환으로 시작한 한국퀴어영화제. 단 한편의 영화 상영회로 진행된 한국퀴어영화제가 어느덧 스무 해를 맞이하였다. 퀴어문화축제의 공식 행사로 지난해에는 70편이 넘는 작품을 상영할 정도로 규모의 성장을 이루어 냈으며 프로그램의 폭도 꾸준히 넓혀나가고 있다. 2006년까지 무지개 영화제, 2013년까지는 서울 LGBT 영화제로 불렸고, 현재 한국퀴어영화제로 변모하며 퀴어의 언어가 스크린을 물들일 수 있도록 수많은 영화를 상영해왔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한정된 예산과 부족한 인력이라는 한계 속에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켜오며 이룩한 가장 큰 성과는 다양한 성 정체성·지향성을 가진 성소수자들을 가시화하고, 내가 나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다양성의 가치를 영화 매체를 통해 전한 것이다. 그리고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와 이에 대한 법제화, 정체성 정치의 또 다른 가능성, 사회 구조의 부조리한 모순 등 문화·정치적 운동성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화두를 꾸준히 관객들과 공유하였다.
        영화제를 진행하다 보면, 프로그램의 대다수는 퀴어를 어떻게 ‘재현’해내는지에 집중한 영화가 차지한다. 성소수자의 삶과 사랑을 이야기하고 사회적 움직임을 도모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그런 영화들. 한국퀴어영화제는 근 몇 년간 전술한 영화뿐 아니라 다음의 질문에 집중하여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있다. 과연 퀴어가 제작하고 표현하는 것은 모두 퀴어한 것인가? 무엇을 보고 들을 때 퀴어하다고 느껴지는가? 그리고 퀴어영화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인가? 일말의 해답을 얻기 위해 한국퀴어영화제는 2015년부터 지속적으로 실험 작품 섹션을 기획·운영하고 있다. 재현이 아닌 ‘형식’에 집중한 퀴어영화를 통해 ‘퀴어하다’고 느끼는 감각의 근원과 그것이 가지는 힘은 어디까지인지 탐구해보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작품들이 병치되었을 때에 상호 간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인지도 말이다.
        한국퀴어영화제는 상영하는 영화의 폭을 확장할 뿐 아니라 영화 매체가 가지는 힘의 외연을 넓히기 위해 여타 예술 장르와의 접점을 모색하고 있다. 날카로운 관점으로 동시대 이슈를 사유하고 영화 매체 경계 안팎에서 자신만의 형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예술작품을 통해 지평을 넓혀나가고 있는 것이다. 2019년 특별전 〈믹스앤매치 : 여성국극&보깅댄스〉는 바로 그 시발점이다. 이 특별전은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수상작가인 정은영의 여성국극 프로젝트와 볼룸클럽/보그댄서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를 엮어 무대예술에 있어 미학적 지형도를 고민해보고 새로운 예술적 제안을 시도하였다. 영화제 현장에서는 드랙 퍼포머 아장맨의 공연을 진행하여 퀴어영화제의 확장 가능성을 타진해보았다.
        이처럼 다양한 장르의 경계를 초월한 기획은 영화제의 새로운 흐름을 추동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퀴어’영화제에서 ‘퀴어’라는 개념을 어디까지 볼 것인지는 언제나 논쟁거리이지만, 성소수자 이슈에 있어서 단일한 기준을 가지고 작품을 재단하지는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 정박되어 있지 않은 존재들(퀴어)의 영화는 다양한 형식적 실험들과의 공명이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하여 영화제의 지향점을 관객들과 공유하고자 기존의 영화 장르로 수렴되지 않는 형식의 다원성을 가진 작품, 전형적인 이미지와 내러티브를 대체할 새로운 가능성이 있는 작품, 다양한 예술 현장에 주목하여 영화제의 경계를 확장할 수 있는 작품 등을 프로그램 기획에 반영하고 있다. 이는 그 어떠한 범주에 규정되어지기를 거부한 ‘퀴어다운’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데에 일조할 수 있을 것이며, 동시대 퀴어 이슈를 깊이 있게 사유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올해도 “교복 로맨스”가 등장할 것인가?
영화제에 몸담으면서 가장 놀랐던 점은 여전히 많은 관객들이 한국 퀴어영화에 대한 갈증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간간이 개봉하는 국내 퀴어 영화와 이제는 보편화된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다수의 퀴어 콘텐츠가 소비되고 있지만, 영화제를 찾아온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국내 퀴어영화에 대한 열망이 식지 않았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실제 영화제 관객점유율을 보더라도 국내작품 섹션은 대부분 매진을 기록한다. 이러한 국내 작품 선정을 위한 공모를 진행하다 보면 이상하리만치 깨지지 않는 원칙이 있다. 그것은 바로 교복을 입은 청소년기 학생이 주인공인 멜로드라마 혹은 성장 서사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는 것이다. 성장기에 겪는 자아정체성, 성적지향에 대한 자각, 그 나이에 맞는 풋풋한 성애 표현. 소위 “교복 멜로드라마”에는 이같은 요소들도 빠지지 않는다. 이같은 영화가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것은 퀴어 당사자들이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서사를 원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레퍼런스가 될 만한 국내 퀴어영화의 부재를 방증하기도 한다. 소수자를 스테레오 타입으로 재현하고 그저 감상적인 서사만을 보여주는 것은 “퀴어영화”답지 못 하다.
        물론 전술한 스테레오 타입의 영화를 탈피하려는 노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청소년 ‘성장 퀴어물’ 이외에도 레즈비언/게이 로맨스가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국내 단편 영화의 흐름 속에서 변화를 주려는 노력은 지속적으로 관찰된다. 우선 가장 큰 변화는 장르적 실험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의 퀴어 블랙코미디 〈안녕, 곰씨〉(정인혁 연출), 범죄 서스펜스 영화의 공식을 뒤틀면서 여성 서사의 가능성을 보여준 〈택시에는 비상구가 없다〉(김혜진 연출), 다층적 메타포와 호러적인 연출을 보여준 〈고추〉(제이 박 연출) 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조류는 소수자 내의 소수자를 다룬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젠더퀴어, 무성애, 폴리아모리 등 이제껏 다뤄지지 않았던 소재를 바탕으로 제작되는 영화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무성애(Asexuality)의 존재를 감각적으로 풀어낸 〈컬러, 풀〉(고다현 연출), 폴리아모리의 연애를 가벼운 필치로 그려낸 〈아이스 아메리카노 핫〉(김효준 연출) 등을 들 수 있겠다.
        한국퀴어영화제의 기획자로서 우리 시대 퀴어 이슈를 발화하는 데에 있어 적게 언급되거나, 보여지지 못하거나 말하지 않기로 한 것들에 마음이 쓰인다. 모든 사람들은 어떤 측면에서 항상 표준이나 정상이라 불리는 자장에서 벗어나는 실존의 개성을 가진다. ‘퀴어’함을 드러내는 영화라면 이러한 독특성을 지향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동시대의 많은 퀴어영화들이 여전히 개인의 정체성과 감정표현을 상투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자신만의 시선으로 영상 언어를 직조해낸 작품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연기·편집·촬영 등 기술적인 완성도는 뛰어나지 않지만 불명확하고 모호한 말을 지닌 영화가, 새로운 주체성을 구축하는 그런 영화가 때로는 더 필요하다. 그리고 영화제는 이러한 목소리들을 부지런히 발굴하고 꼼꼼하게 포장해서 많은 이들과 나눌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 시대 모든 ‘퀴어한 삶들에게’
모름지기 영화제는 사람들이 한곳에 어우러져 함께 웃고 울고, 제작진과 배우의 얼굴을 마주 보는 재미로 찾는다.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이벤트에 참여하거나, 영화가 끝난 뒤 술 한잔하며 영화에 대해 난상토론을 벌이는 재미는 또 어떠한가. 그러나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영화제들이 연기되거나 온라인 상영으로 전환하였다. 20돌을 맞이한 한국퀴어영화제 역시 날씨가 추워질 즈음 온라인으로 관객들과의 만남을 준비 중이다. 불가항력적인 상황 속에서 변화하는 미디어 플랫폼 환경에 맞는 영화제가 무엇일지 또 하나의 대안지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코로나19라 불리는 이 쓰나미는 영화제의 형태를 변화시킬 뿐 아니라 죽음에 대한 공포 그리고 사회 기저에 있는 편견과 차별, 소수자 배제를 확산시키고 있다. 이태원클럽 발 코로나19 감염증 확산으로 혐오성 기사와 굳이 알려지지 않아도 되는 정보들이 판을 치고,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기사들이 보도되었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SNS의 게시물과 댓글에 소수자 집단에 대한 비하와 모욕이 넘쳐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상의 관습과 제도의 불합리한 측면들도 사회적 약자들의 생존과 사회적 존속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그런가 하면 불법 촬영이나 성 착취 범죄 뉴스들이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희박한 윤리의식은 도를 넘어 인류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를 깨뜨리고 말았다.
        비참한 현실 속에서 과연 예술은 그리고 영화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혐오와 폭력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에게는 잠시나마 아픔을 달랠 수 있는 일탈의 시간이 필요하다. 한국퀴어영화제는 이제까지 그래왔듯 영화를 통해 위로의 메시지를 전할 것이다. 파괴된 일상에서 벗어나 치유할 수 있는 탈출구를 영화를 통해 찾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치유의 출구를 나온 관객들에게는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생기게 된다. 그것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불평등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삶의 영역에 있어 다양성을 가질 수 있도록 치열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보다 영속적이고 참다운 세상을 위한 투쟁이 영화관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섯 빛깔 스크린 너머 우리의 삶도 아름다운 색을 지닐 수 있도록, 사회의 모순된 부분을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도록 인식하고 연대하고 실천하는 것. 바로 이 지점이 한국퀴어영화제가 가진 힘이자 지향점일 것이다.





︎ 여섯 빛깔 스크린 너머: 한국퀴어영화제 20주년에 부쳐

CRY, FUCK, BEAT UP (울고 하고 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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