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4
Critic
‘접촉’에서 ‘접속’으로(2)
: 〈문명특급〉의 경우

다함께 박차차
마테리알 편집인



유튜브 채널 〈문명특급〉은 여러모로 독특하다. 스스로를 ‘밀레니얼 세대’라 칭하는 이 브랜드 콘텐츠의 제작자들은 고노동 저임금의 제작환경을 지적하는 데 서스럼이 없는 한편, 그로 인해 저들이 ‘불평불만으로 궁시렁대다’가도 또 ‘시키면 그런 대로 해낸다’며 자조 섞인 농담을 덧붙이기도 한다. 수동적이고 보수적이다 못해 일각에선 무슨무슨주의 시스템을 확대재생산하는 꼴이라는 맹비난을 받을 법도 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문명특급〉 제작진의 태도에는 곧장 그런 비난에 편승하길 곤란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느껴진다. 정확하게 짚어내긴 어렵지만, 자신감과 자존감 사이 어디쯤에 놓인 단단함이라고 생각한다. 오롯이 전자라기엔 야망이 부족한 것 같고, 후자라기엔 멜랑콜리하다.

그런 모호한 단단함이 가장 여실히 드러나는 게  ‘숨듣명(숨어 듣는 명곡)’이다. 〈문명특급〉 채널의 최고 인기 브랜드인 숨듣명은, 주로 2000년대 후반에서 2010년대 중반 사이에 발표된 아이돌 가수들의 곡 중 매니악한 인기를 구가했던 부류들을 소재로, 해당 곡에 참여했던 아이돌 당사자 혹은 관계자를 인터뷰하며 탄생비화나 활동 당시의 크고 작은 일화 등을 채집하는 일종의 르포르타주(reportage)다. 줄여서 ‘르포’라고도 하는 이 형식은 대체로 무거운 소재에 특정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다소 생경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숨듣명을 르포로 보고자 하는 이유는 취재한 내용을 나름의 방식으로 재구성하고 갈무리하는 독자적인 시선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시선 역시 정치나 윤리 등 흔히 무겁다고 칭송되는 계열은 아니겠으나, 그에 따라 퇴적된 결과물은 ‘연속성’과 ‘역사성’ 사이 어디쯤에서 해당 콘텐츠뿐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의 정체성을 구축해낸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중(重)하다.

숨듣명의 생산자와 소비자는 스스로를 매니악의 자리로 정위함과 더불어 심지어는 인터뷰이와 일정한 위계를 가장한다. 비록 매니악한 풀(pool)일지언정 아이돌 문화 고유의, 스타와 팬덤 간의 위계구조를 차용하는 것이다. 이는 인터뷰이를 제외한 나머지을 하나로 엮는 핵심 기제가 되기도 하는데, 인터뷰이를 과장해 받들어 뫼심으로써 이외의 매니악들을 가장된 하위의 장소로 불러모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숨듣명은 ‘숨어 듣는다’는 자학적인 가치절하 속에 그런 피상적인 위계구조마저 도입하여 제작자와 시청자의 교감을 시도하는, ‘이중-쇤네’들의 연대로써 세를 불려온 셈이다. 반면 관건은, 그렇게 인터뷰이와 형성하는 위계가 어디까지나 피상적이고 가장되었다는 것이다. 때마다 지나치게 추앙받는 듯한 인터뷰이들이 정작 인터뷰가 끝날 무렵에 이르러선 어느새 인터뷰어와 같은 하위의 장소에 녹아들어 있는 걸 느낄 수 있다. 사실 한 발짝 떨어져 생각해보면, 숨듣명의 인터뷰이들은 본래 하위의 장소가 익숙한 자들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 전제가 ‘숨듣명’의 인터뷰이가 되는 조건이라는 걸 망각할 뻔했다.*

숨듣명의 여러 기획 중에서도 특히 지난 추석 연휴 공중파 모채널의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숨듣명 콘서트’를 준비하며 아이돌 그룹 유키스와 틴탑을 엮어 ‘틴키스’를 기획했던 게 인상 깊었다. 소위 ‘한물갔다’고 치부되는 가수들을 한데 모아 콘서트를 여는 형식은 방송 프로그램 포맷으로서 특별할 건  없지만, 무엇보다 숨듣명의 경우엔 대상을 ‘노스텔지아(nostalgia)’로 다루지 않았기에 특별했다. 가령 〈무한도전〉(MBC)의 ‘토토가(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가 H.O.T.와 젝스키스, S.E.S.와 핑클을 다루는 방식, 혹은 그 콘서트를 관람하기 위해 모여든 대중이 특정 시기를 대표하는 패션 아이템을 걸쳤던 게 부각되었던 사례 등을 떠올려본다면 말이다. 과연 숨듣명 콘서트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향수 뿌리지 마〉와 〈삐리빠빠〉를 그리움에 잠겨 소비했다고 볼 수 있을까? 절대. 노스텔지아가 성립하는 전제부터 틀렸다. 오지 않았기에 한 물 간 적조차 없기 때문이다. 숨듣명 콘서트는 시간과 명예의 권위를 복원(restore)하려 했다기보다는, 차라리 숨어 들었던 시간과 불명예를 대체(replace)하는, 가상현실화(virtual realizing)에 가까웠다. 그리하여 숨듣명은 대체역사적이라는 점에서 탈연속적이고, 반대로 자기연속을 고수한다는 점에서 외려 역사성을 띤다. 앞서 숨듣명이 해당 콘텐츠와 더불어 생산자와 소비자의 정체성을 구축해내는 데 있어, ‘연속성’과 ‘역사성’ 사이 어디쯤에 퇴적된다고 했던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이쯤에서 다시금 훨씬 이전에 언급한 문명특급 제작진의 모호한 단단함을 곱씹어보면, 그 단단함은 어쩌면 ‘자기역사화’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 만한 그들의 심지 있는 행보에서 찾을 수 있는 듯하다. 나아가 그 모호함의 기원은 아마도 노스텔지아로는 소구할 수도 없을 만큼 협소한 하위의 정체성을 결코 ‘부흥’시키려고 하지 않음에 있는 듯하다. 그야말로 할당된 경계를 밀어내려는 야망이 없으며, 시도하지 않으려는 차원에서 멜랑콜리한 셈이다. 하지만 숨듣명엔 야망이라는 가치나 멜랑콜리라는 진단 자체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다른 시쳇말인 ‘숨겨진 명곡’이랑 비교할 때 ‘숨어 듣는 명곡’이란, 특정 헤게모니로 인해 ‘숨겨졌다’는 피동적 구도나 이미 그러한 상태로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는 선형적 시간성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우리가/ 숨어서/ 듣고 있다’는 능동적이고 현재진행적인 태도를 담지한다. 따라서 이들의 전략 아닌 전략은 (마치 잃어버렸다고 가정되는 것들에 대한) ‘수복’이 아니라, (고려조차 못 한 이들의) 의도치 않은 ‘유입’ 또는 ‘접속’이다. 요컨대 숨듣명은 결코 〈싱 어게인〉(JTBC)할 생각이 없다.** 적어도 이들이 내린 ‘명곡’의 정의는 그렇다.




*사설이지만 숨듣명 속 매니악들의 위계는 군내 나는 시네필 너드 왕국의 그것과는 질적으로 전혀 다르다. 후자는 정말로 자기 존재를 증명할 유일한 방도라도 되는 듯 상위 너드를 추앙하며, 그런 너드들의 파리대왕 - 소설 제목에서 따와 ‘fly’지만, 리그 특성상 ‘Paris’로 해석되어도 무방 - 도 당최 가장된 단상 위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시네필의 날선 축축함과도 질적으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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