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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서한

질식자의 편지: 영화문화의 현재에 관한 13개의 질문
질식의 날 - 못다 부친 편지
회신1. 질식자에게
회신2. <비평(권력)에 대하여> 의 질문
회신3. 쉰들러 리스트: 무너진 낙원에서 완전함 찾기

수신인: 씨네21
회신4. 형제애: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회신5. 답변?
회신6. 창작과 비평의 관계에 대하여.....
등단 = 검증?
회신7. 지리적 계급의 소멸을 함께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회신8. 공개서한에 대한 회신입니다.
ㄴRE: 별로 어렵지 않은 이야기
회신9. 질식자에게

비평? 우리는 웃고 있다




3호 2020년 8월

1. 특집/ 여섯 빛깔 스크린 너머: 한국퀴어영화제 20주년에 부쳐
2. 특집/ CRY, FUCK, BEAT UP(울고 하고 패고)
3. 특집/ “퀴어영화 연구는 정말로 노다지”: 『한국퀴어영화사』 책임편집 이동윤 인터뷰
4. 특집/ 한국 게이/레즈비언 영화와 호모-특정적 난관들
5. 특집/ 샷다 내린 퀴어랜드: ‘디스코팡팡’과 ‘방 탈출 게임’ 사이에서
6. 특집/ 뱀파이어의 딜레마: 누구를 위한 ‘착즙'인가?
7. 정전에 속하기, 정전 밖에 있기: 사프디 형제의 방법
8. 검고도 밝은: 조주현의 ‘흑공’과 스크린 안의 미로
9. 아이돌 기표의 '트랜스' 해부하기: NCT 127의 〈슈퍼휴먼〉과 아이돌 피상성
10. '접촉'에서 '접속'으로: NCT 127의 경우
11. 아직도 굳이 〈무한도전〉을 논할 필요가 있는 건
12. 듣는 여자: 〈그리고 베를린에서〉
13. 박세영의 무한 도시
14. 추상化와 픽션: 이소정의 영상 작업에 대해
15. 이미 흩어진 '밀레니얼 시네필’
16. 비천함, 실패, 나쁜 것에 관한 정직한 성찰(우회하지 마세요)

A BACK NUMBER

2호 2020년 3월  

1. “오른손으로 비비고 왼손으로 비비고(잠깐!)” 2019 한국 코미디 영화의 ‘비빔면적 경향’과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윤리’: 영화 ⟨극한직업⟩, ⟨걸캅스⟩, ⟨엑시트⟩를 중심으로
2. 봉준호 월드 유람
3. 창문과 창문 ‘너머’—오연진의 《Lace》와 백종관의 ⟨추방자들⟩
4. 갱신과 추동 사이에서 기업가∽노동자∽DIY로서의 작가
5. 구체적 세부: 2019년을 함께한 독립극영화 속 여자들
6. 특집/ 액체의 단상들: 리퀴드(liquid)와 플루이드(fluid), 그 언저리에서
7. 특집/ 15초 곱하기 240의 실험: 이소윤의 ⟨450⟩
8. 특집/ 보여주는 대신 믿게 하기: 박시우의 ⟨변신⟩
9. 특집/ ‘플레이스’와 ‘플레이’로 규명되는 영화 ⟨소녀의 기도⟩
10. 특집/ 연결하고, 순환을 주장하기: 독립영화협의회 낭희섭 대표 인터뷰
11. 영화제가 활짝 피었습니다—대안적 영화제를 상상하기 위한 생산적 망각
12. 디스코팡팡적 시네마: ⟨알라딘2019⟩ 4DX
13. 걷잡을 수 없는/겉잡을 수 있는: 2019년의 영상 작업을 통해서
14. 테니스와 바둑의 신체를 상상하며: 되받아치기와 이중구속의 비평


BACK NUMBER

1호 2019년 9월

1. 환영에 대한 두 가지 입장: ⟨라이온 킹⟩과 ⟨야광⟩
2. 유령의 기술: 차이밍량의 ⟨더 데저티드⟩
3. 괴물, 일레븐, 무전(하)기
4. 장재현의 보이 스카웃은 무엇을 단련하는가?
5. 비체(abject) 생산라인의 작동방식을 드러내는 무빙이미지들: Maotik의 ⟨FLOW⟩와 이은희의 ⟨Contrast of Yours⟩
6. 무한 가정해보기: 류한솔 작가의 ⟨크리크리 메리크리 스마스⟩를 중심으로
7. 픽션의 증언
8. 다음 세기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의 ⟨힘의 한 세기⟩
9. 특집/ 영화평론가 김소영 인터뷰
10. 특집/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한국 영화비평계의 86세대에 대해 반추하며
11. 특집/ 한국영화비평계의 00년대부터 지금까지


0호 2019년 5월

1. 철의 꿈, 믿음의 끝: 박경근의 ⟨철의 꿈⟩
2. 펼치고 다시 조립하기: 백종관 감독론
3. ⟨로맨틱 머신⟩에 대한 짧은 소고: 카메라-눈의 체험을 체험하기
4. 경험되지 않는 영화에 대하여



비평의 비평 2019년 11월

듀나와 이동진과 기타등등‘씨네21식 비평’ 비판오큘로에 대해서반면교사정면교사?



선언문




환영에 대한 두 가지 입장
: ⟨라이온 킹⟩과 ⟨야광⟩

함연선(마테리알 편집인)



규모의 측면에서나 형식의 측면에서나 장르의 측면에서나 ⟨라이온 킹⟩과 ⟨야광⟩은 너무도 달라보이지만, 실사와 실사를 의태하는 환영(illusion) 사이의 관계를 그 주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볼 법 하다. 영화를 관람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외부적 자극은 다종다양한 스크린을 통해 드러나는 시각적∙청각적 자극일진데, ⟨라이온 킹⟩과 ⟨야광⟩은 그러한 자극을 통해 실사의 환영(illusion of live action)을 만들어 낸다. 즉, 실사 촬영본인 척 한다. 이때 환영을 만들어 내는 가장 핵심적인 도구는 디지털 조작이다.
        디지털 조작에는 크게 두 가지가 존재하는데, 한 가지 방법은 無에서 有를 창조하는 것이다. 이때 실제에-거의-근접한-가상으로서의 컴퓨터 그래픽 이미지는 모션 캡쳐나 합성 등을 통해 실제로서 오인됨으로써 완벽한 환영을 일구어 낸다. 다른 하나는 有의 변형, 즉 실사 촬영본에 가해지는 디지털 변형이다. 이때 대부분의 변형은 수용자로 하여금 그 흔적을 맨눈으로 파악할 수 없게끔 이음새 없는 구성을 선택함으로써 역시 완벽한 실사의 환영을 성취한다. ⟨라이온 킹⟩ 리메이크는 전자를 극단으로 밀고 간 사례다. CG와 VFX로 만들어진, 실제에 거의 근접한 모습의 자연 풍경과 동물들이 디제시스 세계에 포집된다. 군데군데 어색한 부분들이 돌출될 때가 있음에도 (2D로 관람할 경우 3D보다 그래픽적인 부분이 두드러져 보이기는 하지만) 훈련시킨 사자들과 함께 실사 촬영을 한 뒤 인간 성우들의 목소리로 더빙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문득 들만큼 포토-리얼하다. 반대로 ⟨야광⟩은 주로 후자를, 즉 실사 촬영본에 가해지는 변형의 결과로서의 환영을 다루지만, 환영의 제시에 그치지 않고 환영을 이루는 조작의 층위들을 해체하고 그것을 펼쳐내어 보인다.


사진출처: flickr.com (사진: William Warby)

⟨라이온 킹⟩ 리메이크는 디즈니 실사화 프로젝트의 맥락에 서 있는 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실사로 이루어진 부분은 딱 한 개의 쇼트 뿐이다. 모든 것이 CG로 이루어져 있으며 실사의 환영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거의 완벽에 가깝게 구현하고 있다.
        이 야심찬 프로젝트에 대한 원작팬들의 반응은 좋지 않은 편이다. 그들이 이 리메이크에 불만을 품는 가장 큰 이유는 표정의 부재와 그에 따른 감동의 부재다. 그러나 이 영화가 동물 실사화의 환영을 담지하고 있는 애니메이션임을 고려한다면 캐릭터들에게 ‘표정’이 없다는 비판은 수긍하기 어렵다. 동물들—정확히는 실사의 동물 이미지를 지향하고 있는 3D 애니메이션 동물들—이 관습적인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표정을 짓는다면 얼마나 ‘언캐니’ 하겠는가? 게다가 ⟨라이온 킹⟩의 동물들에게 얼굴 표정이 아예 없다는 것은 틀린 말이다. 특히 실제 동물들의 표정에서 인간이 가장 감지하기 쉬운 공포나 분노는 명백하게 표현해냈다. 그리고 얼굴 표정으로 충분히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위해서는 움직임을 사용했다. 특히 눈에 띄었던 것은 심바와 무파사 부자 간의 애정을 표현하는 롱쇼트들이었다. 성우들의 웃음소리에 맞춰 살짝 찡그린 표정을 지은 두 사자가 장난을 치면서 서로 뒤엉키는 모습이 미디엄 쇼트로 잠깐 잡히다가 이어 뒤로 물러나는 카메라 움직임을 통해 프라이드 랜드의 풍경 속 일부가 된다.
        그러나 원작과의 비교나 감동의 부재를 운운하는 비판이 큰 의미가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존 파브로 감독이 1994년의 원작을 리메이크하는 과정에서 중심적인 목표로 했던 부분이 ‘데포르메를 통한 애니메이션화’의 정반대 편에 있기 때문이다. 그가 문제시하는 것은 CGI 이미지들이 얼마나 실제로 “있는 것”에 가깝게 구현되는가에 관한 것이며 따라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없는 것”들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없)는 것”들이 되게끔 하는 것, 즉 완벽한 환영으로 밀어붙이는 것에 관한 것이다. 감독이 딱 한 컷의 실사 촬영 푸티지를 영화 속에 숨겨 놓고 관객들과 일종의 숨바꼭질을 진행한 것은 환영의 감쪽같음에 대한 자신감을 표현한 것에 다름 아니다. 이를 위해 그와 제작진이 사용한 방법이 ‘버추얼 프로덕션(Virtual Production)’이다.
        버추얼 프로덕션과 관련된 툴을 제작하는 언리얼 엔진(Unreal Engine)에서 2019년 PDF 문서로 발행한 「버추얼 프로덕션 제작 가이드」에 따르면, 버추얼 프로덕션은 “컴퓨터 기반의 제작 및 시각화를 통한 영화 제작 방법의 스펙트럼을 가리키는 광범위한 용어”이다. 이어 문서에서 소개하는 주목할만한 정의로 웨타 디지털(Weta Digital)이 제안한 “물리적 세계와 디지털 세계가 만나는 곳”이 있으며, 또한 존 파브로와 함께 ⟨정글북⟩에서부터 작업해 온 무빙 픽처 컴퍼니(Moving Picture Company; 이하 MPC)는 버추얼 프로덕션에 대해 “가상적이며 증강된 현실을 CGI 및 게임 엔진 테크놀로지와 결합하여 제작진으로 하여금 세트에서 구성 및 포착되고 있는 장면들이 펼쳐지는 것을 볼 수 있게끔 한다”고 설명한다. MPC와의 인터뷰를 진행한 Engadget.com의 기사에 따르면, 버추얼 프로덕션을 사용한 새로운 버전의 ⟨라이온 킹⟩의 제작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더 그럴듯한 가상 세계를 만들기 위해 제작진 중 일부가 원작의 ‘프라이드 랜드’와 유사한 풍경을 지닌 케냐 지역으로 일종의 레퍼런스 여행을 다녀왔고, 또 다른 일부는 플로리다에 있는 동물 테마파크에서 레퍼런스 푸티지를 촬영했다. 몇몇 (음성) 배우들은 방음 처리된 방에서 연기를 했고 제작진은 이를 녹음하고 촬영했다. 이를 바탕으로 런던의 MPC는 마야(Maya)와 같은 산업 표준적인 도구를 사용해 ‘마스터 씬’을 만들고 이를 유명 게임 엔진인 유니티(Unity)와 호환가능한 것으로 변환했다. 여기에는 저해상도 버전의 에셋(특히 비디오 게임과 같은 인터랙티브 미디어에 들어가는 그래픽이나, 오디오, 혹은 다른 예술적 데이터들)과 명령으로 촉발될 수 있는 “꽤 긴 애니메이션 클립"이 포함되어 있었다. LA에서 파브로와 그의 팀은 이렇게 만들어진 ‘마스터 씬’에서 작업을 진행했다. VR 헤드셋을 착용하고서 ‘마스터 씬’ 속으로 들어가서 마치 실제 세트인 양 조명(태양)의 위치나 카메라 세팅, 어떤 (가상) 카메라 렌즈를 사용할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 다음, 볼륨(volume)이라 불리는 약 2.3평방미터의 실재하는 공간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제작진은 이때 VR 세계와 연동시킨 3D 모형 촬영 장비들을 볼륨의 이곳 저곳으로 물리적으로 움직이고 그러한 움직임은 데이터가 되어 가상세계에 반영되었다. 이에 따라 제작진은 유니티 안에서 ‘촬영(shoot)’할 수 있었다. 마스터 씬 내부의 애니메이션은 언제나 동일하게 반복가능하고, 이는 제작진들이 액션 주변에서 원하는 만큼 많이 촬영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촬영의 결과는 ‘테이크(takes)’가 되었고 그것은 편집에 의해 면밀히 검토되어 런던의 MPC 팀으로 다시 전송되는 ‘쇼트(shots)’로 필터링 되었다. 런던의 MPC는 3차원의 카메라 무브가 담긴 쇼트들을 받아서 최종 제작 퀄리티의 영화 버전으로 변환했다.

⟨라이온 킹⟩ 리메이크의 제작과정이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들이 전지적인 신의 입장에서 가상의 영화적 세계를 만들고 그 세계를 통제하면서 영화 제작이라는 ‘게임’을 진행한 것에 다름 아니기에, 존 파브로 감독이 이 영화를 두고 “멀티플레이어 버추얼 리얼리티 필름 메이킹 게임”이라 칭한 것은 아주 적확한 일이었다. 결국 그 게임의 결과가 관객들이 보는 ⟨라이온 킹⟩인 것인데, 이때 모든 시각적 요소들이 통제의 결과이다. 사자들의 귀의 쫑긋거림이나 꼬리 움직임부터 바람이 부는 경로와 태양 빛이 내리쬐는 방식까지 모두 실사 영화였다면 감독의 통제 범위를 넘어서는 것으로서 포착되었을 것들이 실은 전부 의도와 통제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영화를 마주한 원작팬들의 곤란함을 일정 부분 이해할 수 있다. 스스로 CGI 애니메이션이기를 거부하고 실사화를 지향하면서도 실제로는 실사에서 통제되지 않을 많은 부분들을 통제의 영역에 두고 있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애니메이션이 관객과 맺은 합의에서도 미끄러지고, 또 전통적으로 실사 영화가 관객과 맺은 합의에서도 미끄러지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다시 통제 이야기로 돌아온다면, ⟨라이온 킹⟩ 리메이크가 「통제를 넘어선 사회(A World Beyond Control)」에서 에리카 발솜이 언급했던 ‘영화적 세계에 대한 완벽한 통제’를 실현시킨 사례라는 것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에리카 발솜은 바쟁을 인용한 파로키를 다시 인용하며, 회화와 사진의 관계를 영화와 CGI의 관계와 대응시킨다. 회화가 닮음(likeness)에 대한 집착을 사진에 넘겨주고 그로부터 해방되었다면, (실사) 영화(특히 ‘리얼리티를 신뢰하는 감독’의 대척점에 서있는 ‘이미지를 신뢰하는 감독’의 영화)는 영화적 세계(filmic world)에 대한 통제에의 집착을 CGI에 넘겨주고 그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발솜은 CGI가 이미지의 헤게모니를 쥔 것은 오늘날 우리가 기후 변화 등에 의해 세계에 대한 통제권을 잃은 것에 대한 반대급부로서의 현상이며, 반대로 통제를 넘어서는 우연성으로 되돌아 오게 된 영화가 세계의 연약함 및 세계의 불확실성을 우리로 하여금 일깨워준다고 결론 짓는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당대의 패권적 이미지가 완벽한 통제의 가능성을 품은 CGI 이미지라는 사실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은 차치하고 ⟨라이온 킹⟩의 완벽한 통제에 대해 얘기를 해보고 싶다.
        연극과 영화의 차이에 대한 벨라 발라즈의 뛰어난 통찰에 의하면, 연극에서는 동물들이나 어린 아이들이 캐릭터로서 존재하지 못하는 반면 영화에서는 그들을 캐릭터로서 제시할 수 있다. 연극에서 동물이나 어린 아이들은 이름과 성격을 가진 캐릭터라기 보다는 실재하는 사자, 실재하는 곰, 실재하는 어린 아이일 뿐이다. 그러나 영화는 전통적으로 미장센이나 몽타주 등을 통해 (완벽하진 않은) 통제를 가함으로써 영화적 현실을 만들 수 있고, 그러한 결과로 동물도 어린 아이도 캐릭터가 될 수 있다. 존 파브로와 MPC의 ⟨라이온 킹⟩에 등장하는 ‘심바’(를 비롯한 모든 동물들)는 특정한 스토리와 특정한 성격, 혹은 특정한 제스처가 부여되는 하나의 캐릭터다. 그러나 또한 ‘심바’는 한 마리의 실재하는 사자로서 화면에 등장하기도 한다. 즉, 식육목 고양이과의 포유류인 사자로서의 ‘심바’와 아빠와의 아침 산책 한 번으로 프라이드 랜드의 왕이 될 거라는 기대에 들떠 저의를 품은 삼촌 앞에서 깐족대는 ‘심바’가 성공적으로 결합되는 것이다. 헷갈릴 법도 한 이 ’무빙이미지들‘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BBC의 야생 동물 다큐멘터리(한국의 관객이라면 ‘동물의 왕국’을 참조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원작 ⟨라이온 킹⟩이다. 관객은 이 둘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내러티브와 시각적 효과들을 따라간다.
        새끼 사자를 들어올리는 개코원숭이는 있을 수 없지만, ‘심바’를 들어올리는 ‘라피키’는 있을 수 있다. 이것이 ⟨라이온 킹⟩ 원작이 전통적인 애니메이션으로서 당연하게 수행한 것이라면, ⟨라이온 킹⟩ 2.0은 영화적 세계에 대한 완벽한 통제를 통해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개코원숭이면서 ‘라피키’인 존재가 새끼 사자이면서 ‘심바’인 존재를 들어올리는 세계를 그려낸 것이다. 이 포토-리얼한 세계는 기린처럼 그려진 캐릭터가 사자처럼 그려진 캐릭터에게 인사를 하는 세계가 아니라, 기린-백성이 사자-왕에게 인사를 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비인간 존재에 한해서, 캐릭터와 실제하는 존재의 성공적인 결합, 혹은 그 결합에 대한 성공적인 오인이 ⟨라이온 킹⟩ 리메이크가 성취해낸 가장 중요한 일이다.


사진출처: 인디다큐페스티발

⟨야광⟩에는 밤이 없다. 영화 제일 앞부분에 위치한 ‘밤의 시퀀스’에는 밤의 풍경 속에서 흔들리는 나뭇잎,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형상이 흐릿하게나마 보이는 것은 아마도 달빛이나 그 근방의 인공조명 때문일 것이라고 관객들이 자신의 짐작을 확신할 즈음에 감독은 이 푸티지가 실은 데이 포 나이트(day for night)로 촬영된 것이며 후반 작업의 색보정을 통해 ‘낮’을 ‘밤’으로 보이게끔 변형했음을 드러낸다. ⟨라이온 킹⟩ 리메이크에선 조작의 층위가 겹겹이 쌓여 분리되지 않는 단일한 층을 이루는 반면, ⟨야광⟩에선 조작의 층위가 겹겹이 해체된다.
        유투브에 “CGI & VFX breakdown”이라고 검색해보면, 영화에서 사용된 CG나 특수효과의 다층화된 레이어를 보여주는 많은 클립들이 검색 결과로 뜨는 것을 볼 수 있다. 비슷하게, ⟨야광⟩은 환영을 담지하고 있는 무빙이미지에서 시작해 그 환영을 완성시킨 조작의 층위들을 하나하나 해체해보인다. 디지털 영화의 시대에, 이것은 영화 제작의 과정을 하나하나 해체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디지털 조작의 층위를 해체하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밝혀지듯이 이 환영이 드러나는 양태 중 하나가 밤(과 낮 사이의 오인)이라는 시간성을 띤다는 것은 꽤나 의미심장하다. 이에 대한 ⟨야광⟩의 계획은 다음과 같다.
        (1) 괄호쳐진 환영을 보여주기. 이는 환영을 환영이 아닌 실제인 것처럼 보여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계에서 환영은 환영으로서가 아니라 일종의 지표성을 띠는 실사 촬영본으로서 제시된다. (여기서 지표성이란 카메라 앞에 특정한 대상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증한다는 엄격하지 않은 의미에서의 지표성이다. 디지털 이미지의 시대에 들어서 사진적 이미지가 보증하던 지표성이 일정 정도 유실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표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야광⟩ 초반부의 ‘어둠’은 기실 그것이 완벽한 조작의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은 잠시 보류되고 괄호쳐진 채로 관객에게 제시된다.
        (2) 환영에서 괄호를 벗기기. 즉, 환영이 환영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는 ‘밤의 시퀀스’가 끝나고서 바로 진행된다. ‘밤의 시퀀스’ 바로 직후에 데이 포 나이트로 촬영이 진행되고 있는 현장이 보이고, 감독과 배우들이 마치 이 비하인드컷과 같은 순간들이 편집될 것을 안다는 듯이 촬영과는 무관한 잡담을 나누거나 혹은 촬영과 관련된 지시사항을 전달하고 전달받는다. 이 장면을 통해 초반부의 ‘밤의 시퀀스’가 실은 대낮에 촬영되었으며, 해당 장면의 어둠은 지표적인 것과는 아주 정반대에 서 있는 완벽한 조작의 결과인 것이 밝혀진다.
        (3) 환영의 생성 방식을 보여주기. 이는 대사의 후시 녹음 과정과 포스트프로덕션 단계의 색보정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두 과정의 노출을 통해서 ⟨야광⟩의 첫 시퀀스들이 모두 해설된다. 실사 촬영 이미지의 후반 보정과 동시녹음이 아닌 후시 대사 녹음의 결과물이 바로 밤의 시퀀스인 것이다.
        (4) 환영의 작동 방식을 보여주기. 영화 중후반부에 3D 렌더링 등의 디지털 조작으로만 만들어진 가상의 공간에 대한 애니메이션 푸티지가 삽입되고, 그 전후로 극장에 홀로 앉아 해당 푸티지를 보고 있는 관객의 씬이 배치된다. 관객(역할의 퍼포머)의 얼굴에 영화 속 다양한 빛이 반사되어 비친다. 관객은 스크린에 프로젝션되는 영화의 빛을 다시 한 번 반사시키는 유사-스크린이 되는 것이다.

보통 영화에서 환영이 내러티브적 매끄러움을 위한 수단으로 쓰이는 반면, ⟨야광⟩에서는 환영의 세세한 해체 자체가 러닝타임의 대부분이 되는 목적에 가깝다. 이러한 해체 과정의 부산물 중 하나가 디지털적인 조작을 통하여 낮에서 밤으로/밤에서 낮으로 시간성을 변형시키고, 실사 촬영본의 레이어와 조작의 레이어를 한 데 겹침으로써 그 두 시간성을 공존시키는 것이다. 포스트프로덕션 단계에서 이미지의 색보정을 통해 낮의 시간을 밤처럼 보이게끔 바꾸는 과정을 보여주는 씬과 또 반대로 밤(처럼 보이는) 시간에서 조작을 ‘취소’하여 낮의 시간으로 돌아가는 씬은 묘한 시간성을 보여준다. 변형을 가하거나 이미 진행된 변형을 ‘취소’하는 과정에서 이미지 자체는 정지되어있으나, 그 위에 덧입혀진 조작의 레이어는 변형 혹은 변형의 취소를 통해 흐르는 시간성을 획득하기 때문이다.
        대사 후시 녹음 장면에서도 시간성의 대조 및 공존이 명백하게 나타난다. 실사 촬영된 장면(따라서 낮의 시간성을 띠는 화면)이 나오는 스크린을 앞에 두고 배우들은 애니메이션을 더빙하듯 스크린 속 장면에 맞추어 대사를 읊는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화면 속 인물들이 카메라를 등지고 있으므로 배우들은 녹음 중에 입모양을 세세히 맞출 필요는 없다. 대신 스크린에는 장면의 일부분이 구간 반복 재생되고 배우도 그에 맞춰 똑같은 대사를 반복하여 읊을 뿐이다. 이때 녹음하는 배우들이 앞에 두고 있는 스크린의 시간성은 ‘반복을 통한 정지’에 이른다. 동영상 재생 어플리케이션의 구간 반복 기능을 떠올리면 쉽게 알 수 있듯, 반복되는 구간은 전체적인 러닝타임의 맥락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반면, 대사를 녹음하고 있는 배우의 시간은 똑같은 대사가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흐른다. 말하자면 후시 녹음 중인 배우의 시간은 ‘반복을 통한 정지’에 싱크맞춰졌으나 ‘반복을 통한 흐름’의 시간성을 지니는 것이다. 스크린 속 이미지와 배우들의 대사로 드러나는 사운드를 통해 싱크맞춰진 두 시간성은, 비슷한 양태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다른 시간성인 것이다. 이는 디지털 조작의 시대에 특징적인 기묘한 시간성의 형상화인 동시에 시간이 흘러도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오늘날의 특정한 시간-감각에 대한 설명 또한 될 수 있다.
        한편에서 디지털 영화의 환영을 해체하여 펼쳐보이는 ⟨야광⟩은, 다른 한편에선 디지털 변형/조작을 통해 과거에 “있었던 것” 그러나 지금은 “없는 것”으로서의 크루징 스팟을 표현하는 데 사용한다. 물리적 공간이야 지금까지도 존재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크루징 스팟으로서 기능하지 않게 된 지 오래인 장소들을 비추는 씬에서 게이 데이팅 어플의 알림음이 규칙적으로 울리는 것은, 크루징 스팟이 맡던 역할이 디지털의 가상 공간으로 이동했음을 의미한다.
        ⟨야광⟩에서 크루징 스팟‘이었던’ 장소들─과거의 푸티지를 쓰지 않는 한 크루징 스팟으로서의 장소들을 화면에 담아낼 수는 없다─을 비추는 방식은 전반부와 후반부에 따라서 크게 다르다. 전반부에서는 길고 긴 롱테이크들이 이어진다면, 후반부에서는 감독이 리버스와의 인터뷰에서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만들 때 사용하는 방식”이라고 부연한 ‘노말맵 렌더링’을 사용하여 크루징 스팟이었던 장소들을 제시한다. 이는 재현을 통해서가 아니라 일종의 형식적 장치를 통해서 “(한때는 있었으나 지금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 “없는 것”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노말맵 렌더링 씬은 앞서 언급한 밤의 시퀀스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를 지닌다. 밤의 시퀀스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서 시작해 “없는 것”으로 나아가는 해체 과정의 출발 지점이라면, 노말맵 렌더링 씬은 앞선 조작의 요소들을 이용해 과거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더 이상 “없는 것”을 시각화하는 여정의 종착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