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의 비평 토크 기록
2019년 11월 8일
⟪오큘로⟫에 대해서
정경담, 함연선



1.  
⟪오큘로⟫는 전통적 시네필리아의 최신 취향, 이를테면 페드로 코스타나 차이밍량, 최근의 고다르 등에 대한 관심을 계승하면서 그 위에 동시대의 (테크놀러지에 의하여) 변화된 매체 환경의 맥락을 계속해서 겹치거나 덮어씌워(overlay) 나간다. 지금 현재 오프라인 (비)정기간행 지면 가운데 이 두 가지의 요소를 지속적으로 성실히 매개하려 하는 매체는 많지 않다(유일하다). 혹시 우리가 놓치고 있는 매체가 있다면 알려주기 바란다. 또한 이 과정에서 발행인 혹은 편집인들이 ‘새로운 영상’들을 적극적으로 수입 및 번역하여 소개한다.
        본론에 앞서 우리가 원고를 준비하고 서로 피드백하면서 나눴던 대화에 대해 말하겠다. 방금 읽은 문단이 ⟪오큘로⟫가 기본적으로는 ‘영화’ 비평지라는 전제를 깔고 있지 않느냐는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내가 무심결에 ⟪오큘로⟫를 ‘미술도 다루는 영화비평지’ 내지는 ‘다루는 범위가 좀 더 넓은 영화비평지’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굳이 변명하자면 이번 프로그램의 방점이 영화비평의 현재 좌표를 알아보자는 데 있었기 때문이고, 반성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무의식적 나와바리에 대한 문제다. 오늘날 비평의 대상들이 갖는 경계를 뭉개야 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고 본다. 지겨운 얘기겠지만 각 매체의 고유한 표현양식이라고 여겨져왔던 것들을 해체하거나 뒤섞는 실천들이 오래전부터 등장해왔고, 동시대에 가까워 올수록 그러한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작보다 비평—쓰는 것과 읽는 것, 대화하는 것을 모두 포함한다—의 경우가 더 구획을 무너뜨리기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경계를 횡단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를 인지하기 전까지, 위악적으로나마 스스로를 시네필로 칭해왔거나, 주로 미술관보다는 극장에 다니며 자신의 견해를 마련해 왔거나, 좋아하는 이론가의 활동영역이 영화에 가깝거나, 그것도 아니면 학부에서 영화를 공부했거나 하는 각각의 전사들이 있었을 것이다. 미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즉 영화-영상과 미술-영상을 횡단하는 비평이 필요하다고 믿는 이들이 아직은 특정한 분야를 자신의 준거집단으로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오큘로⟫가 비평지로는 드물게 영화(가 준거집단인) 독자들과 미술(이 준거집단인) 독자들을 비등비등하게 모객하는 것에 성공했음에도, 여전히 이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다고 본다.
        ⟪오큘로⟫는 2016년 3월 창간한 계간 영상비평전문지로, 미디어버스 임경용 대표와 유운성 평론가가 공동 발행하고 가장 최근 권호인 8호를 기준으로 김보년, 이도훈, 이한범 평론가와 전효경 큐레이터가 편집진을 맡고 있다. 편집진 자리를 거쳐간 필자들을 되짚어 보면, ⟪오큘로⟫는 아마도 영화와 미술 분야의 비율을 어느정도 계속해서 유지하려 하는 듯 보인다. ⟪오큘로⟫가 애초에 ‘영화비평지’가 아닌 ‘영상비평전문지’를 표방하고 나왔다는 점이 중요한데, ⟪오큘로⟫는 미술계 내부에 구획되어있던 영상 설치작품들을 적극적으로 담론 내부 영역에 끌어온다. (이 문장도 앞서 언급했던 무의식적 준거집단의 오류를 가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오큘로⟫가 지향하는 담론 영역의 재설정이 이루어진다. 물론 ⟪오큘로⟫가 영상비평으로 틈을 열어둔 것이 다만 영화와 미술영상을 한데 아우르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넷플릭스 드라마나 유투브 등의 웹 동영상, 게임, VR까지도 폭넓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발행 초기 이같이 특정한 분야가 다발적으로 다루어지는 것은 매체 자체의 방향성에 의해서라기보다 필자 개인의 관심이 더 많이 반영된 결과처럼 보였다. ⟪오큘로⟫는 관념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어절들 혹은 문장(‘시간 없는 시간들’, ‘이미지; 먼지와 기념비 사이에서’, ‘카운터-픽션 내게 (다시) 거짓말을 해봐’ 등)을 주제어로 채택하여 이처럼 다단한 분야의 크리틱 전부를 하나의 포괄적인 테마로 묶어내 보이려는 의지를 보여왔다. 최근에는 이전과는 역방향으로, 관념적 토픽(이를테면 ‘어둠’이나 ‘풍경’ 같은)에서 출발하여 주제에 맞게 새로 쓰여진 글들이 차곡차곡 정렬되는 형태를 보이기도 한다.
        한편 ⟪오큘로⟫의 의의는 젊은 필자를 적극적으로 기용하고자 하는 발행인의 의지에도 있다. 유운성 발행인은 자신이 씬에 들어온 15년간 내내 루키였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최근(십수년 사이에) 영화비평계에 나타난 게이트키핑 문제를 비판하기도 했다. 유운성 발행인의 이같은 문제의식은 ⟪오큘로⟫의 편집권을 젊은 필진들에게 일임하고 젊은 신인 평자들에게 지면을 채우도록 하는 등 ⟪오큘로⟫의 지면 자체가 일종의 리쿠르터로서 기능하도록 만들어 왔다.
2.  
2016년 ⟪오큘로⟫ 창간 당시 감상에 대해 잠깐 말하고 싶다. 창간 소식과 함께 목차를 살펴보면서 무엇보다 김희천과 강정석에 대한 강덕구 평론가의 글을 제일 기대했었고, 읽어보니 역시 기대했던대로 재밌었다. 오디오비주얼리서치라는 특집 주제도 흥미로운 것이었다. 하버드 감각민속지학 연구소(Sensory Ethnography Lab; SEL)의 작업들, 특히 ⟨리바이어던⟩에 대한 소개는 다른 영화적 실천과 달리 SEL의 영화(라고 부를 수 있다면!)가 논픽션에서 픽션으로 어떻게 나아가는지를 보여줬고, “경계”라는 수사, 특히 “미술과 영화의 경계”라는 수사가 비평적으로 아무일도 하지 못함을 지적한 ⟨대문자 R로서의 Research⟩도 재밌는 글이었다. ⟪오큘로⟫ 1호를 읽고서 흥분되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필자로 참여한 이들의 대부분이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생이었단 점이었다. 이 ‘젊은’ 매체를 보면서 미술비평계의 젊은 비평가 집단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래서 더욱 반가웠다. 돌이켜보면 김희천과 강정석을 창간호에 다룬 것은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젊은 영상비평전문지와 젊은 영상작가들(그것도 동시대의 가장 잘 팔리는)의 조합은 힘차게 한 걸음 내딛는 호쾌한 맛을 냈다. 물론 편집인으로 참여한 모두의 관점이 당연하게도 하나로 묶이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었지만 말이다.
        ⟪오큘로⟫ 1호를 읽고 내가 가졌던 막연한 기대는 이들이 강정석이나 김희천과 같이 동세대의 작업을 계속해서 다루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1호에서부터 8호까지 비평과 인터뷰 지면에서 김희천, 강정석부터 시작해서 김웅용, 문세린, 오민, 파트타임스위트, 임고은, 함정식, 김아영, 구동희, 권하윤 작가가 다루어졌는데, 전반적으로 ⟪오큘로⟫가 다루는 영상 작가들의 면면이 그리 새롭지 않은, 조금 안전한 리스트로 이뤄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더해 미술 쪽 작업을 다루는 필자와 영화 쪽 작업을 다루는 필자가 어느 정도 정해져있고 양분되어 있다는 느낌이 있다. 물론 편집인이나 필자들 각자가 주로 관심을 갖는 분야가 있을 것이기에 발생하는 현상이고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미술과 영화를 가로지르는 비평”을 위해서는 좀 더 고민해보아야 할 지점이 아닌가 싶다.
        한편 ⟪오큘로⟫에 대한 비판으로 임근준 평론가가 건축신문 17권에 실린 권시우 평론가와의 대담에서 언급한 몇 마디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로 실험이 가능하던 시대가 무너졌고 심도 깊은 연구의 대상이 될 만한 신작도 안 나오는 갑갑한 상황. 자, 그렇다면 영화평론가와 이론가들은 어떻게 생존을 모색할 것인가. (중략) 문제작들을 다이어그램으로 펼쳐놓고, 거기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그를 규명하려는 분석의 틀을 고안하는 것이 정상적인 접근입니다. 망했으면 망했다고 공표하고 정확히 끊고 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이건 평론가의 윤리적 이슈이기도 해요.” 우선 이 주장은 ⟪오큘로⟫가 영화비평계/담론계에서 출발한 모색의 장이라고 전제한다. 악의적으로 오독하면 ‘나와바리’를 주장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비판을 건설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오큘로⟫를 출발케한 동력이 영화비평담론계의 한계를 느끼고 타개책을 모색코자 한 욕망이라면(혹은 그 반대로 미술비평담론계의 한계를 느끼고 타개책을 모색코자 한 욕망이라면), 왜 영상 혹은 무빙이미지라는 범주를 사용하고 그 범주에 속한 작업들을 비평의 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지에 대한 좀 더 명확한 대답이 필요하다. 매체특정성의 종언은 정확한 대답일 수 있지만, 적확한 대답은 아니다. 영상비평지를 지향하는 ⟪마테리알⟫로서도 그 대답을 찾아가는 바, ⟪오큘로⟫의 대답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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