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서한과 회신들
2020년 9월
공개서한에 대한 회신입니다
아무개



처음 공개서한을 보고 너무 충격받아서 회신을 할까 말까 했습니다. 말같지도 않은 말에 관심 주는 게 자존심 상해서요. 하지만 어떤 회신이라도 좋다고 하셔서 한 번 끄적여서 보내봅니다.

1. 논쟁이 될 수 없습니다. 제시하고 있는 질문들의 전제가 너무나 주관적이고 어떤 경우엔 피해망상이기 때문입니다.

2.  작가와 작품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작가와 작품은 분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만, 그건 강요의 문제가 아닙니다. 개개인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고 그걸 어떻게 표출하고 행하느냐는 자유입니다. 이런 의견도 있고 저런 의견도 있는 것이지 잘잘못을 따질 일이 아닙니다. 논쟁을 원하신다면서 논조가 상당히 강압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리고 작가와 작품이 분리되어야 한다는 의견의 이유가 ‘작품이 작가에게 종속’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해서는 아닙니다. 일단 감독은 개인적인 수준에서의 ‘작가’가 아니고 한 편의 영화는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집니다. 연출자 한 사람의 행동으로 인해 함께 고생했던 스텝들의 노고마저 부정당해야 하나, 저는 그런 생각입니다. 그리고 비평의 전제조건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몇 개의 케이스를 너무 확대 해석하시는 것 같네요. 비평의 전제조건에 연출자의 인격 고려 유무를 넣는다는 게 좀 우습게 느껴집니다. 그런 건 사안에 따라 각각의 글에서 다르게 다루면 될 일이지 모두가 통일된 비평의 전제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대안이 없다고 비판할 수 없는 건 아니지요… 또, “여전히 작가라는 개념을 유지한다면, 작품이 작가의 의도와 생애에 전적으로 종속된 연구에 머물 겁니다”라고 하셨는데, 상당히 이분법적이네요. 이렇게까지 밖에 발상이 떠오르시지 않는 분이라면 과연 영화에 대해 생각을 깊이 하신 적은 있는 건지 의심스럽습니다.

3.  비평에 대하여: 문체… 솔직히 비평 전체에 대해 논하는데 문체를 붙잡고 늘어진 이 짧은 글이 뭘 하자는 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비평의 역할에 대해 얘기하다가 갑자기 문체;;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새로운 시각과 ‘문체’를 가진 젊은 비평가들에게 상당히 모욕적인 글이라는 생각을 하기나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비평을 얼마나 읽으셨는지 모르겠지만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계신 거라는 생각이 안 드네요. 젊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평론가들이 꽤나 있는데요. 그리고 지금의 비평이 시들시들한 것은 고인물들이 활개치기 때문도 있지만 비평을 소비하는 층이 없어서 그런 것 아닌가요? 그리고 마지막 문장을 보니 문체=언어라고 생각하시는 것도 같은데 뭐 이 글을 어디부터 지적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네요.

4.  비평권력에 대하여: 비평권력은 분명히 존재합니다만, 모든 사람들이 ‘선생님’들의 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는 않겠지요? 상식적으로요… 사람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위와 마찬가지로, 비평을 비판적으로 습득해서 나름의 글을 써내는 여러 필자들에게 상당히 모욕적인 글이네요.

5.  영화를 보는 이유에 대하여: 일단 관음에 대한 얘기에 관련해서는, 그 외의 동기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수많은 담론들이 있는데 너무 경솔하게 관음이 영화 관람의 이유다 라고 못박으셔서…보는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이 질문은 정말 순수한 질문인 것 같은데 사실 책을 조금만 찾아보면 정리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6.  리스트에 대하여: 논점을 알기 어렵습니다. 일단 누가 뽑아도 비슷한 리스트가 나온다는데, 얼만큼의 표본집단을 가지고 조사하셨는지요?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말씀하신 에드워드 양이나 빔 벤더스, 로메르, 고다르의 영화들이 가치절하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재평가의 대상이 될 수는 있겠죠. 고전을 갱신하지 못하고 동시대에 맞는 영화적 미덕을 찾지 못하는 건 글쓴이님과 주변 지인들 한정인 문제 아닐까요?

7.  지역 영화제에 대하여: 일단 코로나 전의 상황을 얘기해봅시다. 지역의 지원금과 정부 예산이 아니라면 사비로 영화제가 진행되어야 옳다는 말씀이신가요? 지역 영화제가 지역의 정체성을 가지고 존속하는 것은 그들이 찾은 타협점입니다. 그 영화제가 존재하도록 해줬기 때문이죠. 지역 영화인들을 고용하는 것도 그 타협점에 위치한 것이겠지요. 그게 영화문화를 물흐린다고 생각하시나요? 그 생각의 전제를 통해 글쓴이님의 어떤 혐오가 뚜렷이 보이네요. 덧붙여, 온라인 영화제로 모든 영화제가 전환되면 그때는 다른 생태계가 생기겠죠.

8.  비평적 몸사림에 대하여: 이 글은 유일하게 불평을 덧붙일 필요가 없네요. 맞는 말씀.

9.  대학 영화교육에 대하여: 혹시 이 글 쓰신 분이 영화과 혹은 영화 이론과에 다녀보셨는지 궁금하네요. 사람들은 글쓴이님 생각과 정말 다르게도 진심을 다해서 영화를 만들고 고통을 감내하며 영화 이론을 공부하고 글을 씁니다. 눈에 안 보인다고 없는 거 아니잖아요. 그리고 의미 없는 논문이라뇨 하하 참. 남의 논문을 함부로 의미 없다고 후려치는 건 무슨 경우인지. 그리고 뒷부분의 경우 정말 천박하기 짝이 없는데, 대학교육이 취직으로 잘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 학과는 필요 없다는 말씀이시지요? 부끄러운 생각을 너무 당당하게 말씀하셔서 조금 놀랍기도 하네요.

10. 창작과 비평의 관계에 대하여: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지만 뒤에 질문이 많이 남아서 이 부분은 대충 스킵합니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일정 부분 동의합니다.

11. 실천에 대하여: 논점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런 식의 생각이 영화 창작자와 관객들의 숨통을 조인다는 건 알겠네요.

12. 창(작)+(산)업에 대하여: 이 글 쓰신 분은 전성기 헐리우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감독은 고용인인 경우가 더 많았던 것이 영화 제작의 클래식 아닌가요? 또한 먹고 살기 위해서 기업의 사주를 받아들이든 말든 또 좋은 영화를 만들면 그만 아닌가요? 드레이어도 캠페인 영화로 돈을 벌었죠. 돈은 중요합니다. 영화를 만들 가장 근본적인 기반이니까요. 그리고 독립영화가 상업 진출의 등용문이 됐다 어쩌구…그건 말씀대로 독립영화 생태계를 바꾸지 않으면 변화가 불가능한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13. 다큐멘터리에 대하여: 일단 다큐멘터리라는 복잡다단한 단어에 대한 정의 없이 글을 쓰셨기 때문에 논점이 불분명합니다. 그리고 깊은 고민과 함께 다큐 작업을 이어가고 계신 많은 분들에게 굉장히 실례가 되는 글이군요. 사실 관계 서술이 많이 잘못되어 뭐라 말을 얹기 힘듭니다.

14. 형제애 문화에 대하여: 한예종이 그런 모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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