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서한과 회신들
2020년 9월
등단 = 검증?
김혜림



한국에만 존재하는 ‘등단제도’는 편리함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이때의 편리함은 단순히 절차적인 편리함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비평 공모 혹은 등단을 통해 꾸준히 만들어지는 신인 비평가들은 비평계 자체가 문제 없이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했다. 다시 말해, 한 해에 등장하는 새로운 비평가들, 혹은 ‘인정 받은’ 비평가들은 이들이 속해있는 세계가 문제없이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나 과연 꾸준한 비평가의 생산이 등단제도 자체의 유효성, 혹은 그가 가진 권력을 안전하게 지탱해주는가? 내가 의문을 제기하고자 하는 것은 등단제도에 속한 이들, 혹은 그를 생산하는 이들에 대한 것이 아니다. 등단을 통해, 그리고 등단 이후에 꾸준히 생산되는 비평을 이미 검증된 안전한 내부에 포함시키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문제다.

등단은 어떠한 권력도, 혹은 검증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잠시 눈을 돌려, ‘평론가’, 혹은 ‘비평가’라는 직함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 직함은 누구를 통해, 혹은 어떠한 절차를 통해 부여되는가? 등단한 이들도 평론가라는 이름을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있고, 등단하지 않았음에도 평론가라고 불리우는 이들이 있다. 매체에 글을 기고해야만 비평가라는 직함이 붙을 수 있는가? 그 매체는 무엇인가? 개인 블로그, 혹은 자신이 만든 플랫폼은 매체가 될 수 없는가? 혹은 다양한 신생 매체는 등단하지 않은 이들이 권력을 갖기 위해 게임을 벌이는 것인가. 한편으로, 우리는 비평가라는 직함에 대해 너무 많은 권력을 부여하고, 그 권력에 압도되어 부담스러워 하는 것은 아닌가?

어딘가에 글을 기고할 때 따라붙는 문제는 필자 자신을 소개하는 짧은 구절이다. 대학에 재학중이거나, 관련된 일을 하는 이들은 자신을 해당 매체 혹은 기관 소속으로 자신을 소개할 수 있으나 비평계에는 그렇지 않은 이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전업 비평가로서 생존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해보이지만, 동시에 아무런 소속 없이 자신을 비평가로 소개하는 것은 큰 부담이 따른다. 그렇기에 등단은 의존하기 쉬운 대상이 된다. 등단 제도는 그 과정을 거친 이를 비평가, 평론가로 호명할 수 있는 손쉬운 등용문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등단은 편리한 절차다. 등단제도는 당장 글 쓰는 개인을 서술하는 직함과 같은, 직접적인 호명을 결정해줄 수 있다.

혹자는 등단을 일종의 검증절차로 바라보는 오류를 범한다. 물론 등단 절차가 갖고 있는 최소한의 검증 과정은 존재한다. 길게는 70매, 적게는 50매 정도의 평문을 받기에, 그 절차 내부에서 필자의 기본적인 문장 구성 실력이나 아이디어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몇 심사위원의 심사를 거친 한 두 편의 글로써 해당 비평가가 완성도 높은 글만을 써낸다는 검증이 튼튼한 지지대인가는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다. 등단을 거친 비평가를 검증된 비평가로 받아들이는 그 수용은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등단 제도에 너무 많은 힘을 부여한다. 등단제도는 필연적으로 심사위원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해당 심사위원단이 원하는 평문의 취향을 반영한다. 이런 과정 내에서 비평은 동질화되기 쉽고, 동시에 등단에 적합한 비평문이 생산되기도 쉬워진다. 등단이 가진 권위 아래에서 등단하지 않은 비평가들의 글까지도 비슷한 논의를 되풀이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에 대한 물음은 존재해야 한다.

등단제도는 한국에서 끊임없이 공격당하는 대상이었다. 등단은 편리한 절차이고, 독자에게 일종의 마지노선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한국에서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등단제도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등단 제도만을 공격하는 것은 오히려 게으른 지적일 수 있다. 등단 내부/외부에서 생산되는 비평문에 대해서 우리는 좀 더 격렬히 논쟁해야 한다. 검증된 비평문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는가? 검증은 독자에 의해, 혹은 다른 비평가에 의해 끊임없이 진행되어야 한다. 등단 절차는 몇몇의 지향, 혹은 취향을 반영할 뿐이다. 이를 안전한 지지대로 수용한다면 또 다시 같은 문제를 반복할 뿐이다. 글은 평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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