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0
Critic
⟨로맨틱 머신⟩에 대한 짧은 소고: 카메라-눈의 체험을 체험하기
함연선
마테리알 편집인



<로맨틱 머신>을 보고 마이클 스노우의 <중앙 지역>을 떠올렸다. <중앙 지역>의 카메라는 마치 놀이기구를 탄 사람마냥 감독이 고안한 장치에 매달린 채 체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운동을 담아낸다. 반면 <로맨틱 머신>의 카메라는 그 스스로의 독자적인 위치에서 대부분 고정된 상태로 인공광원 장치들(등대, 헤드랜턴, 가로등 등)의 운동—이 운동은 정지 상태 또한 포함한다—을 담아낸다. 이러한 결정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영화 모두, 카메라-눈(만)이 목격할 수 있는 것을 관객으로 하여금 체험케 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더 나아가 카메라 및 영화 속에서 카메라와 관계를 맺는 기계의 움직임, 가령 <중앙 지역>의 경우에는 카메라가 매달린 기계의 움직임 그리고 <로맨틱 머신>의 경우에는 주로 등대를 위시한 인공광원 장치의 움직임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인다는 데에서도 공통된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영화적 체험이라는 것은 많은 의미를 지니지만, ‘체험’을 개별 작업으로서의 영화와 관객 간의 교환에서 벌어지는 어떤 것으로 한정해본다면, 그것은 둘 중 하나를 의미하거나 간혹 둘 모두를 의미하기도 한다. 서사에 대한 감정적 이입과 스펙터클에 대한 물리적 이입이 그것이다. 서사에 대한 이입을 위해 사용되는 장치로는 배우의 연기나 내러티브의 진행이 전통적으로 자리한다. 반면 스펙터클에 대한 물리적 이입을 위해서는 주로 어트랙션(attraction)이 강조된다. 영화에서 어트랙션은 모든 개념이 그렇듯 의미의 다변화를 겪어왔는데, 초기영화의 ‘트릭’부터 시작해서,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스펙터클한 씬이나 아이맥스와 4DX 등의 변화된 상영환경은 영화적 어트랙션을 볼거리를 강조하는 경향의 일부다.

서사적 이입과 물리적 이입이라고 양분하여 설명하긴 했지만 그 둘이 항상 명확히 나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영화에서 배우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자. 특정 배역을 연기하는 배우의 목소리, 눈짓, 움직임, 그의 육체에 입혀진 상처 등은 서사적 이입과 물리적 이입 둘 중 하나의 효과만을 취사선택하지 않는다. 이는 배우의 육체가 영화-안-세계와 영화-바깥-세계를 동시에 관통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배우의 육체는 서사적 이입과 물리적 이입의 효과를 동시에 만드는 셈이다.

<로맨틱 머신>은 육신을 지닌 배우가 나오는 영화도 아니고, 앞선 나의 설명이 주로 상정하는 ‘극영화’도 아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주요한 배우이자 배역인 인공광원들은 육체가 없음에도 빛이라는 속성을 지님으로 인해 영화-안-세계와 영화-바깥-세계를 관통한다. 영화 중간 중간에 등대 빛과 헤드랜턴 빛이 카메라와 정면으로 마주하는 장면들에서 <로맨틱 머신>은 빛의 속성을 지닌 이 육체없는 배우들을 이용하여 카메라-눈의 체험을 관객의 물리적 체험으로까지 확장시킨다. 여기서 “관객”이란 어두운 상영관 내에서 한 자리에 최대한 가만히 앉아 스크린을 바라보(아야만하)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영화관 관객이다. 해당 장면들에서 빛은 카메라를/관객을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가기를 반복한다. 빛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 스크린은 밝은 빛으로 가득차게 되고 어두운 상영관의 눈이 부신 관객들은 질끈 눈을 감거나 얼굴을 찌푸릴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럼으로써 관객은 카메라-눈만이 ‘볼 수’ 있었던 인공광원의 형상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육체없는 배우로서의 인공광원들의 어트랙션과 맞물리는 것이 인공광원들이 꾸리는 내러티브다. 이 내러티브는 영화 내내 간헐적으로 연결되는 지점들의 느슨한 배열로, 해안바위 위의 헤드랜턴을 쓴 사람들과 인공광원의 등장이 번갈아 진행되면서 심화된다. 머리에 헤드랜턴을 쓴 사람들이 바위 위를 서성거린다. 어떤 이는 낚시 장비를 어떤 이는 영화 촬영 장비를 들고 두리번 두리번 거린다. 중간중간 인공광원들의 시퀀스가 등장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헤드랜턴 쓴 자들이 무언가를 찾거나/채집하거나/낚기 위해 해안바위 위에 있음이 드러난다. 그들이 찾는 것은 바위 위를 기어다니는 벌레도, 바위의 반짝임도 아니다(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환한 조명 아래의 바위 씬). 수중 촬영 씬에서 드러나듯 이들이 찾는 것은 어둠과 빛에 다름 아니다. 물 속으로 잠수한 카메라는 무정형으로 움직이고 그로 인해 추상적인 형상의 빛(과 그 배경인 어둠)이 화면을 어지러이 메운다. 비교적 긴 해당 장면의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그 빛이 카메라로부터 비교적 멀리 떨어진 해안 도로의 가로등 빛이었음이 비로소 드러난다. 바로 이 장면에서 물리적 이입의 대상으로서의 빛과 서사적 이입의 장치로서의 빛이  개념적으로 겹쳐지게 된다. 인공광원이 숙주로 삼은 해안바위 위의 사람들의 움직임은 느슨하게 직조된 내러티브를 구성하고(따라서 해안바위 위의 사람들은 이 영화에서 배우로서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와 동시에 인공광원은 카메라-눈만이 체험하여 기록할 수 있는 특수한 형상으로서 빛으로서 관객들에게 제시되기 때문이다.

어둠과 빛을 낚는 자들, 혹은 어둠과 빛을 채집하는 자들의 모습에서 빛을 채집하는 카메라맨의 유비를 찾아내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카메라를 든 사나이>를 일정 부분 차용한 것이기도 하다.) 감독이 GV에서 직접 밝힌 바와 같이, <로맨틱 머신>의 인공광원들은 영화관의 영사기 혹은 더 나아가 오래된 낭만적 매체로서의 영화 자체에 대한 비유로 읽힌다. 자연적 조건으로서의 어둠을 밝히는 인공적인 등대 빛이라는 등식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영화관’의 조건이라 할 수 있는 어둠을 밝히는 영사기 빛 또 더 나아가 영화 그 자체라는 등식의 알레고리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로맨틱 머신>은 이 ‘영화적 전통’에서 벗어난 오늘날의 영화 관람에 대한 비유 또한 포함한다. 등대와 헤드랜턴의 빛이 각각 카메라와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이 담긴 쇼트들에서 “‘빛과 마주한 카메라’에 기록된 빛을 영사하는 영사기”의 빛을 반사하는 스크린은 마치 스스로 발광하는 듯 보인다. 발광하는 스크린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의 블랙미러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다. 이러한 점에서 <로맨틱 머신>은 그것이 스스로에 바라는 유동적 위치에도 불구하고 명백히 블랙박스에 어울리는 영화이다. 영화관의 스크린과 인공광원의 결합이 거대한 어트랙션이 되어 반대급부로 ‘비전통적인’ 관람성의 비유를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카메라가 어두운 해안가의 풍경에 인공광원을 위치시켰듯이, 발광하는 스크린에 얽힌 유비는 관객들이 앉은 어두운 극장에 심겨 있다. ‘카메라-눈의 체험’을 체험할 관객들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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