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
Critic
무한 가정해보기
: 류한솔 작가의 ⟨크리크리 메리크리 스마스⟩를 중심으로
이하윤



⟨크리크리 메리크리 스마스⟩(2018)는 류한솔 작가의 동명의 개인전에 전시되었던 싱글 채널 비디오 설치 작업이다. 당시 전시장에는 전시의 중심이 되는 비디오 설치 작업과 함께, 비디오 설치 작업의 스토리보드를 발전시킨 드로잉 작품(⟪크리스마스 드로잉⟫(2015-2017), ⟪컷 드로잉⟫(2018), ⟪의성어 의태어 드로잉⟫(2017) 연작), 그리고 영상 내에서 만들어지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사진 촬영하여 디지털 프린트한 ⟨크리스마스 트리 오건(Christmas Tree Organ)⟩(2018)이 함께 전시되었다.


⟨크리크리 메리크리 스마스⟩는 한 인물이 방 안에서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여 그 파편으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는 다소 단순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양식상으로 크게 구분되는 두 개의 참조점은 영화에서의 호러 장르와 온라인 동영상 공유 사이트에 업로드되는 튜토리얼 콘텐츠(각종 만들기 영상, 언박싱 영상, 슬라임 플레잉 영상 등)이다. 작가는 카메라 시점을 달리하거나 배경 음악에 변화를 줌으로써 작품 내에서 두 개의 참조점을 구분하여 보여주고자 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본 작업은 마치 튜토리얼 콘텐츠라는 내러티브를 가진 호러 영화처럼 보이기도 하고, 호러 영화를 컨셉으로 한 튜토리얼 콘텐츠처럼 보이기도 한다.

본 작업을 호러 영화로 생각해 본다면, ⟨크리크리 메리크리 스마스⟩는 호러 영화 중에서도 스플래터 영화로 구분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스플래터 영화에서 내러티브와 서스펜스는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영화 내에서 많은 양의 피(고어)와 내장, 살육을 보여주는 것이 주목적이기 때문에, 스플래터는 그 자체로 자신의 소재이자 내용이 된다. 스플래터 영화에서의 신체 훼손 장면은 대부분 그 과장된 묘사로 인해 웃음을 자아낸다. 기실 스플래터 장르가 관객의 흥미를 유발하는 것은 ‘거리두기’의 효과인데, (진지한) 영화에서의 거리두기의 미학이 관객으로 하여금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도록 방법적으로—점프 컷, 매치되지 않는 쇼트, 비(非)-디제시스적인 삽입, 과도하게 혹은 과소하게 의미 부여된 내러티브 등을 통해—리얼리티를 이격시키는 데 있다면, 스플래터 영화의 미학은 이미지 단위에서 사실상 리얼리티를 포기하는 데에서 성취된다.


작가는 전시 종료 후 본 작업을 온라인 동영상 공유 사이트의 노하우/스타일 카테고리에 업로드하였다. 쇼핑 봉투에 담긴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을 책상 위에 쏟아붓는 모니터 시점 쇼트와, 신체에서 뽑아낸 장기 및 만들기 재료들을 다지고 주무르고 섞어서 장식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1인칭 카메라 시점 쇼트, 그리고 해당 장면에서 흐르는 배경 음악 등을 통해서 ⟨크리크리 메리크리 스마스⟩가 튜토리얼 콘텐츠를 참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당장 (세계 최대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 검색창에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하기’로 검색해 보면, “멋진 크리스마스 DIY 공예 20가지”, “크리스마스 트리 만들기!”, 등의 제목을 가진 다수의 튜토리얼 영상에서 본 작업과의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온라인 동영상 공유 사이트에 올라오는 영상 중에서도, 이렇게 불특정 개인이 본인의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는 영상은 그 성격상, 상당 부분 사실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더욱이, 영상을 보면서 튜토리얼을 직접 수행하려면—혹은 수행하지 않고 단순히 보기만 하더라도—의사-경험에 가까운 카메라 시점과의 동일시가 일어나는데, 많은 튜토리얼 영상들은 역으로, 그러한 동일시를 위해 영상 내에서 다루는 대상을 더욱 리얼하게 인지되게 하기 위한 기제(대표적으로 ASMR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류한솔 작가의 초기 영상 작업은 주로 기존 호러 영화의 신체 훼손 장면을 리메이크하는 방법으로 제작되었다. 작가는 신체 훼손 장면의 특수 분장 재료로 주로 식자재를 사용한다. 일례로 2011년작 ⟨빠직빠직 2⟩에서, 주인공이 들고 있던 총이 불발되어 터지면서 손가락이 분절되는 장면을 비엔나소시지를 특수 분장 재료 삼아 묘사하는데, 작가는 이후 해당 작업에 대해 “손가락을 모방하는 것과 식자재 그 자체를 드러내는 것 사이의 실험”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재현하는 것과 재현의 체계를 드러내는 것. 이러한 전략은 류한솔 작가의 작업에 있어 핵심적인 부분이다.

바로 위에서 언급한 작가의 전략을 ⟨크리크리 메리크리 스마스⟩에 적용해보자. 스플래터 영화의 장르적 특성으로 인해 튜토리얼 콘텐츠의 의사-경험적 특성은 무효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동시에 튜토리얼 양식이 제공하는 (내러티브의) 핍진성으로 인해 본 작업에서 스플래터 장면은 모종의 현실감을 획득한다. 그러나 이때의 현실감은 ‘누군가 스플래터 영화 속에서 실제 장기를 꺼내서 주무르고 있는 것 같은’ 현실감이라기보다는, ‘누군가 튜토리얼 영상 속에서 신체 비슷한 무언가에서 장기와 비슷한 만들기 재료를 꺼내서 주무르고 있는 것 같은’ 현실감에 가깝다. 작가의 초기 실험이 장면 안에서의 재현에 대한 고민이었다면, ⟨크리크리 메리크리 스마스⟩에서 작가는 ‘스플래터 영화’와 ‘튜토리얼 콘텐츠’라는 이질적인 재료의 배치를 통해, 서로의 재현의 체계를 드러내 보이고, 이 사이에서 어떤 ‘현실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


본 작업을 튜토리얼 콘텐츠의 내러티브를 가진 스플래터 영화를 컨셉으로 한 튜토리얼 콘텐츠의 내러티브를 가진 스플래터 영화…라고 무한 가정해볼 수 있을까? 작가가 영상 내에서 참조점으로 삼고 있는 두 개의 양식은 본 작업에서 다소 중심이 이동된 채로 활용되며 공명하고 있다. 스플래터 영화라는 ‘환영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체계’와 튜토리얼 콘텐츠라는 ‘상당 부분 사실성이 담보되는 체계’, 이 각각의 체계가 현실과 맺는 관계로 인해 두 체계는 서로를 상호 보완하면서도 모순되게 하는데, 여기에서 리얼리티는 지시되기 위해 환영으로 괄호 쳐진 형태로 드러나는 것도 아니고, 몰입을 위해 봉합된 형태로 드러나는 것도 아닌, 현실 그 자체로 일순간 변증법적으로 ‘구현(materialization)’된다.

정반합을 통해 현실의 공간을 잠시간 구현했던 영상은 결말부에 이르러 지극히 ‘영화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 트리 꼭대기에 마지막 트리 장식(머리 가죽)이 장식되고 나면, 영상은 돌연 스스로가 스플래터 영화였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은 것처럼, 신체에 남은 장기를 그러모아 벽에 흩뿌린다. 트리 꼭대기에 걸려 있는 머리 가죽이 줌 인 되고, 천상의 나팔 소리와도 같은 트럼펫 연주곡이 흐른다. 모든 장기를 꺼내어 놓고도 여전히 움직이는 신체는, 마지막으로 남은 뼈를 갈아 트리 위에 흰 눈처럼 뿌린다. 신체는 소멸하고, 입고 있던 옷만이 홀연히 바닥으로 떨어진다. 눈 쌓인 트리가 정면으로 보인다. 음악이 멈추고, 바닥에 떨어진 옷 틈으로 많은 양의 피가 흘러나온다. 흘러나온 피 위로 트리 조명이 깜빡거리면서 영상은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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