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3
Critic
박세영의 무한 도시

정경담
마테리알 편집인



박세영의 도시는 쇼트와 리버스 쇼트가 서로를 무한대로 토스하면서 실재와 가상, 완전한 가상과 증강 현실, 2007년과 2019년, 우주여행과 퓨처리즘, 딥웹과 모니터 표면 사이를 점프하는 곳이다. 이 점프의 전제는 쇼트 A와 리버스 쇼트 B가 굳이 서로를 물리적으로 마주 보지 않아도 무방하며, 심지어는 무작위로 정해진다는 사실이다. 또한 A와 B의 거리 역시 무작위로 무한 재조정된다. 때때로 박세영의 작업에서 A의 리버스 쇼트 B는 A에서 절대로 가시 가능하지 않은 원거리에, 심지어는 건물의 외벽을 뚫고 들어가야 볼 수 있는 실내에 위치하기도 한다. “숏-리버스 숏-숏”을 반복하는 후크송과도 같은 내레이션과 함께, 모든 이미지들은 실제로 그것이 서로의 물리적 쇼트-리버스 쇼트가 아니더라도 같은 서사 안에 꿰어지게 된다. 이것을 개념적 실험이라고 보는 것은 마땅치 않다. 이미 오래전부터 리버스는 물리적으로 단일 쇼트의 맞은편에 있는 것이어도 리버스일 수 있게 됐다. 국제전화, 페이스타임, CCTV를 매개하여, 혹은 중간 매체 없이 그냥 막무가내로 접붙여도 우리는 적당히 이해할 수 있다. 쇼트나 리버스 쇼트가 될 수 있는 표본집단을 모니터 밖으로까지 넓혀 본다면 영등포(전시공간 위켄드)의 수많은 리버스 쇼트 가운데 하나인 신사동(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이루어진 전소정의 전시 《새로운 상점(AU MAGASIN DE NOUVEAUTES)》과 박세영 작업의 닮음비를 따져보게 된다.
        박세영이 〈Between the hotel and city hall〉과 〈Windowlicker〉에서 보여주는 도시 오버랩과 전소정의 영상 〈절망하고 탄생하라〉(2020)는 모두 비선형적 합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전소정의 비선형성은 “파쿠르적 신체 체험”*에서 비롯되는 것이자 같은 대지 위에 수많은 가능성으로서 덧붙여지는 3차원 오브젝트의 차원에서 이행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3차원 오브젝트, 즉 육체의 불안정성은 역설적으로 안정적인 세계의 형태를 보증하는 데 기여하고, 서사의 획을 드러낸다. 오브젝트의 움직임이 언제나 동일한 대지 위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영상 작업들은 세계의 형태를 다시 구성하기보다는 이미 마련된 세계 위에서 움직이는 신체가 서사와 미감을 조형하게 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박세영의 비선형성은 대지(terrain)와 스카이박스 자체를 가변공간으로 둔다는 사실에서 온다. 스카이박스는 3D 게임의 모든 그래픽 뒤에 그려지는 6면체 형태의 큐브를 의미한다. 가령 여타의 작업이 인간 오브젝트가 방 안을 끊임없이 움직이고 혼동되고 서로 겹치게 하면서 역으로 ‘방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는 사실을 공고히 한다면, 박세영의 작업은 방의 존재를 보증하는 건물의 부피와 모양을 랜덤으로 변형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게임 개발 엔진 유니티의 매뉴얼에서는 스카이박스가 무엇인지 설명하면서 이것이 “당신이 존재하는 지오메트리 너머의 월드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보여준다”**고 부연하고 있다. 비약해 말하면 스카이박스는 단순히 환경 맵을 넘어 게임 내부의 모든 공간 생성을 가능케 하는(혹은 전제하는) ‘세계 전체’를 대리하는 것과도 같다.  

(위) 스카이박스와 대지의 관계
(아래) 내레이터는 “2019년의 잠실”에서 “2007년의 잠실(처럼 보이는 어딘가)”로 접속한다.

쇼트의 리버스 쇼트가 등장할 때, 그리고 리버스 쇼트의 리버스 쇼트가 나타날 때 그것은 이미  다른 소실점과 다른 아이레벨로 거듭 재조정된 결과이다. 이 재조정은 박세영의 쇼트와 리버스 쇼트, 즉 A와 B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이 메타적 존재일 때만 가능하다. 외부에서 세계로의 침입을 허용하는 콘텐츠(이를테면 VR이나 AR 같은 것들)는 절대로 대지를 끝없이 갱신하지 않는다. 그러나 외부가 세계를 직접 조정하거나 관망하기를 원하는 신적 위치에 놓일 때 대지는 갱신되든 다시 놓이든 아무 상관이 없어진다. 이 세계의 신은 개발자(박세영)이거나 관망자(관객)다. 관망하려는 신은 프레임 속의 세계를 직접 탐색할 방법이 없으므로 대리인(내레이터)을 고용하게 된다.  

접속한 세계에서, 2007년 이후부터 2019년 사이에 생긴 새로운 고층 건물들은 ‘표면의 무늬’로 땅 위에 적용되어 보인다.

〈Windowlicker〉는 이같은 논리에 기반하여 〈Between the hotel and city hall〉에서보다 더 본격적으로 세계를 확장시키기로 한다. 잠실 한가운데 불현듯 나타난 반사빛은 박세영의 도시 이미지에서 쇼트-리버스 쇼트 사이를 오가는 지독한 무-선형성을 훨씬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빛’의 기원을 찾는 것은 ‘빛’의 리버스 쇼트를 찾아 떠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빛의 발원을 찾아 우리는 내레이터의 시선에 합세하여 “전진, 전진, 전진, 왼쪽, 오른쪽”으로 빠르게 활공한다. “범프, 회전, 회전, 쪼개지다, 미끄러지다”를 반복한 끝에 시점은 결국 최종적으로 세계를 벗어난(것처럼 보인)다. 우주도 무엇도 아닌 알 수 없는 가변적 스카이박스 내에 침투한 내레이터는 “확장”의 선언과 함께 ‘다른 세계’로 뛰어든다. 내레이터는 당황한 것 같다. 그는 자신이 신을 데리고 ‘과거의 잠실’로 워프했다고 믿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그와 우리가 함께 도착한 이 세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롯데월드타워는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라*** 납작하게 눌려 땅 위에 프린팅되어 있다. 비단 월드타워만이 아니다. 현재의 자동차들, 집들, 새로운 아파트들이 대지 위에 (게임 개발 툴의) ‘매터리얼’****로 적용되어 있다. 이상한 이 도시는 ‘2007년의 지형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2019년의 잠실동을 예견하고 있는’ 세계다. 다시 말해, 개발자가 별개의 두 세계를 뒤섞어 재구성한 완전히 새로운 곳이다. 그러나 내레이터는 2007년의 잠실동이 이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 철썩같이 믿는 동시에 과거, 현재, 미래가 선형적 시간성 위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말한다. 박세영의 도시는 그 오브젝트가 아무리 과거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해도 결코 과거를 향해 갈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기계 여인의 목소리에서 우리는 그 어떤 레트로도 발견할 수 없다. 이 사태가 “렌더링 되지 않은 풍경”인지 묻고는 읊조린다. “우리는 너무 멀리 왔다. 건물은 아직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날짜는 2007년입니다. 나는 망설입니다. 어떻게 현재로 돌아가지요? 씨발.” 그리고 불안하게 쇼트로서의 “고층 빌딩” 오브제도 리버스 쇼트로서의 발광지점인 무엇도 찾을 수 없게 되어버린 나지막한 대지의 표면을 허탈한 얼굴로 유영한다. 
        내레이터는 빛의 기원을 찾기 위해 과거로 불시착했(다고 믿고 있)지만, 더이상 나아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혹은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한편 계속해서 전소정의 도시는 과거의 방향으로 질주한다. 이상의 시, 근대 일본의 유럽 양식 백화점 같은. 왜 박세영의 도시는 과거를 향해 있으면서도 그곳으로 정향해 나아갈 수는 없는가? 박세영이 〈Between the hotel and city hall〉에 사용한 푸티지들은 대부분이 GPS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 구글 제공 자료들과 내부의 CCTV를 통해 촬영된 자료들처럼 보인다. 〈Windowlicker〉의 주재료가 된 대부분의 푸티지들과 렌더링 이미지 역시 그렇다. 이 자료들의 용례는 언제나 현재 혹은 미래를 위해서만 유효하다. 이 자료들은 모니터 밖에서는 불가능한 모습으로 시공을 뒤섞는 데 기여하게 된다. 즉 박세영의 도시는 과거처럼 보일 때도 이미 미래이며, 현재의 풍경처럼 보여도 이미 과거인 것들로 구성된다. 박세영의 도시에 흐르는 시간은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니다. 그러나 내레이터는 실재하는 세상을 경험한 적도 흐르는 시간을 겪은 적도 없다. 그에게 있어 자동차는 원래 길 위에 멈춰 있는 것이며, 발광하는 ‘빛’은 월드타워 84층에 최종적으로 멈춰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레이터의 인식체계 속에서 ‘빛’의 발원지를 추적하는 일은 끊임없이 ‘빛’의 리버스 쇼트(의 리버스 쇼트의 리버스 쇼트…)를 추적하는 일과도 같다. 시간이 흐르는 공간에서는 빛의 위치와 굴절각이 계속해서 이동하지만, 내레이터가 평생을 살아온 정지된 시공에서는 빛도 시간도 모두 정지되어 있으므로 그 이동 경로를 천천히 둘러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내레이터의 착각이라면, 대체 우주로 뛰어드는 것만 같은 접속 쇼트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Windowlicker〉의 워프가 (모든 것이 완전히) 다른 세계로 접속하는 것처럼 보이는 까닭은 햄릿*****이 그랬듯 “시간이 이음매에서 어긋나 있”기 때문일까? 그래서 내레이터는 “뒤틀린 세월에 저주받은 영혼”이 되어 모종의 소명을 위임받은 “우주적 상황”에 처해버린 것일까? 이 미끄러짐은 다른 세계로의 접속이 아니라, 빛의 추적을 가능케 하는 전제조건이었던 ‘시간의 정지상태’가 깨졌기 때문에 발생한 일시적 오류다. 그리고 ‘시간의 정지상태’가 깨진 이유는 개발자가 세계를 업데이트했기 때문이다. 내레이터는 시공을 점프하는 독자적 존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개발자가 만든 세계에 종속되어 있었던 셈이다. 내레이터가 박세영의 도시 가운데 어느 한 곳에 있는 한, 그는 언젠가 또 다른 업데이트들을 통해 2019년으로 돌아갈 수도 있고 2030년과 2050년이 뒤섞인 풍경을 미리 둘러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은 모니터 밖에 위치한 이들만이 알 수 있다. 박세영의 무한 도시는 근대 이래로 세계를 지배해온 직선적 시간관, 그리고 현존에 기반한 존재론을 뒤집는다. 그러나 그는 데리다와 함께 가지도 않는다. 어긋난 자리에 타자로서의 유령을 소환하는 낡은 작업을 없는 셈 친다. 그저 그 어긋남이 디지털 시공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어떻게 뒤섞이는지를 명료하게 가시화한다. 박세영이 보여주는 세계 위에서 우리를 안내하는 내레이터는 ‘타자(the Other)’와 달리 우리를 응시할 수도, 다른 것들과 내통할 수도 없다. 신이 프레임 내부를 탐색하기 위해 고용한(또는 만들어 낸) 신의 대리자 헤르메스일 뿐이다. “중개자 혹은 대상. 그 사이는 없습니다.”  


*전시 서문에서 발췌.

**“Skyboxes are a wrapper around your entire scene that shows what the world looks like beyond your geometry.”, Unity—Documentation—Manual, https://docs.unity3d.com/560/Documentation/Manual/class-Skybox.html.

***롯데월드타워의 준공은 2007년보다 3년 이후인 2010년 11월부터 2017년 2월까지 만 6년여간 진행되었다.

****유니티(Unity)에서 매터리얼(Material)이란 3차원에서 렌더링을 위해 별도로 관리되는 ‘물체의 표면에 대한 정보’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3D 물체의 표면에 입혀지는 무늬인 텍스처를 비롯하여 표면의 베이스 컬러, 투명도, 금속 정도, 강도, 홈과 나사 등이 포함된다.
*****데리다는 『마르크스의 유령들』의 1장에서 햄릿을 인용하며, 시간의 해체와 뒤틀림 속에서 등장하는 ‘유령들’로서 ‘타자’를 설명한다. 데리다에 따르면 우리가 현존에 갇혀 그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때 이미 ‘타자’는 우리를 응시하고 있으며, 우리는 주체로서 그들에게 응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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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영의 무한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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