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3
Feature
“퀴어영화 연구는 정말로 노다지”
『한국퀴어영화사』 책임편집 이동윤 인터뷰

마테리알 편집부



한국영화가 공식적으로 100주년을 맞이했던 지난해, 『한국퀴어영화사』가 출간되었다. 이는 한국영화사를 통째로 다시 보는 거대한 작업이었다. 책임편집인 이동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 『한국퀴어영화사』는 한국 퀴어영화를 본격적으로 역사화하려는 시도로서 의미가 깊다. 이전에 한국 퀴어영화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았던 이유는 뭐라고 보나.
사실 이 책을 준비할 때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이다. 왜 없을까? 이유는 크게 두 가지라고 본다. 첫째로 퀴어영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퀴어영화라는 말을 처음 듣는 건 아닌데, 그게 뭐냐고 했을 때 정의하는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는 거다. 보통 소수자가 주인공인 영화 정도로만 가볍게 여기는데, 그 인식도 시대마다 많이 바뀌어 오지 않았나. 퀴어영화에 대한 온전한 개념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게 뭔지 몰랐기 때문에, 이해하고 확장시켜 논의할 기회가 없었던 것 아닌가.
        두 번째는, 퀴어영화를 연구하려고 하는 연구자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이건 좀 어려운 부분이기도 한데, 퀴어영화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는 사실 퀴어 당사자성도 중요하게 인식을 해야 한다. 성소수자 당사자로서 커밍아웃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담는 연구자가 거의 없었다는 것도 하나의 한계점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김경태 선생님이 나에게는 너무 소중한 분이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한국 퀴어영화 연구로 석・박사를 하셨다. 박사 졸업하신 2017년만 해도 자기 연구에 대해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고 피드백도 없었다고 한다. 김경태 선생님의 연구 과정과 시기를 놓고 보면 이 책이 너무 늦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제서야 비로소 사회에 여성주의가 대두되고 담론화되는 과정에서, 퀴어 이슈도 그 기회를 함께 맞이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적절한 때에 이 책이 나왔다는 생각도 든다. 여성주의와 퀴어를 뗄 수 없지 않나. 운동의 영역에서 어느 정도 수위가 올라와서 가시화되고, 그 아젠다가 사회적 측면까지 침투해서 들어가야만 다양한 논의로 확대될 수 있고, 문화 콘텐츠 측면에서도 함께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고 본다. 아무것도 없이 문화적인 얘기부터 시작하면 뜬구름 잡는 얘기처럼 느낄 수도 있다는 거다.

💬 『한국퀴어영화사』는 구성과 배치가 독특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긴 글들로 굵직한 쟁점을 제시하는 한편 사이사이에 개별 작품에 대한 리뷰를 실었다. 어떤 이유에서 이렇게 구성했나?
영화제에서 낸 책이기 때문에 그렇다. 아시아 국가들에서 열리는 퀴어영화제 관계자들끼리의 협의체가 있는데, 서울프라이드영화제 김승환 프로그래머가 말하길, 거기서 한국 퀴어영화를 소개해달라고 할 때마다 막막했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엔 김승환 프로그래머가 『한국퀴어영화사』의 2장 부분에 해당하는 개별 작품에 대한 리뷰를 실을 작은 소책자를 만들자고 제안했었다. 예산도 작았다. 그런데 거기에 내가 대놓고 “현재 한국 퀴어영화에 대한 프레임 작업이 전혀 안 되어 있는데 이것부터 하면 안 된다. 논문 리서치하고, 영화들을 어떻게 봐야 할지에 대한 관점까지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한 거다. 다행히 김승환 프로그래머가 너무 좋아해 줬다. 예산을 만들어 보겠다고, 기왕 하는 거 인터뷰도 넣자고 해주셨다. 그렇게 1~4장이 구성된 거다. 처음부터 출판이 목적이었다면 아마 출판 기획자가 반대했을 거다. 일반적 구성이 아니니까. 독립 서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구성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근데 해놓고 보니 이 구성 자체가 너무 퀴어한 거다. (웃음) 우리의 의도와 형식적으로도 잘 맞는 책이 된 것 같아서 좋았다. 앞으로도 이 구성을 바꾸지는 않을 것 같다.

💬 서문에서 故 장준안 씨의 글이 『한국퀴어영화사』를 편집하는 하나의 기준점이 되었다고 밝히고 있고, 실제로 해당 글의 주요 토픽인 ‘메일 게이즈(male gaze)’의 문제의식이 책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전이 되었다’고는 할 수 있겠지만) 이미 너무 옛것인 멀비의 이론을 계속해서 현대로 가지고 와 각주 삼는 것에 의구심이 든다. 이를테면 해당 글에서 다루어지는 〈아가씨〉(2016)의 경우, ‘메일 게이즈’와 ‘레즈비언 게이즈’를 어떻게 구분할 건가 하는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사실 준안 씨의 글은 후반부에서 그걸 전복시키긴 한다. ‘숙희’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쇼트를 중요하게 다루면서, 이를 여성/레즈비언의 시선이라고 정체화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변칙적이라는 점에서 가능성을 가진다고 말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게이즈’의 문제는 퀴어영화에서 정말 중요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멀비가 모든 카메라는 남성의 시선이라고 정의해버린 것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과 반론 자체는 중요하지만, 그럴 때마다 멀비는 결국 소환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든다. ‘정전’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맞다. 멀비는 이미 영화이론의 시선 문제에서는 정전이 됐다. 하지만 정론으로서 그를 따르기보다는 다양한 분석과 이론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이 중요할 것 같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19)에서 시선이 굉장히 중요하지 않나. 시선이 전부인 영화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셀린 시아마 감독이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중요한 것은 카메라의 시선이 남성의 시선을 대변하느냐 여성의 시선을 대변하느냐가 아니다. 카메라의 시선이 가지고 있는 성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라봄의 대상이 되는 자를 어떠한 태도로 바라보는지가 중요하다.” 이 말이 퀴어영화에서 더 중요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 한국 퀴어영화의 ‘영화적 형식’이라는 게 뭐라고 생각하나? 故 장준안 씨의 글에서는 그것이 성애 묘사나 키스 장면 등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에 동의하시는지 궁금하다.
퀴어영화에서의 섹슈얼리티 재현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중요할 수밖에 없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성소수자라는 것을 증명하는 방식으로서 기능하기 때문에. 그러니까 영화 속에서 “나는 게이입니다”라고 얘기하는 주체가 되는 것, 그리고 그 정체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성애묘사를 드러내는 것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올해 〈찜〉(1998)을 다시 봤다. 극 중 안재욱을 분장해주는 분장사의 젠더표현이 굉장히 퀴어적이다. 말하자면, ‘게이’스럽다. 그런데 한 번도 타인과의 관계나 대사를 통해서 자신을 게이로 정체화하지 않는다. 물론 캐릭터의 표현을 가지고 정체성을 정의하는 것도 매우 편협한 일이긴 하지만, 그러한 퀴어성에 대해서 얘기할 수는 있을 거다. 
        사실 이것 때문에 한 번 김경태 선생님과도 얘기하긴 했는데, 〈윤희에게〉(2019) 어떻게 봤나? 난 정말 맨송맨송했다. 마지막에 손도 제대로 못 잡고 섹슈얼한 눈빛도 없이, 그냥 주인공의 “나는 여자를 좋아했어”라는 말 한마디로 그녀의 정체성이 과연 정체화될 수 있는 건가. 성애 묘사가 젠더 정체성을 결정짓는 결정적 요소는 아닐지라도, 현재의 한국 퀴어영화들은 이에 대한 표현 자체가 왜곡되어 있거나, 너무 극도로 자제하고 있는 느낌이 분명히 있다. 이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는 건 중요해 보인다.

💬 최근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상영된 〈틴더시대 사랑〉(2019)이라는 작품의 엔딩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퀴어영화에는 키스나 섹스 장면이 없으면 다들 어떻게든 그들의 사랑을 우정으로 포장해서 해석하려고 애를 쓰기 때문에, 그게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성애 묘사를 넣는 거라고 하더라, 근데 굳이 그걸 꼭 증명해야 하는 걸까.’ 인상적이었다. 어찌 보면 동일한 문제에 대한 다른 태도인 것 같다.
우리 세대는 증명해야 했던 세대였던 거다. 우리 여기 있어요, 우리 존재해요, 라는 인정을 향한. 지금 20대 분들을 내가 자세히 관찰하거나 그분들과 많은 얘기를 해 보진 않았지만, 그에 대한 어떤 문제의식, 답답함 같은 걸 크게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그 감독분이 젊은 세대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런 주장과 언급들이 한편으로는 반가울 때도 있다. 이 세대에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있구나 싶어서. 그것이 완전히 탈정치화된 발언이었다는 게 아니라, 그 속에서 최소한의 일상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하고 있구나, 라는 것만으로 좀 반가운 게 있었다.

💬 『한국퀴어영화사』를 비롯한 다수의 연구에서는 비극성에 대한 부정적 견해(“언제적 눈물 바람이냐!”)가 두드러지지만, 《마테리알》에서는 이번 기획을 통해 한편으로 비극성을 극단으로 몰고 가는 전략적 실천이 여전히 유의미하다는 쟁점을 제시해보고자 했다. 졸업논문을 “한국 대중영화의 비극성 연구”로 쓰신 것으로 아는데, 비극성에 특별한 관심을 두고 계신 것 같다. 단지 퀴어영화에서 ‘비극성’이 발견된다, 혹은 그렇기 때문에 유의미하거나 유의미하지 않다는 것 이상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태도나 입장이 어떠신지 궁금하다.
(읽으신 건 아니죠? 절대 읽지 마세요. 부끄러워요. 하하.) 개인적으로 비극을 무척 좋아한다. 그것이 만들어내는 파토스를 영화에서 체험하고, 그 강렬함에 심취되고 사로잡히는 것이 좋다. 그래서 졸업논문도 비극성에 대해 쓰게 됐다. 그런데 논문을 쓰면서 비극성에 두 가지 결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먼저 어떠한 가능성도 남겨주지 않고 한없이 절망하게 만드는 비극이 있다. ‘세상은 이런 거야’라고 폭발하고 거기서 끝나버리는. 그 반면에 그런 것들을 끝까지 뚫고 나아가려고 하는 주인공의 힘과 에너지를 최대한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비극들도 있다. 이와 관련해서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글도 가져와서 개념화를 했었다.
        『한국퀴어영화사』 2장을 쓰면서 영화들을 꼼꼼히 봤더니 굉장히 문제적인 비극성을 담아낸 영화들이 너무나 많았다. 비극적 카타르시스, 혹은 파토스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비극을 만들어내는 주체를 엄청나게 추상화시켜버리는 거다. 책에도 썼지만, 〈꿈의 제인〉(2016)에서 제인이 왜 죽었다고 생각하나? 영화에서는 그에 대한 어떤 단서도 주지 않는다. 그냥 점점 말라가고 왜소해져 가고 창백해지고, 그러다 갑자기 자살한다. 그녀의 죽음의 원인이 구체적으로 영화 속에 기입되어 있지 않다. 물론 편집을 통해서 제인의 말을 희망적 해석으로 끌고 갈 수 있는 가능성을 남기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죽음을 추상화해버린 영화적 시선이 문제적이라고 본다. 비극성을 통해 비극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삶의 모순들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하나의 비극적 현실을 만들기 위해서 퀴어를 소재적으로 소모해버린 것밖에 안 되는 거다. 2010년대 이후에 만들어지는 퀴어영화들 중에 이렇게 굉장히 외피적으로만 퀴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이 발견된다. 이러한 부정적 비극성의 대안으로서 내가 제시한 영화가 〈불온한 당신〉(2015)이다. 사실 퀴어 커뮤니티 내에서는 이 영화에 대해 비판이 많았다. 그런 혐오의 목소리를 왜 내가 계속 목도해야 하냐며. 하지만 나는 거기에 힘이 있다고 봤다. 비극의 현실을 회피하고 등 돌려버리는 게 아니라 계속 직시하는 것, 그럼으로써 관객에게 말을 던지는 것. 일본의 논, 텐 커플과 이묵 선생의 인터뷰가 혐오의 목소리 사이에 계속해서 삽입되는 것이 나는 가능성의 제시라고 봤다. 그 비극적 불편함들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그것을 넘어서려는 의지를 계속해서 우리에게 보이면서 그 비극성을 더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퀴어 커뮤니티 내의 비판 역시 일리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두둔하고 싶은 것은 이영 감독이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여러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그게 중요하게 다가왔다.

💬 『한국퀴어영화사』의 많은 부분이 게이 영화에 한정되어 있다는 아쉬움이 있다. 여성 퀴어에 할애된 지면이 비교적 적었던 이유가 있을까? 더불어 연표처럼 정리된 한국 퀴어 장편영화 리스트 섹션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한국 퀴어영화에서 단편이 갖는 의미와 의의가 무척 크다고 생각하는데. 이에 대한 별도의 코멘트나 추후 작업 계획이 있는지?
필진분들 섭외할 때에도 그 문제로 정말 고민 많이 했다. 처음엔 후속 작업을 기대하거나 계획하기가 여의치 않았고, 이번이 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컸다. 그래서 오히려 모든 것을 다 담아야 한다는 책임감과 욕심도 생겼고. 그런 맥락에서 단편도 함께 리스트업까지 했었는데, 영화제에 소개된 것들에만 한정할 수밖에 없다는 또 다른 한계가 생기기도 하더라. 물론 편수가 과하게 많아지는 것도 고려해야 했고. 엄두가 나지 않는 작업이었던 거다. 그래서 아예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끝이라는 생각을 그만두고. 남성 중심으로 편향되는 건 남성 감독 수가 많기 때문에 더 우려됐던 점이기도 한데, 그래도 편수만 놓고 보면 나름 균형을 맞추려 노력은 했다고 본다.

💬 『한국퀴어영화사』에서뿐 아니라 많은 퀴어영화 담론에서 이송희일 감독의 영화를 ‘퀴어 리얼리즘’으로 매우 당연히 언급하는 경향이 발견된다. 그런데 퀴어 커뮤니티를 리얼하게 재현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퀴어 리얼리즘’으로 명명되기엔 어렵지 않을까? 또한 캐릭터 설정 등은 오히려 판타지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하고.
반대로 나는 그렇게 퀴어 커뮤니티를 가시화시킨 점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스스로 성소수자로 분명하게 정체화하고 공표하고서 영화를 만든 첫 번째 감독이기 때문에 더욱 중요시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주의’라고 말하는 것 같고, 개인적으로 그런 관점에 전적으로 비판적인 입장은 아니다.
        사실 자기가 속한 커뮤니티가 영화로 재현되고, 그걸 영화관이라는 공공장소에서 본다는 건 매우 설레고 감동적인 순간이긴 하다. 짜릿할 정도로. 음지에 숨어 몰래 만나고, 들킬까봐 조심스럽던 문화고, 공간들이었는데. 내가 처음으로 종로에 ‘데뷔’한 1996년에 〈내일로 흐르는 강〉이 개봉했다. 당시에 영화관에서 보는데, 그 속에 종로가 나오고 게이바가 나오더라. 덩달아 심장이 막 뛰고 마치 들킨 것 같기도 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사자로서, 또 같은 세대로서 이송희일 감독의 영화가 가진 그런 장점은 굉장히 크게 다가왔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에 비판적인 관점이 등장한 게 반갑기도 하다. 엄밀히 따지면 이송희일 감독의 영화들이 네오리얼리즘적인 사실주의는 아니지 않나. 다분히 장르적이고, 호스티스 영화 형식을 많이 차용했고, 느와르적인 색채도 짙고. 가령 〈백야〉(2012)처럼 말이다. 공격이 필요하긴 하다. 특히 〈야간비행〉(2014) 같은 경우는 나르시시즘적인 요소가 지나치다. 객관적으로 비판할 점이라고 생각하고, 여지도 충분하다.

💬 『한국퀴어영화사』는 이미 역사에 기입된 한국의 극영화들을 퀴어링하고 재정위시켰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시도였다. 서문에서 “(세 번째 장은) 분명한 한계를 지니겠지만 그 한계는 또 다른 담론으로 이어질 수 있는 씨앗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밝힌 바에 공감한다. 추후 기획들을 포함하여 이번 프로젝트가 어떤 담론으로 이어질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지, 또 어떤 새로운 관점이 제시되길 바라는지, 나아가 추후 작업에선 어떻게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자 하는지 궁금하다.
일단 첫째는, 퀴어 주체가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은 영화였어도 그 주체나 영화 자체를 퀴어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담론이 다양하게 나오면 좋겠다. 이번 『한국퀴어영화사』에서는 단적으로 퀴어 주체가 등장하는 영화들만을 다뤘는데, 이건 사실 퀴어영화를 매우 좁게 보는 관점이다. 이를 넘어서 관람자와 연구자가 퀴어적인 시선을 담지하고서 그에 기반하여 영화들을 다양하게 분석하는 작업들이 더욱 많이 나왔으면 한다. 퀴어 당사자 영화연구자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고.
        다음으로는 영화 연구의 측면이 아닐 수도 있는데, 창작자와 영화 연구의 결과물들이 보다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과정과 작업이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퀴어영화사』에 감독 인터뷰를 반드시 넣고자 했던 것도 마찬가지에서였다. 창작과 연구가 괴리되어 진행되는 건 서로의 의미를 무색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퀴어 연구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궁극적인 소망은 연구자의 시선과 언어들이 현실에 개입하여 변화로 작용하는 것이니까. 또한 다른 측면으로는 운동과도 같이 가야 한다. 연구자의 포지션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활동가의 포지션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그래야 퀴어영화 연구의 가능성이 더욱 확산, 확대될 수 있기도 하고. 
        각론으로 들어가자면 너무 많다. 퀴어와 공간을 잇는 퀴어지정학이라든지, 육체에 관한 연구라든지. 한동안 영화 연구가 답보 상태에 놓였던 시기가 있었다. 더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한 채 고리타분한 것으로 치부되었을 때. 구시대적인 연구영역처럼 인식되었던 셈이다. 전 세계적 경향이기도 한데, 듣기로는 뉴욕대에 있는 영화연구자들도 대부분 아카이브, 디지털 시네마, 매체학 쪽으로 많이 넘어갔다고 하더라. 텍스트 분석에서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퀴어영화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다시금 불을 붙일 수 있는 영역임이 틀림없다. 할 게 정말 많은 영역이다. 그러니 많은 분들이 관심을 두고 수행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 게이/레즈비언 영화와 변별하며 등장한 게 뉴퀴어시네마였듯, 오늘날의 퀴어영화가 이전의 퀴어영화에 대해 갖는 변별점은 어떤 게 있을까? 어떤 구심점 혹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나?
정말 어려운 질문이다. 중요한 질문이기도 하고. 해답은 가지고 있지 않다. 고민 중이다. 과연 해답을 가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뉴퀴어시네마」(1992)를 읽고 나서 한국영화들의 경향을 뉴퀴어시네마적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봤던 적이 있다. 뉴퀴어시네마는 그 이전에 미국에서 생산된 퀴어 재현물의 대부분이 게이/레즈비언과 장르를 중심으로 하며, 아주 관습적인 재현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그 속에서 성소수자들이 왜곡되어 다뤄지고 있음을 비판하면서 나왔지 않나. 그런 탓에 뉴퀴어시네마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영화들은 실험적이고 비선형적이고 과감한 표현방식을 추구했다. 장르를 끌고 들어온다 하더라도 그걸 다른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힘이 있었고, 그렉 아라키의 영화들과 같은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뉴퀴어시네마의 핵심은 실험성, 전위성에 있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그런데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나라에는 그런 영화가 잘 없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실험성, 전위성을 확인할 수 있는 프레임이 없다는 거다. 그래서 곧이곧대로 보면 안 되겠다, 외국의 프레임을 그대로 대입하는 건 위험하겠다고 생각해서 결국엔 철회하게 되었다. 앞에서 이송희일 감독의 영화를 리얼리즘으로 볼 수 있을지를 따져보기도 했는데, 그에 대한 대안이 있다면 나는 이혁상 감독의 〈종로의 기적〉(2010)을 예로 들고 싶다. 그런데 이 영화도 다큐멘터리이기에 가능했던 점들이 분명히 있다. 따라서 한국퀴어영화 안에서 다큐멘터리가 가지고 있는 힘과 가능성에 더욱 주목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퀴어영화와 운동의 상관성을 테마로 작업할 계획도 있는데, 그때 다큐멘터리라는 장르가 매우 중요하게 언급될 것 같다.

💬 인터뷰를 마무리하기 전에 하나만 더 묻겠다. 〈청포도 사탕〉(2011)은 왜 레즈비언 영화로 분류했나?
이런 영화야말로 퀴어적 시선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퀴어성을 발견해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원래 알던 영화는 아니었는데, 누가 레즈비언 영화라고 추천해서 봤다. 보고 나서는 이게 왜 레즈비언 영화일까, 하고 똑같이 생각하기도 했던 것 같다. (웃음) 그런데 또 레즈비언 영화라고 생각하고 보면 그런 면이 없지는 않더라. 바라는 건, 이 영화가 퀴어영화냐 아니냐로 싸우는 날이 오는 거다. 흥미로운 담론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지 않나? 나아가 퀴어적 시선에 대해 또 한 번 문제시하고 그런 시선으로 영화를 보는 게 어떤 건지 다시 담론화하고. 그러면서 담론의 영역이 넓어지는 게 아닐까. 작업 과정에서 〈불한당〉(2017) 같은 버디무비도 목록에 포함시키자는 의견도 있었다. 〈페스티발〉(2010) 역시 무작정 변태라고 치부되어왔던 성적 취향들이 가시화된 사례로서 퀴어영화로 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이런 영화들은, 〈청포도 사탕〉에 비해 아주 아주 적극적으로 해석해야지만 퀴어영화로 해석할 수 있는 영화라는 점에서 반대가 좀 있었다. 곧장 퀴어영화로 규정하기에는 추가적인 과정이 필요한 것 같았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퀴어영화사』를 5개년 계획으로 구상 중이기도 한데, 올해엔 ‘트랜스젠더 영화’에 관한 기획을 준비하고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책의 기본적인 구성과 포맷은 그대로 유지하려고 한다. 퀴어영화를 볼 때 하나의 주제나 프레임은 필요할 테니까 이론 작업들과 분석 작업들을 챕터로 구성해 같이 실을 생각이다. 나중에 시리즈가 완성될 때엔 통일성을 갖출 수 있게끔. 그렇게 작업물들이 꾸준히 나오게 되면 긍정이든 비판이든 많은 분들이 이에 대해 더 많이 떠들어주셨으면 좋겠다. 가시화를 우선시하는 옛 세대의 욕망일지도 모르겠는데, 그래야지 다양한 사람들이 퀴어영화를 색다르게 인식을 하고, 연구자나 영화판을 넘어서 관객으로서 퀴어영화에 새롭게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이런 작업을 할 기회를 얻은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여 퀴어영화 연구는 정말로 노다지니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연구자로서, 혹은 비평가로서 뛰어들었으면 한다.





여섯 빛깔 스크린 너머: 한국퀴어영화제 20주년에 부쳐

CRY, FUCK, BEAT UP (울고 하고 패고)

︎ “퀴어영화 연구는 정말로 노다지”: 『한국퀴어영화사』 책임편집 이동윤 인터뷰

한국 게이/레즈비언 영화와 호모-특정적 난관들

샷다 내린 퀴어랜드: ‘디스코팡팡’과 ‘방 탈출 게임’ 사이에서

뱀파이어의 딜레마: 누구를 위한 ‘착즙'인가?

정전에 속하기, 정전 밖에 있기: 사프디 형제의 방법

검고도 밝은: 조주현의 ‘흑공’과 스크린 안의 미로

아이돌 기표의 '트랜스' 해부하기: NCT 127의 〈슈퍼휴먼〉과 아이돌 피상성

'접촉'에서 '접속'으로: NCT 127의 경우

아직도 굳이 〈무한도전〉을 논할 필요가 있는 건

듣는 여자: 〈그리고 베를린에서〉

박세영의 무한 도시

추상化와 픽션: 이소정의 영상 작업에 대해

이미 흩어진 '밀레니얼 시네필’

비천함, 실패, 나쁜 것에 관한 정직한 성찰(우회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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